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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테(岩手)】
미즈사와(水沢) 지도(指導) 45주년
2024년 1월 19일
지역광포(地域廣布)는 우리의 손으로!
올해는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의 ‘미즈사와(水沢) 지도(指導)’ 45주년의 가절(佳節). 종문(宗門)의 박해(迫害) 와중에 수많은 벗에게 희망을 밝힌 스승의 만감어린 격려들은 지금도 동지의 마음에 맥박(脈搏)치고 있다. 이번 회에는 당시 회장에 모인 벗들의 증언과 스승의 마음을 이어받아 지역에서 분투하는 청년부의 활약을 소개한다.
◇ 광포사(廣布史) 메모 ◇
1979년 1월 11일. 종문(宗門) 박해(迫害)의 폭풍 속에서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혹한의 미즈사와시〈水沢市, 현 오슈시(奥州市)〉를 방문했다.
“‘이와테(岩手)를 반드시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모범현(模範県)으로 만들자. 결단코 승리하자.’라고 마음을 정하는 겁니다.” - 미즈사와문화회관에 모인 이와테(岩手)의 현(県) 간부(幹部) 들에게, 선생님은 힘차게 지도했다.
같은 날 밤에 실시된 이와테현 신년기념대표간부회에서는, 1월 11일을 ‘미즈사와의 날’로 하는 것이 발표되어 회장은 만뢰의 박수에 감싸였다. 그 후, 선생님의 제안으로 부인부(당시)의 ‘쿠리노미(밤 알)합창단’이 ‘황성(荒城)의 달(月)’ ‘봄이 왔다’ 등을 즉흥적으로 부르자, 모두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인 12일에는 미즈사와회관 개관 기념근행회(오전부터 저녁까지 자유근행회)가 실시됐다. 선생님은 현내(県內) 각지에서 달려온 많은 동지(同志)를 끌어안듯 격려. 동지의 요망(要望)에 응해 피아노도 연주했다.
“마음은 언제나 함께입니다.” - 고뇌에 허덕이는 벗을 열심히 격려하는 이케다 선생님. 미즈사와문화회관으로 달려온 동지는 8000명이 넘었다. “지역광포(地域廣布)는 우리가 개척한다!” 스승의 마음에 호응하는 제자의 열렬한 맹세가 이와테의 동지의 마음에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모리오카소카권·미루마에아사히지부(盛岡創價圈 見前旭日支部)
안보 유미(安保由美, 부총현장) 씨
보은의 인생을 스승께 맹세한다
45년 전, 안보 씨는 니노헤(二戸) 지역의 본지 판매점주였다. 종문의 극심한 탄압(彈壓)을 견디는 가운데 스승을 찾아 편도 3시간의 길을 달려 미즈사와로 모여들었다.
◇
이케다 선생님께서 이와테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구원받았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납니다.
선생님께서 이와테에 오시기 전 해(年) 말, 저는 갑자기 절(寺)의 중에게 불려가 30명 정도에게 둘러싸였습니다. 당시 30세. 판매점주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일방적으로 공갈(恐喝)당하고 신도(信徒) 제명(除名)을 강요당했습니다. 판매점주가 퇴전(退轉)하면 지역의 학회원도 그만 둘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학회에 대한 비방중상(誹謗中傷)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케다 선생님의 내현(內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도와주시러 오신다. 솔직히 그렇게 느꼈습니다. 1월 11일의 대표간부회에 달려가자, 모두를 따뜻하게 격려해 주시는 이케다 선생님의 모습이. 선생님의 유연한 모습. 힘차고 정확한 지도(指導)들. 평생 스승을 위해 보은(報恩)의 싸움을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27년 전, 니노헤(二戸)·구지(久慈) 지역의 권장에 취임. 반드시 광포확대(廣布擴大)의 결과를 나타내자고 분주(奔走)하는 가운데, 지역의 여러분과 미증유(未曾有)의 홍교확대(弘敎擴大)·「세이쿄신문(聖敎新聞)」의 추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저의 긍지입니다.
4년 전, 뇌경색을 앓아 입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지만 결코 지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치료·재활을 하는 가운데 컨디션도 회복. 학회활동(學會活動)에도 나아가 참가하고 있습니다.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어서신판1099·전집790)를 다해, 광포확대의 실증을 나타낸다. 이케다 선생님께 배운 이 학회정신(學會精神)을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도 보은(報恩)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미즈사와약진권·가네가사키소카지부(水沢躍進圏·金ケ崎創價支部)
마츠모토 후미(松本フミ, 지부부여성부장) 씨
“선생님을 따라간다”
일과(日課)는 「세이쿄신문(聖敎新聞)」 베껴쓰기. 현내외의 벗과의 대화에 도전하는 93세다. 지금까지 두 번, 이케다(池田) 선생님과의 만남을 새겼다.
◇
미즈사와문화회관에서 이케다 선생님을 만난 것은 제가 48세 때입니다. 긴장해서, 세세한 일들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역에 뿌리를 내린 ‘광포(廣布)의 촌장(村長)님’으로”라고 하신 지도는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을 따라가면 된다”고 마음속 깊이 생각했습니다.
당시 딸<카즈코(和子) 씨>은 현지 여자부에서 결성한 합창단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런데 11일의 간부회에서는 노래를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현관까지 내려와 함께 기념촬영을 해 주신 것입니다.
기쁜 듯이 말하는 딸의 얼굴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후에도 딸은 광포외길로 똑바로 학회활동(學會活動)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18년 전, 딸은 유방암으로 영산(靈山)으로 떠났습니다. 남겨진 제가 딸의 몫까지 열심히 하기로 결심하고 불법대화(佛法對話)와 「세이쿄신문(聖敎新聞)」 구독 확대에 힘썼습니다. 사람 앞에 나서는 성품도 아닌데, 지구여성부장을 오래 엮임한 것도 좋은 추억입니다.
지난해에는 동지와 함께 하치노헤(八戸), 센다이(仙台), 야마가타(山形), 모리오카(盛岡)로 대화(對話)를 위해 걸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건강하게 활동에 힘쓸 수 있는 것은 가족이나 지구(地區)의 여러분, 무엇보다 이케다 선생님 덕분이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을 위해 지역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 청년의 소리 ◇
미즈사와약진권·가네가사키환희부(水沢躍進圏·金ケ崎歡喜部)
센다 마사카즈(千田正和, 남지구리더) 씨
격려하는 것이 광선유포
학회활동(學會活動)에 힘쓰게 된 것은 8년 전입니다. 직장의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가네가사키(金ケ崎)에 귀향했을 당시 장년부(壯年部) 분의 권유로 지구(地區)의 좌담회에 참석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던 저에게 많은 분이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이런 따뜻한 세계가 있는가, 학회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습니다.
남자부 모임에 참가하는 가운데,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미즈사와 지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눈이 많은 지역에 선생님께서 방문해 주신 것이 놀라웠고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눈앞의 한 사람을 격려하는 것이 광선유포(廣宣流布)”라고 소설 『신·인간혁명(新·人間革命)』에서 배웠습니다.
이후, 자신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지역의 남자부원의 방문·격려에 도전. 만나지도 못한 멤버들이 마음을 열어주고 고민을 털어주게 되었습니다. 친구와의 대화에도 도전하는 가운데, 정신을 차려보니 일의 고민도 해결되었고, 어떤 일에도 도망치지 않는 자신으로 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저의 목표는 해외에서의 일을 쟁취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싸우신 스승처럼 저도 세계에서 통용(通用)되는 인재(人材)로 성장하겠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나^^^
대단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항상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