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2. 12 4.
<아름다운 5060카페> '수필 수상방'에 '마음자리'님의 글이 올랐다.
'길 그리고 일'(수필 수상방 제10322호)
글 내용 가운데 충남 서부해안지대에 관한 지명도 나온다.
무척이나 반가운 지명이기에 내가 댓글 달았고, 퍼서 여기에도 올린다.
또한 위 글에서 나오는 충남 서천 화력발전소에 관한 지명이 내 글(산문)에서도 나오기에 아래처럼 게시한다.
내 댓글 :
위 글에서
'서해안 왜목마을과 학암포 해수욕장 가까이 있는 태안화력 발전소.
동백꽃으로 유명한 동백정 바로 옆 서천화력.
이라는 문구를 보았습니다.
저는 충남 보령에서 살기에 고향 내려갈 때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지방도로로 살짝 에두르면 서부 해안지대로 나갈 수 있지요.
당진 왜목마을, 태안 학암포해수욕장, 태안화력발소, 서천군 동백정 해수욕장에 세운 화력발전소의 정경이 눈에 훤하게 그려집니다.
서천화력발전소..
제 시골 앞산에서 바라보면 멀리 내다보이지요.
저는 두 다리가 성성할 때 더 지방여행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또 일렁거리는군요.
정말로 부럽습니다.
해외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숱하게 많을 터.
바닷가를 걸어서
2002년 6월 하순. 주말을 이용하여 고향인 충남 보령시 웅천읍(熊川 곰내) 구룡리 고뿌래(花望)*에 다녀왔다.
6. 22. 토요일.
’바다가 열리는 곳‘으로 알려진 武昌浦(무챙이) 해변가를 따라 걸어서, 바로 건너편 북편 산모퉁이에 있는 남포면 용머리해수욕장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서 지나쳤다. 갯벌을 막기 전에는 바다에 떠 있는 섬이었던 대섬(竹島)을 지났고, 남포방조제 뚝을 따라서 천천히 북상했다. 목적지는 북쪽 방향에 있는 대천해수욕장.
6. 23. 일요일.
어제와는 달리 무창포에서 남쪽 방향에 있는 독산해수욕장과 장안해수욕장으로 향해서 걸어갔다.
내친김에 보령시와 서천군의 해안 경계선상에 있는 부사방조제 위를 걸어서 남쪽으로 더 내려갔다. 서천군 춘장대해수욕장을 지나 마량리 동백장*까지 다녀올 심산이었다. 그러나 오락가락하는 비를 만나서 부사방조제를 마저 건너지 못했고, 무창포로 되돌아왔다.
혼자서 무엇 때문에 걷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빙그레 웃어주어야지. 걸을 수 있는 땅이 있기에 걷는 것이며, 두 발이 있기에 걷는 것이며, 걷을 수 있는 근력이 있기에 걷는 것이며, 아직도 살아 있기에 걷는다면 누가 알아들을까 싶다. 두 다리가 성할 때 길 따라 모래밭 따라 마냥 걸어야겠다.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면 부지런히 걸으며, 다리-품을 저축해 두어야겠다.
무창포 어항 곳곳에는 밧줄로 꿰어둔 소라껍데기가 무더기로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소라껍데기를 어선에 실어내어 바닷물 속에 던져주면 주꾸미가 제 집인 양 독차지하겠지. 그득하게 쌓인 소라껍데기와 漁具는 어촌의 모습이다. 조금씩 색다른 해변 풍광이 지루하지 않게 어어졌다.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닮은 모습이나 조금씩은 달랐다. 짭짜름한 소금기에 절은 갯바위가 검푸른 파도와 숨바꼭질을 하며, 海松(금송)이 우거진 곳에는 시원한 갯바람이 숨어 있었다. 지천으로 깔린 조개껍질과 굴 껍데기가 잘게 부서지면 흰모래가 되어 또 하나의 沙丘(사구)를 만들고, 갯바람에 날려 모래언덕을 더 높이겠지. 무심한 갈매기(白鳩)가 갯바람을 차고 허공에 날아오르며 한적한 갯마을을 그려내고 있었다.
바닷가와 야산이 맞닿은 만(灣)을 막아서 만든 국립수산종묘시험장* 있고, 산뜻하게 새로 개설한 보령요트경기장도 있다.
한국 대 이탈리아 월드컵 축구경기가 숨 가쁘게 벌어지는 날의 오후.
동양 최대의 대천해수욕장도 이날만큼은 사람들이 드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 안에서 TV로 관전할 때에 축구와는 무관하다는 듯이 바닷가를 찾은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구기 게임과 물놀이 시간을 보냈다. 차가운 바닷물의 추위로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면서도 물장구를 치는 이들이 조금은 불쌍해 보였다.
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져서 형성된 모래로 유명한 백사장에서 비닐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젊은 여성의 둔부가 예뻐 보였다. 젊음은 아름답다. 젊은 신체는 아무 데라도 훑어보아도 빙그레 웃음이 난다. 젊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칭찬하고 사랑해야지.
무창포에서는 서양의 건장한 이방인들도 철 이른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바다가 부르는 소리. 母音의 근원인 大海 저너머는 無言의 텅 빈 공간이다. 수평선 북편으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점점(點點)은 원산도, 그 너머는 안면도, 남쪽으로는 외연도...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삿대를 저어
검푸른 바다를 가르고 싶어라.
수평선 저너머 미지의 세계로
한없이 노를 젓고 싶어라.
그 끝을 몰라도 그냥 가고 싶어라.
귀가 길에 용머리(龍頭)해수욕장 뒤편 솔밭으로 접어들었다. 외숙모를 여윈 뒤 홀로 살았던 외숙부의 집이 아직도 남아 있을런지. 허물어져 가는 옛집이라도 보고 싶었다. 싸리문도 없어진 텅 빈 울안을 후이 둘러보고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나간 옛날이 생각이 났다. 외갓집 뒤의 갯장불에서 아버지 어머니 누이들 쌍둥이 형제가 솥단지를 걸어놓고 조개를 삶아 먹고는 다시 잔잔한 갯물에 뛰어들어가 첨벙거리며 놀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꿈인 양 아득히 사라지는 옛적의 추억이다. 산 너머 우리 집으로 되돌아갈 때 뒤돌아보면 저녁노을이 환상처럼 붉게 펼쳐졌다. 또한 뱀 물려서 만 20살에 저너머의 세계로 가버린 작은쌍둥이(나는 형), 돌아가신 아버지, 외숙부도 생각이 났다. 허전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月田里 외사촌 큰누나를 찾았건만 대문은 빗장을 질렀다. 늙어서 혼자 사는 외사촌 누나는 어디에 가셨을까?
’고뿌래(花望마을) 막내 고모의 아들이 다녀갔다고 말이나 전해 주시요.‘
상추잎 따는 나이 먹은 아낙한테 부탁했다.
6. 24. 월요일.
아침나절. 독산 갯마을로 내려갔다. 나 혼자 걷는 해변가의 모래언덕 위에는 해당화가 이따금 저 혼자서 피었다.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나를 꺾지 마세요. 나를 버리면 찌를 테야요라는 듯이 잘디잔 가시가 가득히 매달린 해당화가 수줍다는 듯이 연분홍빛으로 저만치 피었다. 꺾어서 손에 쥐기도 어렵거니와 또 버리기도 아까운 꽃이다.
갯마을 아낙이 외로움을 탔을까? 담벼락을 지나는 외지의 남정네에게 눈길을 오래 준다.
海霧(해무)가 피어오르는 바닷물은 내 소유인가, 아니면 내가 바닷물의 소유물인가? 찰랑거리는 잔잔한 파도에 맨발을 적셨다. 걸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조개껍질이 발바닥을 살짝 찌르고, 사르르 밀려왔다가는 되돌아가는 갯물이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나하고 놀자며 수없이 속삭이는 海潮音은 千億劫(천억겁)의 유혹이다.
이 세상에 왔던 흔적으로
모래 위에 고작 발자국을 남겨도
파도는 이마저 애써 지웠다.
파도야 나는 어쩌란 말이냐.
무창포 포구에 입항한 어선에서 백조기(조기류 일종)가 상자 채로 뭍으로 옮겨졌다. 살아서 펄덕거리던 몸짓도 물기가 없어지면 생명을 쉽게 접나 보다. 쇄락해 가는 연안어업은 어획량이 적었다. 10kg당 3만 원씩 현장에서 소매하며, 그 나머지는 조합어판장으로 옮겨졌다. 5kg짜리 소형박스에 담은 뒤 얼음조각을 와르르 부었다. 차가운 물탱크 안에 실려지겠지. 날렵하게 물을 튕겨내던 노래미, 광어, 방어, 쥐포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활어차에 실려서 도회지로 가겠지. 붙잡혀서 임시 보관용 수족관에 갇힌 채 유리판에 빨판을 붙이고 꼼지락거리는 소라는 무슨 꿈을 꾸는 것일까?
아랫배에 알이 노랗게 밴 암꽃게가 수족관 안에서 엉금엉금 기어다닌다. 알 낳을 자리를 애타게 찾는 안타까움일까. 헛된 몸부림일까. 암꽃게까지 잡아서 장사꾼에게 넘기는 어부의 심보라니.... 가난에 찌든 어부일지라도 암꽃게까지 잡는 행위에 대해서는 용서하고 싶지 않다.
현실의 세계이다. 잇속에 따라 해마다 갯벌이 메꿔지고, 갯장불 뒤편에 그득했던 아름드리 해송이 잘려져 나갈수록 외지인들이 더 많이 밀려와 더욱 법석거렸다. 한적했던 갯마을이 유흥지로 자꾸만 변모하는 천박한 세태에 화가 나서 무창포해수욕장 번영회 사무실로 들어갔다.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키 작은 사람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 자네... 혹시 쌍둥이 육상선수였지?‘
'예? 예...’
졸지에 대답은 했으되 그 사람이 누구인 지를 몰랐다. 어린 시절에 쌍둥이 형제가 대전으로 전학 간 지도 벌써 40여 년 전이었고, 대전에서도 달리기 선수였다. 웅천초등학교 졸업 기수로 따져보니 나보다 2년 선배이다. 만조된 바닷물이 웅천천(강줄기)를 따라 멀리 내륙까지 밀려오는 성동리에서 살았다는 임 회장 선배와 함께 무창포 바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갯벌을 망쳐버린 방파제, 상가건물, 주차장 시설들을 몽땅 해체하여 그 옛날의 순박했던 갯마을로 되돌리고 싶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연을 덜 훼손했으면 싶다. 자연을 회복하는 운동에 앞장서고 싶다.
‘진정한 개발과 조화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맴돈다.
* 고뿌래 : 꽃을 바라본다의 한자 표기(花望 화망. 곶뿌래라고도 함)
* 동백장 : 서천화력발전소 부지로 편입되면서 해수욕장은 폐쇄.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소재
* 국립수산종묘시험장(충남도립수산연구소) : 충남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소재
2002. 6. 29.
첫댓글 아름답고 추억이 솔솔 피어나게 미소짓는 글이 마음을 정화시키는군요
감사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닉네임이 제주바다.
제주바다라는 명칭에서 또 환상적인 이국을 떠올립니다.
제주도 또 구경가고 싶습니다.
글이 자꾸 옛 추억을 불러오게 합니다. 그래서 서해 해변에 대한 옛 추억 하나 답글로 붙여 놓습니다.
마음자리님의 글 덕분에
저는 충남 서부지역 해변가를 떠올렸지요.
갯마을 출신은 아니지만 어린시절부터 걸어서 바닷가, 강가로 나갔지요.
지금은 갯벌, 간사지, 강하구가 많이도 사라지고, 변질되었지요.
개발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대요.
지금은 자동차를 타면 북쪽으로는 5~7분이면 무창포해수욕장과 남포 용머리해수욕장, 12분이면 대천해수욕장,
남쪽으로는 20 ~30분이면 서천군 춘장대, 동백정 등의 해수욕장으로 나가지요.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갈 때에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면, 경기도 평택은 물론이고 충남 당진지역의 서부해안을 샅샅이 에둘면서 갯냄새를 맡을 수 있지요
마음자리님 덕분에 짭쪼름한 갯내음새를 떠올리며, 그 옛날 바닷가, 강가에서 즐기던 소년, 청년을 떠올립니다.
고향을 기억하는 힘은 끝이 없습니다.
고향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됩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 왔기에
장소, 풍경, 풍습이 조금씩 다름이 있어도
공유하는 정서가 있어 좋습니다.
수필방에서는 글자색은 동일하게
검은 색으로 합니다만,
마음자리님 글과 자신의 댓글을 구분하기 위함이니
그렇게 알겠습니다만,
형평성에 맞추기 위해서 글의 크기, 모양을 달리하시면
되겠습니다.(다음 부터)
긴 글, 감사합니다.^^
예..
카페 규칙을 지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독자의 이해도를 위해서,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서 색깔도 넣고, 글자 크기와 굵기 등을 살짝 변경하기도 하지요.
앞으로도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독자의 편에 서서 글 올렸기에 용서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