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바나바와 같은 인생
행 4:32-37절
세월이 흘러 갈수록 향기로운 인생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인생도 있습니다. 참된 크리스찬에게 있어서는 세월의 경과는 향기를 더욱 그윽하게 하는 촉진제일뿐더라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그리도인으로서 본을 받아야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바나바입니다.
오늘 바나바의 삶을 조명해보면서 우리의 인생을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의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는 구절중의 하나입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한마디로 유무상통입니다. 있는자나 없는자나 자신의 소유를 모두 내어놓고 필요한대로 나누어 쓰면서,누구든지 자기의 소유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행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해답은 사도들로 인하여 은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없었다면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 종들의 주요 역할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것은 교인들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갈등을 격는 목회자들이 하시는 말씀중에
요즘 교인들이 너무 영악하다고 합니다. 어떨때는 참 무섭다는 생각마져 든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교인들을 탓할일은 아닙니다.
한 목사님이 어느 교회로 부임해서 보니 이리 같은 교인들만 남아있더랍니다.
목사님은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호랑이가 되어야겠다" 고 생각하고 목회를 했는데 얼마 후 교인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떠나버렸습니다. 목회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 후 다시 한 작은 교회의 청빙을 받아 부임해보니 이번에는 병난 양들만 있더랍니다.
그래서 불쌍한 마음이 들어 "내가 선한 목자가 되어야지"하고 목회했더니 얼마 후 그들이 다 건강해져서 풍성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악하고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세상이 악하기에 이리처럼 살겠습니까? 선한 목자로서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아무리 어려움과 고난이을 당하여도 절대 호랑이와 같은 사역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성도 영악하고 무섭게 느껴지는 원인이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목회자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은혜를 주면 성도들은 양과 같이 순전하고 온순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주지 못하면 영악한 이리와 무서운 사자로 돌변하게 될것입니다.
결국 그 들이 변하기를 기다리기 전에 내가 변하면 교회의 갈등이 해결되고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갖추게 될것입니다.
아직도 교회안에서 계급적 신분을 갖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섬기는 마음으로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따라야 할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본문을 보면 형편에 어긋한 구절들을 보게됩니다.
(행 4: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행 4: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사도들로 인해 은혜를 얻은 교인들이 자신의 전재산을 내어놓고 서로 필요에 따라 나눌때, 교인중 곤궁한자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교회요 위대한 교인이라고 생각 되어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처럼 위대한 삶을 살았던 교인들은 모두 익명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요즘 자신의 전재산을 교회에 바친 성도가 있다면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000 기념과 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대 예배시간 설교하기전 회중앞에서 이를 알리고 패를 주어 이를 기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전재산을 바친 초대교회 교인들 중 이름이 밝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한사람만이 이름이 밝혀져 있습니다.
(행 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행 4: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그 주인공은 바나바입니다.
왜 모든 사람이 익명인 가운데 바나바만 이름을 기명으로 처리했을까?
그가 드린 헌금이 다른 사람보다 많았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밭과 집을 팔았다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앞에 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남보다 많이 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에서 일까?
이후의 바나바 행적을 보면 왜 본문에서 그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변화를 받습니다. 그후 아라비야 광야에서 3년간 경건훈련을 거치고 예루살렘에 올라 갔을때, 유대인들도 사울을 죽이려 하고 예루살렘의 교인들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을 핍박했던 그의 전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울의 회심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일망타진하기 위한 위장전술쯤으로 간주 한것입니다.
그때 사울의 회심의 진실성을 보증해준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그러나 계속되어지는 유대인들의 살해위협으로 한밤중에 그는 그의 고향 다소로 피신해 갑니다. 거기서 자그만치 13년간 숨을 죽이며 칩거하게 됩니다
모두의 기억속에서 사울의 존재가 사라질 무렵.
그때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동역자로 부르기 위하여 직접 찾아 갑니다.
행11:25절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라고 하였습니다.
다소는 안디옥의 옆 동네가 아닙니다.
안디옥에서 무려 175Km나 떨어져 있습니다. 도보로 찾아가기에는 머나먼 곳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안디옥에서 다소로 가기 위해서는 해발 2천 미터의 아마노스(Amanos) 산을 넘어야만 합니다.
그런수고를 아끼지 아니하고 찾아가 사울의 손을 붙잡고 사역의 현장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또한 바나바는 사울과 더불어 1차 선교여행을 가게되는데
안디옥에서 가까운 항구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건너 갑니다.
구브로의 동쪽 항구 실라미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구브로에서 서쪽 항구 바보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터키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바보에서 배를 타는데
이때 중대한 변화 일어납니다.
(행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선교여행중에 사울의 이름이 바울로 바뀌었고,
더중요한 것은 이때부터 성경은 선교팀을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바나바와 동행하는 사람들”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후로 바울의 이름이 바나바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할 때 서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반드시 직책 또는 연령순으로 기록합니다.
이원칙에 따르면 바나바가 맨앞에 이름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거리낌 없이 바울에게 선교의 팀장을 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요즘과 같은 서열에 무너지는 시대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입니다만은, 상사를 추월한 사람은 승진의 기쁨을 만끽하지만 , 거꾸로 추월 당한 사람은 그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사실입니다.
이것은 교회 생활에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자신보다늦게 등록한 사람이 권사가 되고 장로로 피택되어진다면 시험에 빠지거나 아예 교회를 옮기는 자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바울의 조연으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주말에 왕의 남자 관객 천만 돌파하였다고 합니다.
저도 영화를 보았습니다만은
주연이 전체적인 내용을 이끌어 가지만 그
내용의 의미와 맛을 살려주는 것은 조연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조연을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주연만 있고 조연이 없다면 그영화는 1인극, 모노드라마에 불과 합니다.
예수님의 배경이 되어 준 인물이 세례요한이라면 사도행전의 주연인 바울의 배경이 되어준 인물은 바로 바나바 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무대 앞에서 서고 싶어 하는데, 무대 뒤에서서 섬김의 삶을 살기로한 바나바 였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전 재산을 드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익명으로 처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중심에 서있는 바울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던
바나바의 조연은 성경에 실명으로 기록하여도 아무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 하나님의 나라”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연은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수많은 엑스트라 가운데 바로 우리를 주인공과 같은 조연의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대를 진정으로 빛나게 하며 주연을 탄생시킨 무대 뒤의 영웅, 섬김이 바나바와 같은 일꾼이 필요한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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