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연중 제27주일) 죄가 아니라 실패 “나 누구누구는 당신을 아내로, 당신을 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주님께서는 두 분이 교회 앞에서 밝힌 이 합의를 당신 은혜로 확고하게 하시고 두 분에게 복을 가득 내리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합니다.” 혼인 성사 예식 중에 신랑 신부는 자유롭게 합의하고, 사제는 하느님께서 그 거룩한 합의를 수용하셨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혼인 성사의 핵심이다. 신랑과 신부는 어떠한 강박도 없이 완전히 자유롭게 합의한다.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상태나 사랑과 존경 이외의 다른 이유로 상대를 속이고 혼인했다면 그 합의는 유효하지 못하다. 그래서 그런 혼인은 처음부터 무효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교제하고 숙고한 끝에 그리고 서로 좋아해서 평생 함께하기로 했는데 그 합의가 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혼자들의 이야기나 이혼 숙려 과정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혼이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춰야 할 흠은 아니다. 혼인 주례사를 시작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여기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해서 오늘 이 자리에 섰지만, 사실 오늘부터 아주 비싼 수업료를 내고 사랑을 배우게 될 겁니다.’ 사랑이 그런 건 줄 몰랐거나,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을 거다. 반대로 그걸 다 안다면 연애만 하고 혼인은 안 할 거 같다. 그러니 혼인과 온전한 가정생활은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이어질 수 없을 거다. 하느님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해서 혼인했어도 상대방만 바라보면 그 관계는 지속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랑은 둘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 둘이 한 곳을 바라보는 거라고 하는 거다. 자녀가 그 ‘한 곳’이 되어준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그 ‘한 곳’은 하느님의 사랑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죄인을 살리려고 외아들을 희생시키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혼인의 본질이 이러한 데도 이혼은 분명한 사회 현상이다. 그런데 옛날에도 그랬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냐고 물었다. 모세가 이혼장을 써주면 된다고 했는데 그런 규정은 율법에 없으니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 거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은 확고하다. ‘둘은 한 몸이 된 거고, 하느님이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8-9).’ 하느님의 법이 그러한데도 모세가 그렇게 한 건 백성들이 마음이 완고해서 허용해 준 거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법이 바뀐 게 아니다.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그때는 남자들이 아내를 물건이나 반려동물 버리듯이 그냥 버리는 일이 있었다. 이혼 문서라도 있어야 그 여자는 다른 남자와 혼인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하느님 법이 바뀐 게 아니다. 그리고 하느님 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점 한 획도 바뀌지 않는다.
예수님은 창세기 말씀을 인용해서 혼인법을 말씀하셨다. 수천 년 전, 인권이란 개념도 없던 시절, 오직 물리적 힘만 의지해서 살던 때 창세기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고 밝혔다. 여자가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다는 건 남자와 여자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뜻이다. 여자가 남자의 부속물이란 뜻이 아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창세 2,18)”주시려고 여자를 만드셨다. 둘은 평등하게 서로 협력하는 관계다. 우리 믿음과 이상은 이렇지만 우리 현실은 그것을 잘 따르지 못한다.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아 결국 갈라서기로, 그 합의를 깨기로 한다. 어렸을 때 본당 수녀님에게 왜 결혼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예수님과 결혼했다고 했다. 근데 나중에 들었는데 그 수녀님도 수녀원을 나왔다고 한다.
인간은 참 약하다. 이혼자들이 그들의 부부생활 중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이 여자는 남편에게 불평을 너무 많이 한 것이고, 남자는 아내의 말에 공감을 잘 하지 못한 거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이혼은 죄가 아니라 실패라고 해야 할 거 같다. 많이 그러고 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실패 말이다. 하느님 법에 따라 교회에는 이혼이라는 제도가 없다. 단지 혼인무효 선언만 있을 뿐이다. 하느님 법이 바뀐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잘 못하니까 허용 해주는 거다. 우리는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이 하신 약속을 끝까지 꼭 지키신다. 외아들을 희생시키시면서까지 그 약속을 지키신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랑을 피해 도망갈 곳은 지옥밖에 없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환난도,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이나 칼도 우리와 하느님을 갈라놓을 수 없다(로마 8,35).’
예수님, 주님은 결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부부가, 저희가 바라봐야 할 곳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랑이 바로 그곳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워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게 도와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위기의 부부들을 위로하시고, 아픈 시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게 해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