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6장 1-3절
1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2 가사 사람들에게 삼손이 왔다고 알려지매 그들이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3 삼손이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가지고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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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세 가지는 장난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첫째, 먹을 것. 둘째, 말. 셋째 불입니다. 먹는 것과 말과 불로는 장난치는 게 아닙니다. 저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사명입니다.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를 가지고 세 번이나 장난을 칩니다. 그 결과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나중에는 눈이 뽑혔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여자였습니다. 삼손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여자로 시작합니다. 14장 1절은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 한 여자를 보고” 15장 1절은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가서” 16장 1절은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16장 4절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삼손의 주위에는 항상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자 때문에 두 눈이 뽑히는 노예가 됩니다. 그렇다면 삼손은 무엇에 약한 사람이었습니까? 여자입니다. 여기엔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 한경직 목사님은 기독교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 상을 받으신 분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70이 다 되셨을 때 김동호 목사님께 그러시더랍니다. “김 목사 사람들은 나보고 성자라고 말하는데 아냐, 나도 여자는 지금도 자신 없어.” 어떻게 70이 다 되신 분이, 모두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분은 스스로 자신 없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여자에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의 약점을 인정하는 사람이 넘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돈에도 약합니다. 여자에도 약합니다. 저도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약한 사람이 넘어질 것 같지만 약하기에 안 넘어집니다. 왜일까요? 넘어질 상황을 미리 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손을 보십시오. 삼손은 자신을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15장에서는 나귀 턱뼈로 천 명의 블레셋을 쳐죽인 사람입니다. 그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16장 1절을 보십시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다음에 곧바로 기생의 집을 찾아 들어갑니다. 이게 과연 자연스러운 모습입니까? 어떻게 성령 충만했던 사람이 곧바로 기생의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것이 삼손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성령에 충만할 때 더욱 조심할 게 있습니다. 이게 다라는 생각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여전히 나는 예배 끝나고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기도 후에도 음란해 질 수 있습니다. 사탄은 나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은 뿔달린 괴물처럼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삼손을 넘어뜨린 사탄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뿔달린 사탄은 우리가 사탄인 줄 알지만 예쁜 여인이 사탄일 것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광명의 천사처럼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넘어지지 않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미리 피하시기 바랍니다. 삼손은 오늘 피하기 전에 제발로 찾아갔습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넘어집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입니다. 미리 죄의 현장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나의 영적 아킬레스건을 지키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