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1월 25일 프라하.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의회가 헌법 542호를 통과시켰다. 골자는 연방 해체. 분리 날짜를 12월 31일로 못 박았다. 연방 해체를 규정한 마지막 헌법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는 1918년 연방 구성 이래 74년 만에 역사의 뒤로 사라졌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 독재 체제가 1989년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무혈혁명(벨벳혁명)으로 막을 내렸듯이, 분리에서도 유혈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는 '벨벳 이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벨벳혁명의 주역이었던 문인 출신 하벨 대통령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방은 왜 갈라졌을까. 상이한 민족 구성과 언어도 작용했지만 불만은 경제력 격차에서 터졌다. 체코 지역은 중세 보헤미안 공국 시절부터 다져온 공업 기반 위에 민주화 이후 경제가 급성장한 반면, 군수 공업 외에 이렇다 할 제조업이 없는 농업 지대였던 슬로바키아 지역은 옛 공산권에 대한 무기 수출 격감으로 경제난을 겪었다. 실업률이 한 자릿수였던 체코 지역과 달리 슬로바키아 지역은 20%가 넘는 고실업에 시달렸다. 민주화 이후 연방 정부 보조금이 대폭 삭감되고 서방 자본의 투자도 98%가 체코 지역에 집중되자 슬로바키아 주민들은 '불편한 동거 대신 이혼을 택하겠다'며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에 몰표를 던져 결국 연방은 해체되고 말았다. 연방 재산(221억 달러)과 주요 군장비도 2 대 1의 비율로 갈랐다. 분리 16년이 지난 오늘날 두 나라는 협력(관세 동맹)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동유럽 경제의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공동 가입해 서방의 일원으로도 인정받았다. 분리 과정에서 피를 보았던 옛 소련과 유고 연방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도 칼보다 대화가 효율적이며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