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나 계신 하나님!
‘편재성’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신학적 표현이기는 한데
쉽게 말하면 ‘ 하나님께서는
어디나 계신다! ’ 이런 말입니다.
성경은 딱 3번 편재성을 이야기 합니다.
첫째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거짓 선지자들을 꾸짖으실 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23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편재성을
강조합니다.
죄악을 회개하라고 하시는데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일반 평신도들 뿐 아니라 선지자라는
사람들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팔면서
거짓 예언을 했고, 엉뚱한 꿈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무지에 빠뜨렸습니다.
사람들을 혼란케 했습니다.
. 죄를 지어도 된다고,
하나님이 안 보신다고,
. 하나님을 무시하고 음행을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분노하면서 설교합니다.
예레미야 23장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표준새번역]
24 사람이 제아무리 은밀한 곳에
숨는다고 하여도, 그는 내 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하늘과 땅
어디에나 있는 줄을 모르느냐?"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던 그들은 그렇게 멸망당했습니다.
둘째는 시편 139편에 나옵니다.
성령 하나님의 편재성을 또 강조합니다.
[시 139:7-12]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성령 하나님의 편재성입니다.
잠을 잘 때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내가 언제 어디에 있던지
주님의 시선과 주님의 손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안 보인다고 성령 하나님도
나를 못 보시는 것이 아니심을 강조합니다.
셋째는 마태복음 18장 20절입니다.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편재성을 강조합니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내가 보이지는 않지만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모이는
그 모든 곳에 예수님께서는 함께 하고 계심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공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시간적인 제약을 받습니다.
교회에 내가 있으면
집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차에 내가 타고 있으면 동시에
사무실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기는 하셨지만 그
분의 근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예수님이
안 계신 줄 압니다.
그래서 양심을 속이며 살기도 하고,
마음에 분노와 미움을 품기도 하고,
예수님이 모르시는 줄 알고
제 멋대로 죄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편재성과 관련된 신학 용어중에
‘코람데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이야기 하면 in front of God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너와 함께 하니까 두려워하지도 말고
강하고 담대하기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신앙의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표현입니다.
또한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늘 보고 계시니까 죄악을 멀리하라는
가르침도 됩니다.
저는 더러 이 질문 앞에 나를 세웁니다.
난 오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믿음과
느낌으로 살았는가?
하나님 앞에서!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