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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輪廻)와 영생(永生) 그리고 도마복음 제9장》
음..
오늘 내용은 기독교 쪽 가르침과 불교 쪽 가르침에 있어서 가장 많은 트러블이 있는 내용인데요.^^
왜냐하면 윤회(輪廻)와 영생(永生)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회가 있다고 믿으십니까 아니면 없다고 믿으십니까?
기독교 쪽은 없다고 배우셨을 것이고 불교 쪽 분들은 있다고 배우셨을 것인데요.
제가 오늘 이 부분에 있어서 명확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근기(根機) 이야기에서 왜 갑자기 윤회와 영생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근기는 단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전에 예수님의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 이야기도 마찬가지이고요.
물고기든 뭐든 하루아침에 크는 것은 아니잖아요?
근기(根機) 또한 다생 겁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려면 먼저 윤회가 "있다" "없다"부터 정리를 해야 그나마 조금은 이해를 하시기 좋을 것 같아서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둘 다 맞는 말이랍니다.
왜냐하면 어느 것을 기준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가시나요?
성령(불성/본성)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윤회는 있을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성령(불성/본성)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영생(永生)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는 것이 본성(불성/성령) 자리인데 생(生)과 사(死)가 없는 그런 자리인데 어떻게 윤회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깨닫게 되면 누구나 이러한 사실을 알겠지만 본성(불성/성령) 자리는 윤회가 있을 수 없답니다.
저도 지금 이 자리를 보고 있지만 이것이 어떻게 죽을 수가 있을까요?
이 자리는 절대로 죽을 수가 없는 그런 거랍니다.
그러나 예수님 표현으로 하면 육체는 죽습니다.
그리고 육체는 생리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에 수컷과 암컷이 교미를 하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생명에는 성령(불성/본성)이 임하게 되고요.
그뿐입니다.
육체는 계속해서 교미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체들이 태어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생(生)이라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사(死)라 하고요.
육체라는 것은 죽으면 끝입니다.
그리고 그 육체와 육체에서는 새로운 생명은 또 태어납니다.
그리고 본성(불성/성령) 또한 새로운 육체와 함께하게 되고요.
그래서 윤회라 한답니다.
그러나 성령(불성/본성) 입장에서는 생(生) 자체가 없답니다.
그래서 사(死)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영생(永生)이라 합니다.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태초 이전에서 지금까지 앞으로도 영원히 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영생(永生)이라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하는 것뿐이고요.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것 가지고 수준 떨어지게 서로들 다투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하셔야 할 것은 성령을 영접하든 불성을 증득하든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니까요.
그러면 여러분들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을 얻을 수가 있답니다.
그리고 불교 식으로 말하면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요.
이 말은 제 말이 아니라 예수님과 부처님 말씀이랍니다.
저도 100% 그렇게 보고 있고요.
예수님이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느냐고요?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예수님도 여기에 대해서는 무수히 말씀하셨답니다.
대표적인 것 한두 가지만 골라 볼까요?^^
(마태복음 25장 46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답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여기서도 보십시오?
"영생에 들어간다" 하지 않던가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나요?
여기서 말하는 '그들'이란 성령을 영접 받지 못한 자들을 이르는 말이고 '의인들'이란 성령을 영접한 선지자들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쉽게 말해 성령을 영접 받지 못한 자들은 '영벌' 즉 '영원한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성령(불성)을 증득하면 영생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하신 것이고요.
이뿐인지 아십니까?
(갈라디아서 6장 8절)에는 이런 구절도 있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불교 쪽 수행자분들은 이 내용을 보는 순간 이해를 하실 건데요.
그러나 기독교 쪽 분들은 이 말이 무슨 말씀인지 아십니까?
육체를 위해서 사는 자는 곧 육체로부터 죽어서 섞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령(불성)을 위하여 씨뿌리고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는 뜻이고요.
성령 자체가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불성 자체가 불생불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윤회가 있을 수 있을까요?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는데요?
기독교 쪽 분들이나 불교 쪽 분들에게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부처님 제자들이라면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들들이라면 죽으면 섞어 없어질 이 육체를 위해서 투자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 표현대로 하면 영생을 거두는..,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불생불멸의 열매를 거두시겠습니까?
이런 점을 아시고 이번 내용을 보시면 좋을듯합니다.🤗
그러면 오늘도 경허집 내용과 예수님 말씀을 함께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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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65) ] 20260420
예순다섯 번째 이야기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조용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예수님처럼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부처님처럼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그리고 들고 있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
(참고 : 이 글은 만해 한용운 스님과 같은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
《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德裕山松溪庵回祿後成造勸善文
余仲春下澣於景德實相寺造百丈庵回祿成造序今又此松溪庵南來久矣爲文亦多所遇於文者或優興也或落拓也或慷慨也或景慕也幽閑清深憂愁窮縮也其事固非一二也而其所遇未有此二庵之如是慘憺也佛云無常之火燒諸世間又云三界無安猶如火宅人孰能戒悟於此有所傷悼古德云心有生住異滅故身有生老病死春夏秋冬成住壞空亦由是而有若能心住實地蛇跗蟬翼之待自不遷變也漢武帝鑿昆明池得劫灰天地亦不免爲火豈有瓊宮瑤臺金鳳玉龍之足恃乎比之蚌黏蟻蛭焉况乎山龕村落之微乎推此則得失興亡也不可以憂喜焉此庵也無蹟可考而土人之傳創於羅代蓋古也前有文谷櫟庵諸丈老執塵演經于斯聽徒盈室挽近運否其保殘如綫而終入八人天運之準量固如是耶抑物極則返將兆於大盛先有其衰之極如是耶于天高遠莫之究焉善餘慶福施生人天儒釋之典其理昭彰間不容髮此主化釋之所以焚香廣告于樂善大施之門者此也而擔荷成造事之當矣其誰曰不可依依上方春睡閑夢要圓因剝啄欠伸而寤栩栩者蝶杳入前塵蘧蘧者身宛是幻化墙角紅杏風落庭心碧草雨肥時政暮春矣裊裊一炷香半入軟蘿青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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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제목 : 덕유산 송계암을 복원하는 권선문
내가 이월 하순께 경덕 실상사에서 백장암을 조성하는 서문을 지엇고 이제 또 남으로 송계암에 온지 오래 되었다.
글 지은 것이 많은데 소위 글이란 혹은 흥취에서 혹은 적막한 때 혹은 슬플 때 혹은 무엇을 동경할 때나 그윽하고 한가로움이 맑고도 깊을 때나 우수가 다하여 찌들 때, 그럴 때 짓나니 그 일 이 실로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 경우가 이 두 암자처럼 참담하지는 않았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무상(無常)이라는 불이 모든 세간을 태운다"하셨고
또 이르시기를 "삼계(三界)가 편안함이 없는 것이 저 불타는 집과 같도다. " 하셨으니 누가 능히 경계하고 각성하여 그것을 아프고 슬프게 생각하겠는가.
고덕(古德)이 이르기를 "마음에 나고 머물고 변하고 멸함이 있기 때문에 몸에는 나고 늙고 병들어 죽음과 봄·여름·가을·겨올과 이루어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공하여지는 것이 또한 이것 때문에 있는 것이다.
만약 능히 마음이 실지(實地)에 머문다면 뱀의 비늘과 매미의 날개를 기다리는 것처럼 스스로 변천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한무제(漢武帝)가 곤명지(昆明池)를 파다가 겁회(劫灰)를 얻으니 천지도 또한 화재를 면치 못하거늘 어찌 경궁요대(瓊宮瑤臺) 와 금봉옥룡(金鳳玉龍)이 든든하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조개집이나 개미둑에 비하거니와 하물며 산골 움집과 미미한 촌락이라,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얻고 잃고 흥하고 망하는 것은 근심하거나 기뻐할 일이 못됨이로다.
이 암자는 옛자취를 상고할 데가 없으나 이 지방의 전설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하니 옛날일이로다.
전날에는 문곡(文谷)·역암(櫟菴) 등 모든 장로가 여기서 경을 강할 시절에 청중이 집에 가득 찼다는데 최근에 운이 좋지 않아서 근근히 보존해 오던 중 마침내 화재를 당했으니 천운의 돌아 감이 이러한가.
하늘은 높아서 다할 수 없지만 착한 일을 하면 경사와 복이 남는다 하고 베푸는 사람은 사람과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유교와 불교 경전에 그 이치를 소상히 밝혔으니 털끝만큼도 의심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화주스님이 향을 사루고 널리 선업을 즐기는 큰 시주집에 고하노니 이 조성의 일을 담당하는데 누가 불가하다고 하겠는가.
조용한 방장실에서 봄꿈이 깊었는데 새들의 요란한 소리에 기지개를 펴고 깨어 보니 훨훨 날으는 나비는 가물가물 잦아들고 이 몸은 완연히 환화(幻化) 공신(空身)이로다.
담장위의 붉은 살구꽃은 바람에 날려 뜰에 지고 푸른 풀은 비에 탐스러우니 때는 바로 저물어가는 봄이로구나.
일주(一炷) 향연은 부드러운 칡넝쿨처럼 푸르게 휘감겨 피어오르네.
인연 닿는대로 이와같이 권선문을 쓰노라.
(98~100p)
ㅡ
《도마복음 제9장》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위치 = 아래 왼쪽 하단 본 내용 숫자 4:02/54:36
https://youtube.com/watch?v=8fLKlrmCvGI&si=rq1KYLlaEsffoZY0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보라! 씨 뿌리는 자는 나갔다. 한 줌의 씨를 손에 가득쥐고 그것을 뿌렸다.
2.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쪼아 먹어 버렸고,
3.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땅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이삭을 내지 못했고,
4.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기운을 막았고 벌레가 삼켜버렸다.
5. 그리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그것은 좋은 열매를 내었다. 그것은 육십 배, 그리고 백이십 배의 결실이 되었느니라.”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오늘 내용은 경허선사가 경남 거창에 있는 덕유산 송계사라는 절에 가서 절 모양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기에 보시를 받기 위해 권선문(勸善文)을 작성해서 신도들에게 돌리는 내용인데요.
경허선사 당시의 조선 말기 때만 해도 송계사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찰들이 처참하게 허물어져가고 있던 시기랍니다.
경주 불국사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참고 자료가 있으니 한번 보시지요.
<불국사 참고 사진>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search.daum.net/search?w=img&q=%EB%B6%88%EA%B5%AD%EC%82%AC+%EC%98%88%EC%A0%84+%EC%82%AC%EC%A7%84&DA=IIM&vimg=61ghlfGTCFFJCw69JT&from=iim
불국사도 이 정도인데 다른 절들은 오죽했겠어요?
이렇듯 송계사도 처참하게 허물어져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허선사가 나서서 신도들에게 보시를 청하는 권선문(勸善文)을 작성한 내용이랍니다.
내용이 아주 주주 걸걸이 절박한 내용인데요,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덕유산 송계사는 신라 때 원효와 의상이 창건한 절이라고 하는데요.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인해 송계사 절이 형편없이 낡고 추하게 허물어져가고 있는 모습이랍니다.
권선문(勸善文)이란 말 그대로 선한 마음으로 보시를 청하는 그런 글인데요.
돈 있는 사람들은 목재 등을 보시하고 일반 신도들은 울력(노동)으로 보시를 했을 공산이 큰데요.
다른 내용들은 어려운 내용이 없으니 그냥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내용은?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무상(無常)이라는 불이 모든 세간을 태운다"하셨고]
라는 내용인데요.
이 내용을 보고 저는 개인적으로
"아.. 이것을 이렇게도 표현을 할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는데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에는 무상 즉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이니 세상 자체가 우리들에게는 괴로움과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세상이 괴로움과 고통을 주고 있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본성(성령/불성)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작게는 우리들 몸(오온)이 무상하니 몸(오온/육체)이 나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주고 있고,
크게는 대 자연의 변화로 인해 모든 생명체들에게 괴로움과 고통과 불행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조견오온(위파사나)을 해보시면 우리들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이 몸(오온)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답니다.(진실)
그리고 이 세계도 또한 얼마 안 있으면 자연환경의 변화(無常)로 곧 멸망을 할 것이고요.
그리고 다시 현 일류가 탄생하는 시간만큼 흐르고 나면 다시 이 땅에는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게 될 것인데요.
이것은 늘 그래왔기 때문에 대 자연의 변화(無常)랍니다.
물론 내 안에 있는 본성(성령/불성) 은 그 어떠한 것에도 흔들림 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요.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돌고 돌듯이 이 우주 전체도 시간과 주기만 다를 뿐 끊임없이 변하면서(無常) 돌고 있다(윤회)는 것입니다.
그래서 윤회라 하는 것이고 우리들 육체뿐만이 아니라 본성(성령/불성) 이외의 모든 것들이 다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보시고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무상(無常)이라는 불이 모든 세간을 태운다"하셨고]
라고 하셨던 거랍니다.
그래서
[또 이르시기를 "삼계(三界)가 편안함이 없는 것이 저 불타는 집과 같도다. " 하셨으니]
당연한 이야기랍니다.
우주 전체의 모든 세계가 변함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생겨났다다가 소멸하고 다시 소멸되었다가 생겨나고 있으니.. 변하(無常)고 있으니..
어찌 이것이 불타는 지옥불과 같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같아서는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지요?
전 인류도 지금과 같이 영원할 것 같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지구도 곧 있으면 다시 암혹 시대로 접어들게 된답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생(生)이 있으면 반듯이 사(死)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主/자신) 안에 있는 불성(성령)은 영생불멸(永生不滅)이라는 것이고요.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앞에 글자만 따서 영생(永生)이라 했을 뿐이고 불교에서는 이것을 분멸(不滅)이라 했을 뿐이랍니다.
그래서 경허 선사도 지금?
[고덕(古德)이 이르기를 "마음에 나고 머물고 변하고 멸함이 있기 때문에 몸에는 나고 늙고 병들어 죽음과 봄·여름·가을·겨올과 이루어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공하여지는 것이 또한 이것 때문에 있는 것이다.
만약 능히 마음이 실지(實地)에 머문다면 뱀의 비늘과 매미의 날개를 기다리는 것처럼 스스로 변천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라고 하셨던 거랍니다. 그래서..
[만약 능히 마음이 실지(實地)에 머문다면 뱀의 비늘과 매미의 날개를 기다리는 것처럼 스스로 변천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고요.
뱀이나 매미도 그렇잖아요?
때가 되면 허물을 벗고 매미도 때가 되면 날개를 달듯이 우리 인생이나 우주도 이와 같이 늘 변한다(無常)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상(無常)이라 했던 것이고요.
그리고 뒤에 나오는 내용들은 앞에 내용을 보충해 주는 내용인데요.
그냥 읽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한무제(漢武帝)가 곤명지(昆明池)를 파다가 겁회(劫灰)를 얻으니 천지도 또한 화재를 면치 못하거늘]
라는 말의 뜻은 한무제가 전쟁을 하는 데 있어서 지금의 남쪽 지방인 윈난성 내에 쿤밍 지역 사람들과 전쟁을 하는데 쿤밍 지역 사람들이 물 위에서 싸우는 전쟁을 매우 잘했다고 합니다.
물 위에서 싸우면 매번 대폐를 하니까 성질이 난 한문제는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 땅을 파고 바다와 같은 호수를 만들어 그 위에 배를 띄우고 전쟁 연습을 했다는 것인데요.
한무제가 그랬듯 아무리 그래봐야 오랜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경허가 보고 있는 천년 사찰 송계사도 세월 앞에서 처참한 몸꼴이 되었듯이,
우리들 몸은 물론 삼계(三界) 즉 우주 전체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한문으로 말하면 겁회(劫灰)가 된다는 것이고
우리말로 하면 ‘세상이 파멸할 때 일어난다고 하는 큰불의 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우리 몸(오온) 뿐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가 하나의 재로 변하더라도 우리들 본성(불성/성령/영혼) 만큼은 그 시작과 끝이 없기 때문에 영원하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은 반야심경(般若心經) 안에 잘 설명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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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마복음 제9장 내용인데요.
지난주에 제가 이 내용은 불교의 약초유품(藥草喩品) 내용과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도 이런 말씀을 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답니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근기(根機)에 대한 내용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몰라서 그렇지 여러분들도 직접 깨닫고 보시면 이 자리(성령/불성/본성/마음)는 정말이지 죽으려야 죽을 수 없는 그런 불변(不變)의 자리랍니다.
반대로 우리 몸(오온)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하는 존재들이고요.
그래서 무상(無常)이라 한답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우리 주(主/자신) 안에 있는 주님(성령)은 죽으려고 해도 도저히 죽을 수 없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는 그런 영생불멸(永生不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성(불성/성령/마음)이 만물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예를 들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 등등]
이것을 불교 식으로 말하면 우리 불성(본성/마음)은 태초부터 존재했다는 것이고 우리들 마음(불성/성령)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이었고 우리들 마음(불성/성령) 이 수뢰가 있으면 좋겠다 하니까 수뢰가 생겼고 우리들 마음(불성/성령) 이 자전거가 있으면 좋겠다 하니까 자전거가 생겼고 우리들 마음(불성/성령)이 자동차가 있으면 좋겠다 하니까 자동차가 생겼고 우리들 마음(불성/성령)이 비행기가 있으면 좋겠다 하니까 비행기가 생겼다는 것과 같은 뜻이랍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들 마음(불성/성령) 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를 두고 전지전능(全知全能) 한 우리 주(主/자신) 하나님이라 하는 것이고요.
우리들 주(主/자신) 안에는 이렇게 전지전능한 성령이 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하고 찾는 것이 성령(불성) 영접인 것이고요.
그래서 제 2장에서도
[1.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라고 했던 거랍니다.
이것은 스스로가 구하고 찾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지금부터라도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 3장에서
[4.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 때, 비로소 너희는 알려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너희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라고 하셨던 거랍니다.
기독교 쪽 형제들은 지금 이 내용을 잘 이해하셔야 한답니다.
성령(불성)을 영접하고 증득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령(불성)을 영접하고 증득하는 것이 큰 물고기요 그 외에는 모두 다 작은 물고기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은 깨닫고 성령(불성)을 영접하게 되면 누구나 알게 된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 말씀은 이렇게 깨닫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씨로 비유하고 있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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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보라! 씨 뿌리는 자는 나갔다. 한 줌의 씨를 손에 가득쥐고 그것을 뿌렸다.]
(해석 : 여기서 말하는 "씨 뿌리는 자는"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쉽게 말해 예수님이 성령을 영접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변 사람들에게 가득 뿌렸다는 것입니다.
불교 식으로 말하면 부처님이 법비를 흠뻑 뿌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런 비유를 하고 계시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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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쪼아 먹어 버렸고, 3.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땅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이삭을 내지 못했고, 4.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기운을 막았고 벌레가 삼켜버렸다.]
는 것입니다.
(해석 : 이 말은 곧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아무리 성령(불성)을 증득할 수 있는 방법(씨/법비)을 가르쳐 주어도 이렇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말씀에는 100%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지금도 불교나 기독교 쪽을 보면 엉뚱한 짓들이나 하고 있잖아요?
아예 성령(불성)을 영접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가르치는 방법 대로 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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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리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그것은 좋은 열매를 내었다. 그것은 육십 배, 그리고 백이십 배의 결실이 되었느니라.”]
(해설 : 맞는 말씀이랍니다. 더러는 성령(불성)을 증득하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되지요.
그러나 좋은 결과를 맺으려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해야 한답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이 내가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고 내 주(主/자신) 안으로 의식을 돌려서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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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https://youtu.be/olKXxM56qF8?si=ThV1gN0sqtamsp6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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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하셔서 꼭 성불이든 성령 영접이든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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