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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 스크랩 틈틈이 본 7권 중에서
이풀잎 추천 0 조회 32 08.07.28 12: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어느새 석달째 접어들고 있구먼유- 깜찍한 그 '촛불소녀들'이 "미친소 너나먹어" 그러믄서 청계천 소

라탑 앞에 모여들어 종알거리며 외치든 때부터 웬일인지 정신 못차리고 빠져들어가설랑, 틈틈이 즐기

던 독서삼매도 밀어놓고 손에 안 잡혀 내버려뒀는데...참을성 있게 지켜보든 젊은이가 '글자소식'을

손전화로 보내왔구먼여 허허 허-

그동안 읽었던 책들 중 7권에서 부랴부랴 밑줄 그어놨던 거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그려-

 

* 얼의 노래 / 다석 류영모 지음 박영호 풀이 / 두레 2004 3 12 /

이 세상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는 없다 물질로 된 개체들은 늘 바뀌고 있다  그래서 역易의 철학이

나왔다 그 바뀌는 것이 '예'인 것이다.. 그 가운데 사람의 몸뚱이가 바귀는 법칙은 생로병사이다 그런

데 류영모는 그렇게만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생은 몸을 쓰고 있다가 마음으로 바뀌고 마음

을 쓰고 있다가 정신으로 바뀌고 정신을 쓰고 있다가 얼나(영혼)로 바뀌는 것이 인생이다"-다석어록-

사람도 20살까지는 몸이 자라고 40살까지는 맘이 자라고 40살이 지나면서 얼이 자란다. 이것은 예수나

석가처럼 올바르게 바뀌면서 자란 사람이 그렇단 말이다..

톨스토이조차도 끝까지 이성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것을 그의 저서 인생론人生論에서 볼 수 있다. 제

나를 죽이지 못하면 얼나로 솟나지 못한다 우리가 온전히 온통이신 하느님아버지께 온전히 돌아가려면

제나로 죽어 온전히 얼나로 솟나야 한다.. 갓난아기에서 자라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 드디어 운명의 날을 맞아 숨져 송장이 된다 송장이 땅 속에 묻혀 썩어 뼈만 남는다. 뼈도

오랜 시간이 흐르면 뼈조차 다 썩어 완전히 없음으로 돌아간다. 이런 사람의 일생을 다큐멘터리 영상

으로 만들어 누구나 자주 보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몸나에 몰입하여 몸살림에만 골몰하고 있어 개체가 머지않아 전체인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공위성이 아닌 자연위성인 지구호를 타고 대를 이어가면서

우주여행을 하고 있는 꼴이다 우주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얼나를 깨달은 하느님

아들을 길러서 하느님아버지께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얼나를 깨달아 하느님 아들이

된 전체의식을 가진 이만이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갈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아버지의 본모습正體은 빔虛空이요 얼聖靈이다. 그 무한하고 영원한 얼이 가득 찬 빔의 나라가

하느님 나라이다 그 하느님 나라를 류영모는 거기에 계신다는 뜻으로 '계'라고 했다 '계'를 더 강화하

여 '꼐'는 빔이요 얼이라 변화란 없다. 불이不二라 참眞이다 역易은 거짓이다 그래서 역은 불역을 그

리며 받들며 불역不易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것이 역의 기도요 참선이다.

별이 생겼을 때 젊은 별은 푸른빛을 띤다 그 별이 늙어지면 붉은 빛을 띤다 그러다가 더 지탱할 수 없

으면 폭발해 없어진다. 별이 폭발하면 공중에 불꽃이 되어 사라진다 그때 생기는 빛을 초신성超新星이

라 한다. 모든 물체는 별의 최후처럼 불꽃이 되어 허공에 사라지고 싶다 그것이 하느님을 영광되게 하

는 것이다 석가 붓다는 그 불꽃으로 사라지고 싶어서 화장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류영모도 당연히

화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사람도 화장을 바라고 싶다. 사라질 바에야 깨끗이 사라지고 싶다 불꽃처

럼 깨끗한 것은 없다 물체는 불꽃으로 정신은 얼꽃으로 하느님께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했다. "생사의 제나自我는 멸망의 물질이라 더럽다 그러므로 제나는 깨끝覺終이 해

야 영원한 생명인 얼나에 이른다. 제나의 삶은 꿈이라 깨야 하고 거짓이라 깨(부셔)야 한다 끝까지 깨

야 깨끝해지고 깨끗해진다. 그러면 본래의 청정淸淨한 생명이 드러난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인 얼나이

다. 얼나는 하느님의 생명이라 너와 나가 없는 한 생명이다 얼나는 영원한 생명이라 늘 현재(지금 여

기)만 있고 온통의 생명이라 오고감이 없다." -다석어록-            482-484쪽

 

*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 박형진 지음 / 소나무 2005 10 24 /

< 마중글 > - 오매불망 내가 꿈꾸는 것

글을 써 놓은 지가 십 년이 되었다. 돌아보니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 동안의 이러저러한 변화야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처음 연필을 잡고 책상에 앉아 밤을 새우던 기억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욱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 이야기를 쓰게 했을까? 고리타분한 유년의 기억을

지금도 버릇처럼 되작거려 보는 것은 그것이 결코 변할 수 없는 한 세대 전의 가치로써 아직도 나의

삶에 유효한 까닭이며, 엄청나게 변해버린 참담한 현실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변화와 소통을 두려

워하는 자페증의 그것일 터이다.

거두절미 하고, 세상은 과연 좋아졌는가? 굳이 한 세대 전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농사꾼이, 자기가 나

눠먹을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이 오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

고 무엇인가? 경쟁이 없는 사회, 돈이 필요 없는 사회는 내가 오매불망하는 유토피아이다. 몸서리가

쳐지도록 무서운 노예같은 삶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사람이라면, 이런 풍요로운 세상이 펼쳐지

는데 춤추고 노래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전복의 춤이며 이제까지 만들지 않은 전혀 새로

운 빵을 만들기 위한 맷돌질의 노래이다.   2005년 10월13일  박형진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라는 댓글이 붙은 이 책 '뽑아 올리는 글'에서 윤구병은 "전에도 한

창 농번기에 책 한 권 디밀어서 내 하루 일품을 꼬박 날려보내게 한 전과가 있는 박형진이 이번에도 '

발문'을 써달라고 왔다. 내가 물었다 '너 먹 갈아 왔냐?' '먹은 웬 먹이요, 붓글씨로 쓸라요?' '아니,

발바닥에 먹 듬뿍 묻혀서 한지에 꾹 누르면 그게 바로 발문(발무늬) 아니겄냐? 농사일도 바뻐 죽겠는

데, 나 못 쓰겄다' '아따, 놓고 갈틴게 알아서 허쑈.' 그래서 받아놓기는 했는데 참 일이 고약하게 되

었다 한번 붙들면 놓을 수 없으니 또 하루 품을 버리게 생겼는디... 

 

* 인생(THE BOOK OF EGO) / 오쇼 라즈니쉬 강의 윤구용 옮김 / 지혜의 나무 2006 4 20

그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도덕은 받아들이지 말라 그대를 죄의식에 묶어놓는 윤리는 받아들이지 말라.

자신의 본성에 거슬리도록 강요하는 것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말라 그대 자신이 되라 그대는 완벽하

다. 그대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대의 상황은 어려워진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내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받은 느낌은 "정말로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거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 되기를 바란다 "붓다가 되라 예수가 되라 모세가 되라" 아무

도 "너 자신이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존재의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버리게 되었다. 그대와 모세는 대체 무슨 관계인가? 그대와 예수는 대체 무슨 관계인가? 허지만 사람

들은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언젠가는 자신이 꿈꾸던 이상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꿈은 항상 실

패로 돌아간다 그대가 장미라면 장미꽃으로 피어나면 된다 온 세상이 그대를 비난하든 칭찬하든 신경

쓰지 말라.

나는 나 자신이 되겠다! 라는 태도로 살라 그런 태도는 에고가 아니다. 그런 태도는 수천년 동안 인류

를 타락시킨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그대는 병든 세상의 물이 들지 않고 자신을 지킬 권

리가 있다. 어떤 신도 어떤 종교도 어떤 도덕규범도 어떤 방편도 구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자신

의 본성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인간을 제외하면 아무도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하지 않

는다 모든 존재가 우주와 더불어 편안하다.

위대한 과학자였던 줄리언 헉슬리(1887-1975)는 가설 하나를 내세웠다 이 가설은 증명할 길이 없지만

눈여겨볼 만한 주장이다. 그는 말년에 일생의 연구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인간의 메

커니즘 자체에 어떤 잘못이 있는 듯하다. 어떤 나무도 걱정을 하지 않으며 어떤 동물도 자살을 하지

않고 어떤 동물도 동성연애를 하지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허지만 동물원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생긴

다 동물을 우리에 집어넣으면 인간을 닮아간다. 인간처럼 동성애를 하는 것이다 동물원에서 어떤 동물

이 자살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동물원의 동물들도 변태가 되고, 자신들의 조상이 수천 년 동안 하지

않은 일들을 갑자기 하기 시작한다..    272-274쪽

 

* 선禪의 영혼이 깃든 타로 / 오쇼 지음 김은미 옮김 /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2007 9 20

<물의 원소> 지식은 뇌의 활동이지만 느낌은 전체적인 것이다. 그대가 느낄 때, 그대는 머리로만 느끼

지 않으며 가슴으로만 느끼지도 않고, 창자로만 느끼지도 않으며, 그대 존재의 모든 기질로서 느낀다.

느낌은 전체적이고 느낌은 오르가즘적이며, 느낌은 유기적이다.

느낌 : 느끼는 순간 그대는 전체로서 기능하고 있다. 생각할 때 그대는 오직 머리로서 기능한다 감정

적일 때 그대는 오직 가슴으로 기능한다 기억하라, 감정적인 것이나 감상적인 것은 느낌이 아니다 생

각할 때 그대는 머리이다. 머리는 일부분일 뿐이지만 전체인 척 가장한다 물론 이것은 거짓이고, 이러

한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감정적이거나 감상적일 때 그대는 가슴이다 다시 다른 하나의 부분이 전체

적인 척 가장하고 또 다른 하인이 주인인 척 가장한다 이것도 거짓이다.

느낌은 몸과 마음, 영혼의 총체적인 것이다. 느낌은 구분이 없다는 것을 알고 느낌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대가 느낄 때, 그대는 전체로서 기능한다 그대가 전체로서 기능할 때 그 순간 그대는 전체와

조화속에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 전체적으로 기능할 때 누구나 전체와의 조화 속

에 기능한다" 그대가 부분으로서 기능할 때 그대는 따로 떨어져 나가게 되고 그대는 더 이상 전체와의

조화 속에 있지 않다. 그대가 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당신이 생각하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은 거

짓이고 환영이다. 그대가 전체와 조화 속에 있을 때 그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

만 이러한 '알지 못함'조차 아는 것이다 이것은 느낌이고, 이것은 전체와의 사랑이다.

가슴 : 가슴은 부정적인 말을 모른다. 가슴은 결코 묻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가슴은 즐기

고 그리고 즐거움 속에 있다 가슴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안다 가슴은 이것을 정의할 수 없고 그 자체

를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경험은 설명하기 어렵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

는 적합하지 않다 상징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가슴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만 묻지 않는다. 마음은 오

직 질문만을 알고 가슴은 오직 대답만을 안다 마음은 계속 묻지만, 이것은 답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

서 철학은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슴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안다 가슴은 삶의 영광을 알고 순수한 존재의 거대한 기쁨을 안다. 가슴

은 축하할 능력이 있지만 결코 묻지는 않는다 따라서 마음은 가슴이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지만, 가슴에 신뢰는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양극단에 있다 그 둘은 양극단에 있다

허지만 긍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과 한 짝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 둘은 같은 현상의 양 측면일

뿐이다. 나는 여기서 가슴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줄 수 없다. 그렇다 나는 가슴을 사용한다 허지만 가

슴을 오직 수단으로만 사용한다 그대를 마음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 164-166쪽

 

* 내가 만난 내 영혼의 성자들 / 바가반 다스 조하선 옮김 / 물병자리 2000 5 15

우리는 매순간 영원과 시간을 동시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 우리는 티벳인들이 말하는 상대적

인 진리로부터 절대적인 진리까지 경험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과 대화의 문을 열어놓는 것이 바로 자

비이다. 의식수준에 상관없이 아무도 판단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비이다 판단하

지 않고 같이 있는 것,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진정한 영적 친구이다.

서구에서 행해지는 영적인 순례는 다분히 물질적인 여행으로 끝나고 마는 경향이 짙다. 이 아쉬람 저

아쉬람에 살며 스승들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 그 모든 분방한 성적 행위, 정략적인 행위들 그리고 기

타 이 모든 수입 종교들의 문제점들을 볼 때 우리는 그것들이 너무도 외적으로 형식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만의 종교를 창조해야 한다. 내게는 나만의 종교가 있다 인도의 모든 사두

들은 저마다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티벳의 모든 라마들은 자신만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당신에게 진

정으로 맞는 길을 찾아라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신을 발견하라.

우리는 돈과 섹쓰와 권력을 뚫고 지나가야 하고 가슴 속으로 돌아와야 하며 가슴은 우리의 진정한 목

적지이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가슴 속에 있는 내면의 소리와 하나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자아이자

아트만, 빈두이다 그 때 뇌(두개골 속의 달)로부터 떨어지는 감로가 불에 증발하지 않고 가슴 속에 똑

똑 떨어져 모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가슴이 활동하기 시작하여 달의 이슬을 맞는다 그 감로가 온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면, 연금술적인 변형이 일어나고 이것은 호흡과 만트라와 빛이 만들어내는 내적 변

형을 가져오고 가슴 센터의 각성을 통해 비로소 에너지를 돌릴 수 있게 된다.

거룩한 창조의 모성 은 우리의 헌신을 통해 현현한다. 우리가 올바른 의식 상태에 있는 순간 새가 창

가에 내려앉아 모두를 위해 노래를 부를 것이다 성모는 그렇게 일을 하고 다른 모든 신들은 각자의 거

처가 있다 비시누스는 바이쿤타에, 시바는 카일라시에 산다 그러나 성모에게는 거처가 없다 그녀의 거

처는 세상이다 그녀는 우리의 가슴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여기 있다..

키르탄을 할 때 사람들은 시바와 크리슈나가가 된다. 크리슈나는 시바의 가장 열렬한 헌신자이고 시바

또한 크리슈나를 사랑한다 우리는 이 극성을 하나로 만들어야 하고 탄트라는 그러한 합일을 만들어낸

다. 그것이 바로 '빈두'이다. 여성은 남성 안에 있고 남성은 여성 안에 있다 우리는 그 에너지를 밖으

로 방출하며 항상 어떤 광기로 존재한다 모두들 정상인 척 하지만 미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인간은

욕정 돈과 권력과 재물에 미쳐있다 아니면 명예나 신에 미쳐있든가" 그대는 어느 쪽에 미칠 것인가?

어느길을 통해 나아갈 것인가?    344-345-347쪽

 

* 모리의 마지막 수업 / 모리 슈워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생각의 나무 1998 11 17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 : 삶과 죽음 사이가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멀지 않다는 생각을 즐겁게 간직하

십시오..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죽음과 계약을 맺습니다 그런데도 우

리가 죽음에 대해 그처럼 소란을 떨고 필사적으로 이를 거부하고자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신을 자연

의 일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습니다 나는 이 간단하면서도 아주 심오한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

니다. 내 명상 선생이 며칠 전에 나를 아주 흥분시키는 말을 했습니다. "모리, 어쩌면 삶과 죽음에 관

한 당신의 시각을 재검토해야 할 것 같아요. 어쩌면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멀지 않을지도 몰라요."

내가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이 커다란 두 개의 산 사이에 있는 깊은 계곡 같은게 아니라는 겁니

까? 작은 강에 세워진 조그만 다리 같은 것이라는 말이에요?" 나는 언제나 삶과 죽음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해하기는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에 대해 생각했습

니다 명상선생과 틈틈이 대화를 나누었고, 혼자서 명상을 계속했으며, 전에 읽은 적이 있는 불교서적

의 가르침도 다시 기억해 보기도 했지요.

그리하여 이제는 나도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이제 죽음 쪽으로 건너가야 하는 내게 아주 큰 위안이 될 뿐만 아니라, 좀더 편안한 마음

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해줍니다.  185-187쪽 삶으로 이어지는 죽음..

 

* 접신 / 일사一史 지음 / 석문출판사 2003 5 10 /

접신은 질병이다.. 한 풀이형 : 보통 제령이라고 하면 영화나 방송의 영향으로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

을 많이 상상합니다 그렇지만 '한풀이형'의 경우에는 막무가내식 몰아내기로 해서는 곤란합니다. 또

다른 한을 부를뿐 아니라 덧붙여진 한으로 인해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즉, 이런 경우는 영을 쫓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의 한을 풀어 영이 미련없이 자기 갈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접신된 영 또한 치료받아야 할 환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풀이형의 경우에는 접신 환자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은원恩怨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양

자가 가지고 있는 가슴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제령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한을 품어 그 한을 풀기 위해 접신되는 영들의 경우, 하늘이 무심하다는 이야기를 버릇처럼 하는 경우

가 많습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큰 고통을 주었는데도 별다른 벌도 받지않고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분노의 감정이 크게 자리하고 있지요 즉, 하늘이 가만히 있는다면 나라도 이 복수를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증오심에 불타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나가라는 식으로 제재를 가하게 되면, 반발심에 더욱 큰 증오를 안

겨주는 결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일단 그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에 쌓인 한이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됩니다 그 원한이 설득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은원관계를 해결해주는 것이 접신 치료보

다 우선시 되어야 하며, 그럴 때 은원관계의 해결은 자연스럽게 접신치료와 이어지게 됩니다.

접신 혹은 빙의란? 사람의 몸에 다른 영이 들어와 간섭을 하고 있는 상태, 사전적 의미로는 신령이 몸

에 깃들어 이야기나 행동을 하는 것으로서 무당이 신을 받아 굿을 하는것을 포함합니다. 172-173쪽

 

얼이 말이구 말이 글이 됐다네 그리하여 얼말글 속에 깨우침이
늘 살고 있다는 구먼, 그려 그렇군 그러네 허허 허- 오늘은 이만 !

http://cafe.daum.net/nicebook 얼마든지 퍼 옮겨도 되는 글..? 좋은책나눔에서 이풀잎 드림.
http://blog.daum.net/pulip41  언제든 그릇된 내용이 있으면 바로 잡도록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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