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 全谷) 이라는 지명이 낯설지 않다.
이곳은 경기도 양주군 영근면 전곡리에서 연천군 (漣川郡) 전곡읍 전곡리로 행정구역 이름이 변경되었다고 하는데 한탄강 유역에서 구석기 전기의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기 전 까지는 동두천, 의정부 지역등과함께 군인들이 주둔하는 북쪽의 작은 마을들로 인식 되어 지던 곳이다.
1978년 미국 공군 상병 그렉 보웬이 한탄강에 여자친구와 놀러 와서 코펠에 커피를 끓여 마시러 준비하던 차에 친구가 주워온 강돌의 모양에 주목하여 그 돌이 한반도 구석기 시대를 증언하는 구석기 전기의 양면 주먹도끼임을 발견하게 되고 이로인해 이후 30년간 대대적 구석기 유적 발굴과 전곡리 선사 박물관이 세워지게 된 동기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짜릿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막연한 인식을 가지고 있던 전곡이라는 마을에 5일장 취재차 동행하자는 세째 아이의 제안은 아무리 피곤이 누적 되어 에너지가 고갈 되었다해도 절대 거절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어떤 교통편이 있을 까? 잠실역에서 3300번이 시간별로 있다는 정보이외에 전곡장은 4일과 9일에 선다는 가벼운 정보에 접한다. 마침19일이 일요일이어서 우리 모녀 가기에 적당하다. 그런데 집에서 잠실 가기 보다 편한 방법이 없나 생각해보다가 집앞에서 1-1번 의정부행 버스를 택하기로 했다.강변역과 의정부를 운행하는 이 버스를 타고 의정부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는 동안 우리는 서울 북부 외곽의 도시의 모습을 바라 본다.
동구릉을 지나 시원하게 단장된 외곽의 모습, 아직도 보존된 배밭과 푸른 들판, 그 속에 하늘로 솟은 우뚝한 아파트의 무더기들, 쉬임없이 타고 내리는 승객들..6월의 밤나무에서는 흐들거리는 밤꽃 송이들이 푸짐하다. 키가 쭉 뻗어 커다란 접시꽃들도 한껏 용태를 자랑한다.. 자연스레 입에서 나오는 접시꽃 당신.. 이 쉬운 시의 제목으로 어느 시인은 일약 유명하게 되었지...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 나는 도시 외곽의 나들이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의정부 용현동을 지나 구터미널에 내려 보니 그 전에 있던 터미널은 이미 없어지고 새로운 터미널로 옮겨가 있었다.
시외 버스 터미널을 물어 찾아 가는 길에는 재미있는 간판들이 보인다. 가발 가게, 오래 된 만화책, dvd, 모아 놓은 헌 책방, 복권1등짜리가 나왔다는 가게등 정겨운 거리의 모습이다.
6월 여름 한 낮은 정말 뜨겁다. 구리에서 이 곳 의정부 터미널까지 50여분의 시간이 걸렸으니 점심무렵이고 시장기가 돌 때가 되기도 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단정한 엄마 김밥집 간판이 먼저 눈에 띈다. 여기서 전곡터미널가는 버스가 3300번 성남에서 잠실 경유하여 의정부로 오는 버스를 여기서 만난 것이다. 잠실에서는 7000원의 차비가 의정부에서 타면 3900원이다.의정부에서 전곡까지 거의 1시간 걸린다고 한다.
김밥 한 줄을 사서 딸과 나누어 먹는다. 나무젓가락은 공해물질이니 쓰지 말라는 엄마김밥집의 예쁜 엄마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은박지를 뜯어서 둘이 정답게 버스에 앉아서 먹는 김밥이 조촐하니 맛있다.
의정부에서 승객들이 거의 다 내리고 전곡 가는 버스안은 조용하다. 그런데 시외 버스터미널에서 본 그 악세서리 상점이 왜 흥미로울까? 황금을 닮은 도금 팔찌, 혈액 순환에 좋다는 자석 팔찌등 소박한 인간들의 허영심이 애교스럽기도 하다.
길에 나와 앉아 풋고추, 오이, 완두콩을 모아 놓고 파는 어느 엄마의 완두콩을 한 봉지 사서 가방에 넣고 오늘의 쇼핑을 시작한다..
완두콩을 담은 흰 봉지는 구멍을 동글동글 뚫어 콩이 시원하도록 배려한 봉지이다 그 구멍에서 연두색 완두콩알이 한 알 또르르 굴러 나온다..일금 5천원이다..
일요일 하루라도 길에 나와 앉아 장사를 하려면 2000원 3000원의 푼돈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완두콩 한 봉에 5000원을 주고 돌아서는 내 마음에는 그들의 삶을 생각해 보는 내 마음이 교차한다. 비싸다는 말을 목으로 꿀꺽 삼켜 버린다.
일요일 하루 집에서 편히 지내도 좋으련만.. 도지게 마음먹고 길가에 콩이라도 고추라도 따가지고 나온 그 엄마의 마음 밑바닥을 알것도 같다. 차라리 그들의 용기있는 결단력이라도 본받고 싶다고나 할까? 시장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의 삶의 모습은
차라리 경건하여 아름답다고나 할런지?
드디어 전곡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터미널 뒤편에 영동 사거리까지 300~400미터에 걸쳐 도로에 알록달록한 포장 천막들 아래로 다양한 품목들이 널려서
시장을 이룬다.. 입구에서 부터 꽃, 양말, 내의.마늘, 과일..점입가경이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곳, 기름 짜는 기계에서
참기름, 들기름이 나오고 깻묵이 과자처럼
척척 걸러져 나온다.
저 쪽 파라솔 아래 오디가 눈에 띈다. 지금이 오디가 익는 때.. 플라스틱 통에 보송보송 오디를 담아서 판다. 할매는 80이 넘어 머리는 새하얗고 허리가 굽었다. 이 파라솔 아래 조금 젊은 아지매와 동업을 한다. 그 아지매는 김치꺼리와 다른 야채를 팔고..이 할매 오디는 물이 질컥거리지 않고 보송하게 잘 따서 가는 동안 까만 오디물이 안 빠진다고 당신들 물건의 장점을 설명한다.
더운 여름에도 펄펄 뜨거운 기름솥옆에서 꽈배기, 찹쌀 도너츠, 핫도그, 튀김들을 파는 즉석 튀김집, 문어를 삶아 파는 안주 집, 뻥이요!!뻥튀기 아저씨, 그 옆에서 양산 쓰고 금목걸이에 검정 층층 드레스로 단장한 멋쟁이 할매는 하얀 가래떡과 쌀을 튀기려고 들고 나와 앉아 있다.
더덕 아저씨에게서 4년 된 더덕을 1kg사고
씨앗집에서 흰 민들레와 백일홍씨앗 두 봉지 사고 취재하느라 갈증난 딸아이는 시원한 식혜 한 컵, 엄마는 묵사발을 점심요기로 시켜서 먹으며 한 쪽 구석에 의자에 앉아서 포장 과일 상자를 식탁으로 자리 잡는다. 튀김집에서 꽈배기, 튀김, 핫도그.. 문어 한 접시, 옆집 야채가게에서 깎아 준 오이 안주,
이 보다 더 푸짐한 점심은 없으리라.
우리끼리 잘 먹고 살고 있으니 성가시게 하지말라고 까칠한 어느 상인도 만나지만
대부분 열심히 살아 가고 5일장을 찾아서 삶의 터전으로 삼는 분들을 만나노라면 우리 사회의 선량하고 성실한 얼굴들을 보는 심정이다..
1일 부터 5일까지 5일마다 장이서는 경기도 북부의 여러 고장들, 동두천, 철원, 파주, 가평, 전곡 등을 정기적으로 돌아 가면서 그들은 시장을 찾아 나선다. 젊은 시절엔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한달을 꼬박 5일장을 찾아 장사했었노라는 분의 말을 듣고, 이제는 한달에 두 세번은 쉬면서 여유를 가진다고 하는 어느 가장의 말에 왜 내 마음이 안심이 되는지..
시장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한나절이 다 걸렸다.. 시장 탐구라고나 할까? 어느 새 가방은 묵직해졌다.
집으로 돌아 갈 때는 전곡 터미널에서 39번 버스를 타고 소요산역으로 나와서 신북 온천을 들리자고 하였다. 택시를 10,000원을 내고 신북 온천에 들리니 6시 20분 ..7시에 마감하여 6시까지만 입장가능하다니 오늘의 온천은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다.
57-4번을 타고 소요산역으로 다시 나오니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또 한 군데..
칡과 물을 50대50으로 3시간 달여 만든 칡즙,냉장고에서 시원하게 얼린 칡즙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횡재한 기분이다.
칡이 여름건강에 좋으니 한 컵 시원하게 마시고 두병을 사서 의정부행 36번을 타고 의정부에서 1-1번을 타고 우리는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버스에서 내려 정거장에 만들어 놓은 어느 가게의 박넝쿨 우거진 노천 카페에서 잠깐 다리를 쉬며 하늘에 휘영청 밝은 달빛속에 하루의 마침표를
짝어 본다..
동네의 밤거리에 부는 6월의 저녁 바람은 쾌적하다..
양주 회천 신도시에서 강남까지50분의 거리를 달릴 수 있는 지하철 7호선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거리의 표지판을 보면서 오늘의 이 전곡 방문도 어쩌면 향수어린 한 나절의 추억이 될수도 있을것이라 생각해 본다.
전국의 도시화, 획일화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겠지만 거부 할수 없는 미래의 모습이고 누군가에게는 편안하고 잘 살고자하는 염원의 실현일수도 있을 것이다.
첫댓글 점분선배님.. 글솜씨가 나날이 일취월장.. 아무래도 수필가로 등단하셔야 할것 같아요..
시장풍경 이토록 자세히 그려주시니... 생전 안먹는(아니 못먹는 ㅠㅠ 밀가루, 설탕때문에 ㅎㅎ)
꽈배기도 먹고 싶어지네요 ㅎㅎ
시장에서 바로 튀긴 꽈배기 먹어 보니 별미더군요.
전곡이면 우리나라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곳이죠? 정말 자칫함 지나갈 수
있는 유적들을 발견한 고고학자들의 안목이 놀랍더라구요.
그렉보웬이라는 미국 군인은 대학에서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던 사람이었답니다. 군인제대후 한국 여자친구와 미국에서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미국내의 인디안 거주지역 발굴에도 참여하였다는군요.
소요산역에서 경원선 열차를 갈아타고 한탄강역에서 내리면 전곡선사 박물관을 갈 수 있는데 다음엔 박물관을 가 봐야 겠어요.
물방울 다이아몬드 같은 주먹도끼를 주워 들고 온 여자 친구와 그 도끼를 알아 본 미국 군인.. 이 에피소드는 충분히 영화의 소재로 만들어도 될 듯해요. 한국형 인디아나 죤스처럼..
ㅎㅎ 점분 아씨의 나들이 이야기가 제법 흥미진진합니다 ... 장날의 구수한 국수 사발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ㅎㅎ
역시 박물관 도슨트 씨의 안목이 진주같이 발휘되는 현장이었네요 ... 저도 어느 날 정말 한가한 날에 전곡 장터에 나가 보아야 겠어요 ... 그 박물관도 가보고요
그 근처의 우리 친구 박물관도 있는데 언제 같이 가 볼까나 ㅎㅎ
연수 선배님.. 오늘 아침엔 비가 좀 내리네요. 나들이 다니다 보면 처음 오는 곳이구나 하는 곳이 제법 많아요.. 전곡은 제법 먼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