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플리,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 사무엘이 엘리에게 말하다〉, 1780, 199×156cm, 워즈워스미술관
아이 사무엘이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한다. 제사장 엘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 말한다. 엘리는 손바닥을 들어 거부의 뜻을 밝히지만, 사무엘을 밀어내진 않는다. 몸짓과 달리 마음으론 인정하는 표정이다.
하나님이 아이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엘리와 아들들이 화를 입는다. 제물을 함부로 대하고 섹스 스캔들까지 일으킨 엘리의 아들들이 전쟁 중에 죽는다(삼상 2:17, 22; 4:11). 비둔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제사장 엘리는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에 목이 부러져 죽는다(삼상 4:15-18). 엘리는 40년 동안 사사로 일했지만 노추했고, 아들들은 타락했다.
제사장으로서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군대와 함께 참전했지만 죽음으로 파면당한 것이다. 법궤를 맡았다 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에게 하나님의 법궤는 그저 나무 상자에 불과하다. 나무 상자의 안위를 염려하던 엘리의 몸은 결국 무너졌다.
사무엘이 남았다. 사무엘은 엘리의 장막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삼상 3:11-14). 엘리는 둔했고, 엘리의 아들들은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울렸다. “주님께서는 실로에서 계속하여 자신을 나타내셨다. 거기에서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사무엘이 말을 하면,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여 들었다”(새번역, 삼상 3:21-4:1).
조직이 무너져도, 지도자가 없어도, 하나님의 법궤는 독자적으로 일하신다. 블레셋 군대가 노획한 하나님의 법궤를 ‘다곤’(Dagon) 신전에 두었는데, 하나님의 법궤 때문에 다곤 신상이 넘어져 머리와 두 팔목이 부러지고(삼상 5:4), 하나님의 법궤를 포로 삼은 마을마다 악성 종양이 퍼진다(삼상 5:9, 12). 하나님은 전문가 집단 혹은 가문을 통해 말씀하시거나 일하시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하신다. 하나님은 타락한 교회 조직 따위 필요하지 않으시고, 타락한 전문가의 입술을 역겨워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법궤를 다룬 적이 없었을 어린 사무엘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새겨 주셨다. 그래서다.
소망이 있다.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새번역, 삼상 2:26). 엘리와 타락한 그 아들들의 장막에 사무엘이 있었던 것처럼, 타락한 교회 조직과 스캔들 투성인 목사들이 지도하는 현장에서도 순전한 믿음이 자란다. 결국 타락한 조직과 지도자는 죽겠지만, 어린 믿음이 태어나고 자란다.
부활은 이렇게 현실이다. 나무 상자를 관리하던 타락한 세대가 죽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전한 아이들로 부활한다. 앞을 보지 못하고 비둔한 제사장의 마음속에 죽어 있던 하나님 말씀이 천지 분간 못하는 아이를 통해 부활한다.
첫댓글 부활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