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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속으로] 07
S#1. 일식집 앞 (밤)
연희와 수빈, 인하,
인하의 차 옆에 서 있다.
연희 (인하에게) 잘먹었어요. (수빈에게) 나 갈게.
수빈 왜? 같이 가자. 바래다줄께.
연희 아니야. 나 어디 들를 데가 있어. 가. 안녕히 가세요.
인하 그래, 그럼. (수빈에게) 갑시다.
인하, 먼저 차에 타고
수빈, 잠시 연희를 보다가
할 수 없이 차에 탄다.
수빈 (연희에게) 전화 해.
연희 그래. 잘 가.
인하의 차, 떠난다.
연희, 인하의 차를 본다.
S#2. 거리 (밤)
인하의 차 안.
인하와 수빈, 말없이
앞만 보고 가고 있다.
수빈 이런 식으로는 다시 만나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요, 우리?
인하 ...
수빈 그 쪽이나 나나 참 한심하단 생각 안들어요?
인하 ...
수빈 연희 좋아하는 거 알아요.
인하 ...
수빈 그런 식으로 상처주지 말아요, 연희한테.
인하, 갑자기 오디오의 볼륨을 높인다.
수빈, 인하를 잠시 보다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S#3. 현장사무실 (밤)
흙먼지가 잔뜩 묻은 작업복 차림의 명하,
다른 잡부들과 섞여 일당을 받고 있다.
명하, 낡은 만원짜리 다섯 장을
대충 확인하고 주머니에 쑤셔 넣고
사람들 틈에서 빠져 나와 밖으로 나간다.
S#4. 거리 (밤)
명하, 지하도에서 올라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며
악세서리를 팔고 있는 리어카를
지나쳤다가 돌아본다.
S#5. 연희네 집 앞 (밤)
연희, 터덜터덜 집으로 올라오는데
명하가 불쑥 나타나 작은 선물 꾸러미를 내민다.
연희 뭐야? (얼떨결에 받는다)
명하 친구 갖다 줘라.
연희 뭔데?
명하 에이.
명하, 쑥스러워 하며 다시
연희 손에서 빼앗으려는데
연희, 얼른 감춘다.
연희 뭔데 그래?
명하 (툭) 그날 걔 생일이었대매?
연희 ...
명하 (변명하듯) 좀 안됐더라고, 별 뜻 없는 거니까 그냥 갖다 줘.
연희 (갑갑하다) 알았어. 전해 줄게.
명하 잘자라.
명하, 집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연희, 선물을 내려다보며
돌아가는 상황이 안타깝다.
S#6. 술집 앞 (밤)
재숙, 택시를 잡으려고 길가에 서 있는데
뒤에서 불쑥 꽃다발이 재숙의 얼굴 앞으로 튀어나온다.
재숙 어머? 뭐야?
재숙, 돌아보면 춘배가
쑥스럽게 웃으며 서 있다.
재숙 누구세요?
춘배 오늘 연주회 감동적이었습니다.
재숙 졸업연주회에 오셨나요?
춘배 네.
재숙 누구신데요?
춘배 김춘배라고 합니다.
재숙 저, 아세요?
춘배 유니온 오프닝 세레모니 때 뵈었습니다.
재숙 아, 그러세요? 고맙습니다.
재숙, 꽃을 받고
다시 택시를 잡으려는데
춘배 실례가 안된다면 제 차로 모시고 싶은데.
춘배의 말이 끝나자마자
춘배의 차가 두 사람의 앞에 와서 서고
춘배, 문을 열어준다.
재숙, 뭐에 홀린 듯한 얼굴로 차에 탄다.
S#7. 춘배의 차 안 (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주제가가 흐르고 있다.
부하들, 앞자리에 앉아 있고
춘배와 재숙,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다.
재숙, 부하들의 험악한 인상과
이상한 분위기에 괜히 탔다
싶은 얼굴로 긴장하고 있다.
춘배 강회장님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재숙 우리 아버지 잘 아세요?
춘배 그럼요.
재숙 건강하세요.
춘배 네. ...
재숙 ... 뭐 하시는 분이세요?
춘배 음...조직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재숙 무슨 조직이요?
춘배 음...더 이상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재숙 (끄덕끄덕) 네...
춘배, 우수에 찬 눈빛으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재숙,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춘배를 본다.
S#8. 인하네 집 앞 (밤)
춘배의 차가 서고 부하들이
잽싸게 내려 뒷자리의
양쪽 문을 모두 열어준다.
춘배와 재숙 내린다.
춘배 오늘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재숙 어머, 별 말씀을.
춘배 그럼, 편안히 주무십시오. (부하들에게) 얘들아, 가자.
춘배와 부하들, 깍듯하게
재숙에게 목례하고 떠난다.
재숙, 가는 춘배의 차를 흐믓하게 바라본다.
S#9. 춘배의 차안 (밤)
춘배, 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목도 몇 번 돌려본다.
춘배 (부하들에게) 야, 오늘 어땠냐? 나 멋있었냐?
부하1 예, 형님.
춘배 야, 거 음악 좀 바꿔라.
부하1 예, 형님.
차 안의 음악이 뽕짝으로 바뀐다.
춘배, 뒷자리에 느긋하게
누워 재숙을 생각한다.
춘배 아흐. 이쁜 거!
S#10. 연희네 집
연희,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이력서를 쓰며 갈등하고 있고
이모부, '형님'을 읽으며 낄낄대고 있고
이모, 방에 걸레질을 하고 있다.
이모부, 이모가 걸레질을 하며
다가오면 엉덩이를 한 쪽씩 들어 자리를 내준다.
이모, 얄미워서 이모부를 확 밀어버린다.
이모 저리 좀 비켜.
이모부, 데굴데굴 굴러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계속 책을 본다.
이모 으이구, 저 화상.
(연희 들으라고) 맨날 이력서만 쓰면 뭐해?
어떻게 연락 오는 데는 한 군데도 없냐?
연희 여자 뽑는 데가 드물어서 그래.
이모 사년동안 비싼 등록금 갖다 바쳤으면 취직이라도 시켜줘야
될 거 아냐?
연희 취직하려고 대학 다니나?
이모 취직도 제깍제깍 안 될 꺼, 뭐하러 대학은 다녀?
그러게 처음부터 취직이 잘 되는 과로 가던가, 선생 되는 학
굘 가던가 했어야지.
연희 이제 와서 그런 얘기해서 뭐해?
이모 답답해서 그런다, 답답해서. 빨랑빨랑 취직해야 적금도 붓고,
곗돈도 붓고 그러지. 너 시집가려면 돈이 한두푼 드는 줄 아냐?
연희 무슨 시집갈 걱정을 하고 있어? 누가 결혼한대?
이모 그럼 너 평생 이모하고 이모부하고 같이 살 거냐? 징그럽다. 징그러.
연희 ...
이모 너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니 앞가림은 니가 알아서 한다 그랬지?
등록금이야 니가 어찌어찌 벌어서 해결했다지만 먹고 자고
입고, 그게 우스운 거 같지? 열 사람 버느니 한 입 줄이랬다
고 그게 무서운 거야.
이모부 아, 거 애한테 부담을 주고 그래?
이모 내가 무슨 부담을 준다 그래?
연희 이번엔 될 거야. 걱정하지마.
이모 (이모부한테) 당신도 그래. 내가 쌀을 사 놓기가 무서워.
한 말을 사도 뚝딱, 두 말을 사도 뚝딱. 집에서 빈둥대면서
하루 세끼 꼬박 챙겨먹으니까 쌀이 얼마나 헤픈지 알아? 김
장도 해야 되고, 보일러 기름도 넣어야 되고, 돈 쓸데는 줄줄
이 사탕인데 내 월급은 빤하고, 나도 미치겠단 말이야.
연희, 문득 생각이 나 가방 속에서 봉투를 꺼낸다.
연희 이모. 이거.
이모 이게 뭐냐?
연희 잔금 받았어.
이모 (입이 찢어지지만 참으며) 이걸 날 주면 어떡해?
이모부, 갑자기 눈을 빛내며
이모 옆에 바짝 붙어 앉는다.
연희 이모 줄라 그랬어.
이모 아유, 기집애도. (이모부를 팍 밀어낸다)
내가 꼭 돈 달라고 이런 얘기한 거 같잖아.
이모, 봉투를 열어보고 얼굴빛이 변한다.
이모 근데, 왜 이거 밖에 안되냐?
현관벨 울린다.
연희, 문을 열면 은옥이 서 있다.
연희 안녕하세요.
은옥 잠깐만, 나 좀 보자.
이모 누구야? 언니야? 추운데 들어와.
은옥 아니야, 연희한테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연희, 밖으로 나간다.
연희 무슨 일이신데요?
은옥 저기... 저 번에 명하랑 싸우던 애 있지? 집 앞에서.
연희 예?
은옥 친구 오빠라면서?
연희 ...예.
은옥 연락처 알아?
연희 왜요?
은옥 응, 그냥 좀 알았으면 해서.
연희, 얼버무리는
은옥을 의아한 얼굴로 본다.
S#11. 명하네 집
은옥, 연희가 적어준 쪽지를 들고
전화기 앞에서 고민을 한다.
천천히 수화기를 들다가 얼른
다시 내려 놓고 다시 들다 다시 내려 놓는다.
S#12. 유니온 건물앞
연희, 잠시 유니온 건물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S#13. 회의실
연희, 텅 빈 회의실에 혼자 앉아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오과장과 소대리가 들어온다.
연희 (일어나며) 안녕하세요.
오과장 어, 앉아요. 오래 기다렸죠?
연희 아뇨.
세사람, 자리에 앉는다.
오과장 난 기획팀장 오용우차장대우과장이고 이 쪽은 소병주대리.
연희 처음 뵙겠습니다. 이연흽니다.
소대리 이력서 갖고 왔죠?
연희, 가방에서
이력서를 꺼내 앞에 내민다.
오과장, 이력서를
슥 훑어보고 소대리에게 넘긴다.
소대리, 이력서를 들여다 본다.
오과장 차차 알게 되겠지만 우리 회사는 이사님 이하 거의 전 직원
이 해외 유학파로 구성된 최고의 맨파워를 자랑하는 회사거든요?
연희 네...
오과장 우리가 하는 일의 특성상 구성원의 능력에 따라 많은 부분이
좌우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제일 큰 자산으로 보거든요?
연희 네...
오과장 무슨 사이예요?
연희 예?
오과장 우리 이사님하고 무슨 사이냐고.
연희 아무 사이도 아닌데요.
오과장 (소대리의 손에서 이력서를 다시 탁 빼앗아 보다가 픽 웃으
며) 형님? 경력 사항은 이것 뿐인가?
연희 ... 예.
오과장 소대리
소대리 네.
오과장 사무실 데리고 가서 다른 직원들하고 인사시켜.
소대리 네.
오과장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다음 주부터 할까?
연희 예.
소대리 가시죠.
연희 예.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연희, 인사하고 소대리를 따라 나간다.
오과장 (연희가 나가자) 나, 원, 참. 이런 예술하는 데도 낙하산이 있나?
에잇 더러워서.
S#14. 사무실 복도
연희, 소대리를 따라 가다가
맞은 편에서 오던 인하와 마주친다.
소대리, 깍듯하게 인사하고 연희를
가리키며 뭔가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인하, 가볍게 목례로 소대리의 인사만 받고
연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쳐 자기 방으로 간다.
소대리와 연희, 멀멀하다.
S#15. 인하 사무실
인하,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아 서류를 보기 시작한다.
전과 달리 인하의 책상이
일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있다.
책상 가득 보고서, 시나리오, 책,
CD, 비디오테잎 등 자료들이 쌓여 있다.
인하, 서류를 보다가 갑자기 책상에 머리를 막 찧는다.
S#16. 의상실
의상실 사장, 수빈의 싸이즈를 재고 있다.
송여사, 옆에 앉아서 책을 넘기고 있다.
사장 결혼을 앞두고 마음을 잡았는지 요새 일도 열심히 하고요,
집에도 일찍일찍 들어온다고 왕여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다 때가 있나봐요. 때가.
송여사 그래?
사장 따님이 살이 많이 빠지셨어요. 싸이즈가 많이 줄었네.
결혼이 보통 일이 아니지. 결혼 전엔 신부들이 살이 쫙쫙 빠
진다니까.
약혼식이 언제예요?
송여사 회장님 출장에서 돌아오시는대로 날 잡아야지.
수빈 ...
사장 너무 잘됐어요. 사실 왕여사님 댁이 좀 기울긴 하지만
여자 집안이 좀 나아야 뭐든지 순조롭더라구요.
송여사 (억지로 웃는다)
사장 저한테 말씀하시길 잘했죠? 사실 제가 알게 모르게 혼맥을
엮어준 집안이꽤 돼요. 지금 다들 잘 살고 있잖아요.
송여사 (또 억지로 웃는다)
이 때 수빈의 핸드백에서 휴대전화가 울린다.
송여사, 핸드백을 노려보다가 가방을 열어 꺼내준다.
수빈 (받는다) 여보세요. (반갑다) 어, 어디야?..지금?..그래, 알았어!
(전화 끊는다)
송여사 누구니?
수빈 친구요.
송여사 친구 누구?
수빈 고등학교 동창 있어요. (사장에게) 다 하신 거죠?
사장 네.
수빈 저 먼저 갈께요.
송여사 나온 김에 같이 예물도 봤으면 했는데...
수빈 죄송해요.
송여사 그래라, 그럼. 다음에 보지, 뭐.
수빈, 핸드백을 챙겨들고 바쁘게 나가버린다.
송여사,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데
사장 아직은 친구가 좋을 나이죠, 그죠?
송여사, 사장을 째려본다.
S#17. 까페
연희, 심란한 얼굴로 앉아있는데
수빈, 들어와 연희를 찾다가 앞에 앉는다.
연희 어. 왔어?
수빈 잘됐어?
연희 응.
수빈 잘됐다.
연희 응.
종업원, 다가온다.
수빈 나도 커피 주세요.
종업원, 간다.
수빈 언제부터 출근해?
연희 다음 주부터.
수빈 이제 커리어 우먼이네?
연희 차!
수빈 인하씨는 만나봤어?
연희 응?...응.
수빈 ...
연희 ...어디 있었어?
수빈 (갑자기 한숨을 팍 내쉰다) 후...니가 보기에 내가 왜 사는 거 같냐?
연희 ...
수빈 내가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뭣 때문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연희 갑자기 왜 그래?
수빈 나도 너처럼 내 인생을 내가 결정하면서 살고 싶어.
연희 (기가 막혀 웃는다)
수빈 니가 부럽다.
연희 부러울 것도 많다. 참.
연희, 가방에서 명하의
선물을 꺼내 수빈 앞에 놓는다.
연희 이거.
수빈 뭐야?
연희 명하오빠가 너 주래.
수빈 ... 뭔데?
연희 니 생일 선물이래.
수빈 ... 갑자기 왜?
연희 내가 아냐? 풀어 봐.
수빈, 선물꾸러미를
잠시 보다가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앙증맞은 머리핀이 들어있다.
수빈, 얼굴이 환해지고 연희, 웃긴다.
수빈, 핀을 꺼내 머리에 꽂아본다.
연희 어머, 어머. 명하오빠, 정말 웃긴다. 남자가 이런 걸 어떻게 골랐지?
수빈 예뻐? (활짝 웃는다)
연희 어, 예뻐. 예쁜 것도 골랐네.
수빈 니가 그랬잖아. 그 오빠 눈 높다고.
연희 (계속 웃음이 나온다) 명하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귀엽네.
수빈, 갑자기 침울한 얼굴로
머리에서 핀을 빼 다시 상자에 담고 들여다본다.
연희 왜? 하고 있지 그래? 예쁜데.
수빈 고맙다고 전해줘.
수빈,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연희, 그런 수빈을 보며
자신들을 둘러싼 상황들이 답답하다.
수빈,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벌떡 일어난다.
수빈 우리 집에 가자.
연희 왜?
수빈 아, 글세, 가자!
수빈, 앞장서서 막 나간다.
S#18. 수빈이네 집
수빈, 옷장을 활짝 열고 옷을 고르고 있다.
수빈 직장여성답게 보이려면 어떤 게 좋을까...
수빈, 옷을 하나씩 꺼내
연희의 몸에도 대보고 자기 몸에도
대 보며 골라낸 옷들을 한 쪽에 모은다.
연희 고만해. 나, 옷 많아.
수빈 알아, 너 옷 많은 거. 너 핸드백은 있어?
수빈, 다시 문을 열면 핸드백이 수십개가 들어 있다.
수빈 골라 봐. 아니야. 옷에 맞는 걸로 내가 몇 개 골라 줘야겠다.
수빈, 신나서 핸드백을 고르기 시작한다.
연희, 그런 수빈을 보며 픽 웃는다.
S#19. 연희네 집 앞 (밤)
연희와 수빈, 수빈의 차
뒷자리에 가득 실린 쇼핑백들을 꺼낸다.
수빈, 짐을 내리며 명하네 집을 올려다본다.
불이 꺼져 있다.
수빈의 머리에 명하가 준 핀이 꽂혀 있다.
연희 고마워.
수빈 고맙긴.
연희 잠깐 들어갔다 갈래?
수빈 아니야. 갈게.
연희 들어갔다 가. 명하오빠도 만나고.
수빈 됐어. 들어가.
연희 그래, 잘 입을게. 잘 가.
연희,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가다가 수빈을 돌아보는데
수빈, 불꺼진 명하네 집을 올려다보고 있다.
연희, 집안으로 들어간다.
수빈, 자신이 한심한지 픽 웃고
돌아서다가 마침 집으로 오던
명하와 눈이 마주친다.
명하, 수빈의 머리에 꽂힌 핀을 본다.
S#20. 극장
수빈, 객석에 혼자 앉아 있는데
명하가 팝콘과 음료수를 사들고 와 수빈의 옆에 앉는다.
명하, 종류가 다른 음료수 두 캔을 수빈의 앞에 내밀면
수빈, 하나를 골라잡는다.
명하, 팝콘도 수빈의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불이 꺼진다. 시간경과
두 사람, 말없이 팝콘을 집어먹으며 영화를 본다.
수빈, 슬픈 장면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린다.
명하, 그런 수빈을 곁눈질로 살짝 본다.
S#21. 포장마차 (밤)
어묵, 튀김 등등을 파는 포장마차.
명하와 수빈, 어묵을 먹고 있다.
명하 하나 더 먹을래?
수빈 아뇨.
명하 튀김 먹을래?
수빈 아뇨.
명하 난 하나 더 먹어야겠다. 아줌마, 하나 더 먹어요.
명하, 어묵을 하나 더 꺼내 먹는다.
수빈 (어렵게) 선물도 고맙구요, 영화도 같이 보러 와줘서 고마워요.
명하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이제 기분 풀렸어?
수빈, 픽 웃고 명하도 씩 웃는다.
S#22. 공원 (밤)
명하와 수빈, 벤치에 앉아 있다.
수빈 죽고 싶을 만큼 외로워 본 적 있어요?
명하 ... 바쁘게 살아봐. 그런 거 생각할 겨를 없어.
수빈 밤에 잠도 잘 안 와요.
명하 열심히 일해봐. 머리만 대면 골아 떨어져.
수빈, 명하를 보다가 웃는다.
수빈 연희하고 똑같은 말만 하네. 한 동네 살아서 그런가?
명하 연희도 그래?
수빈 남은 심각한데 꼭 그런 식으로 얘기해서 할 말 없게 만든다니까요.
명하 걔도 어렵게 살아서그래.
걔라고 외롭지 않겠어? 형제도 없고 부모도 없고.
수빈 그래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명하 넌 없어?
수빈 ... 있어요. 딱 두 사람. (명하를 본다)
이때 수빈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수빈 여보세요. ... (얼굴 굳는다) 친구랑 있어요... 들어갈 거예요, 금방.
... 알았어요. (끊는다)
명하 ... 일어나자.
수빈 ... 또 만나줄래요?
명하 시간이 되면.
수빈 ... 근데 저번엔 왜 그랬어요?
명하 내가 뭘?
수빈 나 같은 애랑 놀아줄 시간 없다고 가라 그랬잖아요.
명하 ... 그래서 오늘 놀아주잖아.
수빈 ... 고마워요.
명하 오늘은 안 바래다줘도 되지? 나, 간다.
명하, 갑자기 홱 돌아서서 가버린다.
수빈, 가는 명하의 뒷모습을 한없이 바라본다.
S#23. 연희네 집
이모와 이모부, 밥을 먹고 있는데
연희, 수빈이에게서 얻어온 옷을
쫙 빼 입고 핸드백까지 들고 방에서 나온다.
이모 이야. 멋있다. 수빈이네가 잘 살긴 잘 사나 보다. 오... 오. 감이 정말 좋네.
이모, 감탄사를 연발하며 연희의 옷을 이리저리 만져본다.
이모 실감이 안난다, 니가 출근한다는 게.
그렇게 이력서를 내도 안 되더니 어떻게 한 번에 제까닥 취직이 되냐?
되려면 다 그렇게 되나 보지?
이모부 우리 연희가 실력이 빠져, 미모가 빠져? 취직이 안 되는 게 이상하지.
근데 월급은 얼마래?
연희 초봉이 다 거기서 거기죠, 뭐.
이모, 가방을 뒤져
돈을 꺼내 연희에게 준다.
이모 점심값은 있어야지?
연희 고마워요, 이모. 내가 월급 타면 다 갚을께.
이모부 나도 좀 주지?
이모 당신은 왜? 회사 가?
이모부, 조용히 밥을 먹는다.
S#24. 지하주차장
인하의 차가 거칠게 들어와 요란하게 서고
인하, 운전석에서 내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다.
S#25. 엘리베이터 안
인하, 혼자 타고 올라가고 있는데
1층에서 문이 열리면 연희가 서 있다.
연희, 뜻밖의 상황에 잠시 놀라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게 엘리베이터에 탄다.
이어 다른 직원들이 어디선가
부리나케 달려와 우르르 탄다.
직원들 (인하에게) 안녕하세요.
인하 네, 안녕하세요.
인하와 연희,
양 쪽 벽에 밀려 서 있다.
S#26. 사무실
여기저기서 전화벨이 울리고
직원들, 무척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연희, 오과장의 책상 앞에 서있다.
오과장의 책상 위에는
커다란 서류뭉치가 놓여 있다.
오과장 장대리! 오늘 계약이지?
장대리 네.
오과장 그거 계약서 확실하게 써!
처음부터 천오백 다 준다 그러지 말고 당선되면 오백, 초고
나오면 오백,제작 들어갈 때 오백, 이렇게 나눠서 하면 나중
에 손 뺄 때도 오백만 투자한 셈 치면 되잖아. 안그래?
장대리 네.
오과장 (연희에게) 이거 이번에 설문 조사한 건데 갖고 가서 연령별,
직업별, 성별로 통계를 좀 내봐. (지나가는 여직원에게) 넌 아
직도 안나가고 뭐하냐?
촬영 끝났겠다.
여직원 지금 나가요. 오늘 거기서 바로 퇴근할게요.
오과장 알았어. 김주임은 어디 갔는데 아까부터 안 보이는 거야?
소대리 (지나가다가) 홍감독 만나러 갔는데요.
오과장 맨날 만나기만 하면 뭐해? 물건이 나와야지.
소대리 오늘 회식 없어요?
오과장 무슨 회식?
소대리 신입사원도 들어오고 그랬는데...
오과장 한 명 또 온대. 나중에 날 잡아서 한꺼번에 하자고.
소대리 (머쓱해서 간다) 네.
오과장 (연희에게) 우리가 기획할 때 제일 기초적인 자료가 되는 거
니까 잘해야 돼.
연희 네.
연희, 서류뭉치를 들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오과장 아, 아연희씨. 그거 나중에 하고 먼저 인사드리러 갑시다.
아무리 아는 사이래도 절차는 절차니까.
연희,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먼저 막 나가는 오과장을 따라 바쁘게 간다.
S#27. 인하의 사무실
노크소리에 이어
오과장과 연희가 들어온다.
오과장 오늘 첫 출근했습니다. (연희에게) 인사드려.
연희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인하 열심히 해 봐요.
연희 네.
오과장 그럼, 전 나가보겠습니다. 말씀 나누시죠.
인하 아네요. 됐어요. 나가 봐요.
오과장 (약간 어리둥절하다) 예? ... 예, 그럼...
인하, 서류에 눈을 돌린다.
오과장, 이상하다는 듯
연희를 데리고 나간다.
연희, 나가면 인하,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본다.
S#28. 임사장 사무실
임사장, 소파에 앉아 있고
춘배, 옆에 서 있다.
임사장 너, 모가지가 몇 개야?
춘배 예?
임사장 너, 강회장 딸 쫓아다닌다면서?
춘배 ...
임사장 강회장이 알면 너 살려둘 거 같애?
춘배 ...
임사장 너, 똘마니들한테 얻어터지면서 빌빌대던 놈이 영업부장 되니
까 세상이 돈짝만하게 보이냐?
춘배 ...
임사장 잔대가리 굴리는 거 빼면 너는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놈이
야. 주제 파악해.
춘배 (기분 더럽지만) 예, 회장님.
임사장 책은 다 풀었냐?
춘배 예, 회장님.
임사장 수금 똑바로 해.
춘배 예, 회장님.
S#29. 홀
은옥,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지만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지
다른 여가수들과 제대로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
춘배, 안 쪽에서 나와 나온 쪽을
한 번 째려보고 돌아서다가
걸치적거리는 웨이터를 마구 때리고
고부장이 들어오자 슬쩍 보고 비켜선다.
S#30. 분장실
은옥, 거울 앞에 앉아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 하고 있고
다른, 여가수들, 은옥을 째려보며 신경질을 내고 있다.
여가수1 언니, 요새 왜 그래요?
은옥 미안해. 나도 늙었나봐.
여가수2 자꾸만 그렇게 엇박으로 가면 어떡해요?
은옥 미안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이때, 웨이터가 들어온다.
웨이터 누님. 누가 찾아왔는데요.
은옥 (괜히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다) 누군데?
웨이터 모르겠는데요.
S#31. 홀
고부장, 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은옥이 다가오자 벌떡 일어나 인사한다.
고부장 안녕하십니까?
은옥 네.
은옥, 의아한 얼굴로 얼떨결에
같이 인사하고 마주 앉는다.
고부장 (은옥에게 명함을 내민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은옥, 명함을 받고
들여다 보다가 얼굴 굳는다.
고부장 강회장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은옥 (싸늘하게 노려본다)
고부장 도련님 문제로 상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은옥 ...
고부장 도련님이 여길 다녀가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은옥 그래서요?
고부장 회장님께선 결혼을 앞 둔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로 문제가
생기는 걸 원하지않으십니다.
은옥 (기가 차다)
고부장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제게 말씀하십시오.
회장님께서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라고 특별히 지시하셨습니다.
은옥 ... 대신, 애 앞에는 나타나지 말아라?
고부장 ... 예.
은옥 (너무 기가 막혀 픽 웃음이 나온다) 하... 가서 전해요.
이 한은옥이가 내일 당장 굶어 죽어도 그 쪽엔 손 벌리지 않는다고.
고부장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마시고,
은옥 그리고, 새끼가 에미 찾아오는 게 문제가 되나요?
고부장 저, 그런 뜻이 아니라.
은옥 (벌떡 일어난다) 결혼을 한다구요? 그럼 더더욱 만나 봐야겠네요.
안녕히 가세요.
고부장 아니, 저...
은옥, 현기증을 느끼며 분장실로 돌아간다.
춘배, 구석에서 은옥의 테이블을
지켜보다가 은옥의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웨이터를 손짓으로 부르면
웨이터 다가와 은밀히 춘배에게 귓속말을 한다.
S#32. 명하네 집 (밤)
명하, 세수하고 욕실에서 나오는데
은옥, 문을 거칠게 여닫고 들어온다.
명하 이제 와요?
은옥, 대답도 않고 안으로 들어서다가
씽크대에 널린 설거지들을
보고 신경질을 낸다.
은옥 저녁 먹었으면 설거지 좀 해놓지! 에이, 정말.
명하 나, 지금 들어왔어.
은옥 도대체 어딜 싸돌아 다니다가 지금 들어오는 거야?
좀 도와주면 안되냐? 엄마가 오밤중에 들어와서 꼭 이렇게
설거지를 해야겠어?
은옥, 핸드백을 팽개치고
팔을 걷어부치고 설거지를
요란하게 하기 시작한다.
명하, 이유없이 짜증을 내는
엄마를 보다가 커튼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은옥 (혼자서 계속 떠든다) 집구석이라고 들어와 봐야 어디 정이
가는 데가 한군데라도 있어야지. 내 손이 안가면 하나라도 되
는 일이 없어.
도대체 이 세상에 지하고 나하고 둘 밖에 더 있어?
뭐? 취직을 하면 나보고 이 일을 그만 두라고? 어느 세월에?
이건 군대를 갔다 와도 맨날 싸움질이나 하고,
제대로 된 직장 하나 구하지 못해서 인력시장이나 기웃거리고,
명하 (방에서 나오며) 놔둬! 내가 할게. 내가 하면 되잖아.
명하, 엄마를 슥 밀어내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은옥, 명하의 뒷모습을 보다가
속이 상해 화장실로 확 들어가버린다.
S#33. 명하네 욕실 (밤)
변기와 샤워꼭지만 달랑 있는 좁은 화장실.
은옥, 변기에 주저앉아 이를 악물고 소리 죽여 운다.
S#34. 2층 난간 (밤)
명하, 착잡한 얼굴로 밤하늘을 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연희가 올라오고 있다.
명하 연희야.
연희, 올려다본다.
명하 너, 취직했다며?
연희 응.
명하 지금 퇴근하는 거야?
연희 응.
명하 너, 취직해 놓고 나한텐 한 마디도 안하냐?
연희 언제 볼 새나 있었냐?
명하 뭐하는 회산데?
연희 영화, 음반, 이거저거.
명하 오... 그렇게 멋있는 데야?
연희 멋있는 덴데 나는 잔심부름, 복사, 그런 거 해.
명하 오빠가 축하주 한 잔 사야겠네?
연희 월급 타면 내가 거창하게 한 잔 살게.
명하 근데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연희 ... 수빈이 핀 이쁘더라? 어디서 그런 걸 골랐어?
명하 (픽 웃는다)
연희 근데 그래도 되는 거야? 나한텐 생전 그런 거 한 번 안 사주더니.
명하 사주면 될 거 아냐. 열 개라도 사준다, 내가.
연희 됐어. 나, 들어간다?
명하 그래. 피곤할 텐데 쉬어라.
연희, 집으로 들어가고
명하,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S#35. 인하네 집 거실
경환, 소파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다.
경환 ... 돈도 싫다? .. 그럼, 바라는 게 뭐래? .. 만나겠다고?
누구 맘대로?
이제 겨우 맘 잡고 사는 애를 지금 만나서 뭘 어떡하겠다는
거야? ... 알았어.
경환, 수화기를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소파에 머리를 기댄다.
경환 음... 끝까지 애먹이는구만.
왕여사 (식당 쪽에서 나와) 식사하세요. 인하야! 재숙아!
경환, 소파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가는데
인하, 계단을 내려와 식탁에 앉는다.
왕여사 아침부터 무슨 심각한 전화예요?
경환 아냐. (인하에게) 회사 일은 재미있냐?
인하 그렇죠, 뭐.
경환 앞으로 중요한 접대가 많이 있을 테니까 골프도 게을리 하지 말고.
인하 ... 예.
경환 아예 내일부터 나랑 아침 운동 같이 할까?
인하 ...
경환 아, 그리고 수빈이라 그랬나? 집에도 한 번 데리고 와라.
인하 아버지... 회사일이랑 다른 건 다 아버지 말씀대로 할께요.
결혼문제 만큼은 저한테 맡겨 주세요.
왕여사, 인하를 째려본다.
경환 왜? 맘에 안 들어?
인하 ...
경환 너, 여자 있냐?
왕여사 (경환과 인하를 번갈아 본다)
인하 그런 게 아니라요...
경환 기획팀에 여직원 하나 데려 왔다면서?
왕여사 (혹시?)
인하 ... 예.
경환 (인하를 잠시 보다가) 결혼은 연애감정으로 하는 게 아냐.
이때 재숙, 2층에서 급하게 내려온다.
재숙 엄마, 엄마. 나 어때?
S#36. 사무실
오과장, 전화를 받고 있다.
오과장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새로 음악감독님이 오신다고....아, 오셨습니까?
예. 곧 가겠습니다. (전화 끊고) 아, 이거 정말. 구멍가게야, 뭐야?
(연희를 슥 째려보며) 낙하산에, 일가친척에. 우리나라가 이래서 안돼요.
에잇, 정말.
오과장, 투덜대며 가고
연희, 찔린다.
S#37. 복도
오과장, 재숙을 안내하고 있다.
오과장 (과잉친절) 녹음실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이 쪽으로 오시죠.
S#38. 사무실
오과장, 재숙을 데리고 들어와
직원들과 인사를 시킨다.
오과장 이 쪽은 장대리. 소대리, ...
재숙과 직원들, 서로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데
연희가 서류를 들고 밖에서 들어온다.
오과장 어, 이연희씨. 인사하지. 새로 오신 음악감독님.
연희와 재숙, 서로 보고 놀란다.
재숙, 기가 막혀 웃는다.
S#39. 인하 사무실
인하, 일을 하고 있는데
재숙이 불쑥 들어와 소파에 앉는다.
인하, 슬쩍 보고 피곤한
얼굴로 다시 일을 한다.
재숙 연희였어?
인하 뭐가?
재숙 오빠 애인.
인하 (대꾸하기 싫다)
재숙 수빈이가 그러던데?
인하 뭐얼?...
재숙 오빠 애인있다고.
인하 (한숨을 팍 쉰다) 너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집에 가라, ?
재숙 차, 오빠가 뭔데?
인하 남들이 욕해.
이 때 인하의 휴대폰 벨이 울린다.
인하 네, 강인합니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
은옥 (소리) ... 인하냐?
인하 그런데요, 누구시죠?
은옥 (소리) ... 엄마다.
인하 (얼굴 굳는다) ...
S#40. 찻집 앞
인하, 차를 세우고 차 안에 잠시 앉아 있다가 내린다.
S#41. 찻집
인하, 문을 열고 들어와
조심스레 안을 둘러본다.
구석자리에 앉은 은옥이 보인다.
은옥, 나름대로 수수하게 보이려
애썼지만 여전히 야한 차림이다.
인하, 은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은옥, 누군가 다가오자 고개를 돌려 본다.
인하, 은옥과 눈을 마주치기가 두려운지
괜히 다른 데를 둘러보며 은옥의 앞에 앉는다.
인하 ...안녕하세요.
은옥 ...고맙다. 와줘서.
인하 ...
은옥 ...
종업원 뭐드시겠어요?
은옥 뭐 마실래?
인하 커피 주세요.
은옥 나도 커피 줘요.
종업원, 간다.
잠시 침묵
은옥 ...나 있는 데는 어떻게 알았니?
인하 ...왜 보자 그러신거예요?
은옥 (당황한다)...너한테 꼭 해 줘야 할 말이 있어서.
인하 말씀하세요.
은옥 어디서부터 얘길 꺼내야할지 모르겠구나.
인하 ...
은옥 ...아버지는 건강하시지?
인하 예.
은옥 새엄마는?
인하 그런 거 물어볼라고 보자 그러셨어요?
은옥 (어처구니가 없다) 아주 남같이 대하는구나.
종업원, 커피를 놓고 간다.
인하 죄송해요. 빨리 들어가 봐야 돼요.
은옥 그래...
인하 ...
은옥 ...곧 결혼한다면서?
인하 ...
은옥 (피식 웃는다) 그래, 말뿐인 에미한테 니가 무슨 정을 느끼겠니.
세상이 넓은 줄 알았더니 정말 좁더라.
형, 아우가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만나서 주먹질이나 하고...
인하, 순간 얼굴이 일그러진다.
은옥 내가 죄가 많아서 그래. ... 다 내 죄야. ...
니들이 무슨 죄가 있겠니. 부모 잘못 만난 죄 밖에...
미안하다...인하야...
은옥,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끄윽 끄윽 울기 시작한다.
인하.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지만 참는다.
인하 (냉정하게) 저도 후회하고 있어요. 왜 갑자기 그런 바보같은
짓을 했는지.
...저한테 죄책감 같은 거 느끼실 필요 없어요.
지금껏 잘 살았고 앞으로도 잘 살거니까.
은옥 ...
인하 아드님이 있으세요?
은옥, 마스카라가 까맣게 번진 눈으로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인하를 본다.
은옥 니 친동생이야. 이름은 명하.
인하 (픽 웃는다) 그런 얘길 왜 저한테 하세요? 아버지한테 하세요.
은옥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니들은 형젠데...
인하 아버지한테 제가 대신 전해드릴까요?
명하, 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불쑥 끼어든다.
명하 전해줄 필요 없어.
인하 (명하를 올려다 본다)
명하 (인하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가요. 엄마. 이런 자식 만나라고
나오라 그런거야?
은옥 명하야...니...형이야...
명하 (은옥의 겨드랑이를 잡아 올린다) 일어나요!
명하, 은옥을 끌고 밖으로 나가버리고
인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S#42. 택시 안 (밤)
은옥, 멍하니 밖을 보고 있고
명하, 그런 엄마를 잠시 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S#43. 비상계단
인하, 비상계단으로 올라가고 있다.
S#44. 단란주점
재숙, 가곡을 부르고 있고
일동 숙연하게 듣고 있다.
소대리 (짜증난다. 작게) 뭐야.
오과장 (툭치며 작게) 들려.
소대리 이사는 왜 안왔어요?
오과장 동생이잖아. 쪽팔리잖아.
소대리 이연희는요?
오과장 내가 심부름 좀 보냈어. 금방 올거야.
잠시후, 재숙의 노래가 끝나면 직원들,
앵콜을 외치며 미친 듯이 박수를 친다.
재숙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기계를 누른다)
다시 가곡의 반주가 나온다.
일동, 미치겠다.
S#45. 사무실 (밤)
연희, 사무실 안에 불을 켜고 들어와
오과장의 책상 위에서 서류봉투를 찾아 들고
다시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간다.
S#46. 엘리베이터 앞 (밤)
연희, 서류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비상계단 쪽에서
남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S#47. 비상계단
연희, 비상구 문을 살짝 열고 보는데
인하, 계단에 앉아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 눈을 반쯤 뜨고 본다.
연희, 인하와 눈이 마주치자 문을 닫으려는데
인하 연희냐?
연희 ...여기서 뭐해요?
인하 (씩 웃는다) 나?...니생각하고 있었어.
연희, 나가지도 들어서지도 못한다.
인하 아무래도 내가 실수한 거 같다.
연희 ...
인하 가까이 있으니까 더 보고 싶은 거 있지?
인하, 갑자기 다시 흐느끼기 시작한다.
연희, 인하가 울자
놀라서 보다가 인하에게 다가간다.
연희, 자기도 모르게 인하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데
인하, 연희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인다,
연희, 손이 당겨져 인하의 앞에 쪼그려 앉는데
인하, 연희의 무릎에 무너진다.
연희, 어찌할 바를 몰라
인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데
인하,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연희를 뚫어지게 보다가 한 손으로
연희의 머리를 감싸안고 키스한다.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