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金馬)의 밤은 깊어가고
오후 5시 쯤 되었을까. 서울서 온 친구들이 금마의 숙소에 와 있다는 전화가 왔다. 몇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놀랄 만한 친구를 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름은 가르쳐 주질 않는다. 월산이 문득 사람의 이름을 떠올린다.
“혹시 준곤이 아니면 귀수, 아니면 복규...?”
“과연 그럴까. 다른 사람이라면 누구란 말인가.”
“와보면 알 걸 갖고 뭐 그래...”
십여 분 걸렸을까. 차 소리를 들었는지 몇몇 친구들이 밖으로 나온다.
“아, 이거 누구야. 어떻게 뉴질랜드에서 여기까지 오셨남, 어 그러고 수홍이 형이 오셨네그려.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 아니야?”
“이 사람, 월산, 내가 익산 출신이란 걸 알면서 그딴 소리를 하면 어떡하나?”
“정말 반갑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경중이 선생님, 이거 얼마만인가요?”
우선 큰 방으로 들어가서 짐을 놓아두고 둘러 앉아 그 동안 지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기로 했다. 우선 민생고를 해결하기로 했다. 얼큰한 순두부에 황태를 더한 국밥을 먹기로 했다. 싫다는 사람이 없다. 고기보다는 훨씬 좋다는 이야기들. 역시 칠십을 넘보는 나이가 되니까 부담이 없는 먹을거리가 좋은가보다. 이미 연락이 되었음인가 참한 방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월산이 급히 전화를 받는다. 곧 학다리 정 선생과 최 시인이 도착한다는 이야기. 특별 주문이라면서 식단으로 이 고장 마가 올라왔다. 서동요에 등장하는 마가 올라온 것이다. 아울러 향토주인 호산춘(壺山春)이 나왔다. 날보고 건배를 제안하란다. 나이가 많으니까.
“반갑습니다. 사랑의 화신 서동의 전설이 깃든 아름다운 고장에서 정겨운 친구들이 만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곰나루의 곰을 선창할 테니 친구들은 나루를 함께 외치면 되겠습니다. 술잔을 높이 들어 우리들의 우정과 행복을 위하여 곰.... 나루... .”
옆에서 앉아 있던 월산이 성 사장을 보고 질문을 던진다.
“수홍이 형, 향토주 호산춘의 내력을 말씀해 봐요. 익산 감자로서...”
“야, 너 나를 간보는 거냐? 뭐라더라.. 듣긴 했는데..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가 있는 여산(礪山) 하고 관련이 있다고 했는데.. 정형, 혹시 뭐 좀 없을까.”
“... . 내 기억하기로는 여산의 별명이 술병 호(壺) 자 호산이 아닌가 합니다만.. .”
“이제 생각난다. 맞아요, 맞아. 중종 무렵에 송 무슨 군수인가 하는 분이 만들기 시작한 술인데 여산의 별호를 넣어서 만든 향토주라고 들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다시 복원하여 시장에 내놓은 지 일년 만에 15만병이 팔려 나갔다는 술입니다. 아무튼 익산에 오신 걸 크게 환영합니다. 특히 멀리 뉴질랜드에서까지 와주시니 더욱 반갑고요. 오랜 만에 학다리 선생도 보고, 참으로 좋구만 잉? 오늘 호산주 마음껏 드시라요. 제가 술값을 냈으면 하니까요. 금마면에는 동고도리(東古都里)와 서고도리(西古都里)가 있고 진산으로 금마산(金馬山)이 있어요. 산이 마치 말대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한의 머릿 고을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익산 향우인 윤명숙 선생 그렇지요? 강 선생님은 익산의 사위가 되었잖아요. 식후경이니까 먹으면서 합시다.”
한두 순배 잔을 돌리며 서로는 즐거운 저녁을 했다. 술이 있으라니 노래가 없을 수가.. . 송사 이 선생이 일어나더니 하모니카로 고향의 봄을 부르며 우리는 모두 동심에 젖고 있었다.
“거 왜 있잖아. 학교 다닐 때 가곡을 잘 불렀잖아. 부탁해요, 송사.”
서슴없이 목청을 가다듬으며 노래를 부른다. 현재명의 고향생각이었다. 나이는 들었어도 목소리는 늙지 않는구나. 참으로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함께 노래 부르며 함께 박수로 응수했다. 불러서 즐겁고 들어서 흥겨운... .
월산이 성 사장한테 궁금한 점 있으면 다 물어보라고 한다. 전주서 온 송사 시인이 물었다. 성 사장은 아는 것만 물어보란다.
“수홍이 형, 반갑네요. 서동요에는 서동이 마를 캐서 생업을 삼았다고 했는데 익산에 금마, 이 지역에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도 마라든가 이런 감자 종류가 잘 되나요?”
“지금도 참마를 생산하는 농가는 제법 있다고 알고 있는데... . 내가 알기로는 익산 일원에는 붉은 색의 흙이 많다고. 그래서인지 질 좋고 붉은 고구마가 아주 잘 된다고. 게르마늄 성분이 다른 곳보다 더 많다고 들었소만.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던 그 시절 구황작물일 것도 같고... . 말하자면 금고구마라고 할 수 있을 거요. 정형, 혹시 의견이 있으면?”
갸웃거리며 지나가는 말투로 답을 하는 갑내가 가볍게 입을 연다.
“아름다운 고향을 두셨네요. 서동을 마동이라고도 하는바, 성 사장이 말한 대로 고구마가 마일지도 모르겠네요. 사투리말로 보면, 고구마를 감자라고도 이르고 고마라고 하는 지역도 있고요. 지역에 따라서는 감자를 진고구마(고창 등) 혹은 하지고구마라고 합니다. 감자를 다른 말로 마령서(馬鈴薯)라고도 하지요. 서동요의 서(薯)가 마령서이든, 감서(甘薯, 고구마)이든 자생하는 마 종류인 듯합니다. 잠시 중국에 있을 때의 기억인데 거기서는 고구마를 지엔쑤, 그러니까 감서인거지요. 우리 쪽으로 오면서 고구마가 감자로 불린 거지요. 이는 중요한 양식이니까 정말 훌륭한 금값이 되는 금마가 아닌가합니다. 어때요... . 그럴싸한가요?“
만권당 주인이 반론을 제기한다.
“서동요에서는 같은 장소에서 캔 것이기는 하나 마 따로 금 따로 인데 이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 아시는 바와 같이 익산이나 김제 주위에는 사금(沙金)이 나는 곳으로 금(金)이 들어가는 곳이 분포했다고 봅니다. 송사 한 번 예를 들어볼 수가...?
“그거요, 대표적인 게 김제(金堤), 금평(金坪), 금구(金溝), 금마(金馬)-금마지(金馬池) 등이 있어요.”
“미루어보건대, 지금 미륵사 옆에도 적지 않은 연못이 있는데 용내미못(龍出池)이 있잖아요. 황금만을 금(金)으로 보지 않고 쇠로 본다면 익산 지역이 쇠가 상당량이 비교적 낱은 곳에 묻혀 있다고 봅니다. 옛날에는 쇠를 만들거나 생산하는 사람이나 나라가 부강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얼굴에 값하는 곳이 김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서동은 금도 캐고 마도 캐는 일석이조의 일을 한 거지요, 마침내 아내도 얻어 그 여세를 몰아 용상에 오르기까지 한 거지요. 거꾸로 선화공주가 평강공주처럼 서동을 출세시키고 집안과 나라를 일으킨 셈이지요. 여기 용내미를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보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고(龍出於河), 이 못에서 마침내 서동, 후일 무왕(武王)이 태어난 것으로 볼 수도 있지요. 물론 마룡지(馬龍池)가 서동의 살던 곳이라고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만... . 일설에는 부여의 서동지라고도 하고요. 말하자면 부여의 궁남지(宮南池), 요즘 연꽃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며 신동엽 시인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네요. 수홍이 형 청문회 하느라 노고가 크셨네요...(다 같이 박수하며 악수를 건넨다)”
먹는 게 하늘이라 했다. 먹을 게 없던 시절, 그것도 가뭄이 심해 흉년이 들 때면 뭔가를 먹는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서동(薯童)은 미륵사 주변 용내미 못 주위에 살면서 마 곧 서여(薯蕷), 야생 감자를 캐어 팔기도 하고 집에서 농사를 지어 양식으로 삼았을 것이다.
밤이 깊었다. 아카시아 향이 바람결에 온 마을이 젖고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에도 젖어가고.
월산이 밤도 깊고 이야기도 한참을 갔으니 이제 숙소로 옮겨 가자고 했다. 물론 순두부집에는 양해를 구하여 놓고 인사도 했지만... .
“그럼 서동요의 고장 금마의 뿌리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로써 오늘의 화제를 마무리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 마무리 겸해서 금마의 내력을 갑내형한테 부탁했으면 합니다.”
“준비된 것도 없는데 아마도 이번 백제가요 답사를 제가 제안했다고 날보고 말해보라는 듯. 혹시 누가 아시는 대로 금마 곧 익산에 대해서 말씀할 분이 있을 듯한데요... .”
다 그냥 하라는 듯 박수를 보낸다.
“밤도 깊고 한데요. 요지만 말씀드릴게요. 신등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같은 자료를 보면 익산의 본디 이름은 마한(馬韓) 54소국 시절 건마국(乾馬國)이었고 이는 다시 달리 개마(蓋馬) 또는 금마(金馬)라 하였습니다. 다시 마한(馬韓)-한마(韓馬)-건마(乾馬)-고막(古莫)이었습니다(도수희, 마한의 언어, 2008). 이는 모두 크다(*koma>kom 大-熊-金-乾-巨-錦)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고한자음으로 보면 마한의 한(韓)의 원음이 (χan-kan(東國正韻))이니까 마한-마칸-ᄆᆞᆯ칸이 될 수가. 건마도 금마도 가장 큰 우두머리 나라라는 말이 되지요. 마한시절에는 금마를 금마저(金馬渚)의 저(渚)가 모래섬 혹은 삼각주라는 개념을 드러냈지요. 그러다 고려 충혜왕 때 와서 기(奇)씨가 원나라 황후가 됨을 계기로 하여 익주(益州)라 하게 됩니다. 익(益)을 설문해자 식으로 풀이하면 물 수(水)에 그릇 명(皿)을 합한 것입니다. 그릇이 땅이라면 물 곧 금강과 관련한 삼각주로 그 생성의 뿌리를 인식한 것으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금마국은 마한의 54국 가운데 가장 크고 생산이 많고 금이 많이 나는 부강한 지역이었다고 보입니다. 삼국유사 무왕(武王) 조에 고본에는 무왕을 무강왕(武康王)이라고 적은 것은 상당 한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곤하실 터인데 경청해주시니 고맙습니다.”
행여 꿈속에서나 서동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모두는 스치는 바람결에 꽃 향 가득한 꿈속으로 빨려 들고 있었다. 서동요의 전설 속으로... .
첫댓글 아하! 이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진수로다.
끝없는 탐구의 정수.....
우리고향 정겨운 이야기.
잘 읽고 감탄했습니다.
삼남의 으뜸이라 만경벌 여기
기름진 솜리따흔 마한의 금마
의젓한 백제 문화 동방에 흘러
한별이 새로 나니 빛발도 클싸!
제가 다닌 남성고 교가입니다 정인보 선생이 작사하셨어요
금마는 마한 54국 중 가장 큰 나라였다지요. 금마 옆엔 왕궁리도 있어요.
갑내 형님 글을 통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