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김귀선
참말로 요즘 세상에 어찌 그리 속 깊은 분이 계시던지~~-(수정:추가한 문장)
부부모임 참석 차 식당에 들어섰을 때였다. 식당 입구 오른쪽 방에 안면 많은 한 분이 앉아 계셨다. 누구실까? 일행들이 모인 방에 앉아서도 그 분이 누군지 궁금했다. 한참을 생각한 뒤에야 멀리 강원도에 사시는 오촌 고모부님이라는 걸 알았다. 내 말을 전해들은 집사람도 방 쪽을 살펴보더니 '아이구 그렇네요. 고모부님이 여기 웬 일이신공?' 이라며 놀라했다.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는 고모부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고모부님 아니싱기요? 너무도 오랜만이십니더.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문 앞에서 구두 인사로 우리임을 먼저 알린 뒤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 나란히 절을 올렸다. 방에는 고모부님 외에 세 분이 더 있었다. 담소 중이던 고모부님은 우리의 절을 받고는 놀라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던지 잠깐 당황하더니 느긋하게 안부를 물었다.
"자네들 참으로 오랜만일세. 그래. 그동안 별일은 읎었찌를? 아아들도 잘 크고?"
"예. 고모부님께선 언제 경주에 오셨는지요? 고모님도 잘 계시지요?"
"다 잘 있어. 볼일이 있어 왔다네. 그래 배고프겠어. 얼른 식사들 하게나."
모임 장소로 돌아온 집사람은 못 보던 사이에 고모부님이 훨씬 멋있어졌다고 말했다. 나도 같은 느낌이었다. 중후한 느낌의 학자풍인 분들을 친구로 두신 걸 봐도 분명 옛날의 고모부님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뭔가를 배워야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고모부님의 바뀐 모습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끌시끌한 소리가 식당 안을 웅웅거리더니 이내 뚜렷한 고성이 오갔다. 늙수레한 남자들 대여섯이 앉아 아까부터 좀 부산했던 곳이었다.
"야! 이 새끼야. 니가 잘나면 얼마나 잘 났다고 내한데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고 지랄이고."
"와! 내 잘 나가는데 니가 머 도와준 거 있나?"
머리가 반쯤 벗겨진 뚱뚱한 남자는 삿대질을 하며 툭툭 쏘아대고 몸이 호리호리한 남자는 분에 못이기는 듯 그 말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일행들은 싸움을 뜯어 말리느라 팔을 잡아당기고 둘 사이를 가로막는 등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빙아줌마 말에 의하면 친구 모임으로 온 사람들이며 곗돈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다. 돈 몇 푼 가지고 저렇게 난리라며 친구 간에 손해 보면 얼마나 보고 덕을 보면 또 얼마나 본다고 그러는지 종지기 속도 못 되는 사람들이라며 툴툴거렸다.
한바탕 왁자하던 싸움도 정리되고 먹고 마시는 시간도 기울어 손님들이나 일행의 부부들도 일부 돌아간 무렵이었다. 누가 나를 부른다는 서빙아줌마의 손짓에 고개를 돌리니 고모부님이 우리 모임방 건너에 서 있었다. 식당을 막 나서려는 참으로 보였다. 친척 안부라도 물으시나 하고 다가가니 식당 건물 모퉁이로 나를 데려갔다. 주위를 둘러본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게. 미안하네. 나는 자네 고모부가 아닐세. 아까는 자네가 무안해 할까봐 고모부인 척 했었네. 미안하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저절로 허리가 숙여졌다. 어찌 이토록 속 깊고 맑은 분이 계실까 싶어 가슴이 찡했다.
참말로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대 선비 같은 분을 만났었다며, 추석 명절에 친정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형부는 한층 고조된 음성으로 사실을 전했다. '아이구 세상에나. 아이구 시상에.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던 가베요'라며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했다.
그리곤 죽었다 깨어나도 그 분의 깊이에 못 이를 둘러앉은 우물들, 자신의 깊이를 재보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6년 정도 묵혀놨던 소재였는데,
오늘 우물 얘기가 나오면서 작품(습작)으로 연결시켜 보았습니다~~^^*
첫댓글 내가 겪은 이야기인 것 처럼 끌고 나가다가 마무리에 형부라는 걸 밝혔네요.
이런 수법이 새롭게 보입니다. 재미있었습니다.
하이고, 신선하네요.
갓 길어올린 샘물 한 모금 마신 기분입니다.
굿! 굿!
좋은 작품 읽었습니다.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김선생 유학하듯 먼 길 다니며, 배운 수필같으네요. 잘 읽었습니다.
당시 대구에서는
수필교실이 많아도 이런 형식의 수필을 써야 한다고 가르친 데가
없었지요. 아마 피선생도 거기서 공부를 했던 것 같더라고요. 내가
문학상 심사를 하며 알게 되었지요.
수필이 어떤 형식으로 쓰여지던 그게 뭐 대숩니까?
공감대가 일어나고, 감동이 생기며, 뭔가 생각할 메시지가 있으면
좋겠지요. 나는 수필을 인문학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인간학이라
하는 게 더 가깝겠지요. 사람이 사람을 글로 얘기하는 것. 사람인
작가가 자신을 얘기하는 것 아니겠는지요. 그러니 그 얘기를 어떤
형식으로 하던, 어떤 표현을 쓰던,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얘기하느냐에 달렸겠지요. 어떤 자세로 하느냐가 중요하겄지요.
부회장 맡으시고 카페 출입이 잦으니 보기에 좋네요.
글 자주 올려주세요.
선생님!!!!
이렇게 응원의 댓글까지 주셔서 용기가 생겼습니다.
더 열심히 글을 쓰라는 말씀으로 듣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왜 제목을 <우물>로 잡았을까, 속 깊고 맑은 분이라서 인가요?
종결 문장 '둘러앉은 우물'이 조금은 쌩뚱맞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선생님!! 넘 반갑습니다~~^^*
그리고 댓글로 적어 주셔 넘 감사드려요
독자가 생뚱맞게 봤다는 것은 작품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살짝 '분의' 라는 말을 넣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