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보통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하늘나라가 뭔고 하니 농부가 나가서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지고 어떤 것은 돌짝밭에 떨어지고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빠지고 어떤 것은 옥토에 떨어진다”(「누가복음」, 8장 5~8절) 하시지 않아요?
이처럼 사람들 수준이 서로 달라요. 그러니 예수님은 자기 마음 속에서 환히 알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은 깊이로 직접 말해줘도 몰라요. 이해를 못할 줄 알아요. 그래 니고데모보고도 그러지 않았어요. “내가 땅의 것을 이야기해도 네가 모르거든 하물며 하늘 거를 말하면 네가 어떻게 알거냐.”(「요한복음」, 3장 12절) 구경은 하늘 거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에 가면 그 다음 것은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 알 건 뭔고 하니 우리가 이렇게 생각을 해서 안되고 그렇지만 적어도 한 번은 한 번만이 아니고 엄연한 의미에서 말하면 무한 번 탈피를 해야 하는 거지만 적어도 한 번은 크게 껍데기를 벗는 것이 있어야 한다 는 거요. 그것도 생각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 얘기부터 주의해볼 필요 있다는 건 그래서 나온 말이에요. 거기 보면 니고데모가 오기는 왔지만, 겉으로는 상당히 신앙도 있고 지위도 있고 아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아직도 속으로 본다면 빈약한 것이니까 그 껍데기를 벗든지 해서 고쳐 나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고쳐 난다는 뜻을 알아듣지를 못했어요. ‘다시 난다’ ‘고쳐 난다’ ‘위로부터 난다’ 그 말인데, 그건 우린 이제 다 아니까 ‘영으로 난다’ 그러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영으로 난다’는 건 완전히 이해를 하고 있냐 하면, 말은 아는데 아직도 그걸 이핼 못하는 점이 많이 있어요. 한없이 파고들어가 껍데기를 벗고 벗고 그래야 하는 건데, 그래 니고데모만한 사람도 그걸 못했어요.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면 니고데모보다 아이큐도 떨어지고, 그만 못한 사람이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시대적으로 하면 우리가 훨씬 앞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각별히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래, 영으로 난다는 건 그렇지. 고쳐 나야지”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