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10월 25일 발생한 고부살인 사건 현장. 연합뉴스
1993년 10월 25일 오후 3시 17분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중견회사 사장 장재석 씨(가명·48) 집에서 장 씨의 어머니(75)와 부인(46)이 머리와 얼굴이 함몰된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두 사람을 가장 처음 발견한 사람은 장 씨의 동생 재민 씨(가명·43)였다. 사건 당일 월급을 탄 그는 평소 습관대로 형님 부부와 함께 사는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려고 형님 집을 찾아갔다가 사건 현장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형수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고 어머니는 간신히 호흡만 붙어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장 씨의 어머니도 인근 병원으로 긴급후송되던 도중 사망하고 말았다. 세대주인 장재석 씨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회사를 거쳐 몇 개월 전부터 A 그룹 계열사인 A 산업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유망한 경영인이었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지난 93년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명 ‘A 산업 사장집 고부 살인사건’이다. 범인을 검거하기까지 54일간의 숨막히는 수사기록을 따라가보자.
우선 현장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집안은 온통 피바다였다. 현장에는 범행에 사용된 피묻은 망치와 야구방망이, 흰 장갑 등이 나뒹굴어 있어 사건 당시의 참혹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장 사장의 어머니와 부인은 안방에서 발견됐다. 각각 18차례, 25차례나 둔기로 구타당한 상태였는데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참혹한 모습이었다. 사체 상태로 볼 때 범행이 일어난 지는 2~3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듯했다. 범인이 대낮에 가정집에 침입해 저항능력이 없는 부녀자들을 이토록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사실에 수사팀은 큰 충격을 받았다. 화장대 거울에 회색 눈썹 연필로 ‘장재석 기억하라’는 경고성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연히 초기 수사는 원한에 의한 보복살인으로 가닥이 잡혔다.”
최초 신고자인 재민 씨에 따르면 형님 집에 방문했을 당시 대문과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방 장롱서랍 두 개도 열려있었으나 금품을 찾기 위해 집안을 마구 뒤진 흔적은 없었다. 특히 서랍에 들어있었던 고가의 패물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2층 금고에도 손댄 흔적은 없었다. 따라서 강도살인사건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두 사람이나 살해하면서 거금이 들어있는 금고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회사 업무차 한 달에 25일 이상을 지방에서 상주근무를 하고 있던 장 사장은 이날도 지방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격자를 찾는 일이었다. 사건이 낮 시간대 발생한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는 범인을 목격했을 것이라고 판단한 수사팀은 인근 주민과 상인들을 상대로 탐문조사에 들어갔다. 수사팀은 이웃주민으로부터 “오후 3시 10분쯤 30대 중반 남자 2명이 장 사장 집 부근에서 서성대다가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사라졌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의문의 남성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들을 사건과 연관지을 만한 단서도 없었다.
도대체 대낮에 장 사장의 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 당시 장 사장의 아들과 딸은 학교에 가서 집안에는 노모와 부인만 남아 있었다. 수사팀은 인근 공사장 인부로부터 “오후 2시경 장 사장의 부인으로부터 수도계량기를 고쳐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사정상 다음에 고쳐주기로 하고 되돌려보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2시 이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얘기였다. 수사팀은 주변인들의 진술과 사체 상태 등을 종합한 결과 범행이 오후 2시~3시 사이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용의자를 특징지을 수 있는 확실한 목격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다만 현장조사 결과 밝혀진 것은 사건 직후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장 사장 부인의 소유인 엘란트라 승용차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범인이 이 차량을 타고 달아난 것으로 보고 차량 수배를 내렸다. 동시에 수사팀은 사업이나 채무관계 등으로 장 사장에게 원한을 품은 인물이 장 사장의 가족을 상대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장 사장과 가족들의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수사를 시작했다.
그해 4월 말 A 산업 사장에 취임한 장 사장은 지방에서 대규모 레저산업 추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수사팀은 장 사장이 취임한 후 해고리스트에 올랐던 직원들과 채무관계에 있던 사람, 사업관계자 등 장 사장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는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벌였으나 이들에게서 의심스런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5일 전인 20일 A 산업이 부도가 났다는 사실에 주목한 수사팀은 회사 채권채무자들을 상대로도 조사를 진행했지만 혐의점이 있는 인물은 드러나지 않았다. 수사팀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아무리 수사를 해봐도 장 사장에게 조금이라도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장 사장이 책임감이 유독 강한 인물이었으며 전형적인 일중독자 수준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대로라면 수사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사건발생 이틀째 되던 날 그동안 보복살인으로 맞춰졌던 수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발생한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없어진 것이 없는 것 같다’는 애초 진술과 달리 장 사장이 26일 오전 수사팀에게 ‘집안에 있던 현금 700만~800만 원 정도가 없어진 것 같다’는 신고를 해온 것이었다. 거금이 사라졌다는 점은 중요한 진술이었다. 원한이 아닌 강도살인사건일 가능성을 뒷받침해주는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부검결과 장 사장의 부인 손목과 목에서 0.5cm가량의 색흔이 발견됨에 따라 살해 직전 범인이 피해자를 결박해놓고 협박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범인이 화장대 거울에 남긴 낙서였다.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는 흔적을 현장에 너무 명백히 남겨놨다는 점은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수사를 교란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수사팀은 장 사장이 없어졌다고 진술한 현금 700만~800만 원의 행방을 찾기 위해 은행계좌 추적에 들어갔다. 또 초기에 장 사장의 주변인물에 집중하던 수사를 인근에 거주하는 동종수법 전과자 및 최근 출소자, 동네불량배 등으로 확대했다. 사라진 장 사장 부인의 차량이 대전에서 발견돼 원정범행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공조수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11월 15일 수사팀은 결정적인 단서를 찾게 된다. 장 사장이 없어졌다고 진술한 수표 중 두 장이 타인의 이서가 된 채 시중에 유통 중인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수사팀은 장 사장의 수표 중 일부를 부인이 보관하고 있다가 사건 당일 범인에게 빼앗긴 것으로 보고 수표유통경로를 추적했다. 수사결과 문제의 수표에 배서를 한 인물은 강도전과가 있는 정재형 씨(가명·28)로 드러났다. 특히 수표에 남겨진 필적은 범행 당일 장 사장 집 안방 거울에 쓰여있던 ‘장재석 기억하라’는 글씨와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정 씨의 ○○은행 수원지점 개인계좌개설신청서의 필적과도 일치했다. 수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정 씨는 이미 세 차례의 강도 전과가 있는 인물이었다. 특히 그동안 정 씨의 범행수법은 피해자의 목을 철사 같은 줄로 묶은 뒤 망치로 가격하는 등 이번 사건과 상당히 유사했다.
수사팀은 정 씨를 장 사장 집 고부 살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정 씨의 연고지인 수원으로 형사대를 급파했다. 하지만 정 씨가 이미 잠적한 뒤였다. 경찰은 11월 26일 현상금 1000만 원을 걸고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렸다. 약 한 달간 수사팀과 숨막히는 숨바꼭질을 벌이던 정 씨는 12월 18일 오후 4시 45분께 성동구 용두동의 대로변에서 수배전단지를 본 행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검거 당시 정 씨는 무려 30cm가량의 과도와 1m 길이의 전화줄을 지니고 있었다. 동대문경찰서로부터 정 씨의 신변을 넘겨받은 서초경찰서는 정 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사건발생 54일 만이었다.
경찰에서 정 씨는 “사건 전날인 10월 24일 밤 1시 30분경 장 사장 집 담을 넘어 들어가 지하실에 숨어있다가 오후 3시경 방 안으로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정 씨는 장 사장은 물론 그의 가족들과도 일면식도 없는 인물로 드러났다. 당연히 아무 원한도 없었다. 정 씨의 범행동기는 돈 때문이었다. 정 씨는 경찰에서 “출소한 뒤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중 강남 일대 부유층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범행대상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집 뒤에 공터가 있고 비교적 침입이 용이할 것 같은 장 사장 집을 골랐다. 현금을 뺏는 과정에서 장 사장의 부인이 반항하고 도망치려해 엉겁결에 살해했다. 범행 후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화장대 거울에 보복살인을 연상케하는 낙서를 남겼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정 씨는 진술과정에서 자신의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 거짓진술을 해 수사팀의 애를 먹이기도 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정재형은 경찰조사에서 자신이 주범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는 ‘나 말고도 강정식(가명)이라는 공범이 더 있다’며 공동범행을 주장했다. 방배동 포장마차에서 강 씨를 우연히 만나 범행을 저질렀는데 살인을 한 것은 강정식이고 나는 망만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팀이 정재형이 언급한 ‘강정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과자 15명을 색출해 수사를 벌였으나 사건과 관련된 아무런 혐의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팀은 정재형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을 뿐 아니라 장 사장 집에서 강취한 수표 대부분을 정 씨 혼자 사용했다는 점, 장 사장의 선글라스가 정 씨 집에서 발견된 점 등을 근거로 정재형이 형량을 줄이기 위해 ‘강정식’이라는 가공인물을 내세운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추궁 끝에 수사팀은 정 씨의 단독범행임을 자백받았다.”
정 씨는 범행 후 수원에서 셋방을 얻은 뒤 11월 초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 축산회사에서 고기포장 및 배달일을 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 후 전국에 자신의 사진이 담긴 수배전단지가 배포되자 일을 그만두고 송탄과 용인 등지를 돌아다니며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수사팀은 정 씨가 도피 중이던 12월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가정집에 침입해 부녀자 3명을 흉기로 위협, 현금 80만 원을 털어 달아난 사실도 밝혀냈다.
12월 21일 오전 11시 40분경부터 역삼동 장 사장 집에서는 두 시간여에 걸쳐 현장검증이 실시됐다. 정 씨는 뒷담을 넘어 집 지하실로 침입해 숨어있다가 지하실로 내려온 장 사장의 부인을 송곳으로 위협해 집 거실로 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장 사장의 부인과 노모를 위협한 뒤 차례로 장도리로 내리쳐 살해하는 장면을 담담히 재연했다. 강도살인 혐의로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정 씨는 수감 중 종교에 귀의, 참회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