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종교학과 철학이라는 두 가지 전공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야 비로소 윤회가 진실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윤회란 본질적으로 삶의 길이에 대한 문제이므로 자연히
인간의 본성과 존재 목적에 대한 탐구로 귀결됩니다.
내게는 시간이 대체 얼마나 있는 것일까? 우리는 길어야 100년 정도 살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예컨대 그런 100년 단위의 삶을 거듭 반복하면서 만 년 정도까지 살 수 있는 존재인가?
이 질문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대답에 따라 우리의 자아상과 삶의 지향점이 바뀌기때문입니다. 실로 우리 몫의 시간이 얼마만큼인지에 따라 삶의 모든 것이 좌우됩니다. 윤회를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들 각각의 성장을 이 우주의 성장과 하나로 엮을 수 있고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더욱 깊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히 인간의 존재 목적에 관한 논의의 범위를 확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윤회론의 시각으로써 삶의 리듬을 발견하기 시작할 때 우리를 둘러싼 혼돈은 곧 정교하고 아름다운 교향곡으로 모습을 바꿉니다. 100년 전에 심어진 삶의 주제가 오늘 싹을 틔우고 100년 후에 마무리됩니다. 한 생에서 내려진 선택이 결과가 다음 생으로 인계 됩니다. 이 과정에서 버려지는 것은 없습니다. 실로 모든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윤회라는 개념은 우리의 수많은 삶을 의미 있는 과정으로써 배열시키는 '인과 법칙'과 떼놓을 수 없습니다. 고대 인도에서는 이런 인과 법칙을 '카르마'라고 불렀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흔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카르마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의 삶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이유가 없어 보이는 사건들조차도 실은 그 당사자의 개인사 깊숙한 곳 어딘가에 그 원인이 뭍혀 있습니다. 그리고 카르마는 우리의 삶을 조율하는 인간관계의 흐름을 더 큰 자연의 질서 속으로 끼워놓습니다.
윤회론은 우리가 일상의 구체적인 시련을 마주하는 방식까지 바꿔놓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인간관계, 경제적 어려움 등)를 생각해보세요. 그중 한가지 문제를 택하여, 그 문제가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꼭 맞는 목적과 가능성을 가지고 필요에 의해 등장한 것이라면 이 상황이 얼마나 달리 보일지를 생각해보세요.
윤회론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자아상과 소속감 자체가 바뀌므로 우리는 더 이상 기존이 습관대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지상의 삶이 한 번 이상이라는 확실한 증거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윤회가 어떻게 일어났는지까지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의 삶이 다른 삶으로 흘러 들어가는 과정도 자세히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윤회를 삶의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집 앞에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향하는지는 잘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현관을 열고 거기에 길이 있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결론을 미리 이야기하면, 우리의 삶은 영적인 것이고, 물질 우주의 바탕에는 더 큰 근원인 영적 우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우주를 오가면서 지상에 온 목적을 성취할 때까지 이 여정을 계속해 갑니다.
<대부분에 사람들은 윤회라는 말을 들으면 비과적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먼저 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물론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물질만이 실재한다'는 세계관을 유물론이라고 하는데, 이 유물론으로는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유물론자들은 '자연주의'라는 가설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자연주의란
(1) 순수하게 비물질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고
(2) 모든 존재의 최종 결정권은 물리적 측면에 달려 있다는 관점입니다.
예컨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의 결정권은 뇌 구조와 같은 물질적 측면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과학 분야는 물질 세계 탐구에만 집중합니다. 자연과학은 지금껏 다른 학문들이 거두지 못했던 큰 성취를 이뤘지만 스스로 정한 한계 때문에 비물질적 세계의 실체와 원리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내놓지 못합니다. 만약 이 한계를 벗어난 과학자가 있다면 그는 사실상 과학자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이 자연주의의 영향력 아래 물질세계 너머에 뭔가가 존재한다는 우리의 직관과 인식을 그저 유치한 상상의 산물 또는 전근대적인 문화적 신경증으로 왜곡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적 이끌림은 신도 없고 영생도 없는 가혹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기만적 환상에 지나지 않으니 단오히 거부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에 현혹당하고 과학과 과학 만능주의를 혼동하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장 깊은 심층을 스스로 내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물질 그 자체에 대한 우리의 가설을 흔들어 놓는 양자 물리학이 등장하고, 서양에서 전통적인 영적 수행법들이 대대적으로 관심을 얻으면서 점차적으로 과학이 자연주의로부터 급격히 분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환생연구도 자연주의의 단점을 뒤흔들고 있는 많은 연구분야들 중 하나입니다. 진정한 과학자들은 비물질적 세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제시된 주장들을 꼼꼼히 살펴 그 정보들을 정리해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윤회론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나요?>
전생이 실재했는지 검증하는 절차는 현생의 기억을 검증하는 절차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을 검증하는 것은 현생의 기억을 검증하는 것보다 두 가지 정면에서 더 복잡합니다.
첫째로, 전생의 기억은 현생의 기억보다 더 심층의 의식에 들어있기 때문에 왜곡없이 온전히 발견해내기가 싶지 않습니다.
둘째로, 그 기억 속의 사건들이 대개 오래 전의 일에 해당하므로 사실성을 뒷받침해줄 증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연구자들이 조사한 전생의 기억들은 두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자발적인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환기된 기억 입니다.
'자발적인 기억'은 대개 어린아이가 말을 시작할 즈음에
예기치 않게 떠오르게 됩니다. 이 사례들은 도저히 전생 이외에 개념으로는 이해될 수 없기에 <윤회의 사례들>이란 제목으로 미국 학회지나 신경정신과 학회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일부의 아이들만 전생을 기억하는 이유는 전생의 마지막 순간과 다소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평범하게 죽음을 맞은 사람보다는 극적인 죽음을 맞은 이가 전생을 기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자발적 기억의 경우에서는 죽음과 탄생 사이의 시차가 대개 3년 이내 입니다. 이는 환기된 기억에 의한 시차의 평균값이 50년인데 비해 빠릅니다.
자발적 기억의 창이 열리는 기간은 대개 2세부터 5세 사이이며, 5세부터 8세 사이에 예외없이 그 기억은 잃어버리게 됩니다.
'환기된 기억'은 의식 확장 기법들을 통해서 의도적으로 전생의 기억을 불러내는 경우입니다. 전생의 기억을 꺼내는 데 가장 흔히 쓰이는 기법으로 최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면을 통해 드러난 윤회의 증거들이 가장 많이 받는 의심은 내담자의 진술이 최면가의 암시에 의해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발적 기억은 바로 직전에 생에 해당하지만, 정신요법에 의해 환기된 기억은 대부분 먼 과거의 생에 해당하므로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가 무척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래 네가지 사항은 전생퇴행을 유도하는 정신요법을 통해 환기된 기억들 중 일부가 충분히 진실을 수 있음을 잘 말해줍니다.
첫째, 전생의 기억들은 하나의 기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기법을 통해 보고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재탄생 요법, 감각 차단, 홀로노믹 통합, 약물요법이 포함됩니다.
이는 전생의 기억이 특정 요법에만 한정된 현상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둘째, 전생의 기억들은 전생 퇴행과는 무관한 치료 과정 중에 불현듯 나타나서 오히려 치료가들을 당황케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 또한 윤회를 부정하는 환경 속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거나 의심을 했었다고 말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 때문에 그들도 전생의 기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배워야 했고 기존의 세계관을 포기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셋째, 전생의 기억은 현생을 기억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습니다. 최면요법으로 가까운 과거의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사춘기, 유년기, 유아기를 거쳐 때론 태아의 기억으로까지 퇴행하다보면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넷째, 전생의 기억은 분명한 치료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심리치료란 무의식속의 스트레스 요인을 의식의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숨어서 문제를 일으키는 과거의 상처를 수면으로 끌어 올려 다룸으로써 내담자를 그 문제로부터 해방시킵니다. 치료에 측면에서는 그 기억이 현생의 어린 시절이든 17세기 전생의 기억이든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전생의 기억이 현생의 기억보다 더욱 극적인 치료 효과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전생에 해소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름으로써 내면의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윤회론에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윤회론에 따르면 우리는 전생에서 완전히 실현하지 못한 경험들을 마치 씨앗 처럼 품고 태어납니다. 달성되지 못한 욕망, 화해하지 못한 갈등, 수용하지 못한 상처, 성취하지 못한 야망 등등... 그리고 우리현생의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이처럼 전생이 남겨둔 숙제들을 끝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일, 인간관계, 질병, 환경 등을 통해서 우리를 평생 따라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전생을 기억해내서 그 씨앗들을 발견하면 우리는 현생의 갈등이 진정으로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윤회론은 지구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모순되지 않나요?>
영혼의 숫자가 정해져 있으며 모든 영혼이 현재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거나, 인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전부 동원되었다는 가설 안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우리는 이런 가설들을 받아들인 이유가 없습니다. 윤회론을 믿는 문화에서는 인류라는 존재 상태 자체가 하나의 학급 과도 같아서 대부분은 그 안에 계속 머물지만, 누군가는 새로 들어오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영원히 떠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우리의 지식 너머에 있는 질문입니다. 대개는 지능 높은 동물들 가운데 상위의
의식 차원으로 양자적도약을 할 준비가 끝난 영혼들이 인류의 범주에 새로 편입된다고들 여깁니다.
첫댓글 맨 밑 사진은 제주도?
제주도 맞습니다. 며칠전 부모님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날샐뻔 다랑쉬오름에 올라가 찍은 사진입니다.
<윤회론은 지구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모순되지 않나요?>
영혼의 숫자가 정해져 있으며 모든 영혼이 현재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거나, 인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전부 동원되었다는 가설 안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경전에 아마 부처님 대답이 나와 있을 겁니다.
경전 이름도 이제는 잊었지만, 저자의 의견과 비슷한 내용이었을 거에요.
내용이 아주 좋네요. 요즘 현대 과학의 수준이 정말 놀랍습니다. 비물질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고요.
본문 중에 물질 너머의 비물질 세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혹시 제가 썼던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참고하시면 이해가 더 쉬울 겁니다.
세간 속에... 에 가시면 같은 제목으로 쓴 글도 몇 개 있습니다.
과학의 한계는 비물질의 세계를 물질 세계의 방식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다, 는 것이지요.
물질 세계와 비물질 세계는 접근법이 다른데, 물질세계의 접근법을 절대 불변의 방식으로 알고 물질이 아닌 비물질계 까지 적용시키려니 한계가 발생하는 겁니다.
자만 물질계는 분석 해체가 가능하고 보이기 때문에 거짓이 존재하기 어렵지만,
비물질계는 분석 해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고 보이지 않기에 거짓, 사기가 난무하기 쉽니다.
제가 기독교에서 사상전향하기까지 혼란 속에 있을때 윤회론의 과학적으로 증명을 간절히 원하던 중 읽었던 책이라 너무 반갑습니다.
최근에 기독교인이었던 친구가 자신의 세계관이 바뀌었다고하면서 책 두권을 보여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윤회의 본질이었어서 더욱
눈에 확 뜨이네요.
역시나 날샐뻔님의 리뷰는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