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가 미혼의 여성군주로 그녀를 둘러싼 남성 신하들과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고 특히 로버트 더들리와의 집중적인 소문이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도란(Susan Doran)이나 헤이그(Christopher Haigh)와 같은 역사가들은 엘리자베스와 더들리의 관계를 일반적인 남녀간의 애정관계로 평가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사가들은 1560-1년에 엘리자베스와 더들 리가 거의 결혼할 뻔 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더들리 자신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최소한 8세 이전의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 사이로 연인 관계가 아닌 우정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동맹 관계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들의 사이가 어떤 성격이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초창기의 이들 두 사람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로버트 더들리는 제인 그레이를 여왕으로 옹립하여 반역죄로 처형당했던 노섬벌랜드 공 존 더들리의 다섯째 아들로 로버트의 나이는 엘리자베스와 동갑으로 추정된다. 엘리자베스가 처음 로버트를 만난 것은 1540-1년일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헨리 8세의 왕비였던 캐더린 하워드(Catherine Howard)는 엘리자베스의 오촌이자 새어머니로 엘리자베스는 캐더린의 배려로 크리스마스나 신년 축일에 궁정으로 초청되었을 것이고 또한 당시 존 더들리가 헨리 8세의 궁정에서 부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때 로버트도 궁정으로 초대받아 두 사람이 만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550년 6월의 추밀원령에 의하면 엘리자베스가 햇필드(Hatfield)의 새로운 소유주가 되었는데 그 이전까지 엘리자베스가 거주할 당시 햇필드 궁의 실제 소유주는 로버트의 아버지 존 더들리였다.) 이러한 근거를 통해 볼 때 로버트는 집주인의 아들로서 동년배인 엘리자베스가 머무는 햇필드에 방문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만남을 통해 둘 사이의 우정이 싹튼 것으로 보인다.
성년기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남녀로서의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1550년 6월 17세가 된 로버트는 상당한 재산가로 노포크(Norfolk)의 지주였던 존 롭사르트(Sir John Robsart)의 상속녀였던 에이미 롭사르트(Amy Robsart)와 결혼하였기 때문이다. 로버트의 결혼은 재정적 이유도 고려된 것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애정 때문이기도 했다. 더욱이 두 사람의 결혼식에 당시 국왕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가 초대되어 참석하였다는 것도 엘리자베스와 로버트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해주는 단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따라서 로버트의 결혼식에 직접 참석하였던 목격자이기도 한 엘리자베스가 그 후 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기를 열망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로버트가 결혼한 이후에도 두 사람이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기회는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에드워드 국왕 시절 로버트는 국왕을 모시는 침전 시종들(Gentlemen of King's Privy Chamber) 중 하나로 궁정에 상주하였고 엘리자베스는 국왕과 사이가 좋은 누이로 자주 궁정을 방문하였다.이러한 잦은 조우를 통해 두 사람은 친구로서의 우정을 쌓았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메리 여왕 시절에 두 사람은 런던탑에 유폐되어 수감생활도 같이 하였던 경험이 있다. 1553년 7월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는 자신의 며느리인 제인 그레이를 여왕으로 옹립하고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메리 여왕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아들들은 런던탑에 유폐되었다. 이 무렵 엘리자베스도 와이어트 반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메리 여왕에 의해 런던탑에 투옥되었고 우드스탁으로 이송되기 이전 두 달 동안 오랜 친구였던 로버트와 같이 런던탑에서 유폐생활을 하였다. 물론 이때 이들이 서로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었는가는 확인할 수 없겠지만 역경을 함께 겪어냈다는 점에서 두 사람 간에 강한 심리적인 유대감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여왕으로 즉위하여 로버트에게 내린 직책은 말을 돌보는 관리자(Master of the Horse)였고 이와 더불어 약간의 토지를 하사하였다.이미 에드워드 국왕 시절에 왕실의 사냥을 관리했던 직책(Master of the Buckhurst)을 가졌기 때문에 이러한 경력을 인정하여 말을 관리하는 직무를 내려주지 않았는가 짐작된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로버트를 여왕의 말을 관리하는 직책에 임명한 것은 오랜 친구로서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고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친구로서 신뢰했기 때문일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베푼 로버트에 대한 호의는 즉각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고 급기야 두 사람은 결혼을 열망하는 연인 사이로 오해되어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당대인들의 억측과 소문을 그대로 믿었던 도란이나 헤이그와 같은 현대의 역사가들은 두 사람이 결혼하기를 원했다는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음과 같이 자신과 로버트의 관계를 명확히 밝혔다. “나는 더들리와의 결혼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내가 그에게 베푼 호의는 내가 언니 메리 여왕 시절에 곤경에 처했을 때 그가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다. 그 당시 그는 나에게 변함없이 친절을 베풀고 봉사를 해주었고 심지어 나에게 자금을 제공해주기 위해 그의 재산을 팔기까지 했다. 나로서는 그의 변함없는 우정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해주어야한다는 것이 정당하게 여겨진다.” 돌이켜보면 메리 여왕 치세의 영국은 여왕의 남편인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를 따라 프랑스와의 전쟁에 휘말려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왕실의 원조가 없이 지내야했던 엘리자베스의 재정적 궁핍이 얼마나 극심했겠는가는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이미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하여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로버트가 엘리자베스를 위해 자신의 토지를 팔아서 자금을 대주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정황과 사료적 근거를 놓고 본다면 엘리자베스가 초창기에 로버트에게 베푼 호의는 그의 오랜 우정과 헌신에 대한 여왕으로서의 보상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출처http://mahan.wonkwang.ac.kr/medsociety/summery/39/elisabeth.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