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6일부터 4박 5일 풀무 학부모 만나러 다녔습니다. 그걸 말 할 게예요. 황금성
1832 키로미터를 달리다
기다리는 사람을 찾아가는 길은 늘 정겹다. 또 누굴 만나러 가는 사람이나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반기고 보고싶어하는 모습이야말로 아름답다. 풀무학부모님들을 만나러 나선 4박 5일은 하루하루가 감동이었다. 어찌 그렇게도 순박하고 아름답고 참되게 살아 가실까. 가는 곳마다 정성껏 우리를 맞아 주시는데, 과연 우리 임원들이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일을 했고 자격이 있는가, 부끄럽기만 했다. 정성껏 밥을 차려 주셔서 먹을 때, 한술 한술 뜨면서 내가 아는 형이 쓴 시 한 편이 떠올랐다.
고마움
임길택
이따금 집 떠나
밥 먹을 때
밥상 앞에 두곤
주인 다시 쳐다봐요.
날 위해
이처럼 차려 주시나
고마운 마음에
남김없이 먹고서
빈 그릇들 가득
마음 담아 두어요.
2002년 1월 26일
어, 멀쩡하던 날이 왜 이러지? 아침에 비가 오락가락한다. 1시에 부여를 떠나 논산 터미널에서 조재승 님(2.민균 아버지, 회장), 박한용 님(3.수현 아버지)을 만났다.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곧바로 전주에서 오신 회장님 얼굴이 거무죽죽하다. 박한용 님은 전북 진안고원 사나이답게 귀를 덮을 수 있는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버스에서 내리신다. 계순옥 님(3.바람 어머니)와 같이 손뼉을 치며 기쁘게 맞이했다. 내 차에 모두 타고 오늘 우리를 기다리는 원주 김기현 님네로 떠났다. 가다가 중간에 배가 출출해 짜장면, 우동을 맛있게 먹고 나서는데 이거 큰 일이 났네. 비가 서서히 눈발이 되어 뿌리는데 온통 세상이 하얗다. 멋있긴 한데 강원도 그 먼 길을 잘 갈 수 있을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모두다 걱정이다. 체인도 있는데 별일 있을라구, 하여간 가자.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뿌리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은 하늘이 보이기도 한다. 야. 됐다. 길은 눈이 내리다 그치다 하였지만 약간 미끌어 빨리 달릴 수 없었다. 이따 6시까지 간다고 연락 드렸는데 많이 기다리겠구나. 서둘러 가자.
공주를 지나, 천안으로 들어서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가다가 영동고속도로로 가면 된다 싶어 가는데 김성하 님(1.지웅 아버지, 총무)이 전화를 했다. 지금 서울에서 원주쪽으로 내려가는데 주말이라 차가 엄청 밀린다고 다른 길로 가라고 일러주셨다. 결국 안성으로 빠져나와 국도를 달리다가 다시 영동고속도로 이천 나들목으로 들어가 여주휴게소에서 김성하 님을 반갑게 만났다. 강원도 스키장으로 놀러가는 차들이 몰려 길이 붐빈다. 그 틈을 지나면서 생각한다. 우리들은 놀러 가는 게 아니고 풀무학부모들을 만나러간다, 풀무아이들을 만나러간다, 풀무교육을 만나러간다, 참 삶을 만나러간다, 웬지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거의 7시 30분쯤 되어 북원주 나들목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김기현 님(1.정심 아버지)을 반갑게 만나 집으로 갔다. 섬강을 끼고 나즈막하게 들어앉은 조용한 동네다. 얼마 전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셨다는데 와보지도 못했다. 정심이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셔서 큰 절을 올렸다. 우리는 바로 아드님 동무들이고 정심이 풀무학부모입니다 하고. 할머니는 마치 도시로 떠난 자식들을 맞이해주는 어머니 같았다. 뜨끈뜨끈한 매운탕에 소주 한잔을 걸치며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김기현 님이 여기 원주 호저면에 언제부터 자리잡고 살았는가, 지금 하시는 일이며 정심이를 어찌 해서 풀무까지 보내게 되었는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시는가, 또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밤이 깊어졌다. 원주생협 이사장으로 일하며 겪은 일들, 농한기에는 마냥 놀기 싫어 공부해서 용접, 선반, 농기계 수리, 중장비 운전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또 장작 때는 보일러를 손수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고 음식쓰레기 발효기도 만들었다고 하니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다. 이런 이야기로 이어지니 새벽 4시가 넘어도 할 이야기는 그야말로 산더미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먹기 전 하얀 눈으로 덮힌 섬강 주변을 둘러보았다. 칠봉이 우뚝 서있는 주변 경치는 일품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사진 한 장을 팍 박았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길을 따라 더 산으로 오르니 거기에는 아담한 삼층 석탑과 비로자나불 석불이 있다. 마을의 평안을 지켜주는 조상님들 같다. 세상 시름을 안고 오는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 하다. 파란 이끼가 낀 탑 지붕돌이며, 석불 뒤 광배가 오랜 세월을 말해준다. 오래 전 할아버지에 그 위 할아버지들이 여기를 왔듯이 우리 아이들의 그 밑 아이들도 여기에 와서 우리를 생각하겠지.
지난 해 여름, 풀무학교 한마당 아이들이 이 마을에 와서 열흘 동안 연수를 잘 할 수 있도록 마련해주신 김기현 님은 역시 영원한 풀무인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영너머 다섯 봉우리로 둘러싸인 곳, 고성 오봉마을로 떠났다.
- 우리 아이를 사람 만들려고 풀무에 보냈다. 농업학교니 농업교육을 철저히 해야한다. 농사를 직접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농민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학 가기 위해 공부한다고 말하는 거 잘못이다. 내 자식부터 그런 거라면 풀무학교에 보내서는 안 된다.
- 농민을 이해하는 자식으로 키워야한다. 충실한 농민 씨알로 키워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 하나 망가뜨리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꿈인데 그 꿈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풀무질을 잘 해서 우리 아이들이 쓸모 있는 연장이 되어 창업해야한다.
- 대학을 안 가고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아이를 기대한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거의 대학진학이 기정사실로 되었다. 실질적으로 대학 진학을 안 하면 뭐 해 먹고 사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게 문제가 되었다.
- 수학여행을 꼭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야 하는가. 지금 아이들이 무얼 알고 거기에 가는가. 돈이 많이 드는데 꼭 지금 가야 하는가.
- 한국, 중국, 일본에게는 평화롭게 사는 삶이 중요하다. 교류가 필요하지 서로 싸울 수는 없다. 고교 시절에 그걸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고 필요하다.
- 외국으로 여행가는 것은 경제 부담이 된다. 입학 때 미리 일정과 비용을 알려 준비하게 하면 좋겠다.
-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는 우리 부모들이 소유권이 없다. 너무 부모 욕심에 따라 아이들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 아이들이 창업하고 나서도 서로 만날 기회를 갖자. 열심히 살아가시는 좋은 학부모님들을 만나고 싶다. 삶을 배우고 싶다.
- 풀무학교에 견주면 어림없지만 유기농업에 관심이 많다. 유기농을 배우려고 전국을 돌며 유기농을 하는 농민에게 3년 배웠다. 거짓으로 농사짓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이제는 보면 다 안다. 마음으로 풀무를 떠나면 풀무정신을 버리게 된다.
2002년 1월 27일
춘천쪽으로 시원하게 뻗어있는 중앙고속도로를 따라가다가 인제, 양구를 거쳐 진부령을 넘었다. 대 여섯 시간을 높은 고개를 가로질러온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동해 푸른 바다, 아, 온 몸의 피로를 싹 씻어낸다. 끝없이 너른 저 바다에 얹혀 사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지난 번 고성산불 때 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다섯 봉우리 중 한 봉우리만 남고 다 탔다는 오봉마을을 들어섰다. 전형적인 북방한옥마을이다. 독특한 정주간 공간에서 소와 함께 살아갔다는 우리 선조들의 넉넉한 삶을 본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여라." 1919년 세워진 오봉교회 신자들이 송년 모임을 갖고 나서 모두 한마음으로 종이를 찢어 예배당 앞면에다 붙여놓은 말씀이다. 나날의 삶을 평화와 정의로 채우고, 나눔과 베품으로 살아가는 장석근 님(1.종민 아버지), 정순득 님(1.종민 어머니), 이열호 님(3.신애 아버지), 최혜경 님(3.신애 어머니)을 반갑게 만났다. 산골마을에서 나는 정갈한 야채, 바닷가에 왔으니 싱싱한 회를 먹어야한다며 내놓으시니 이거 잔칫상이네. 배부르게 먹고 아래에 있는 이열호 님 집에 가서 녹차 한잔을 먹으니 이내 이야기마당이 펼쳐졌다. 조금 있다가 설악산 지킴이 박그림 님(2.동호 아버지)이 동호와 같이 오셨다. 한겨울이라도 설악산 산양과 함께 산에서 생활하시고 또 이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길눈이 일을 하시니 늘 바쁘시다. 풀무학교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로 밤이 깊어갔다. 다시 오봉교회 교육관으로 옮겨 우리 둘레에 있는 환경, 농업, 산양 이야기로 이어졌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 풀무학교 운영에 대해 학부모들이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 임원 몇 명만이 학교 소식을 알고 지내지는 않는가. 학교교육활동이 어떤 일정으로 운영되는 지 궁금하다. 미리 알 수는 없는가. 학부모들이 그걸 알면 미리 준비할 것도 있겠다. 결과를 나중에 알게 되기에 어려움이 많다.
- 아이들 학교생활에 대해 교사와 긴밀하게 얘기 나누면 좋겠다. 교사, 학부모와 정례 만남도 필요하다. 전에 창업한 우리 아이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우리 아이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공부시간에 잠을 하두 많이 자서 잠귀신이라고 했다. 한창 공부할 때에 잠만 잤다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 동안 여러 번 학교에 갔는데 아무도 그런 사실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가 별다른 얘기를 안 해서 잘 지내는 줄만 알았는데 실제 그렇지 않았다.
- 지역별 학부모 모임이 꼭 필요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온 몸으로 가르치고 생활해도 한계가 있다. 이제는 부모들이 할 일이 무언지 제대로 알고 그 틈을 채워야한다. 학교에 아이들을 떠맡기고 말면 안 된다. 가정교육이 꾸준히 이루어져야한다. - 한가지 주의할 것은 학부모가 학교 일에 너무 관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풀무학교에 아이들을 믿고 맡겼으니 학부모는 한 발 뒤에 물러서서 믿고 지켜봐야 한다. 교사와 정례모임을 가지는 것은 혹 교사들에게 부담을 더 줄 수도 있다. 신중해야 한다.
- 풀무교사들은 아이들에 대해 아주 작은 것까지 다 파악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한 두 달 동안 꾸준하게 지켜보면서 상담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알아냈다고 해서 곧바로 부모에게 연락을 하면 오히려 아이 지도를 그르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에 따라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둘만이 해결하는 때도 있다. 오히려 가정에 와서 행동하는 아이 모습이 다르거나 이상한 말을 하는 경우에는 바로 교사에게 연락해 상담하는 것도 좋겠다.
- 주요 학교활동은 학부모회와 긴밀히 의논하고 학부모회는 학부모 의견을 잘 듣고 뜻을 전해야한다. 해외 수학여행 같은 문제는 신중해야한다. 경제사정이 어려운 가정을 기준으로 일을 진행해 나가야한다.
- 학교에서 보내온 통지표를 보고 놀랬다. 우리 아이에 대해 각 교과별로 활동내용을 쓴 걸 보니 1, 2 학기가 거의 똑같다. 이런 일이 어떻게 생겨날 수가 있는가.
- 그건 행정 착오일 수도 있겠다. 컴퓨터로 하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담임교사에게 알아보면 좋겠다.
2002년 1월 28일
동해안 맨 위에 있는 고성에서 이제 저 남쪽 끝 경남 양산으로 떠났다. 새로 뚫린 대관령 굴을 지난다. 6개 굴이 뚫렸는데 대단하다. 사람 힘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구나. 어제 박그림 님이 그랬다. 마구 산을 깍고 길을 내어서 생태계가 다 망가졌다고. 동물들이 길 한가운데 쳐놓은 분리대 때문에 넘어가지를 못 한다고. 우리 사람들이 돈벌고 놀려고 동물들 삶터를 마구 나누고 갈라지게 했으니 이제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오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신입생 학부모라는 분이 지금 양산모임에 가고싶다고 했다. 마침 경주에서 간다고 해서 언양휴게소에서 처음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동행했다. 영덕으로 귀농 하신 정세영 님(신입생 용운 아버지)이었다. 대구를 지나 양산으로 들어섰다. 마침 조재승 님이 전에 해일이네 집에 온 적이 있다고 해서 쉽게 집을 찾아갔다. 지난 해 양쪽 집에서 키우는 개를 결혼시켜 사돈을 맺었다고 하니 참 별일도 다 있었다. 김 종구 님(2.해일 아버지)이 마중을 나왔다. 멋진 오토바이를 끌고 오셨는데 마치 터미네이터 같아 보였다. 송옥연 님(2.해일 어머니), 이근용 님(1.재인 아버지), 이 번에 새로 들어오는 신입생 학부모도 세 분, 박수한 님(나래 아버지) 그리고 나래 어머니, 김성수 님(소슬 아버지)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나도 늘 전에 뵙던 분들 같으니 뭔가 전생에 인연이 깊었던 모양이다. 김종구 님은 3년 전에 여기 양산 깊은 골짜기에 터를 잡고 오로지 인형극 창작에 몰두하고 계시다. 여기 오시기 전에는 인테리어, 거제 조선소 인부, 그리고 반장, 거제 택시기사, 호떡장수, 꽃집 점원, 조명기구 디자인을 하다가 인형제작을 배워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커다란 철골 하우스를 만들고 그 안에다가 살림방과 인형 작업실을 만들었다. 작업실에는 오밀조밀 수십 개 인형들이 모여 살고 있다. 십 여명 대식구들이 둘러앉아 인사를 나누고 정성껏 마련한 저녁밥을 먹었다. 예전에 사위가 처가에 가면 장모가 집안에서 가장 튼실한 닭을 잡는다고 하더니만 오늘도 손수 닭을 잡아 내놓으셨다. 우리가 또 가장 귀한 손님이 되었다. 신입생 학부모들께서 오셨으니 이거 제대로 신고식도 해야 된다느니, 또 학부모회 임원들이 어떤 분들인가, 또 아이들과 처음 떨어져 살아야 하는데 무얼 어찌 해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 오셨으니 사뭇 한마디마다 다 진지하다. 세 분 다 귀농 했거나 준비하는 분들이라 귀농 해서 마을 분들과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며 지내야 하는 가를 깊이 있게 오랜 시간 이야기했다. 작업실로 자리를 옮겨 지난 해 풀무제 때 본 '섹스폰 부는 여자' 인형극을 즉석 공연했다. 온기 하나 없는 작업실이지만 음악에 맞추어 섹스폰 든 여자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음악을 연주케 하는 김종구 님의 불타는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j가 없다. 요즘 새로운 인형극 창작품을 일 년 째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12시 넘어 까지 이야기하고 가까이에 사는 분들은 다 가시고 우리 임원과 해일이네만 남아서, 옆에 있는 작은 골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운데 있는 이불 밑에 모두 다리를 모으고 희미한 등불아래에서 기타 반주에 맞추어 7580 (대학 입학 년도 75학번에서부터 80학번까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젊은 시절에 불렀던 포크송을 돌아가며 불렀다. 어떤 노래 건 첫 마디만 누가 부르면 다들 노랫말을 기억하고 따라 부른다. 눈을 지긋이 감고 부르기도 하고 노랫말을 미리 불러 주기도 하고 이렇게 한 곡 부르고 나면 다들 손뼉을 치고 맘껏 웃고 좋아했다. 오늘 따라 휘엉청 보름달이 비추고 하늘에 빼꼼하게 박힌 별들이 우리 만남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하다. 누가 그랬다. 우리가 만나서 아이들 걱정도 많이 했지만 사실 우리 아이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맺고 만났으니 얼마나 고마우냐고 말이다. 벌써 새벽 4시가 넘었구나. 마당에서는 산짐승 같은 세퍼트가 잠도 안 자고 우리 노래를 따라 여전히 컹컹 짖고 있구나. 그래, 자자.
- 풀무학교에 우리 아이를 보낸 것은 가난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다. 일반학교는 어디서든 그걸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찾다보니 풀무학교였다. 농촌에 사는 가난한 이들을 일깨우는 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환경이 바뀌었다. 교육방법에 따라 뜻을 다르게 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제는 돈 없어 못 가르치는 게 별로 없다. 풀무정신을 올바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교육이 필요하다. 농사짓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풀무 전공부를 설치한 것은 참 잘 했다.
-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풀무에 보낼 때 전인교육도 하고 대학진학도 하겠다는 목표를 처음에 가지는 것은 안 된다. 올바른 풀무정신을 배우고 흙을 사랑하고 농사짓는 걸 배우는 농업학교라는 걸 알아야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 지를 알고 여기에 보냈으니 학교에 믿고 맡겨야한다.
- 풀무공동체는 내부 힘이 있다. 예수의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다. 외부가 아무리 바뀌고 흔들려도 뿌리가 깊다. 정신적 긴장을 해야 공동체가 잘 유지된다. 앞으로 이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자립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 요즘 혼탁한 시대에 맑고 깨어있는 정신을 만나기가 힘들다. 그런데 우리 풀무학부모들을 만나서 아주 기쁘다. 지난 해 학교규정을 어긴 아이들을 우리 학부모회에서 끌어안고 지도한 게 생각난다. 풀무학교는 지식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가치가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들여보낼 때와 나올 때에 학부모 마음은 한결 같아야한다.
- 우리 아이를 학교 보낼 때는 내 생각보다는 아이 생각이 더 앞 서 보냈다. 부모가 설득 당한 셈이다. 풀무생활에 대한 어려움은 거의 말을 안 한다. 그런데 적응을 잘 한 거 같다. 집에 와서도 설거지도 잘 한다. 어울려 지내는 5명이 서로 집을 찾아간다거나 자전거 여행을 자기들끼리 한다거나 그렇게 몰려다닌다. 지금 이 때가 꼭 배울 게 많고 집중해서 공부를 할 게 많은데 그렇게 경험만 중요하게 여기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고 걱정된다. 그냥 놔두어도 좋은 건지 아니면 방향을 틀게 해야 하는 지 알고싶다.
- 방학중 아이들끼리 여행을 할 때 여행계획을 우리 부모도 알아야한다. 그래서 도움을 청할 다른 지역 학부모가 있으면 도움도 청하면 좋겠다. 각 지역에서 학부모들이 도와줄 수 있다.
- 아이들과 부모 취향이 많이 다를 수 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을 자꾸 하라고 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 택견이나 플롯을 예전에 했다고 풀무에 가서도 계속 하라고 할 때 아이들이 괴로울 수도 있다. 자기가 하고싶은 것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삶이 분명 다르지 않는가.
- 유기농을 하며 지내는 게 참 어렵다. 지금 먹을 정도가 안 되는데 앞으로도 먹을 게 안 되는 게 더 큰 문제다. 우리 아이를 풀무에 보내 학비를 마련하는 것도 큰 걱정이다.
- 그래도 돈 되는 상업작물을 재배하면 농촌은 더 망한다. 쌀, 밀, 보리 같은 주곡작물을 재배해야한다. 그래서 나는 농한기에 노가다를 하면서 돈을 마련한다. 배나무 전정 같은 일을 하러 멀리 김제, 포항까지 다니기도 했다. 농촌에 와서 아프지말아야 한다. 요즘 농촌 사람들을 만나면 대부분 돈 버는 얘기만을 해서 좋지 않은데 우리 풀무학부모들을 만나면 돈 버는 얘기를 전혀 안 해서 좋다.
- 신동림이란 시인이 쓴 시,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가 있다. 그 마음으로 살아간다.
- 우리 아이가 요즘 노가다를 다니고 있다. 내가 앞으로 러시아에 가서 더 공부하려는데, 돈이 없는 걸 알고 보탤려고
돈 번다고 한다. 이 것도 공부라고 생각해서 친구에게 노가다 자리를 부탁했다. 남자는 몸만 튼튼하면 가정을 충분히 꾸릴 수 있다. 우리 아이가 풀무친구들을 많이 만난 게 든든하다.
2002년 1월 29일
이제는 마지막 밤을 보낼 전남 해남으로 갈 차례다. 김휘중 님(2.현상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오는 길도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양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린다. 마산, 순천을 지나 승주에서 빠져나왔다. 순천에 2학년 재식이가 살지. 전화를 하니 집에 아무도 없는가, 받지를 않았다.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니 여기가 낙안읍성이구나. 양반과 상민이 어우러져 살던 곳이지. 서산 해미읍성과 함께 우리나라 읍성으로는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시간이 없어 둘러보지도 못하고 점심밥만 먹고 다시 나섰다. 최근에 이쪽으로 오는 도로가 새로 4차선으로 포장되어 예정보다 일찍 해남에 들어섰다. 여기가 바로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마을이 있는 곳이구나. 첫 날부터 동쪽 바다를 휘둘러 돌아온 한반도길, 바다 쪽으로 가장자리만 밟고 달려온 길이다. 가는 곳마다 마치 형제같이 우리를 반겨주는 풀무학부모님들이 있다.
오늘도 전화로만 인사하고 알던 김휘중 님을 만났다. 해남읍내에 토담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계시다. 낯익은 간판 글씨는 가까이 보니 쇠귀 신영복 선생 글씨다. 벌써 한 시간 전에 무안 전영남 님(2.설희 아버지)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김정숙 님(2.현상 어머니)은 전에 학교에서 뵈온 듯하다. 아담한 방에 차린 밥상을 앞에 두고 반갑게 인사 소개를 했다. 소탈한 성격으로 환하게 웃으시며 수고한다며 술 한잔 따라 주신다. 방 구석구석이 뭔가 느낌이 달랐다.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신영복 선생 글씨가 보이고 한쪽 벽에는 누렇게 바랜 사진 몇 장이 붙어 있길래 보니, 고리끼, 정호경, 윤이상, 노신, 박경리, 장일순, 삐아프, 케테 콜비츠 얼굴이다. 관심 분야를 엿볼 수 있겠다. 현상이가 대학갈 때까지 담배를 끊는 결단도 내리고, 혹 그러다가 한 대 다시 피었을 때는 현상에게 그 사실을 편지글로 알려 불편하지만 고백하면서 다시 뜻을 곧추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자기 잘못을 바로 아들에게 말하는 참 용기 있는 아버지구나. 이제 나이 50살이 넘었으니 전북 임실쪽으로 귀농 하려고 준비중이라고 했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해야지, 이게 뭔가. 나는 행복하고싶다. 소박하게 생태적 인간으로 살고 싶어. 내 사람들과 살아야 행복하지. 지금 가치관은 미국 잣대 밖에 없어. 아무 것도 아냐. 나무 깍아 조그만 거 만들고, 시계 만드는 거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 글씨 파고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 주고 싶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믿고 지켜봐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현상 어머니는 현상이가 집에 오면 여러 말을 하지 않고 지내 잘 적응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예전과 달리 많이 어른스러워지고 이 번에 학우회장에 나선다고 해서 한번 해보고 책임도 져보라고 했다. 또 우리 부모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칠 것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사회환경도 바뀌고 해서 그런 점이 아마도 많을 거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집을 나올 때 누런 창문 가운데에 붙어있는 판화 그림을 보니 구석에 글이 써있다.
"우리가 어울어서 더불어 우러드는 살림, 살림살이 고되어도 사랑하기 넉넉하이."
2002년 1월 30일
오늘로 집을 나선 지 벌써 5일째구나. 부여쪽으로 올라가면서 무안으로 갔다. 전영남 님네에 들러 어떻게 살아가시나 직접 보러 갔다. 앞장 서서 길을 이끌어가는데 이거 가도가도 무안군에 들어서도 집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 풀무아이들이 사는 곳은 이렇게 다들 구석에 있구나. 동해보고 남해보고 오늘은 서해를 따라 쭉 올라갔다. 마침내 아주 큰 정미소 앞에 서니 그 곳이 바로 전영남 님 집이고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박안숙 님(2.설희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반기신다. 집에 계신 할머니께 큰 절 올리고 점심밥을 맛있게 먹었다. 손수 갯벌에 나가 굴도 따오셔서 내놓으시고 흑두부도 직접 만들어 맛보여주셨다. 이제 서해안고속도로가 만들어져 풀무학교에 오실 때 전에는 5-6시간 걸렸는데 이제 반으로 줄어 자주 학교에 다니시겠다고 했다.
거기서 나와 이제 마지막 갈 화순 정옥기 님(3.주리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니 마침 집에 계셨다. 늘 바쁜 분이라 혹 안 계시면 못보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잘 됐다. 화순 능주 산등성이에 잘 자리잡은 집에 들어서니 벽난로가 활활 타고 있다. 불가에 앉아 녹차 한잔을 들며 풀무학교 얘기를 나누었다. 주리 위 아이도 풀무를 다녔는데 두 아이가 다니는 7년 동안 풀무도 많이 변했다며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 7년 전에는 도시에 개방이 덜 되었을 때니깐 풀무가 참 좋았다. 촌놈끼리 만나 지내는 게 좋았다. 그러다가 도시 사람들이 오면서 점점 어려워졌다. 시골은 자급자족 체제다. 한 달에 15만원 이상 보내는 게 어렵다. 아이들이 집에서 보다 풀무에서 더 풍요롭게 살고 있다. 그 때는 용돈이 쓸 데 없었는데 지금은 용돈을 많이 쓰고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재산공개를 한다. 살림을 알기 때문에 트집거리가 없다. 부유하지 않은 게 교육상 더 좋았다. 쓸 곳이 있으면 명절 때 생기는 용돈으로 쓴다. 우리 아이들이 풀무학교에 가서 좋았던 점은 도시아이들과 함께 지낸 경험이고 어려웠던 점은 여기도 시골생활인데 또 시골생활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 대한 기본 신뢰가 있어 괜찮다. 우리 집 아이들은 20살이 되면 혼자 살아가야 한다. 대학가면 입학금만 해결해주고 나머지는 벌어서 다녀야한다. 여자는 2학년까지만 대준다. 또 아이들이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학교 가기 전 1시간 동안 집안 일을 하고 가게 했다. 또 학교 가기 싫어하면 언제든지 가지말고 집에서 일하라고 했다. 그러니깐 집일이 어려워 하교도 잘 다녔다. 부모가 중심껏 살고 잘 살아야 아이들이 함부로 요구하지 않고 범접하지 않는다. 우리는 못살고 아이들보고 잘 살라고 해선 안 된다. 우리는 아이들을 덤으로 얻었다. "
4박 5일 동안 1832키로미터를 달리며 우리는 날마다 풀무학부모님들을 만나며 감동했고 감격했고 행복했다.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복이었다. 기쁨이었다. 우리는 세상이 어렵고 힘들어도, 가난하게 살아가도 희망을 잃지 않고 뜻을 곧추 세우며 살아가는 참사람들을 만났다. 어둠속에서 만난 빛들이었다. 우리 풀무아이들은 그 품에서 나서 풀무정신을 아로새기며 나날이 커가고 있다. 민족의 희망으로 우뚝 커가고 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느낀 점 한마디
- 너무 감동이었다. 학부모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아이들의 집안환경을 학부모 임원들도 알면 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기회를 정례화하자. 그러면 창업하고 나서 만날 수 있는 구심점이 된다.
- 이번과 같은 4박 5일 일정은 어려우므로 틈틈이 평소에 1박 2일로 주말을 이용해 지역별로 돌자. 학부모에게서 들을 수 있는 좋은 교육내용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또 아이들이 부모와 일정하게(달마다) 만날 수 일도록 학사일정을 잘 조절해 주면 좋겠다. 지역모임을 활성화시키자.
- 학부모님들이 이런 분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실제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만큼 잘 몰랐다. 고성에서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한 게 기억에 남는다. 풀무에 대한 기대가 큰 걸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학부모가 가지고있는 긴장감이 생각보다 컸고 아버지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노가다 일을 하는 풀무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학교행사를 치를 때 아이들이 부담하는 돈은 여러 면에서 배려를 해야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려운 경제형편에 놓인 학부모가 많다는 걸 알았다. 의외로 부자인 농민도 보았다.
- 언제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 창업생을 포함한 전체 학부모 모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지역별, 기별로 모이면 좋겠다. 이번 집 나서기는 아주 기대 이상이었다.
- 적어도 1년에 두 번 정도는 학부모 임원들이 지역별로 가서 학교소식을 전해주면 좋겠다. 누군가를 만나 아이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싶었다는 어느 학부모의 간절한 모습도 보았다. 선배 학부모가 후배 학부모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상담을 해줄 수 있다. 이야기하며 서로 잘 알게 되어 기쁘다. 아들을 둔 학부모끼리 딸을 둔 학부모끼리 만나도 참 좋겠다.
- 꼭 부부가 같이 이런 일정에 참가하면 좋겠다. 엄마들도 꼭 왔으면 좋겠다. 재학생만으로는 지역별모임이 작으니 창업생 학부모도 함께 참여하자. 내용으로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것으로 만나도 참 좋겠다.
2002년 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