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소년과 밥 먹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수많은 청소년을 만나며 겪은 일을 또 겪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겪었다고 적응이 되는 건 아니었다. 매번 처음 겪는 일처럼 당황하고 놀라고 분주해진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무리 겪어도 적응이 안 되는 걸까? 그런 일 중 가장 큰 일을 꼽으라면 ‘죽음’이 아닐까.
청소년을 만나는 삶을 시작하기 전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두 번 겪었다. 대학 때 친남매처럼 지내던 오빠를 잃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길을 가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친한 언니의 전화였다.
“하루야, 언니가 할 말 있는데… 너 지금 서있으면 어디 앉을 데 찾아. 앉고 나서 말해.”
‘하루’는 대학 때 불리던 내 별명이었다. 언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옆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언니, 나 앉았어.”
“순석이가… 간밤에 갔대.”
언니는 독감을 앓는 사람의 신음처럼 그 소식을 뱉어냈다. 나는 분명히 앉아있었는데, 마음은 아직 앉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장례식 내내, 마음은 다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빠를 화장하고, 오빠의 뼈를 뿌리는 내내 마음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숨만 간신히 내보냈다. 오빠의 사진 앞에서 “오빠가 지어준 하루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삼을게. 내가 소설을 쓰게 되면 꼭 그 이름을 쓸게” 약속하면서도 넋은 없었다. 오빠의 장례식인데, 오빠가 걸어 들어와 “하루야” 하고 부를 것만 같아 자꾸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첫 번째 겪은 죽음보다는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걸. 우습게도 우리는 아플 때 더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미 지나버린 ‘더 아픔’은 지금을 ‘덜 아픔’으로 만들어주고, 그것이 유일하게 그 시간을 견디는 힘이 된다. 그때의 나도 그랬다. 친오빠 같은 오빠가 떠났지만, 엄마가 떠났을 때보다는 괜찮을 거라고. 안 괜찮아도 괜찮은 거라며 나를 달랬다.
엄마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과 부부 동반 여행을 가다가 쓰러졌다. 그 여행은 다정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첫 호의였고, 나 같으면 잡지 않았을 아버지의 손을 엄마는 소녀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덥석 잡았다. 나는 싫었지만, 엄마가 저렇게 좋다면 아버지의 손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랐는데, 엄마는 더 이상 손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버스 안에서 쓰러져서 구급차로 옮겨졌고, 응급실에서 뇌출혈 판정을 받았고, 며칠을 못 갈 것이라는 의사의 말은 곧 사실이 되었다. 그때 내 마음은 주저앉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고, 시간이 지나도 하늘이 엄마를 다시 반납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어쩌면 지금도 문득, 내가 가장 힘들 때 가장 바라게 되는 소원은 그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같은 소원을 지닌 아이를 만날 때면 ‘어쩌면’이라고 시작한 문장이 자동으로 수정된다. ‘지금도 문득, 내가 가장 힘들 때 바라게 되는 소원은 그것이다’라고.
한 녀석이 아버지를 잃었다. 1년이 지났지만, 녀석은 하늘이 아버지를 반납해주기를 바란다. ‘1년’을 ‘10년’으로 바꾼다고 해도 뒤 문장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녀석의 아버지는 50대 초반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녀석에게 아버지는 나에게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묻지 않아도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늠할 수조차 없는 그 녀석은 자꾸 묻는다. 유독 어제보다 더 어둡게 느껴지는 밤이 찾아오면 물음이 시작된다.
“쌤, 오늘도 아빠가 보고 싶어요. 쌤은 이제 괜찮아요?”
“안 괜찮은데, 괜찮아.”
“나는 계속 안 괜찮아요. 괜찮기도 한 건 언제쯤 그래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또 살아야 하니까 살아지긴 하더라. 근데 완전히 괜찮아지는 건 없어. 문득문득, 삶의 길목에서 그리움이 툭 튀어나와. 그리움하고 같이 사는 거 같아.”
“쌤은 지금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응. 보고 싶고, 말하고 싶고, 안고 싶고, 안기고 싶어.”
“쌤은 엄마 다시 만나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예요?”
“밤새워서 수다 떨고 싶네.”
“엄마한테 제일 해주고 싶은 말은요?”
“사랑한다고. 그 말을 못 하고 헤어진 거 같아.”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으니까요.”
“응. 너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서 아쉽지?”
“네, 많이요.”
“쌤은 엄마랑 제일 만들고 싶은 추억이 뭐예요?”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싶어.”
“뭘 제일 먹고 싶어요?”
“그건 모르겠어.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물어봐서 그걸로 먹을래.”
“쌤, 엄마랑 제일 함께하고 싶은 건 뭐예요?”
“그냥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고 싶어.”
“아, 나도요.”
그 녀석은 이렇게 아픔을 먼저 겪은 나의 뒤에서 묻는다. 내 뒷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는 그 자리에서 소리쳐 묻는다.
“거기는 꽃이 피어요? 거기 가면 정말 비가 그쳐요?”
“응, 여기는 햇살이 가득한 꽃밭이야.”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꽃은 피었어. 그런데 비는 오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실망할까 봐 나는 사실을 말한다. 그것이 녀석을 위한 일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이곳에 와서도 슬플 텐데, 실망까지 겪을 녀석을 보는 내가 힘들까 봐, 나를 위해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에서 유리창을 긁는 소리가 난다. 차라리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지, 차라리 펑펑 울지, 차라리 따라가고 싶다고 소리 지르지, 그러면 같이 울기라도 할 텐데…. 녀석은 항상 맘껏 울지도 않고,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지도 않고, 금이 갈 때까지만 긁는다. 속이 상하지만, 그게 녀석이 애도하는 방법이란 걸 잘 알기에 잠자코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제 좀 자야지?”
내 물음에 녀석이 대답한다.
“비가 와도 꽃은 피는 거잖아요. 그것도 희망이에요.”
“오, 맞네. 그렇네.”
나는 녀석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언제나 청소년은 나보다 낫다. 그 속에서 희망을 찾다니…. 나는 청소년과 밥 먹는 사람으로 살지만, 청소년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항상 내가 배우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렇게 또 한 수 배웠다.
“쌤, 잘 자요.”
“그래, 잘 자자.”
이제 유리창을 긁는 소리가 멈췄다. 그래, 꽃이 피어도 비가 오는 게 아니라, 비가 와도 꽃이 피는 것이다. 내일 또 비가 오면 이곳에 핀 꽃을 보여줘야지. 아픔의 틈에 피어나는 꽃을 같이 보고 있다 보면 빗소리를 듣지 못하는 날도 오겠지. 같은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같은 아픔은 위로마저 공유하게 하는 법이잖아.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웃을 수 있겠지. 오늘의 희망은 이것이다. 그것도 희망이니까.
청소년들을 만나고 나서 세 번의 죽음을 겪었다. 그 이후로는 아이가 아무리 늦어도 화가 나지 않는다. 살아서 오면 그걸로 됐다, 하면서. 사고가 나서 뛰어가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죽지 않았으니 됐다, 하면서. 이제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죽을 만큼 힘든 문제는 없다 싶은데, 내가 만나는 부모님들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문제들이 죽을 만큼 힘들다고 오시니, 이 마음을 꺼내서 보여드리고 싶을 때가 참 많다.
나는 오빠가 지어준 ‘하루’라는 별명을 필명으로 삼았다. 오하루라는 이름으로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다. 그 이름으로 책이 나오면 오빠를 뿌린 곳으로 친한 선배와 함께 간다. 책을 보여주고, 읽어보라고 한 장씩 넘겨주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하늘로 떠난 녀석과 비슷한 뒷모습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가서 얼굴을 확인했다. 난 무슨 생각을 한 거지. ‘환생’이라도 생각한 걸까. 헛웃음이 났다. 내가 잃은 사람 중 가장 오래된 엄마는, 매일 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라면을 먹을 때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엄마를 그린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할 때 요양원에 취재 간 적이 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소녀처럼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할머니, 엄마 생각해요?”
“응.”
“엄마는 언제 하늘나라 가셨는데?”
“나, 스무 살 때.”
“그런데 아직도 보고 싶어요?”
“응, 매일.”
그때는 몰랐던 ‘매일’의 의미를 이제야 깨닫는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잊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아직도 엄마가 살아 돌아왔으면, 하고 바라는 내가 바보같이 여겨질까. 그런데 나와 같은 소원을 가진 사람들은 알고 있다.
괜찮을 때도 있지만 매일, 괜찮지 않다는 걸.
첫댓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안 괜찮은데, 괜찮아~~
비가 와도 꽃은 피는 거잖아요~
그것도 희망이에요~
괜찮을 때도 있지만 매일, 괜찮지 않은 삶...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