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위편(闢衛編)
벽위편본 수록 가사는 1959년 홍이섭 박사에 의해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이기경 후손의 집에서 발굴․소개된 원본 『벽위편(闢衛編)』의 서책 중에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로 29cm, 세로 23.7cm의 국문 가사 1책이 있었는데, 이기경의 후손에 의하여 전사(轉寫)된 한글본으로 표제는 망실되고, 「오륜가(五倫歌)」, 「심진곡(尋眞曲)」, 「낭유사(浪遊詞)」, 「궐리사(闕里詞)」 등 네 편의 가사가 수록되어, 홍이섭, 이상보, 하성래 등에 의해 소개되었다. 이 가운데 천주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곡은 「심진곡」과 「낭유사」이다. 「심진곡」은 257구로 되어 있고, 「낭유사」는 74구로 되어 있다.
『벽위편』에 수록되어 있는 2편의 벽위 가사는 모두 천주교를 반박하는 내용이다. 즉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영혼 불멸과 사후 천당지옥설을 냉소적으로 부정하고, 유교의 윤리만이 진리라는 내용으로 천주교에 대한 기득권층의 입장을 반영한다.
한편 1931년 간행된 이만채(李晩采) 편 『벽위편』의 원형이라고 생각되는 양수본(兩水本) 『벽위편』은 1978년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의해 영인․소개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벽위 가사가 수록되어 있는 국문 서책은 제외되었다. 원본을 직접 열람하지 못했기에, 이 책에서는 이미 간행된 이상보의 『18세기 가사전집』(민속원 1991)에 수록된 것을 이용하였다.
○ <벽위편> 설명 및 원본 자료는 『천주가사 자료집 上』(하성래 감수․김영수 엮음,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0, pp.340~348.)을 옮겨 적었음
○ 자료집에는 한글 가사체로 되어 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아래 줄에 현대어 번역 및 한자(漢字)를 병기(倂記)하였음
심진곡(尋眞曲)
길가는 아ᄒᆡ더라 어ᄃᆡ로 가라는냐
(길 가는 아이더러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가다가 서슴거든 이ᄂᆡ말ᄉᆞᆷ 듯고가소
(가다가 머뭇거리거든 이내 말씀 듣고 가소)
한중의 일이업셔 이렁저령 ᄉᆡᆼ각ᄒᆞ니
(한중閑中: 한가한 때에 일이 없어 이럭저럭 생각하니)
텬리도 소연ᄒᆞ고 조화도 무궁ᄒᆞ다
(천리天理: 자연의 이치도 소연所然: 그러한 바대로 흐름하고 조화造化도 무궁無窮하다)
음양이 알션ᄒᆞ여 만물을 ᄉᆡᆼ셩ᄒᆞ니
(음양陰陽이 알선斡旋: 일이 잘 되도록 만들어 줌하여 만물萬物을 생성生成하니)
제셩품 졔직히여 졔소임 졔ᄒᆞ나니
(자기의 성품性品 자기가 지키어 자기 소임所任 자기가 하나니)
강상의 져두루미 집안의 두고보소
(강상江上: 강가의 저 두루미 집안에 두고 보소)
졔ᄶᅡᆨ이 아니여든 삭기칠졔 보왓는가
(제 짝이 아니거든 새끼 치는 것 보았는가)
어엿분 증경이는 ᄊᆞᆼᄊᆞᆼ이 노닐다가
(어여쁜 징경이/증경새: 수릿과에 속한 새는 쌍쌍이 노닐다가)
하ᄂᆞ히 죽은곳의 ᄒᆡ마다 울고오니
(하나가 죽은 곳에 해마다 울고 오니)
창외의 우는ᄭᅡ치 양상의 ᄂᆞ는 졔비
(창밖에 우는 까치 양상梁上: 대들보 위에 나는 제비)
가지각ᄉᆡᆨ ᄉᆡ즘ᄉᆡᆼ이 졔ᄌᆞ웅 각각잇ᄂᆡ
(가지각색 새 짐승이 제 자웅雌雄: 암컷과 수컷 각각 있네)
그즁의 ᄌᆞᄋᆡ졍은 금수와 ᄒᆞᆫ가지라
(그 가운데 자애정慈愛情: 아랫사람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은 금수禽獸와 한가지라)
소갓치 무졍ᄒᆞ되 졔ᄉᆞᆨ기 헐젹이고
(소 같이 無情하되 제 새끼 핥적이고)
범갓치 모진즘ᄉᆡᆼ 삭기둔골 두남두ᄂᆡ
(범 같이 모진 짐승 새끼 둔 골짜기 두남두네: 잘못이나 허물을 편들어 두둔함, 소중하게 여김)
알로ᄭᅡ나 ᄐᆡ로ᄂᆞ나 ᄉᆡᆼᄉᆡᆼ함도 텬리로다
(알로 까나 태胎로 낳으나 생생生生함도 천리天理로다)
져러타시 ᄉᆞ랑함은 뉘라셔 가라친고
(저렇듯이 사랑함은 뉘라서 가르친 것인가)
안밧는 가마귀는 더고나 긔특하다
(안받는: 새끼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음 까마귀는 더구나 기특奇特하다)
수풀의 우넌 소ᄅᆡ 셩호로 소ᄉᆞ나ᄂᆡ
(수풀에 우는 소리 성효誠孝: 효성로 솟아나네)
ᄆᆡ아지 자란후의 쳔리밧긔 나갓다가
(망아지 자란 후에 천리千里 밖에 나갔다가)
졔어이 만ᄂᆞ보면 흔연히 발겨ᄒᆞᄂᆡ
(제 어미 만나보면 흔연欣然히 반겨하네)
병ᄋᆞ리 길너보니 졔동ᄉᆡᆼ ᄉᆞ랑ᄒᆞ네
(병아리 길러보니 제 동생 사랑하네)
잘젹의 목을겻고 먹을젹에 서로불너
(잘 적에 목을 겯고 먹을 적에 서로 불러)
풀속의 흣터지면 술피울고 ᄎᆞᄌᆞ오네
(풀 속에 흩어지면 슬피 울고 찾아오네)
무슨지각 잇다ᄒᆞ랴 ᄌᆞ연ᄒᆞᆫ 졍이로다
(무슨 지각知覺 있다하랴 자연自然한 정情이로다)
기러기 나는거동 일ᄌᆞ로 늘어서니
(기러기 나는 거동擧動 일자一字로 늘어서니)
형제항이 져러ᄒᆞᆫ가 장유지서 ᄎᆞ렷는가
(형제항兄弟行: 형제 사이의 항렬이 저러한가 장유지서長幼之序: 어른과 아이의 순서 차렸는가)
쳐음의 나는ᄎᆞ례 갈ᄉᆞ록 ᄒᆞᆫ가질다
(처음에 나는 차례次例 갈수록 한가지로다)
벌통을 열어보니 군신분의 엄졍ᄒᆞ다
(벌통을 열어보니 군신분의君臣分義: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하는 도리 엄정嚴正: 엄숙하고 올바름하다)
안흐로 돕는신하 거문벌이 그아닌가
(안으로 돕는 신하臣下 검은벌*벌의 일종, 미상 그 아닌가)
밧그로 호위ᄒᆞ여 도젹을 방비ᄒᆞᄂᆡ
(밖으로 호위護衛하여 도적盜賊을 방비防備하네)
쳔만이 동심ᄒᆞ여 한님군 셤기나니
(천만千萬이 동심同心하여 한 임금 섬기나니)
ᄭᅩᆺ지고 돌아오면 공죄도 분명ᄒᆞ다
(꽃이 떨어진 후 돌아오면 공죄公罪도 분명分明하다)
ᄀᆡ암이 진을치니 장수는 어ᄂᆡ것고
(개미가 진陣을 치니 장수將帥는 어느 것인가)
군법이 완연ᄒᆞ여 항오를 ᄎᆞ렷도다
(군법軍法이 완연完然하여 항오行伍: 군대를 편성한 행렬을 차렸도다)
온갖즘ᄉᆡᆼ ᄉᆡᆼ기기난 하날이 분졍ᄒᆞ니
(온갖 짐승 생기는 것은 하늘이 분정分定: 나누고 정함 하니)
슬푸다 우리ᄇᆡᆨ셩 만물즁의 영한거시
(슬프다 우리 백성百姓 만물萬物 가운데 영靈한 것이)
텬명을 밧자와셔 오륜을 짓히나니
(천명天命을 받들어서 오륜五倫을 지키나니)
머리ᄯᆞ코 맛ᄂᆞᆫ부부 졍의도 뎡즁ᄒᆞ다
(머리 땋고 맞이하는 부부 정의情意도 정중鄭重: 점잖고 엄숙함 하다)
ᄉᆞᆷᄉᆡᆼ의 연분이요 ᄇᆡᆨ년의 ᄆᆡᆼ셰로다
(삼생三生의 연분緣分이요 백년百年의 맹세盟誓로다)
눅녜를 갓쵸와셔 졔각시 졍한후의
(육례六禮: 구식 혼인의 여섯 가지 의식.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납폐納幣, 청기請期, 친영親迎이 있음를 갖추어서 제 각시: 아내 정定한 후後에)
귀우나 어엿부나 쳔졍이 아니런가
(귀하거/귀여우나 불쌍하나 천정天定: 하늘이 정함이 아니런가)
병인되야 안진각시 ᄂᆡ엿지 셜게ᄒᆞ리
(병인病人: 병자 되어 앉은 각시 내 어찌 서럽게 하리)
얼고거문 우리낭군 남의님을 밧골소냐
(얽고 검은: 마마로 인해 얼굴이 얽고, 낯빛이 검어 못생김 우리 낭군 남의 님으로 바꿀쏘냐)
ᄉᆞ라셔 동거ᄒᆞ고 죽어서 ᄒᆞᆫᄃᆡ가셰
(살아서 동거同居하고 죽어서 한 데-같은 곳- 가세)
계집의 몸이되야 ᄒᆞᆫᄉᆞ람 셤기기는
(계집-여자의 몸이 되어 한 사람 섬기기는)
이것도 텬리여든 져즘ᄉᆡᆼ만 못ᄒᆞᆯ소냐
(이것도 천리天理: 하늘의 이치이거든 저 짐승만 못할쏘냐)
ᄌᆞ녀를 길너보면 부모은졍 ᄉᆡᆼ각ᄒᆞ리
(자녀子女를 길러보면 부모은정父母恩情: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 생각하리)
긔ᄂᆞᆫ년 것ᄂᆞᆫ놈이 알들이도 어엿불ᄉᆞ
(기는 년 것는 놈이 알뜰이도 어여쁠사)
어린ᄌᆞ식 먹일진ᄃᆡ 져굼기 슬여ᄒᆞᆯ가
(어린 자식子息 먹일진대 자기 굶기 싫어할까)
어린ᄌᆞ식 입힐진ᄃᆡ 져벗기 어려울가
(어린 자식 입힐진대 자기 벗기 어려울까)
들면안고 나면업어 어셔어셔 ᄌᆞ라거라
(들어오면 안고 나가면 업어 어서어서 자라거라)
ᄌᆞᄂᆡ도 나히만하 ᄌᆞ녀를 길러보소
(자네도 나이 많아 자녀子女를 길러보소)
ᄌᆞ식이 병이들면 졔몸을 밧고고져
(자식이 병病이 들면 자기 몸을 바꾸려 하고)
아들이 길을가셔 올긔약이 지나가면
(아들이 길을 가서 올 기약期約이 지나가면)
문의셔셔 기다릴졔 침식을 다잇나니
(문門에 서서 기다릴 때 침식寢食: 자고 먹는 것을 다 잊나니)
이사람 이졍리도 텬리로 솟아난다
(이 사람 이 정리情理: 인정과 도리도 천리天理: 천지 자연의 이치로 솟아난다)
부모의 음덕이야 텬디도 망극ᄒᆞ다
(부모父母의 음덕陰德: 숨은 사랑이야 천지天地도 망극罔極: 이루 말할 수 없이 큼하다)
ᄎᆡ의로 몸의입고 학발을 뫼셔시니
(채의彩衣: 색동옷로 몸에 입고 학발鶴髮: 머리가 하얗게 센 부모, 늙은 부모을 모셨으니)
ᄃᆡ슌을 법을밧고 증ᄌᆞ를 본을삼아
(대순大舜: 순임금을 법法을 받고 증자曾子: 증삼를 본本을 삼아)
졔힘을 다ᄒᆞ여셔 감지를 공궤ᄒᆞ니
(제 힘을 다하여서 감지甘旨: 맛있는 음식를 공궤供饋: 윗사람에게 음식을 드림하니)
ᄌᆞᄂᆡ도 늘거보소 셔룬 것이 늘기로다
(자네도 늙어보소 서러운 것이 늙기로다)
귀먹고 눈어두어 수죡이 다업슨 듯
(귀 먹고 눈 어두워 수족手足이 다 없는 듯)
원긔가 쇠ᄑᆡᄒᆞ니 긔갈이 ᄌᆞ즐시고
(원기元氣: 본래 타고난 기운가 쇠폐衰廢: 힘이나 세력이 점점 줄어서 없어짐하니 기갈飢渴: 배가 고프고 목이 마름이 잦을시고)
일신 슈쳑ᄒᆞ니 잠ᄌᆞ리 불편ᄒᆞ다
(일신一身: 자기 한 몸 수척瘦瘠: 여위고 마름하니 잠자리 불편不便하다)
첫댓글 조선 후기 서학(천주교)을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던 유자들의 인식이 드러나는 벽위가사 <심진곡>입니다. 당대의 정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기에 참고삼아 올립니다. 내용이 많아 4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