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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갑자기 신앙생활이 되게 어렵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갑자기 든 건 아니고 지금까지 살면서 신앙은 늘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는 모태 신앙이라서 교회나 또 뭐 목회자나 교회에서 하는 일들 뭐 이런 모든 게 너무 익숙한 사람이에요. 저한테는 익숙하지 않는 장면이 하나도 없어요. 어떻든 늘 제가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봐왔던 모습이 지금도 제 앞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건 없는데 여전히 어려운 건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목사가 되고 난 이후가 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네 가지 이유를 한번 좀 찾아봤어요.
첫 번째는 성경에는 너무 하라는 말씀도 많고 너무 하지 말라는 말씀도 많은 거예요. 여러분은 이제 갓 예수를 믿었으면 하지 말라는 말씀을 여러분은 몇 번 들은 적이 없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귀에 닦지 않도록 하면 안 된다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수없이 들었어요.
여러분 죄책감이 제가 더 많을까요? 여러분이 더 많을까요?
모태 신앙인 제가 훨씬 더 죄책감이 많아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말씀을 하라는 말씀도 많이 듣고 하지 말라는 말씀도 많이 듣다가 보니까 제가 불순종하잖아요. 왜냐하면 그 많은 말씀을 되게 어떻게 도대체 다 실천을 해요. 지금 목사니까 조금 해보겠다고 하지 옛날에는 목사가 아닌 때가 더 긴 시간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제 마음에 남는 것은 죄책감이더라고 실은 지금도 저는 저와 가장 큰 싸움이 죄책감이에요. 제가 뭐 이렇게 부족하다 뭐 이런 개념도 있겠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지금도 저를 가장 많이 괴롭힙니다.
여러분 죄책감은 여러분과 제가 죄를 지었으니까 당연히 가져야 하는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죄책감이 없으면 심각한 거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죄책감도 없다 이거는 여러분 정말 심각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죄책감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과 제가 다 죄를 짓고 살았으니까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될 사실이 하나 있어요. 이 죄책감은 하나님은 우리가 죄책감을 가지고 하나님께 접근하면 다가가면 하나님 우리를 용서하시는 거죠. 하나님 내가 이런 죄를 지었으면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나를 용서해 주시지만 사단은 이 죄책감을 가지고 나를 공격하는 거예요.
야 너 같은 애가 설교하느냐
너 같은 애가 장로냐
너 같은 애가 집사냐
이렇게 공격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왜 말씀이 너무 많아요? 하지 말라는 말씀도 너무 많고 하라는 말씀도 너무 많아서 제가 여러분과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면서 절대로 이 말씀을 완벽하게 다 실천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죄책감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꼭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죄책감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죄책감으로 예배하고 죄책감으로 봉사하고 죄책감으로 교회를 섬기기를 바라지 않으신 거예요.
그러면 이 죄책감은 누가 사용할까요?
사단이 쓰는 거죠. 사탄이 사단이 죄책감으로 가진 가진 여러분과 저를 계속 공격해서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책감을 가지는 이유는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 대속의 용서의 규모와 크기를 잘 몰라서 가지긴 해요. 나중에 한번 이 일을 다루겠지만 어떻든 어떻든 죄책감은 사단이 사용한다. 그리고 죄책감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두 번째 제가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여러분의 고민과 좀 다를 수 있어요.
회개예요. 회개.
이런 거죠. 분명히 회개는 했어요. 근데 변화가 없어요. 성경은 회개를 완전히 가던 길을 돌아오는 것을 말하는 건데 회개 후에 가던 길을 돌이키지 않을 때가 되게 많아요. 그러면 이런 거죠. 눈물은 흘렸는데 회개는 아닌 거죠.
여러분 회개와 눈물 흘리는 건 엄격하게 차이가 많아요. 회개하는 것과 후회하는 것도 차이가 되게 많아요. 아마 성도들이나 저와 여러분은 대부분 회개라기보다는 후회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목사로서 왜 그랬을까 내가 성도로서 왜 그랬을까라고 이렇게 후회를 하는 거죠.
근데 우리가 해야 될 것은 후회가 아니라 회개인 거예요. 근데 이 회개가 생각보다 어려워요.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고 난 이후에 그 하던 잘못된 행위를 멈춘 적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럼 저는 회개를 했다기보다는 후회를 하고 그냥 괴로워서 눈물을 흘린 거지 진짜 회개는 아닌 거죠.
여러분 우리는 이걸 입술의 회개라고 합니다. 그래서 입술로는 회개하지만 삶으로는 돌이키지 않는 거죠. 그래서 진짜 회개를 하기 어려워서 그런 자리에 가기가 어려워서 제 경우에 신행생활이 좀 힘이 들어요.
세 번째 제가 신앙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적 싸움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죠. 어떤 게 사탄의 일인지 어떤 게 하나님의 일인지 잘 구분이 가지를 않아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자녀를 사탄으로 알고 공격하기도 하는 거예요. 어떤 경우는 하나님의 자녀를 마귀라고 생각하고 마귀처럼 대할 때도 있어요. 잘 구분되지 않는 거죠. 우리가 영적인 눈이 뜨여지고 영적으로 성숙해지면 이게 사탄의 일인지 이게 하나님의 일인지 구분이 되는데, 우리가 아직 신앙이 어린 아이와 같아서 때로는 우리가 성숙하다 할지라도 긴 시간 예수를 믿었다 할지라도 이게 정말 사탄의 일인지 하나님의 일인지 잘 구분 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엉뚱한 싸움을 하는 거죠.
하나님의 사람들끼리 막 싸워요. 서로를 사탄이라고 생각하고 막 싸우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니까 영적 싸움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고 항상 정말 싸워야 될 영적인 대상과는 싸우지 않고 싸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싸우는 겁니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어떤 일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은 거예요.
그 결과 교회 안에서도 요상한 일이 벌어져요. 요상한 일이 난 아군과 아군이 싸우는 거예요.
원래 아군과 적군이 싸워야 되잖아요. 근데 우리가 영적 싸움이 뭔지 잘 모르니까 아군끼리 싸우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분쟁이 있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어요 이 모든 일은 어떻게 보면 내가 진짜 싸워야 될 영적인 대상이 누군지를 잘 구분하지 못해서 동료를 적으로 생각해서 싸우는 겁니다.
여러분 동료가 좀 잘못해서 적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동료예요. 함께 신앙생활하는 우리가 좀 잘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적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동료인 거예요. 근데 사람들은 조금 잘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적으로 여겨요. 그래서 싸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됐다면 성도는 실수할 수 있지만 그 실수로 인해서 성도가 적이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실수가 반복되고 권면이 통하지 않고 누구보다 사단의 종이 됐다는 것을 분명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있긴 있어요. 근데 그런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그래서 성도들끼리 서로 사탄이라고 생각하고 싸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영적 싸움을 잘 모르니까 제 경우는 신앙생활이 좀 어려워요.
네 번째로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은 신앙생활은 공동체 생활이기 때문인 거죠. 이런 거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격적으로 막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제가 이제 막 목사로 임명을 받고 막 이제 임지에서 이제 목회를 막 시작했어요. 근데 교회는 공동체잖아요. 공동체 공동체 공동체라는 것은 온갖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이 그 안에 산재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신앙생활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 생활도 함께 혼합되어 있는 것이 교회예요. 그러니까 내 혼자 예수는 잘 믿을 수 있는데 교회 안에서의 생활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왜요?
성격도 다르죠 경험도 다르죠. 출신도 달라요.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니까 신앙은 출발했는데 이 신앙생활 때문에 신앙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공동체를 포기하고 포기하고 그냥 가나안 성도인 거죠. 유튜브로만 예배를 드리고 혼자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납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교회 생활은 신앙생활은 원래 세상 생활 플러스 교회 생활이 신앙생활이잖아요. 근데 이제 이걸 좀 축약하면 신앙생활이라는 곧 교회 생활인 거예요. 그래서 이 복잡한 교회를 다니는 게 되게 힘든 거예요. 나는 좀 조용한 걸 좋아하는데 옆에 권사님이 막 너무 시끄러워요. 나는 좀 이렇게 막 묵상하는 걸 좋아하는데 막 운동하세요.
여러분 이게 잘 맞아 떨어져 갈 수 있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이제 목회적인 방향 저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사역이 있어요. 근데 성도들이 저 보고 목사님이 우리 교회는 그런 일을 안 해요. 이렇게 하면 은근히 제 안에도 막 불편함이 막 생겨요. 내가 저걸 해야 되나 이런 고민도 생기고 그래서 복잡한 교회를 다니니까 이제 신앙생활이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으로 사는 이들이 없으면 신앙생활이 어려워져요. 그러니까 교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있어야 교회 생활이 조화롭고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 때문에 교회 생활이 어렵습니까?
어떻게 보면 어려운 게 당연한지도 몰라요. 이 모든 걸 봤을 때 신앙생활은 좀 어렵다. 다음 주 설교 주제가 신앙생활은 쉽다예요. 여러분 어려운 건 이야기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편하게 들으시면 돼요.
그러면 이 어려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제가 몇 가지 정리를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신앙생활은 기본적으로 믿음 생활이기 때문에 믿음이 있어야 돼요. 이게 믿음이 없으면 모든 게 어려운 게 신앙생활이에요. 힘들고 어려워요.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곳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신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으면 가치 있는 행동이나 가치 있는 결단이 우리의 삶에 있을 수 없어요. 그리고 이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죠.
신앙생활은 근본적으로 나를 기쁘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함으로 말미암아 나도 기뻐지는 게 신앙생활이에요. 신앙생활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게 아니에요. 그때 우리가 신앙이 어릴 때 아니면 갓 예수 믿고 나면 내가 기쁜 걸 생각하고 왜 교회 다니는데 내가 기뻐하지 않을까 기쁨이 없을까?
여러분 신앙생활의 근본은 내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에요. 하나님이 기뻐하신 일을 내가 믿음으로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나에게 기쁨을 하는 나에게 하나님이 기쁨을 주셔서 내가 기뻐하는 것이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교회에서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내가 하는 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우선순위에 큰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근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냐 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불신앙의 결단을 하는 건 그 사람이 아직 믿음이 없어서인 거예요. 탓할 필요도 없어요. 그 불신앙적인 생각을 하고 불신적인 결단을 하고 삶을 사는 건 그 사람이 믿음이 없기 때문인 거죠. 그러니까 신앙생활의 기초 생활을 누가 잘하느냐 믿음이 있어야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킨 자를 성도라고 불러요. 계명을 지킨 자 그러니까 말씀을 지킨 자 믿음을 지킨 자를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라고 불러요.
이런 거죠. 성도의 출발도 믿음이고, 성도의 열매도 믿음이고, 성도의 결말도 믿음이에요. 천국이란 믿음 없는 자가 결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곳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한 평의 땅도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신앙생활은 믿어야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생활인 거죠. 예배도 봉사도, 교제도 그렇습니다.
유다서 1장 20절에 보면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 그러니까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돼 있어요. 그러니까 믿음이 없으면 어떤 것도 건축할 수 없다는 거죠. 결국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하느냐 믿음으로 하지 않느냐가 결정하는 거죠. 믿음이 없으면 세상도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대접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러니까 승리 없이 가정도 개인의 삶도, 교회도 사역도 온전하게 건축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겨야 열매가 맺어져요. 근데 그 이음은 믿음으로부터 온다는 거예요. 내가 난관과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이 이김은 믿음에서 오는 거예요. 그리고 이겨야 열매가 있는 신앙생활이 되는 거죠. 우리가 교회에 결실이 없다는 건 성도들이 믿음으로 싸워서 이기지 못했다는 의미인 거죠.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열매 없음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목회를 오래 해도 열매가 없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 말은 목회는 했지만 승리의 삶은 못 살았던 거예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의 믿음이 공허할 때가 있잖아요.
내가 수십 년 예수를 믿었는데 왜 내 삶에 열매가 없을까?
물론 착각이나 잘못 생각해서 그럴 수 있지만 좀 근원으로 가보면 내가 이겨야 될 순간에 진 거죠.
왜 졌나요?
믿음이 없어서 졌어요. 신앙생활을 잘하는 가장 근본은 믿음이 있어야 돼요. 믿음으로 아는 것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열매 믿음이 없으면 열매도 없고 열매가 없는 신앙생활은 여러분과 저를 지치게 해요. 왜 열매가 없느냐 바로 믿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이렇게 기대를 하잖아요. 내가 이렇게 교회를 다니면 이런 일들이 내 삶에 벌어졌으면 좋겠다 상상하잖아요. 근데 그 상상이 잘 안 돼요. 그래서 낙심하고 교회를 떠나는 일도 있어요. 그 중심에 뭐가 있냐 하면 믿음인 거예요. 믿음이 없으면 열매도 없고요. 믿음이 없으면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인내도 할 수 없고요. 믿음이 없으면 결과적으로 승리가 없으니까 열매도 결실도 없게 되는 거예요.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은 믿음이 있어야 된다.
여러분 오늘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나는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내가 믿고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걸 내가 믿고 하나님이 나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고 성령이 지금 나와 동행하고 계시다는 걸 내가 믿고 있는지를 한번 물어보십시오.
생각 속에 있는 것과 믿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그냥 생각만 하는 것과 내가 실제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전적으로 의뢰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두 번째로 믿음은 완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래야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처음 믿어요. 믿고 막 출발해요. 그런데 이게 뭔가 애매하잖아요. 정말 이렇게 예수를 처음 믿고 막 출발했는데 다 어설프고 온갖 막 이렇게 이상한 것이 막 힘든 일들이 막 겹쳐와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자꾸 믿음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인 것을 믿습니다. 세례를 받고 이렇게 하는 작업 자체를 자꾸 믿음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예요.
예수님을 믿는 순간 믿음이 완성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믿음의 출발인 거죠. 오늘 본문은 우리의 믿음을 마라톤에 비교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장거리 레이스와도 같아요. 그러니까 믿음은 순간적인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늘 승리한 것 같지만 내일 넘어질 수도 있고요. 이 넘어짐 때문에 그 사람을 판단해서도 안 돼요. 오늘 승리 때문에 그 사람을 판단해서도 안 돼요. 긴 시간 동안 이 사람이 하나님 안에 있었냐를 봐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다윗의 생애에 보면 다윗은 몇 번이나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실패했어요. 동료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빼앗아 오기도 했잖아요. 근데 성경은 다윗을 믿음의 사람의 영역에 넣어놨어요.
왜 그럴까요?
다윗이 몇 번은 실패했지만 그의 인생 전체를 보면 그는 믿음의 사람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한 순간으로 판단되지 않아요. 긴 장거리 여행과 같기도 하고 긴 장거리 마라톤 마라톤과도 같은 것이 신앙입니다.
이제 우리가 신약 성경의 특징을 좀 하나 알아봐야 되는데요. 신약 성경에 사용된 헬라어 동사 중에 헬라어 동사 중에 이제 현재형 현재형이 있어요. 현재를 설명하는 거 지금 뭐 밥 먹고 있다 뭐 이렇게 이런 거죠. 현재형을 설명하는 단어들 중에 많은 경우에 지속 그러니까 계속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어요. 기도한다는 의미 단어이지만 이게 의미적으로는 기도를 계속한다는 의미를 지는 경우예요.
계속형의 의미를 지닐 때가 신약 성경에 생각보다 많아요.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7장 7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 구절은 예전에도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구하라는 동사는 현재형이고요. 명령형이고 능동태입니다. 인칭 복수
그러니까 이게 어떤 의미냐 하면 한 번 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계속해서 구하라는 거예요. 여기서 찾으라 두드리라도 같은 시제가 쌓였어요. 그러니까 계속 찾고 계속 두드리는 것이 기도다. 한순간에 내가 막 힘을 다해 열심을 다해 막 40일 금식하고 하는 게 기도가 아니라 내 생애에 꾸준히 해야 되는 것, 내 생애에 꾸준히 찾아야 되는 것, 내 생애에 꾸준히 두드려야 한다는 그런 의미인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은 계속되는 것이지 일순간의 어떤 정점을 신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성도들은 여기에서 조금은 실패를 하는 것 같아요. 신앙은 진짜 오랜 싸움이에요.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까지 긴 시간 동안에 싸움인 거예요.
그래서 믿음은 믿음은 진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그 삶에서 오랫동안 계속하는 거죠. 그러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를 막 금식 기도도 하겠지만 그냥 그 생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하는 거예요. 예배를 계속해서 드리고 봉사를 끝까지 하고 섬김을 끝까지 하는 게 이게 신앙생활이라는 거예요.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정점에 열정을 다해서 교회를 섬기고 재산이 좀 없으면 또 힘이 좀 없으면 교회를 막 포기해. 이게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거예요. 신앙생활은 믿음의 형편에 따라서 그때의 환경에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 이 마라톤 경기 같은 이 시간들을 충성되게 꾸준히 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참모습이라는 그러다가 잠깐 실수도 하고 또 실패도 하겠죠. 또 일어나서 다시 걷고 또 달리고 이게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런 사람과 공동체의 능력을 주시더라.
여러분 기도가 오래 하는 게 어려워요. 근데 오래된 기도에는 힘이 있어요. 권사님들의 오래된 기도 권사님들이 이제 모태 신앙이 아닌 분도 있으니까 막 예수를 젊을 때 믿었어요. 힘든 일 때문에 예수를 믿었어요. 그때부터 6 70 80 90 하나님 나라 가기 전까지 계속 기도하는 것. 이제 나이가 들면 기도도 자꾸 잊어버리고 부탁해도 잘 생각도 안 나요. 그냥 어떨 땐 습관을 따라 늘 하던 기도만 되네 이고 또 가시고 그래도 그 멈춰지지 않는 권사님들의 기도가 교회를 힘 있게 하는 거예요.
예배도 그래요. 어느 날 예배가 은혜가 없어요. 목사 설교도 별로고 찬양돈도 별로고 막 별로인 거예요. 그래도 또 그다음 주 와서 예배하고 또 그다음에 또 예배하고 하다 보면 어느 날 하나님이 막 푹푹 은혜를 주는 시간도 있고 어떨 때는 내 속을 후벼 파셔서 나를 막 떡 흔들어 놓을 때도 있고 그러면서 우리가 긴 시간 생활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생활은 지금이 아니라 계속이다. 계속 완성이 아니라 계속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27절 말씀을 가지고 좀 마무리를 하려고 해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봅니다. 시작.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이게 PPT에는 없는데 킹 제임스 버전으로 보면 이렇게 됩니다.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이 끝까지 견제한 태도가 오늘 본문에 본 두 가지 동사를 통해 설명했어요. 비슷한 의미이긴 한데 첫 번째 동사는 자신을 친다는 거예요. 처복종시킨다 치다. 이 치다는 의미가 어떤 의미냐 하면 멍이 들도록 자기를 때린다는 거예요. 그리고 견딜 수 없도록 자기에게 그러니까 남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자기를 괴롭힌다는 의미인 거예요.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한테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날마다 자기의 육체를 멍들도록 때려서 하나님 앞에 있게 하는 게 믿음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옛날에 공부하다가 여러분 그런 기억이 있으시죠?
여러분도 공부하다가 막 다리를 때려가면서 공부하신 기억 대답이 없는 거 보니까 대분 없으신 것 같아요. 참고로 저는 있습니다. 예 예. 막 다리를 때려가면서 공부한 적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라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면 내 다리에 멍이 들도록 내가 나를 때리는 거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내 다리가 멍이 들도록 나를 때려서 나를 초복종시키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한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로 바울은 자신을 복종하게 했다는 거예요. 치다 복종하다 이렇게 한 거죠. 치다 복종하다 이 복종하다는 건 어떤 의미냐 하면 종처럼 살았다는 거예요. 종처럼 살았다 좀 다르죠.
우리는 보통 요즘 신앙생활 당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아야 됩니다. 또 이렇게 설교 안 하면 목사가 전통적이고 막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을 보세요. 요즘 젊은 분들이 저도 아주 늦지는 않지만 설교는 잘해요. 근데 너무 방향성이 좀 기울어 있어요. 진짜 본문을 잘 못 보고 여기서 복종하다는 것은 자기를 종처럼 살게 된다.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처럼 살게 했다.
그러니까 바울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었던 비결이 이 두 가지예요. 하나는 날마다 말씀 앞에 자기를 잊게 하기 위해서 자기를 때렸어요. 잘못 가면 자기 다리를 때려서 자기를 고통스럽게 해서 말씀 안에 있도록 자기를 날마다 쳤어요.
두 번째로는 자기는 종이라고 생각하고 산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살려고 했던 거죠. 그런데 이것도 둘 다 치다도 그렇고요. 복종하다도 그렇고 다 현재형이에요. 그러니까 계속의 의미인 거죠. 사도 바울이 이것을 평생 했다는 거예요. 자기를 치는 것 농이 들도록 자기를 때려서 말씀 앞에 자기를 복종하게 한 이 행위도 평생 했고, 자기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것도 바울이 평생 했다는 겁니다.
이제 한 두개 구절을 더 보면서 마치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같이 읽습니다. 시작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로마 시대의 종처럼 예수님을 섬겼다는 의미예요.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우리도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때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한 명령을 하셔도. 네 하나님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손해되는 결정을 나에게 맡겨도 네 알겠습니다. 하는 게 신앙 생활이라는 거죠.
한 번 더 봅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입니다. 시작.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라.
여기에 보면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도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의 삶을 살라는 의미예요. 여기서 복종하다 항상 복종하여라고 이게 현재 형처럼 보이면 실은 이거는 헬라어로는 과거형이에요. 과거형. 그러니까 과거에 니가 복종했던 것처럼 현재도 계속 복종하라. 신앙생활을 잘하는 비결인 겁니다. 긴 시간 나를 하나님의 그러니까 우리가 자녀로도 살아야 되지만 기본적으로 종을 종의 자리를 잘 감당하는 자가 자녀로 해서 영광도 누리더라고요.
여러분 신앙생활은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돼요. 때로는 합당하지 않은 명령 앞에서도 복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근데 요즘은 교회가 그런 걸 잘 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교회의 결정을 하나님의 결정이 이렇게 여기지는 않잖아요. 요즘은 그런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지금도 여러분과 저에게 수많은 명령을 다양한 방법으로 내리셔요. 그럼 우리는 로마 시대의 종처럼 그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고 이 시대를 사는 것이 참 믿음의 생활이고 두 번째로는 계속해서 과거에도 충성했던 것처럼 현재와 미래에도 충성하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생활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길의 끝에는 천국의 영광과 영생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다 이 영생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의 여러분의 삶을 잘 이겨내십시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