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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곽노현과 함께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씨앗(김옥성)
박명기 교수 최후진술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먼저 부덕의 소치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제가 몸담았던 서울교육계와 서울교대 구성원 분들에게 놀라움과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공명정대한 법적 판단을 위해 피고인과 증인들의 진술을 놀라운 인내심으로 경청해 주신 김형두 재판장님을 비롯한 재판부의 노고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작년 서울교육감 후보 사퇴는, 비인간적인 성적 경쟁에 신음하는 우리 아이들과 부패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서울교육을 구하기 위해서는 개혁성과 도덕성을 갖춘 교육감이 선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대적 당위 앞에서 고민하다가 저 혼자 내린 결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양보하지 않는 경우 민주ㆍ진보 진영의 분열을 초래하여 이전과 다름없는 보수 교육감이 등장할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역사의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명분론에 입각하여 정책연대를 조건으로 후보사퇴를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모들 간에 합의하여 보고된 선거비용 일부 보전은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당시 저는, 옛날 솔로몬 왕이 친어머니를 가리는 재판에서 칼로 아이를 둘로 나누어 두 여인에게 나누어주라고 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포기한 친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후보 사퇴를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거 이후 곽교육감으로부터 정책협의 파트너로 인정받기는커녕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경계의 대상으로 경원시 당했고, 선거본부장을 맡아 단일화를 주도했던 양○○을 포함한 선거비용지원 합의 당사자들도 모두 무책임하고 기만적인 방식으로 저를 따돌려 견디기 힘든 배신감과 심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후 작년 11월 중순 경에 강경선 교수 등이 저를 찾아와서 “곽교육감은 참모들 간의 합의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박교수의 대승적 결단으로 민주ㆍ진보 교육감이 탄생한 것이니만큼 진영 차원에서 돕는 방안을 마련해 보겠다”고 제안했고, 그 분들을 만나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상호신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후 올 2월에 제가 미국으로 단기 연수를 떠나면서 제 동생을 강교수께 연결해주고 2억 원을 지원받았고, 그 이유로 구속되어 본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저는 검찰 조사와 그 간의 재판과정에서 본 사건과 관련하여 제가 알고 있는 바를 솔직하게 진술했습니다. 다만, 재판의 쟁점이 되고 있는 2억 원 금원의 성격에 대해서는 ‘단일화 대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선거비용보전에 대한 상호 합의 사실을 저에게 보고한 양○○이 선거 이후 무책임하게 잠적했고, 곽교육감측 단일화협상 대리인 김○○와 보증인 최○○ 교수가 합의 이행을 회피했고, 단일화 상대인 곽교육감까지 합의사실을 ‘모른다’고 부인한 상태에서, 나중에 찾아온 강경선 교수가 ‘금전지원을 조건으로 한 단일화 합의는 없었고 참모들 간의 헤프닝이었다’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 ‘단일화 합의 대가로서의 선거비용 보전에 대한 기대’를 단념하고 도의적 차원에서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수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지난 10월 초 첫 재판의 모두 진술에서, ‘재판을 통해 사건의 실체가 밝혀짐으로서 공정한 법률적 판단과 더불어 언론에 의해 땅에 떨어진 저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긴급 체포되어 조사받고 구속된 사건초기의 왜곡ㆍ과장 보도로 인해, 나름대로 정도를 걸으려고 노력해 온 저는 졸지에 파렴치한 선거사범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명예를 쌓는 데는 한 평생이 걸리지만, 명예를 잃는 것은 한 순간이다”라고 선인들이 한 말의 의미를 절감했습니다.
검찰의 피의사실 사전공표, 사건초기 제가 검찰과 협력하여 곽교육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다고 오해한 일부 곽교육감 측근들의 기자회견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 이들 허위 정보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왜곡ㆍ과장 보도를 한 언론에 의해 저는 ‘선거자금도 없이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가 사퇴를 빌미로 돈푼깨나 벌고 인사지분이나 챙기려 한 천하의 파렴치범’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특히, (1) “후보 단일화 협상 당시에 朴후보 캠프의 재정 상태를 직접 가서 점검해 본 결과, 유세차량, 선거홍보물 인쇄, 프랭카드, 신문ㆍ방송 광고와 같은 주요 선거계약을 전혀 체결하지 못하는 등 선거를 완주할 형편이 아니더라. 朴후보가 빚쟁이들 때문에 선거사무실에 드나들기도 힘들었다”라고 김○○가 8월 30일 기자회견에서 새빨간 거짓말을 하여 널리 보도된 것, (2) ‘朴교수가 선거 후에 지나친 인사지분을 요구하여 곽교육감과 사이가 멀어졌다’는 보도 (8/30 동아일보 2면 등), (3) ‘朴교수가 여러 차례 교육감 집무실에 찾아와서 자살 운운하며 소란을 피웠다’는 보도, (4) ‘朴후보가 단일화 직전 무려 15억을 요구했다’는 보도 (9/1 조선 1면) 등이 대표적인 왜곡ㆍ과장 보도인데, 이는 한 개인에 대한 부분적인 명예훼손 정도가 아니라 인격 자체를 유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땅 한평 사본 적이 없습니다. 자동차도 새 차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고 친척이나 아는 분이 6~7년 타다가 차를 바꾸면서 넘겨 준 것을 타고 다녔습니다. 지금 타고 있는 차도 2000年式 대우매그너스로서 2004년 교육감선거에 나가면서 4년 된 중고차를 구한 것입니다. 양복도 한 번 입으면 안사람이 갈아 입으라며 다른 옷을 내놓을 때까지 몇 달씩 같은 옷을 입고 다닐 정도로, 좋은 옷이나 명품 등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스타일도 아닙니다. 일식집이나 고급음식점에 가면 괜히 불편하고 김치찌개, 감자탕, 삼겹살에 소주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저는 해마다 6조 이상의 예산을 심의ㆍ의결하는 권한을 가진 서울시교육청의 3선 교육위원이었습니다. 12년간 교육위원을 하면서 예산심의과정에서 수 백 개 학교에 수 천 억원의 예산을 도와주었지만, 학교에서 고맙다고 점심 한끼 사겠다는 것도 거의 거절하고 단 한 번의 구설수에도 오르지 않아 청렴의 대명사로 평가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아파트 한 채뿐입니다. 그나마 작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면서 융자했고, 후보 사퇴 후 선거 빚을 갚기 위해 친한 대학후배로부터 돈을 빌리면서 추가담보까지 설정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제가 이렇듯 돈이 없는 이유는, 바보처럼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투자 등 돈을 불리는 데는 관심도 없었고, 남을 돕는 데는 손이 헤펐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지금의 어려움에 빠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친구 양○○도, 1986년경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 받았을 때 저의 자취방에 4개월을 숨겨 주었고, 나중에 당시 저의 교사월급의 3배에 해당하는 150만원을 은행에서 빌려 도피자금으로 준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 때 빌린 돈도 결혼 후 3년에 걸쳐 저의 안사람이 갚았습니다. 누가 어렵다 하면 빌려서라도 도와주며 살아 온 저의 어리석음 때문에, 안사람이 착해서 내색은 않았지만 평생 힘들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청렴하고 강직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교육자이자 교육위원, 교육감에 두 번이나 출마한 제가, 언론의 왜곡 보도로 인해 재판도 받기 전에 이미 돈에만 관심을 가진 선거꾼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억울함을 넘어, ‘기가 막힌다’는 표현을 이럴 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행히 그간의 재판을 통해 저를 파렴치범으로 만든 그러한 보도 내용들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져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사건 초기처럼 재판을 통해 밝혀진 진실이 거의 보도되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말이죠.
혹자는 말할 겁니다. “그래서 어쨌다고?”, “흙탕물에 한 번 빠진 걸로 생각해”,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관행처럼 자행되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의도적인 허위사실 유포’와 그러한 허위 정보에 대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없이 소설쓰기 식으로 왜곡ㆍ과장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우리 사회의 음침한 그늘이자, 우리가 지향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와도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억울한 사례가, 우리 사회와 언론이 시민의 인권, 나아가 구속된 사람의 인권까지 존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민주ㆍ진보 진영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개혁 혹은 혁신’이라는 명제에 함몰되어 공직선거후보 결정, 선거 운동, 그리고 선거 승리 후 정책을 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독선적이고 패권적인 방식을 용인하거나 최소한의 정치적ㆍ도덕적 신의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소홀히 않았는가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김형두 재판장님과 두 분 배석 판사님!
이번 사건은 저와 가족에게 청천벽력같은 시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구속되고 나서 4개월 넘게 구치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견디기 힘든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견디면서, 가족과 주변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제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저 자신과 지난 행동을 겸허하게 되돌아 보았습니다. 누차 말씀드렸듯이, 작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제가 후보직에서 사퇴한 것은 일차적으로 정책연대를 통한 교육혁신의 명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거비용 처리에 대한 심리적 압박 때문에 순간적으로 법적ㆍ도덕적 판단이 흐려져 친구 양○○이 제안한 선거비용 일부보전 약속을 받아들인 것은, 공직선거에 출마한 사람으로서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깊이 반성하며, 법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재판장님의 현명한 결정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 대신, 저를 돕기 위해 어려움을 자청하셨다가 피고인석에 앉게 된 강경선 교수님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 간의 만남을 통해 고지식하지만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로 존경하게 된 강교수님의 참된 사랑과 희생적인 태도를 고려하여 관대한 처분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이후, 저에 대한 지원금 2억 원을 곽교육감이 혼자서 마련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늦게나마 곽교육감의 따뜻한 배려에 감사드리며, 그 때문에 곽교육감이 구속되어 중요한 서울교육 혁신사업에 차질을 초래하게 된 데 대해서도 유감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곽교육감이 선거 당선 후 단일화의 공식전제조건이었던 정책협의약속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저를 경원시한 데 대해 많이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강교수님 등의 노력으로 깨어졌던 신뢰를 회복하였고, 이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함께 서울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이었다는 사실도 재판장님께 밝혀드립니다.
사건 발생 직후 일부 교육감 측근들의 저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증인 및 타 피고인의 일부 진술에 대해 재판과정에서 제가 조급한 방식으로 이의를 제기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또한 조그마한 거짓도 용납하지 않는 저의 결벽증과 직선적인 성격,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강한 의욕 때문이었다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적 책무에 따라 저를 기소하여 처벌하고자 하는 입장이지만, 조사과정에서 인격을 존중해주고 피의자의 고충을 배려해 준 검사님의 노고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또, 20여회를 훨씬 넘는 길고 힘든 공판을 함께하며 변호해주신 김재협ㆍ이재화 변호사님과 다른 변호사님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론보도보다 박명기를 믿는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 ‘뭔가 잘못된 것일 게다’, ‘힘을 내라’, ‘어떤 상황에서도 교수님을 지지한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 등등 수 많은 격려 전화와 문자, 그리고 무려 3000건이 넘는 개인별 탄원서를 보내준 제자, 동료교수, 교사, 교장, 친구, 선후배 등 지인분들의 따뜻한 사랑과 깊은 연대애에 대해 마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진실은 외롭지 않다’는 진리를 절감했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항변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파렴치한 선거사범으로 몰려 구속된 못난 사람 때문에 눈물로 날을 지세고 있는 착하고 여린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ㆍ딸, 불초한 자식 걱정에 애간장을 태우고 계시는 병석의 팔순 노모,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다시 한 번, 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심도 있는 공판중심 재판을 이끌어주신 재판장님께 감사드리며, 공정한 법적 판단에 더하여, 이번 사건의 빌미가 된 후보 사퇴의 순수성과 성실ㆍ정직ㆍ청렴ㆍ봉사ㆍ열정을 바탕으로 살아온 저의 삶의 궤적을 혜량하시어 저를 기다리는 학생들과 동료교수들 곁으로 돌아가 후학 지도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1.12.30
첫댓글 구구 절절 마음아프고 크게 공감간다. 박명기 교수도 안됐고 곽교육감도 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