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는 모습을 보며
문희봉
이젠 그전같이 운전대를 자주 잡지 않는다. 아니 잡을 일이 없다. 그것도 시내 주행이 고작이다. 특히 할 일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눈이 자꾸 흐려지니 밤길 운전은 겁이 난다. 그래서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 운전을 하려면 가슴이 나를 말린다.
내가 면허를 딴 게 한 삼십 년은 좀 넘었는가 보다. 필기시험은 한 번에 통과했는데 실기에서 언덕 오르기를 못하고 미끄러져 낙방했다. 두 번째 도전에 시험관의 ‘합격’ 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복창을 했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내 집을 처음 장만한 것이 1985년도이다. 단독주택이 자리한 6미터 골목에 자가용이라고는 띄엄띄엄 한두 대 있을 때였다. 내가 차를 가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면허증은 따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이 사십 넘어 도전한 것이다.
바로 대전에서 공주로 출퇴근을 하게 됐다. 1년은 남의 차를 타고 다녔다. 출근시간대는 괜찮은데 퇴근시간대가 서로 맞지 않았다. 그래서 소형차를 샀다. 고사를 지내기로 한 날 저녁 무렵 동네 친구들과 운전연습을 하러 나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자동차에 운전석 반대편 뒷문을 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그날 고사는 지내지 못했다. 공주까지 운전하여 출근하는 내 뒤를 동네 친구는 쉬는 날이면 배웅해 줬다.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그 친구는 대형트럭을 운전하는 베테랑 운전자였다. 그렇게 나의 출퇴근은 시작됐다. 한 일주일 정도 그런 수고를 해준 친구가 고맙다. 그리하여 내 운전 실력은 점차 향상되었다.
꾸불꾸불 한 절망을 펴고 싶을 때 나는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대를 잡고 바람만 마시고 돌아와도 이득이란 생각이 들었다. 파도만 보고 와도 이득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내가 멋졌다.
운전하다 보면 왜 그렇게 교통 규칙을 지키지 않는지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는 것은 다반사고, 직진 차로에서 갑자기 좌회전을 하는 차들도 있다. 삿대질하며 싸우는 사람들을 본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을 본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앞차를 따르다 보니 계기판의 숫자가 140을 넘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하는 생각으로 좌우를 살펴 주행선으로 차선을 바꾸지만 여기서는 규정속도 이하로 달리는 저속차량 때문에 다시 추월선을 밟게 된다.
요즘은 교차로 우측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운전자를 단속하는 경찰관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습관이리라. 나는 운전석에 앉으면 시동을 걸기 전에 먼저 안전띠를 착용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사고가 났을 때 안전띠 착용 여부가 천당과 지옥의 경계를 구분 짓는 데도 그게 잘 안 지켜진다.
요즘은 지하철을 자주 탄다. ‘지공선사’가 된지 한참이라서인지 시(市)에서 특별 배려로 요금을 받지 않고 태워준다. 시각에 맞춰 도착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 출퇴근시간에도 지체되는 일 없이 약속 시각 지키기에는 그만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불법운행을 하는 차들이 자주 눈에 띈다. 나도 저랬지. 과속, 불법유턴, 불법주정차... 황색 신호에 교차를 건너다가 교통경찰과 다툰 적도 있다. 트럭에서 뿌려진 빗물로 한동안 시야가 흐려져 먹먹했던 일, 안개와 폭우, 폭설 속 운전도 생각난다.
운전은 인생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곡예운전을 하고, 갈짓자 운전을 하면서 이리저리 빠져 과속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본다. 남한테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남의 뒤를 따라주는 것을 인생에서의 낙오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같다. 인간의 목숨은 하나뿐인데 너무 가벼이 취급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운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건강 유지하면서 양보하며, ‘먼저 가세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긴 창문 모두 닫혀 있는 상태로 앞의 차량 운전자에게 상스런 소리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들을 리 만무하고, 그 사람이 듣지 않으면 결국 내가 나에게 하는 상스런 말이 되겠다. 그러면 나만 스트레스 받고, 혈압이 오르니 피해자는 바로 내가 아니겠는가. 내가 잘못했을 때는 지체 없이 쌍깜빡이를 켜서 ‘내가 미안하게 됐소.’하고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돼야겠다. 노욕일랑 저 질주하는 차들 트렁크에 넣어 실어 보내고 나는 나에게 맞는 현명한 방법으로 살아가야겠다.
목표지점에 가까이 들어선 나이에 나는 무엇을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가려는가 생각해 보아야겠다. 구겨진 마음보다는 구겨진 옷이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줍고 싶은 밤톨 하나 다람쥐를 위해 남겨두는 사람으로 남은 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