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과 여호와 이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 은혜를 알지 못하는 백성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를 버렸으며,
각기 자기 율법을 굳게 세우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고, 더러운 우상 숭배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거룩한 분노를 발하시고 그들을 징계하시면 그들은 고통 속에 부르짖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시면 그들은 평안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살만해지면 그들은 또 우상에 빠져들었고, 하나님을 향해 충성되지 못하여,
돌고 도는, 애달픈 역사를 반복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나 개인의 역사가 아닐까 돌아봅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캄캄한 350년이 지났을 무렵,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고,
이스라엘이 맞섰지만 4천 명가량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실로에 있던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왔고,
그들은 땅이 울리도록 큰소리로 외쳤고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스라엘 보병이 3만 명이나 엎드러졌고, 하나님의 궤마저 빼앗겨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의지했지만, 정작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렸고,
하나님을 버렸던 터라, 그들의 강력한 승리의 확신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언약궤는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모든 종교적인 상징물들은 다 헛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는 모든 종교 활동과 예배 형식들과 규범들은 다 헛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승리이십니다.
여호와 닛시! 그리스도 닛시!(출 17:15)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했습니다. 이것이 미스바에서 일어난 부흥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지도력 아래, 이스라엘은 우상들을 제거하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만 섬겼습니다.
그때 블레셋이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그곳은 이스라엘 사람 3만 4천 명이 엎드러지며 쓰라린 패배를 당했던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회개하고 왕이신 하나님께 돌아온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분의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주시고,
가장 참혹한 패배와 상실의 장소를, 가장 감사 넘치는 예배의 장소로 바꾸어 주실 준비가 이미 다 되어 있으셨습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고,
이스라엘은 추격하며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흠 없고, 점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께서 자신을 온전한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그 은혜를 의지하여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자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나같이 작은 자가 위대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단의 머리를 밟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완전한 은혜가 십자가의 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하였습니다.(삼상 7:12)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란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말은 ‘여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미스바는 ‘망대’를 뜻하고. 센은 ‘험하고 날카로운 바위’를 뜻합니다.
나는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키려고 망대를 세웠으나, 세상의 날카로운 비난과 모욕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진 ‘도움의 돌’이 날카로운 바위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았습니다.
그 도움의 돌, 곧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마귀와 세상의 비난과 모욕을 자기 온몸에 다 받으셔서 내 마음을 지키시고 평화를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여기까지 모든 것이 에벤에셀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살면서 항상 보고, 듣고, 경험하던 것들이라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모든 것들이 실상은 은혜였습니다.
하늘과 땅도, 해와 달과 별도, 개울과 강과 호수와 바다도,
숲과 나무와 풀과 꽃들도, 바람과 물과 불도 다 은혜였습니다.
우주와 생물계와 내 몸을 운행하는 힘과 원리들이 완벽하게 은혜였습니다.
심장의 고동 한 번, 숨결 한 번, 내 몸의 세포 하나도 다 은혜였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가 만든 것이 하나도 없고,
부모와 성별과 국적 등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은혜였습니다.
내 영혼이 찾은 바 되고,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이 완전한 은혜였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잃어져서 방황하던 시절도 은혜였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이루어진 모든 소중한 만남이 다 은혜였고,
성취한 모든 긍정적인 성과들이 다 은혜였고,
고난과 실패와 아픔과 상실의 시기에도 은혜는 항상 내 곁에 진을 쳤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모리아 산에 오를 때 이삭이 물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거란다.”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에 이르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는 그 순간을 하나님이 멈추시고,
이삭을 대신할 숫양을 친히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라는 뜻의 “여호와이레”가 나타났습니다.(창 22:14)
여호와이레는 나의 생각, 나의 계획, 나의 노력, 나의 행위, 나의 결심, 나의 가치관·인생관·이상형과
전혀 상관없는, 100%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합니다.
여호와이레는 율법의 어떤 조문과 내 삶의 어떤 규정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위에서 부어지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모든 선물은 오직 은혜의 원리로만 취할 수 있습니다.
에벤에셀은 여호와이레와 함께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까지, 여기까지 은혜로 도우신 하나님의 손길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는 은혜는 지금까지, 여기까지에 한정되지 않고,
현재를 거쳐서 미래까지 완전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이레는 인류 역사에 면면히 흐르고, 인류의 미래에도 변함없이 흘러, 영원에서 영원으로 관통합니다.
여호와이레는 지나간 내 모든 삶에서 에벤에셀로 나타났고, 현재의 나를 떠받쳐 주고 있고,
미래의 나를 확고하게 지지해 줄 것입니다.
여호와이레의 정점은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독생자를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이레 그리스도는 우주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준비되셨고,
인류 역사 속에서 나타나셨고, 내 마음과 삶에 임하셨습니다.
에벤에셀과 여호와이레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에벤에셀과 여호와이레의 은혜가 내 영혼을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고,
감사와 만족의 노래를 부르게 하며, ‘은혜 담력’을 키워 새로운 용기를 줍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출처] 에벤에셀과 여호와 이레 (춘천샘물단지길교회) | 작성자 최근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