고방[3480]매헌(梅軒)선생시-秋日絶句(추일절구)
추일(秋日) - 권우(權遇. 조선시대 시인)
竹分翠影侵書榻(죽분취영침서탑) -대그림자 시원하게 서탑에 들고 菊送淸香滿客衣(국송청향만객의) -국화는 향기로이 옷속에 차네 落葉亦能生氣勢(낙엽역능생기세) -뜰 앞에 지는 잎 무어 좋은지 一庭風雨自飛飛(일정풍우자비비) -온 마당 비바람에 펄렁대누나
원문=梅軒先生集卷之五 / 七言絶句 秋日絶句-權遇 竹分翠影侵書榻。菊送淸香滿客衣。 落葉亦能生氣勢。一庭風雨自飛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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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잡록6= 권우(權遇)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중려(仲慮)며 처음 이름은 원(遠)이고
호는 매헌(梅軒)이며 양촌의 아우다.
젊어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호)의 문하에 다니며
성리(性理)의 학문에 정밀하였으므로 양촌이 늘,
“나는 아우만 못하다.” 하였다.
신우(辛禑) 때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본조에 벼슬하여 예문제학(藝文提學)에 이르렀으며,
문집이 세상에 전한다.
○ 〈추일시(秋日詩)〉가 있는데,
대나무는 푸른빛 나누어 글 읽는 자리에 스며들고 /
竹分翠影侵書榻
국화는 맑은 향기 보내어 손님의 옷에 가득하네 /
菊送淸香滿客衣
낙엽 또한 기세를 일으켜 / 落葉亦能生氣勢
온 마당 바람 비에 스스로 날리네 / 一庭風雨自飛飛
라고 하여서 점필재가 평하기를,
“기이하게 고요하면서도 말은 시끄럽다.” 하였다.
권우權遇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권원(權遠), 자는 중려(仲慮)·여보(慮甫),
호는 매헌(梅軒). 아버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
어머니는 한양한씨(漢陽韓氏)로 정승 한종유(韓宗愈)의 딸이다.
어려서는 형인 권근(權近)에게서 학문을 배우다가,
자라서는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377년(우왕 3) 진사가 되고, 1385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문첩녹사(文牒錄事)가 되고, 이어 성균박사·밀직당(密直堂)·장흥고사(長興庫使)·군기주부(軍器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에도 계속 등용되어, 1394년(태조 3) 광주판관(廣州判官)에 임명되고,
이듬 해 중부유학교수관(中部幼學敎授官)이 되었다.
1415년 원주목사를 거쳐 예문관제학이 되었으며,
1418년 충녕대군(忠寧大君)이 세자로 책봉되자 세자빈객이 되었다.
관직에 재임하는 동안 두 번이나 시관(試官)이 되어 정인지(鄭麟趾) 등
명사 1백여 인을 선발하였다.
그는 글씨를 잘 썼으며 작품으로 그의 형 권근의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의 평생사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에 세워놓은 비석)가
남아 있다. 또한 시문에 능했으며 성리학과 『주역』에 밝았다.
당시 그의 학풍이 떨쳐져 정인지·안지(安止) 등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저서로는 『매헌집(梅軒集)』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