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기도합시다!'라는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기도회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는 빠른 속도의 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다 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교회를 처음 방문한 사람에겐 다소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아주 오래전 어느 날 저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 그렇게 기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성령 세례를 받은 이후, 한 3-4년은 그렇게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기도의 내용도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언부언하지 말라, 너희 필요를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왠지 기도회는 항상 '지성이면 감천이다'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았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그냥 한국말로 기도하지 않고 방언으로만 기도했던 시간이 그 뒤로 2-3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가 부산에서 열리게 되었는데(2005년도 경) 그때 제가 통역으로 봉사하면서 미국인 사역자들을 주의 깊게 관찰할 기회가 있었고, 또 제가 일하던 대학에서 캠퍼스 사역을 하던 미국인 선교사님을 돕는 경험을 통해 그분들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와 너무나, 매우 다르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미국인의 기도가 한국인의 기도보다 낫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분들의 기도는 뭐랄까, 더 성경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을 품은 채 조용한 기도를 추구하는 한 성경공부 단체에서도 훈련을 받았고 또 '기도체인', '금식기도', '기도를 통한 영적전쟁' 등, (자기의 의지로 기도하는 것 같은) 어떤 선교단체에서도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둘의 기도방법은 극과 극으로 달랐습니다.
2007년도에는 해운대 바닷가에 10만 명이 티셔츠를 맞춰 입고 1907년 평양 대부흥을 다시 일으키자며 모여 기도한다는 데, 저는 안 갔습니다. 저도 모르는 게 많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신다 했는데(신 31:6) 왜 꼭 부흥은 100년에 한 번씩만 오는가? 가장 귀한 예수님을 우리에게 이미 아낌없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롬 8:32), 이제 와서 10만명이 티셔츠를 맞춰 입고 모여서 떼를 써야만 '그래, 들어 주마'하는 분이신가? 우리가 그분 보다 이 땅의 부흥을 더 원한다는 말인가? 물론 그 기도회 이후로도 부흥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90년대 말에 꽃피웠던 청년들 사이의 부흥은 더 멀리 떠나 버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갈급한 마음으로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다가 2008년 5월에 인터넷에서 앤드류 워맥 목사님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대해서 설교하는 방송을 보게 된 날, 저의 삶이 before & after로 구분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전하는 메세지들은 생전 처음 듣는 설교이긴 했지만 저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쏙 쏙 이해가 되고 화답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성령님께서 저에게 계속 해 오시던 말씀을 사람의 음성을 통해 들었기 때문에 내적 증거를 갖게 된 데에서 오는 확신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중보)와 감사를 하되
여기 보면 간구와 기도, 중보를 각각 다른 것으로 구분합니다. 우리가 '기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간구'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간구도 하고 기도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간구와 기도는 다른 것이라는 말이겠지요.
(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위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잠잠하라, 고요하라"와 같은 것을 종종 '명령기도'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말에는 반말과 존댓말이 있어서 기도할 때 반말로 하면 명령기도, 존댓말로 하면 하나님께 하는 간구가 됩니다. 이렇듯 우리말에는 좀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디모데 2장 2절을 봅시다.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평안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또 우리가 잘못해서 하나님이 벌을 주신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청소를 오래 하지 않으면 한꺼번에 해야 할 것이 많아지듯이 그저 우리가 이 땅의 정치적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때, 이 사회가 병드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시기에(롬 8:28), 이 땅의 어떠한 악한 상황도 하나님은 선으로 바꿔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논한 것들을 몰라서 하나님께 해 달라고 하는 기도, 즉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식의 기도를 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너무나 귀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것이 그분들이 아는 최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구하여 이 나라를 구해 보겠다고 금식하면서 기도하시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기도는 틀렸어!'라고 하는 것은 성숙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바르게 말 해야만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가끔 바른 기도에 대해 배우고 나서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배우는 동안 틀려도 괜찮습니다. 말을 배우는 어린 자녀를 대하듯,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도 우리의 연약한 것들 때문에 우리와 교제하지 못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앤드류 워맥 목사님이 설립하신 케리스 바이블 칼리지에 보내주셨고 거기서 배우게 하셨다고 믿기에 워맥 목사님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비교적 최근인데, 워맥 목사님 왈, 자신의 기도 중 말로 하는 기도는 5~10%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인즉슨, "기도는 주님과의 교제"라는 전제 하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는 것이 90~95%이고 본인이 소리를 내어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는 기도는 (방언 포함) 5~10%라는 거지요. 여러분, 어떠십니까? 평소 기도에 대해 생각하던 것과 비슷하십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 내에서도 엊갈리는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열매를 보고 누구 말에 더 권위를 둘 지 판단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으니까요.
(마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새롭게 되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서 주님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시간에 말씀을 더 묵상하며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 기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원하시는 분들은 앤드류 워맥 목사님의 '더 좋은 기도 방법 한 가지'를 꼭 한번 읽어보세요. 제가 번역했지만 정말 너무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