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선배에게 '아름나라에 바치는 헌사'를 부친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10288번으로 올렸었죠...우리과 동문회싸이트로 답장이 왔네요....글이 넘 좋습니다. 부산에서 광고회사 다니는 선배이며 나이는 나랑 동갑, 말빨은 저를(?) 능가합니다....관심있으신 여인네들은 연락주십시오..헐
멀리서 글로 나누는 삶의 교감이 너무 뿌듯합니다..
<아름나라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 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일기예보에선 중부지역에 호우경보가 내려졌다고 하지만 이 곳 부산은 아직 비 소식이 없습니다. 장마철이란 게 그렇더군요. 삼단접이 우산을 가방 깊숙이 넣어 다니기는 하지만 제대로 그 효용가치를 발휘하지는 못하는, 머피의 법칙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그런 계절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느 순간 맑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오늘같은 밤이면 조금씩 식어가는 도시의 열기를 몸으로 느끼며 이렇게 편지 한 장 쓸 수 있는 느긋함도 있어 그리 나쁘기만 한 계절은 아닌 듯 합니다.
장문의 편지 - 서간문 형식을 위해 날 제물로 삼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 잘 읽었습니다. '아름나라’라는 신촌 어느 구석의 주점과 그 속에서 들리는 예전의 노래들, 그리고 그 속에 어우러진 사람들. 마치 어제 일처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우라(Aura)'라고 그랬나요. 맞습니다. 대량복제가 판을 치는 첨단 디지털 시대에 그 곳 ‘아름나라’는 - 이제 아름나라는 서면의 ‘아리랑’과 대신동 '거목’, '초원’ 부대 앞 '108강의실’과 같은 - 결코 복제할 수 없는 도도함과 당당한 청춘의 한 무대였습니다. 그래서 현민씨와 나처럼 '술에 있어서 운명공동체’였던 이들은 그 아우라가 단순히 추억의 한 단면만은 아닌 것이겠지요.
사실 현민씨의 편지는 ‘술’에 관한 이야기나 ‘노래’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 때 흔하고 흔했던, 그래서 오히려 퇴색했던 '후일담’을 나누려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며칠전, 어느 후배와의 술자리에서 현민씨의 삶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천막농성을 하고 마치 학생 때처럼 집회에 참석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다는 요지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생활의 외피보다는 시대의 중심에서 후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긴장성이 더 부러웠다고 해야겠지요. 우리처럼 '사적 이익’이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고 살아가는 '공적 사회적 긴장성’ 뭐 그런 거 말입니다. 이제 두리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긴장성은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삶의 현실성을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동시대인으로서의 리얼리티와는 결별한 모습으로 '자신만의 현실’을 좇아 살고 있는 것이지요. 나 역시 그 두리 중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대를 둔감하게 만드는 법칙이 아주 음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윤대녕이란 어느 글쟁이가 그러더군요. ‘상식이란,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이기심의 합의(合意)’ 라구요. 상식이란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보편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어 버리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는 순간, 나 역시 소외되고 이기적인 한 부질없는 인간으로 전락해 버리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나라’는 그런 인간 군상들이 하나의 ‘도달가능한 실재적 이상향’으로 규정해 버린 하나의 해방구로 변모되고 마는 것입니다. 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이 하나하나 문을 닫고 레지스탕스 소굴같던 지하주점이 화려한 카페로 변모하는 순간, 우리는 그래서 추억마저, 지나간 청춘마저 도난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현민씨.
요 며칠간은 이상하게 후배들에게 연락이 많습니다. 서울사는 어느 후배도 뜬금없이 전화 해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고 보험 일을 하는 어느 후배도 살기가 힘들다며 소주나 한 잔 하자며 연락이 왔더군요. 덕분에 졸지에 보험 하나 가입하기로 약속은 했습니다만, 기분은 나쁘지 않더군요. 또 오늘은 바쁘기로 소문난 노성이란 녀석도 술 한 잔 하자며 전화가 왔습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음 주로 미루기는 했습니다만 난 아직도 후배들에게 걸려오는 전화 한 통에 명치 끝이 싸할 정도로 감동을 받습니다. 혼자 사는 늙은 노총각이라 더욱 그럴 겝니다. 물론 그 중에 현민씨의 공개편지도 한 몫 했지요. 멀리 있어 소소하게 소주잔 기울일 수는 없지만 '아름나라에 대한 헌사’는 자취방을 뒹굴며 맺은 '술에 있어서 운명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 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글은 말보다 진솔할 수 있다는 믿음에 확신을 더했습니다.
이제 초복도 지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됩니다. 가진 것은 오롯이 몸뚱아리 하나라 천박한 보신문화를 탓할 수도 없는 우리의 여름은 개들과 닭들만이 제 역할을 다 할 겁니다. 현민씨 역시 그 행렬을 굳이 피하지 마십시오. 컨디션 14병을 주문하는 우둔한 우정보다는 그게 백 배 나을테니까요.
휴가계획 세우면 부산으로, 마음의 고향으로 오십시오. 이곳에는 그래도 '니가 가라. 하와이’ 하는 싸가지 없는 친구는 없으니까요. 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대신공원 누리터 옆에 막걸리 한 통이면 나눌 수 있는 것은 다 할 수 있을 겝니다. 태안이 녀석도 이제 부산에 있으니 간만에 서로 나이 따져 가면서 시시비비 가릴 일도 있으니 금상첨화겠지요.
항상 건강하고 그 미소 잃지 않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 현민씨 기타 반주에 '차가운 겨울이 오면’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