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詩 김 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나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람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마당이 너른,
꽃이 많은 집으로 통했다.
봄이 오면 담장 너머로
제일 먼저 노란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그 뒤를 이어 연분홍빛 벚꽃과 복숭아 꽃이
한쪽 담장을 병풍처럼 막아서며 눈부시게 피었었다.
골목 비탈길을
숨 고르며 오르던 사람들이
블럭 담장 아래 축축 늘어진 꽃그늘에
잠시 멈춰 쉬어 가기도 하며
언제나 열려 있어
있으나 마나 한 대문을 밀치고
일부러 꽃 구경을 하러 온 지나던 사람들과
마실 온 이웃들로 조그마한 툇마루는 언제나 붐볐었다.
봄이면 봄꽃으로, 여름이면 여름꽃으로
그리고 가을이면 가을꽃으로
키가 작으면 키 작은 대로, 키가 크면 키가 큰 대로
언제나 예쁜 꽃으로
사시사철 빼곡하게 촘촘히 채워져 있었던 꽃밭과
장독대 한 켠,
앙증맞게 핀 앵두꽃과
앞마당 세숫대야가 늘 놓여 있던 세면장 앞에 피던
라일락 꽃 하며...
잎이 나기도 전에
나뭇가지에 형형색색 꽃 몽글이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그 아래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봄밤.
지난 유년시절
꿈속에서도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간다.
햇살이 맑게 미소 짓고
겨드랑이 사이로
화사한 작은 꽃들의 향기가 파고드는
오월의 밤이 되면
아련한 옛 추억에 나는 늘 신열을 앓곤 하지만
며칠 바빳던 일들을 끝내고,
잠시 마음의 여유를 찾았던 이 봄날에...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개심사 왕벚꽃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시간을 내어 다시 한 번 다녀왔던 까닭도
유난히도 꽃을 좋아하는 그러한 이유 때문일게다.
요즘엔 서양 외래종 꽃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쉽게 볼 수 있는 까닭에
봄이 되면 더 화사해지고 눈이 부셔
봄 부신이라 했던가?
매년 이맘때면 봄꽃에 취해 안달이 나
번잡하지 않은 곳을 일부러 찾아 꽃 구경을 하곤 하지만
늘 넘치는 행락객들로
느긋하게 혼자 느끼며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
지친 몸을 편안히 기대기가 쉽지는 않다.
휴식이란
찌들었던 우리의 마음을 쉬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기에
그저 일상을 놓아버린 채,
형형색색 갖가지 꽃들로 조성해 놓은 식물원을 찾아
꽃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군중 심리 탓일까?
지난 주.
혼자만의 개심사 행보가 자꾸만 눈에 밟혀
집사람과 함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남도여행을 떠나려다
그리 좋지 않은 날씨와
연휴, 많은 행락객들로 채워진
남도 땅을 내 딛기엔 힘이 들 것이라는
나의 소극적 태도에
집 사람은 눈을 흘기며 연실 투덜대고 있던 터였다.
봄빛 완연한 오월.
꽃과 함께 황금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
어릴 적 그 시절에도
어머니와 누이 손에 이끌려
집에서 가까운 창경원(궁)에 벚꽃놀이를 가던 때가 있었지만...
다시 찾은
용인 한택식물원의 꽃 구경.
들어가는 입구부터 야트막한 언덕에는
이름도 외기 쉽지 않은
온갖 이름 모를 꽃들로 채워져 있다.
전에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몇 번, 충분히 느끼고 왔건만...
길에서 별로 시간 안 빼앗기고, 손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기에
매년 이맘때면 늘 찾는 곳이 되었다.
라일락보다 수수한 하얀 분꽃이
몸을 흔들며 반기고
눈을 살며시 감고 그윽한 향기를 맡아보는
집 사람을 뒤로 한 채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한 마디로 꽃바구니와 같은 수려한 공간이 나온다.
매년 이맘때면
튤립과 작약 그리고 모란꽃이 장관을 이루지만
수시로 계절이 변하다 보니
개화시기를 예측하기가 어려워
그 아름다움에 취하지 못하고 올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엔 운이 따른다.
빨갛고 노란
소담스러운 튤립들...
꽃 향기에 취했을까?
그 색깔에 반했을까?
그 아름다움에 가던 이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자꾸 뒤돌아 본다.
꽃이 아름답기 때문일까?
지나는 사람 모두가 다 아름다워 보이고,
한쪽 유리벽을 쌓아
조성해 놓은 온실 안에는
동화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가
한가운데가 배가 불뚝 솟은 채,
배 흘림 기둥처럼 떠억하니 버티고 서있다.
서로를 길들인다는 것을 알게 된 어린왕자는
자신이 길들인, 길들여진 장미를 지금도 생각하고 있을까?
세상사람 모두가 서로 사랑하며,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삶을 말하는 것이리라.
세상에 길들여 진다는 것...
세상의 모습에 너무나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듯
이름모를 저 하얀 꽃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였던
어릴 때 그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되돌아 가고 싶을 뿐이다.
아름다운 이 계절.
지난 어린시절 그 마음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을 되찾고 싶다.
피나무와 팥배나무 그늘 아래
피멍과 같은 깊은 상처가 아물어 가는 자리.
모란과 작약이 한창이다.
모란꽃처럼 화사한 사랑이 피는
오월이 문을 열 때면
꽃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문득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듦은 왜일까?
소담스런 모란꽃을 유난히 애지중지하며
정성 것 돌보던 어머니.
저무는 하늘
희미한 하얀 낮 달처럼
커다란 꽃잎이 떨어질 무렵
내게 머물다 소리 없이 돌아갈 지어도
스멀스멀 떠오르는 어머니 생각에 잠을 뒤척이곤 한다.
무덤 위에도
파란 하늘 한 조각 내려앉는 오월.
어머니가 내 곁에 머물던 유년시절은 아름다웠다.
언젠가
편지를 써놓고 부치지 못한
그날부터 나의 중심은 벼랑 아래 굴러 떨어져서
울지 못하였고
그날부터 나의 하늘은 마른나무 꼭대기에 걸려서
내려오지 못하였다...
한 점 바람과 함께
보았던 꽃향기에 취했던 하루.
묻었던 그리움을 끄집어 청보리 출렁이는 바람 앞에 서 본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란
미당 선생 님의 시구처럼
가족 곁을 이미 떠난
어머니께서 떠난 길을 생각해 본다.
어머님이 가신 그 길은
얼마나 먼 길일까...
보이지 않는 그 길을 향하여
알지 못한 길 떠나려니
한 방울 눈물 끝에 이름모를 새 한마리 내려앉아 먼저 울고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오월.
풋풋한 풀 향기가 전해오는 이 밤에
꽃처럼 고왔던...
청보리 처럼 푸르렀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다시 써본다.
비록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어머님이 일궈놓은 마음의 꽃밭을 영원히 간직하면서
어머님께서 그렇게 좋아하는 꽃들을 가득 피워
오월의 향기속에 그리움을 전해 보련다...
2009.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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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꽃을 유난히도 사랑하시던 어머님을 그리며 지난 5월에 쓴 글 입니다.꽃과 같이 곱고 아름다운 꽃여울 가족들과 함께하였음 하는 마음에 뒤 늦게 올려봅니다. 오늘도 활짝 웃는 하루되십시요...
산들님, 글도 사진도 멋집니다. 아름다움 한아름 안고 와 주시니, 더욱 반갑습니다.^^*
댓글로 나마 인사드립니다..좋은 공간 마련해 주시어 감사한 마음이랍니다..^^
멋진사진과 노래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울긋불긋 꽃들이 제마음을 화사하게 밝혀주네요 감사합니다 ~~
꽃과 같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가족들의 공간이라 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늦게 찾아온 것이 후회가 된답니다.고맙습니다...^^
오랫만에 고국산천 구경 잘 햇네요..보리 밭도 보고..
위 동영상을 보니 멀리 타국에 계신분 같습니다. 시간됨 아름다운 고국모습 자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꽃을 사랑 하시는 마음이 가득 하신것이 보입니다 저도 어릴때 친정에 꽃이 많아 꽃집이라 불렸지요
그래서 시골에 들어와 맘껏 꽃을 키우며 산답니다
봄 밤의 노스텔지아.....노스텔쟈라든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릅니다~~`바람이 바람처럼 다가 오거든 쉬어 가세요~~`
산들님, 다음에 글올리실 적에는 복사 허용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회원님들의 모든 글과 사진은 월간 꽃여울 등의 편집에도 사용하고... 또, 훗날 민족 문화로 축적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기존 글과 사진 복사 허용토록 조치해 놓았습니다. 어제 밤. 고속도에서 눈 길에 차가 한바퀴 도는 바람에 휴게소에서 가슴 쓸어 안고 잠시 마음 진정하고 있던 참에 전화를 받아 경황이 없어 제대로 통화를 못했습니다. 죄송한 마음입니다...^^;;
산들님, 복사 허용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 눈길에서 액땜 다하셨네요. 이제 즐거운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