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서핑] (31) 귀촉도(歸蜀途)/서정주
귀촉도(歸蜀途)/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三萬里).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三萬里).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해설> 1946년 [춘추]에 발표된 시이다.
귀촉도는 불여귀, 자규, 두견, 소쩍새, 접동새 등으로 불리워지는 새로서, 이 새의 전설은 원래 중국에서 시작된 것인데(촉나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망제의 한이 서린 새), 우리 민족의 정서와 결합하여 변형되면서 많은 시가의 소재가 되었다. 널리 알려진 고려말 이조년의 시조에 나오는 자규를 비롯하여, 김소월의 <접동새>, 김영랑의 <두견>, 조지훈의 <낙화>에 등장하는 귀촉도,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의 소쩍새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별(死別)한 임을 향한 정한(情恨)과 슬픔을 처절하게 노래한 시로 보인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죽음의 길로 떠난 임에 대해 여인이 느끼는 회한과 슬픔이 애절히 노래되고 있다. 임이 떠나 버린 뒤에는 머리털(생명 상징)마저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는 시적 자아의 진술을 통해 우리는 이 시가 지닌 정서의 깊이와 폭을 짐작할 수 있다.
'임의 부재(不在)'를 드러내는 것은 우리 문학의 중요한 전통 중의 하나다. 이 작품이 '임의 부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恨)'의 미학을 표현하는 우리 문학의 전통과 접맥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표출하려는 시인의 의도는 전통적 소재를 통해 구체화된다. 즉 '진달래', '육날 메투리', '은장도', '은핫물', '귀촉도' 등의 시어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면서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준다. (현대시목록, 인터넷)
* 이 시는 사별한 임에 대한 그리움과 못다한 사랑에 대한 회한(悔恨), 임의 죽음에 대한 비통한 심정을 여인의 처절한 어조로 표현한 작품이다. 모티브가 된 '귀촉도'는 망하고 없는 고국 촉나라로 돌아갈 수 없음을 통곡한 촉나라 왕의 넋이 화해서 된 새라는 전설을 지닌 새로, 이 시에서는 망국의 한과 임과의 사별에 대한 한으로 변용되어 나타나고 있다.
화자는 죽은 임을 부르며 그리워하지만, 임과 나 사이는 '삼만 리'나 된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라는 외침은 이제 독백일 뿐, 대답이 있을 수 없는 부름이다. 화자의 가슴 속에는 임이 살아 있는 동안 다 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다. 임이 없는 밤, 밤새 슬프게 울부짖는 귀촉도의 울음은 바로 화자 자신의 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권에 잡히는 현대시)
* 귀촉도(歸蜀途) 고사(古事)
촉(蜀, 지금의 四川省)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느 날 망제가 문산이라는 산 밑을 흐르는 강가에 나왔는데,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 와서 눈을 뜨고 살아 났다. 망제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와서 물어보니,
"저는 형주 땅에 사는 별령(鼈靈)이라는 사람으로,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를 왔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망제가 생각하길, 이는 하늘이 나에게 어진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라 여기고, 별령에게 집을 주고 장가를 들게 하고 정승으로 삼아 나라일도 맡겼다. 망제는 나이도 어릴 뿐 아니라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이것을 본 별령은 은연 중 음흉한 마음을 품고 망제의 좌우에 있는 대신이며 하인까지도 모두 매수하여 자기 심복(心腹)으로 만들고 정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 때 별령에게는 딸 하나가 있었는데, 얼굴이 천하의 절색이었다. 별령은 이 딸을 망제에게 바쳤다. 망제는 크게 기뻐하여 나라 일을 모두 장인 별령에게 맡겨 버리고 밤낮 미인을 끼고 궁중에 깊이 앉아 바깥 일은 전연 모르고 지냈다.
이런 중 별령은 마음 놓고 모든 공작을 다해 마침내 여러 대신과 협력하여 망제를 국외로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망제는 일조일석에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오니 그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두견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어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고 또 울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원조(怨鳥), 두우(杜宇), 귀촉도(歸蜀途) 또는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여 망제의 죽은 혼이 새가 된 것이라 말들했다.
<서울시 관악구 서정주시비, 시제는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서정주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낙성대落星垈의 강감찬 장군의 넋이
먼저 일어나시어 소리친다.
너희들은 왜 쪼무라기로 만 남으려 하느냐?
이 세계의 최대 강국이던
(키타이)를 부수려던 내 힘을
너희는 어찌하여 깡그리 다 잊어야만 하느냐?”고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신림동에 사시던
이조 최대의 서정시인
신자하申紫霞님의 넋도
곰곱히 이어서 말씀하신다......
“자네들은 어째서 사랑마저 잊었는가?
겨레가 겨레끼리 사랑하고 살아야하는
그 근본정신까지 잊어야만 하는가?” 하고......
그러면 관악산의 철쭉꽃 뿌리들은
나직한 소리로 응얼거린다.
“아무리 치운 겨울날에도
우리들은 뿌리만은 언제나 싱싱하며
한 봄에 꽃필 채비를 하고 있소.
당신들도 그래야만 할 것 아니오?” 하고......
그러면 관악산의 까치 때들이
짹짹짹짹 조아리며 세배를 한다.
“단군 자손 여려 분께 세베를 올려요
우리들 까치를 할아버지 할머니도
단군 할아버지의 그때부터 벌써
그 곁에서 모시고 살아 왔거든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