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순대 원조 이정애 할머니는 병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조치원의 부광마을에서 시집을 오셨다. 보통의 여염집 아낙내로서 시댁 일가가 모여 사는 이곳 병천에서 여섯 남매를 낳아 기르며 살았다. 그러다가 당시 마흔 여섯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살 길이 막막해 졌다고 한다. 농사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여자 몸으로 자식들을 거느린 채 농사일을 한다는 것도 무리. 어차피 조석(朝夕)으로 자식들 끓여 먹이기는 해야니까 먹는장사라도 하면 자식들 굶기지 않겠다 싶어 음식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 잃고 정신 차려 보니 여섯 남매가 올망졸망 날 바라보고 있데요. 아직도 그 때 자식들 눈망울이 잊혀 지지 않아요.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뭘 해서 먹고 살지 막막하던 시절이였지요. 그때만 해도 이곳 아우내 병천 5일장이 매우 규모가 컸어요. 그래서 장날 모여드는 사람에게 국밥을 말아 팔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육개장과 불고기를 만들어 팔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차츰 음식장사가 손에 익고 할 만 하더라고요. 자신이 생겼지요. 그래서 5일마다 열리는 장날만 장사 할 게 아니라 매일 장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장날이 아니더라도 면사무소직원들이나 길가는 행인들이 더러 들러서 배를 채우고 가곤 하더라고요. 옛날엔 저기 병천면 면사무소 뒤에 도살장이 있었어요. 거기서 돼지 잡는 날 나오는 돼지곱창과 선지를 얻어다 이곳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배추며 파 등 채소를 버무려 넣어 만든 순대를 손님상에 곁두리로 낸 게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순대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그 순대를 넣은 순대국밥도 만들어 팔기 시작했지요.”
시누이 도움으로 장사 계속 해
이정애 할머니가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자 혼자서는 일손이 벅차기 시작했다. 아침 4시면 일어나 순대를 삶기 시작해 먼동이 트고 아침이 되면 순대국 손님들을 받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밤 10시면 다시 연탄불에 해장국을 끓이고 밤 12시엔 다시 내일 팔 순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다시 새벽 4시에 순대를 삶고….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이정애 할머니는 당시의 생활을 회상한다.
“그때 참 힘들었어요. 장사는 시작해서 사람들이 많이 팔아줘 벌이도 되고 자식들 키워나갈 셈이 서니 그것은 참 다행이었지요. 근대 이대로 가다간 정말 힘들어 병나겠더라고요. 뛸 재간 없이 바쁠 때 날 도와주기 시작한 양반이 바로 우리 시누에요. 우리 시누가 날 도와줬어요. 그때 도와줬기에 아직까지 이 장사 계속 하는 거지요. 요즘 젊은 애기들 시집가면 시누들이고 시어머니고 참 어려워하데요. 난 근데 그러질 않았어요. 시집 올 때부터 내가 먼저 남 같잖게 살갑데 대하고 이물 없이 지내니까 그게 서로 편하고 나중에는 친정 피붙이보다도 더 정겹게 되었어요. 시누랑 장사하면서 난 참 시누가 고마웠어요.”
이정애 할머니를 도와 장사를 하던 시누이는 몇 년간 함께 일하다 <충남집>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그 근처에 <자매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따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댓글 병천순대국 먹고싶어요
쩝~~
어제도 먹었는데 ㅎ
드시고 싶으면 여기로 오세요. 얼마든지 드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예 우리 부모님들 모두 고생하며 자식들 키웟지요.
요즘 여자들 잘사는 시대에 태어나 고생 모르고
성장하여 편하게 사는것 우리 어른들의 힘이라 생각 해야지요.
맞습니다...선배님 ...
선배님 잘 지내시지요....
병천순대...예전 번개때 가져오신
병천순대를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가끔 생각이 난답니다.ㅎ....
가끔 생각나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
오늘같이 날씨가 쌀쌀한 날에 생각나는것이 순대국이네요 ㅎ
서니님 오랜만에 뵙네요. 쌀쌀한 날씨에 순대국 드시러 오세요.^^
병천순대 술한잔 생각나네요 선배님
병천순대 맛잇지요...
번개모임에 병천순대와 성환포도를 한 보따리 무겁게 손수 들고 오셨던 선배님을 기억합니다
우리 모두는 맛나게 병천순대와 함께 수다를 만들었구요
유래를 알고나니 병천순대의 고소한 그 맛이 다시 그립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선배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