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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소원
□ 베드로후서 3장 9절
오늘 세례를 받은 시온자매와 마유짱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기뻐하시고 감격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처럼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복음을 듣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교회 간판을 보고 교회에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도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복음을 듣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기 위해서는 누군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누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복음을 듣고 그 복음으로 구원받은 자 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누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자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신앙 연수와 관계없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 안에는 전도에 대한 소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보면 전도하고 싶은 소원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로 인도하고 싶은 소원 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도가 소원이 아니라 부담입니다. 전도를 하긴 해야 하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고, 그래서 조용히 있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도 못하는 것을 봉사로 대신하려고 하고, 때로는 자신은 성격 때문에 전도가 힘들다고 변명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운 것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제일 먼저 주시는 마음이 전도에 대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가장 먼저 전도에 대한 마음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전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유언과도 같은 명령이 전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도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던, 어떤 직업에 종사하던,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전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전도를 어렵게 생각하거나, 자신은 전도하기에 아직 믿음이 작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도에 대해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오해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전도에 힘쓸 수 있을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전도의 가장 큰 오해는 ‘나 같은 주제에 어떻게 전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하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될 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엉터리처럼 살면서 예수 믿으라고 하면 사람들이 ‘너나 제대로 살고 그런 소리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전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 가족들을 전도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입술로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삶으로도 전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삶의 전도가 말의 전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삶의 전도가 말의 전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세상에서 칭찬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았고,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핍박을 받았습니까? 예수님 믿으라는 말만 하지 않는다면 어디에 가든지 대환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전하기 전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전하는 순간부터 핍박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초대교인들처럼 고결하고 거룩한 삶으로 예수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전하는 예수와 엉터리로 살아가는 사람이 전하는 예수는 분명 다른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방해하지 않도록 성도다운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입을 열어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입을 열어 예수님을 전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삶의 전도가 말의 전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엉터리처럼 살면서 예수 예수하면 분명 상대방이 반감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상대방이 인정할 만한 삶을 살기 전까지 입술의 전도를 미루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주제에 어떻게 전도하느냐’ 라는 이유로 입술을 다물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동시에 복음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거룩한 삶을 살고자 애써야 합니다. 혹시 주변의 사람이 ‘그렇게 살면서 무슨 예수님이냐?’ 라고 비웃는다면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예수님 믿어서 이만큼이라도 변한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저 정말 엉터리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지갑이 더럽다고 그 안에 있는 지폐까지 가짜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입을 열어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이름 그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이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우리의 말과 수고와 노력으로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있다고 오해합니다. 물론 우리의 말과 행동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영혼구원을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전도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절해야 하지만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 중 많은 사람들이 초대교회 교인들이 전하던 예수님을 거부하고 그들을 핍박했던 것처럼, 전도할 때 예수님을 거부하고 우리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속으로라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마귀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선인과 악인에게도 햇빛을 비추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지금 당장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하고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욕하고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침 뱉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을 향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는데 우리가 무슨 권리로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반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전도자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그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좀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있다할 지라도, 그것을 이유로 복음을 거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말을 잘 못해서 전도를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그 자체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어눌해서 상대방이 예수님을 못 믿는 것도 아니며, 우리의 말이 유창하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회심의 역사는 말의 잘하고 못함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전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혹 상대방이 어려운 질문을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이렇게 대답하시면 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교회에 오시면 목사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전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오해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사람 만큼은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야.’ 라는 판단입니다. 절대로 예수 믿을 것 같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180도 변화되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목격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핍박하던 사람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고 최선을 다해 섬겼는데도 여전히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우리는 낙심합니다. 그리고 포기합니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단지 복음을 전하는 도구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일 뿐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씨앗을 심고 최선을 다해 물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라나게 하시는 분,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전도자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을 전하다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술을 통해 복음을 들은 영혼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 톰 닷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미시간 주의 교도소에서 10년 넘게 복역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오히려 복음에 대해서 반항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 와서도 오랫동안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 목사님의 포기할 줄 모르는 전도에 의해 결국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톰 닷슨은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사역하실 때에 어떠한 좌절이 닥쳐와도 중단하지 마십시오. 많은 장애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구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우리를 진실로 자유케 해주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간증을 마치고 톰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계속 복음을 전했던 목사를 바라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포기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복음을 전했다가 거절당했습니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보고만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남편이나 아내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나 가까운 이웃일 수 있습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결과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까지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전도할 수 없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전도할 수 없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전도할 수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너무 가까워서, 그래서 전도했다가 거절당하면 어색할 것 같아서 전도할 수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몇 번 전도했는데 반응이 없어서 그래서 더 이상 전도할 수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나 살기도 힘든데 무슨 전도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전도도 마음의 여유가 있고 먹고 살만해야지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지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 속에서 도망 다니면서도 전도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뛰어난 성경지식도 언변도 복음을 뒷받침 해 주는 삶도 아닙니다. 이런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한 영혼을 향한 간절함입니다.
아직도 무더운 여름이지만 이제 곧 추수의 계절이 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가을은 영혼을 추수하는 계절입니다. 11월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우리 교회는 영혼을 추수하는 일에 힘쓰고자 합니다.
9월에 여러분과 함께 읽고자 하는 책이 있습니다. 손현보 목사님이 쓰신 ‘목사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 (도서출판누가) 라는 책입니다. 전도에 대한 이야기지만 믿음 생활에 도전을 주는 좋은 책이어서, 사역훈련생들 필독서로 함께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 이 교회(세계로교회)는 권사님이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새벽기도에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권사님이 일주일에 반 밖에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고추밭 때문이었습니다. 권사님께 권면하면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하는데, 고추밭에 정성을 쏟느라고 자주 새벽기도를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새벽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진짜 하나님의 종이라면 그 권사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 고추밭을 다 뽑아 버려라.’ 하도 권사님 고추밭에 신경을 써서 이런 생각까지 하나 보다 싶어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할수록 그 마음이 점점 강해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설교준비를 할 때에도 고추밭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날 오후, 낫을 들고 권사님 고추밭에 가서 고추를 베려고 하는데 고추마다 고춧대를 얼마나 잘 세워놓았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웃통을 벗고 손으로 뽑기 시작했습니다. 두세 시간쯤 했을까? 손에 물집이 잡히고, 힘도 없고, 무엇보다도 땀이 비 오듯 해서 3분의 1정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권사님 딸인 집사님에게 자신이 권사님 고추밭에 가서 고추를 다 뽑아 놓았으니, 권사님이 누가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제가 했다고 말씀드리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아들 집에 갔다 돌아온 권사님이 고추밭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고추밭이 엉망이 된 것입니다. 권사님이 너무 흥분해 있어서 차마 목사님이 그랬다고 말을 못한 딸이 목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아무래도 목사님이 직접 오셔야 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딸의 전화를 받고 목사님이 권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을 보고 권사님이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평생을 살면서 원수 맺은 사람도 없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일은 없었는데 어떤 죽일 놈이 우리 고추밭을 다 뽑아놓았습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 놈이 누군지 알기만 해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을 겁니다.”
“권사님, 사실은 제가 오늘 오후에 권사님 밭에 가서 고추를 뽑았습니다.”
“목사님,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목사님이 왜 우리 고추밭에 손을 댑니까?”
처음에는 목사님이 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다가 전후 상황을 들은 권사님이 목사님께 묻습니다. “목사님이 왜 우리 고추밭을 뽑습니까?”
목사님이 잠시 생각한 후에 권사님께 묻습니다. “제가 하나만 물어볼 터이니 대답해 보십시오. 권사님은 지금까지 수십 년 예수님을 믿고 권사님까지 되셨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너무나도 감사해서 감격한 적이 있습니까? 주님은 마지막까지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생각하고 지킨 적이 있습니까? 권사님은 지금 고추밭 때문에 심장이 떨리고 치가 떨려서 말을 못한다고 하시는데, 예수 믿고 너무나도 좋아서 오늘처럼 심장이 떨린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복음을 전하다 죽을 영혼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너무나도 좋아서 심장이 떨린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수십 년 예수님을 믿으면서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하셨습니까? 옆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오늘처럼 떨린 적이 있습니까?”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권사님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너무 잘못했습니다. 이 고추가 뭐라고, 이 고추가 뭐라고, 지금까지 여기에 이렇게 온갖 정성을 쏟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권사님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새벽기도는 물론이고, 몸이 불편하셔서 자녀들이 사준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는데, 식혜를 만들어 1.5리터 페트병에 담아 싣고 다니면서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주며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이걸 주는데?” 권사님이 대답합니다. “나 따라서 교회 한 번 가자.”
자기는 전도에 은사가 없다고 하시던 권사님, 전도는 젊은 사람이나 사업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했던 권사님이 그때부터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12월, 이 권사님이 전도해서 세례 받은 사람이 11명이나 되었습니다. (위의 책, pp., 106-116)
이 책을 읽으면서 목사님의 말씀이 마치 주님의 음성처럼 제 마음을 찔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복음을 전하다 죽을 영혼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너무나도 좋아서 심장이 떨린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수십 년 예수님을 믿으면서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하셨습니까? 옆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오늘처럼 떨린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못했던 이유, 전도하지 않았던 이유는 영혼을 향한 안타까움,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에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소원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우리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소원에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찬을 받습니다. 이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열정이 우리 안에 불타오르기를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믿지 않는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 애절한 마음이 우리 안에 충만하기를 기도합시다. 주께 영광!
치바에서 김성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