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드뷔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나약한 사람이 ‘음악’을 유일한 무기 삼아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한국어판 저자 서문)다. 갑작스러운 화재로 할아버지와 사촌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하루카는 극한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피아니스트의 꿈을 향해 달려간다. 물론 이와 함께 화재 이후로 하루카 주변에서 발생하는 불행한 사건들의 해결도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열다섯 소녀에게 화상으로 온몸이 개구리처럼 붕대로 감긴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하루카는 좌절하지 않는다.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그녀에게는 마법사와도 같은 미사키 요스케의 지도하에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위해 맹렬히 전진한다. 하루카는 음악으로부터 위로받는 것은 물론 힘을 얻는다. 반드시 무대에 오르겠다는 집념과 목표는 하루카를 발버둥 치게 하고 이는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아무리 현실이 녹록치 않더라도 도망치지 말라, 끝까지 붙잡고 발버둥 치라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처절한 메시지가 하루카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안녕, 드뷔시』는 피아니스트 탐정 미사키 요스케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이다
(이 시리즈는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언제까지나 쇼팽』, 『어디선가 베토벤』, 『다시 한번 베토벤』(가제)으로 이어진다).
각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나카야마 시치리 특유의 세계관 속에서 작가의 팬이라면 시리즈 주인공 미사키 요스케 역시 그의 다른 작품 속 등장인물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색다른 반가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술술 읽히는 가독성에 마음을 놓고 있다가 마지막에 엄청난 반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교교한 달빛 아래 한 쌍의 남녀가
한가로이 왈츠를 춘다.
시간마저 느릿느릿 흘러가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 위로
퇴락한 고성이 또렷이 떠오른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일본 추리소설계에서 가장 뜨거운 명실상부 최고의 작가다. 2009년 『안녕, 드뷔시』로 제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수상하며,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 그 후 다양한 테마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는 집필속도로 써냈으며, 작품마다 뛰어난 완성도와 놀라운 반전도 선보이며 단기간에 일본 추리소설 마니아들을 사로잡는다.
역설적으로 나카야마 시치리에게는 클래식을 듣는 취미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야기의 소재로 음악 클래식을 선택한 이유는 클래식과 미스터리를 접목한 소설이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러 작곡가 중에서도 드뷔시를 선택한 이유는 ‘아는 사람은 알지만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가 누구냐는 물음에 아들이 드뷔시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그 즉시 나카야마 시치리는 <달빛>과 <아라베스크 1번>을 듣고 강한 인상을 받아 작품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처럼 작은 일상의 소재에 이야기의 장인의 손길이 닿아 마치 드뷔시의 선율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생동감 있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과 팽팽한 긴장감이 동시에 마법처럼 펼쳐진다. 실제로 나카야마 시치리는 “음악과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안녕, 드뷔시』에서 음악에 깃들어 있는 힘을 이야기의 힘으로 마음껏 재현해낸다. 독자들은 어둠을 떨치고 일어나 싸우는 하루카와 함께하며 그 힘을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