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알고 쓰자 ④ 마지막-이 자리를 `구걸'해서 감사드린다?
`빌다'는 구걸, `빌리다'는 갚기로 하고 쓰다는 뜻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는 잘못된 표현
명사 다음에 오는 `만큼'은 조사로 붙여 쓰고
관형사형 다음은 의존 명사로 띄어 쓴다
`너만큼 나도 했다' `할 만큼 나도 했다'
`번째'는 접미사 아니라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첫 번째' `두 번째' `짝수 번째' `홀수 번째'
`내노라하는'이 아닌 `내로라하는'이 바른 표현
`그랬다구/가자구'는 틀린 표현 `그랬다고/가자고'
`불리우다/불리워지다'도 잘못, `불리다'로 써야
관형사형 다음의 `만'은 보조 용언으로 띄어 쓰고
명사 다음의 `만'은 보조사로 붙여 쓴다
`키만 크다' `잠만 잤다' `볼 만한 책'
`잘하다'는 항상 붙여 쓰고, `못하다'는 경우에 따라
`깡총깡총'이 아니라 `깡충깡충'
`우리말 알고 쓰자'는 글을 연재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접했다.
우선 자신이 우리말을 그토록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이른바 국제화 시대를 살면서 영어 문법은 줄줄 외우면서도 한글 맞춤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의견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글 맞춤법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모든 사람이 굳이 맞춤법을 알지 못해도 생활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같은 비판은 일관성 없는 몇몇 맞춤법 규정과 글쓰기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띄어쓰기 등으로 인한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정확한 맞춤법을 알고, 또 표준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글을 쓴다면 맞춤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학생이 있는 집이라면 대부분의 가정에서 영어 사전 한 권씩은 갖추고 있으면서, 국어 사전을 가진 가정이 많지 않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먼저 국어 사전 한 권 정도는 갖추자. 그리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사전을 펼쳐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한글학회(www.hangeul.or.kr)나 국립국어연구원(www.korean.go.kr) 누리집(홈이페지)을 방문해서 질문을 올려놓으면 맞춤법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좀 오래된 노래이긴 하지만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란 곡이 있다.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날 위해 슬퍼 말아요…'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서 `사랑은 이제 내게 남아있지 않아요 아무런 느낌 가질 수 없어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잘못된 가사이다. `미소를 띠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으로 써야 한다.
`띠다'는 `감정이나 기운 따위를 나타내다'의 뜻이고, `띄다'는 `눈에 보이다'나 `간격을 벌어지게 하다'의 뜻이다. `간격을 벌어지게 하다'는 뜻의 `띄다'는 `띄우다'의 준말이므로 이런 뜻의 `띄다'는 `띄우다'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노기를 띤 얼굴, 얼굴에 미소를 띠다, 대화는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는 `띠다'를 쓰고, `그 사람은 어디서나 눈에 띈다, 남의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마라'나 `줄을 띄고 써라, 맞춤법에 맞게 띄어 쓰시오'와 같은 경우는 `띄다'를 쓴다. 물론 `줄을 띄우고 써라, 맞춤법에 맞게 띄워 쓰시오'도 가능한 표현이다.
`첫 번째'의 `번째'는 접미사가 아니라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번째'를 접미사가 아닌 의존 명사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 앞에 오는 말들이 관형사이기 때문이다. `첫, 두, 세, 네'는 `첫 만남, 두 명, 세 인물'처럼 명사 앞에서 명사를 꾸며 주는 관형사형이다. 관형사형 다음에는 명사나 의존 명사가 와야지 접미사가 올 수 없다. `번째'가 접미사라면 그 앞에 오는 말들은 `하나, 둘, 셋, 넷'처럼 명사형이 되어야 한다.
`짝수 번째, 홀수 번째'의 경우는 앞에 명사형이 온 경우이므로 붙인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첫 번째, 두 번째'의 `번째'와 이때의 `번째'가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명사와 명사(의존명사)는 `우리 집'처럼 나열될 수 있으므로 `짝수 번째, 홀수 번째'로 쓰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째'와 `번째'의 차이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째'는 `차례'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고, `번째'는 `차례'나 `횟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그러므로 차례를 나타내는 경우에는 `첫째, 첫 번째' 모두 가능하나, `횟수'를 나타내는 경우에는 `첫 번째'만 가능하고 `첫째'는 불가능하다. `첫째 일요일'과 `첫 번째 일요일'은 한 달의 일요일 가운데 차례가 처음이 되는 일요일을 의미하므로 두 표현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첫 번째 만남'의 경우는 `만남'은 횟수를 나타내는 말이 와야 하기 때문에 `첫째 만남'은 어색하다. `오늘의 두 번째 손님'은 손님을 셀 때 쓰는 표현(횟수)이기 때문에 `오늘의 두 번째 손님'이 `오늘의 둘째 손님'보다 자연스럽다. 흔히 `내노라하다'라고 알고 있는데 `내로라하다'가 맞다. 이 말은 `어떤 분야를 대표할 만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이다.
`그러고 나서'와 `그리고 나서'의 구분도 쉽지 않다. `그러고 나서'는 동사 `그러다'의 활용 `그러고'가 쓰인 것이지만 `그리고 나서'는 접속 부사 `그리고'가 쓰인 것이다. 그런데 `나다'는 항상 동사 다음에 쓰이는 말이므로, 접속 부사 `그리고' 다음에 오는 것은 어색하다.
`그러다'는 동사 `그리하다'가 준말이고, `그렇다'는 형용사 `그러하다'가 준말이다. 그러므로 동사 `그러다'가 활용한 `그러고 나서'나 `그리하고 나서'로 쓰는 것이 맞다.
`년'은 `십 년간, 십여 년간, 십 년 만에, 십 년간'처럼 띄어 쓴다. 의존 명사이므로 수를 나타내는 앞말과 띄어 써야 한다. 다만 수를 나타내는 말이 아라비아숫자인 경우는 `10년간'으로 붙여 쓸 수는 있다.
`빌다'는 `남의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호소하여 얻다'와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하여 달라고 간청하다'의 뜻이 있고, `빌리다'는 `나중에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쓰다'의 뜻이 있다. 간혹 `빌어먹고 사는 거지'를 `남에게 꾸어서 먹는다'는 뜻으로 오해하여 `빌려먹고 사는 거지'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이때는 남에게 거저 얻어 먹는다는 뜻이므로, `빌어먹다'를 써야 맞다.
`빌다'와 `빌리다'를 혼동하여 잘못 쓰는 것으로 `이 자리를 빌려/빌어 감사드립니다'가 있는데, 이 경우는 `이 자리를 구걸하여 감사드린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로 써야 맞다.
`부르다'의 피동사는 `불리다'가 맞다. `불리우다'와 `불리워지다'는 피동의 표현을 중복하여 쓴 것으로 바른 표현이라고 볼 수 없다. 국어에서 피동적인 표현은 타동사 어간에 `이, 히, 리, 기' 등의 접사를 붙이는 경우와 `어/아 지다'를 붙이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먹이다, 잡히다, 불리다' 등이 전자에 해당하는 예이고, `만들어지다, 주어지다, 믿어지다' 등이 후자에 해당하는 예이다. 피동 표현을 하는 방법에 관한 규정은 없지만 보통 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가 선택된다. 그런데 요즘 접미사에 의한 피동과 `됩니어 지다'에 의한 피동의 표현을 중복하여 `쓰여지다, 불리워지다, 보여지다, 바뀌어지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바른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쓰여지다, 불리워지다, 보여지다, 바뀌어지다'는 `쓰이다, 불리다, 보이다, 바뀌다'로 고쳐 써야 한다.
구어체가 사람들의 입에 익으면서 나타나는 잘못 중의 하나가 `그랬다구, 가자구'와 같은 `구' 표현이다. 구어에서는 `그랬다구, 가자구'와 같이 많이 쓰지만 `그랬다고, 가자고'라고 쓰는 것이 맞다. `먹구요'와 같은 표현도 `먹고요'로 써야 한다.
`만큼'은 `너만큼 나도 많이 했다'처럼 명사 `너' 다음에 오는 경우는 조사로 붙여 쓰고, `할 만큼 나도 했다'처럼 관형사형 `할' 다음에 오는 경우는 의존 명사로 앞말과 띄어 쓴다. `우리는 형제간이니만큼 우애 있게 지내자,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리만큼 그들은 사이가 좋았다'의 `이니, 리'처럼 종결어미 다음에 오는 `만큼'은 앞말을 명사구로 보아 붙여 쓰고, `그런 일을 한 사람이 그인 만큼 봐 준다'의 `그인'은 `그이다'의 관형사형이므로 다음의 `만큼'은 의존명사로 띄어 써야 한다.
`할 만하다, 갈 만하다'처럼 관형사형 `할, 갈' 다음에는 `만하다'는 보조 용언으로 앞말과 띄어 쓴다. 그러나 `너만 한 아이, 보기만 하다'처럼 명사나 명사형 다음에는 `만'은 조사이므로 붙여 쓴다. 그러므로 `하기만 합니다'는 `하기'라는 명사 다음에 `만'이 온 경우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만'은 보조사로 쓰일 때가 있고, 보조 용언 `만하다'의 어근으로 쓰일 때가 있다. `형만 하다'와 같이 명사 다음에 오는 `만'은 보조사(키만 크다,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청군이 백군만 못하다)이고, `가 볼 만하다'처럼 동사 `보다'의 활용형 `볼' 다음에 쓰는 `만하다'는 보조 용언(볼 만한 책, 가 볼 만한 장소, 세계에서 손꼽힐 만한 문화재, 주목할 만한 성과, 1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이다. 즉 명사 다음에 오는 것은 보조사이고, 동사 다음에 오는 것은 보조 용언의 성분이 되는 것이다.
`공부하다, 운동하다'의 `하다'는 붙여 쓴다. 이때의 `하다'는 접미사로 앞말과 붙여 쓴다. `고마워하다, 반가워하다'의 `어하다'는 보조용언이지만 접사적인 성격이 강해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쓴다.
`가결되다, 사용되다, 형성되다'의 `되다'는 `피동'의 뜻을 더하고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이므로 붙여 쓴다.
`시키다'는 동사로 쓰일 때는 띄어 써야 하지만, `사동'을 뜻하는 접미사로 쓰일 때는 붙여야 한다. 그런데 간혹 일반 동사인지 접미사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접미사의 쓰임인지 동사의 쓰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는 `당하다'와 마찬가지로 능동 행위 동사의 존재 여부로 판별하면 된다. `교육시키다, 등록시키다, 복직시키다, 오염시키다'는 모두 `어떤 일을 하게 하다'라는 의미이고, `교육하다, 등록하다, 복직하다, 오염하다'라는 능동 행위 동사가 있으므로 접미사의 쓰임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능동 행위 동사가 있는 경우라도 `시키다'에 사동의 의미가 없는 경우는 접미사로 볼 수 없다. `식사 시키다'의 경우는 `식사하다'라는 능동 행위 동사가 있지만 `식사 시키다'의 `시키다'가 `식사를 하게 하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문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므로 이때의 `시키다'는 사동 접미사라고 볼 수 없다.
`만들다'와 '힘들다'의 명사형은 `만듦', `힘듦'이다. `만듦, 힘듦'은 발음이 `만듬', `힘듬'이라서 자주 `만듬, 힘듬'으로 써야 할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만듦, 힘듦'은 `만들다, 힘들다'의 어간 `만들, 힘들'에도 명사형 어미 `ㅁ'이 결합한 말로, `만듦, 힘듦'으로 적어야 한다. 받침의 `ㄹ'이 탈락하지 않은 것은 `만듦, 힘듦'에 조사 `이'나 `을'을 붙여 보았을 때 `[만들미], [만들믈], [힘들미], [힘들믈]'로 소리 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퀴즈의 정답을 맞히다'가 옳은 표현이고, `퀴즈의 정답을 맞추다'는 틀린 표현이다. `맞추다'와 `맞히다'는 쓰임이 다른 말로, `맞히다'는 `적중하다'의 의미로 `정답을 골라 내다'의 의미를 가진 말이고, `맞추다'는 `둘 이상의 일정한 대상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여 살피다'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러므로 `정답을 맞히다'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을 고르다'(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맞히면 상품을 드립니다)의 뜻이고, `정답을 맞추다'는 `답지를 놓고 답지와 비교하여 채점하다'(그는 시험지를 정답과 맞추어 보고 나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의 뜻이다.
`잘하다'는 항상 붙여 쓰고, `못하다'는 일정한 수준에 못 미치거나 능력을 나타낼 때는 붙이고 그 외는 띄어 쓴다.
우리가 흔히 `깡총깡총'으로 알고 있는 말은 `깡충깡충'으로 써야 맞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시늉말(의태어)은 느낌이 중요하기 때문에 깡총깡총, 껑충껑충, 깽총깽총, 강종강종, 강동강동 등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표준어는 `깡충깡충'이다.
하승립 기자 lipha@laborw.com
자문 △한글학회 △국립국어연구원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민현식 교수 △우리말글살리는겨레모임 이대로 공동대표 △국어문화운동본부 남영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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