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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바로는 이집트-앗수르-바벨론-메데, 바사에 이어 그리스의 바턴을 로마가 받은 것으로 압니다. 이후 게르만민족의 이동- 동서로마의 분열과 멸망-비잔티움의 발흥과 함께 중세의 암흑시대-16세기 스페인의 무적함대-17세기 네덜란드-18세기 문예부흥을 거처 19세기 영국-20세기미국이 세계체제의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넘버 1을 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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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로 보면 공교롭게도 로마는 중간 정도에 콘스탄티대제까지 1,000년, 이후 1,000동안 장기 집권을 해서 지구촌에 로마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Gladiator’는 나온 지가 20년 된 영화인데 거대한 스펙터클과 리얼리티가 로마사 한 권을 통째로 먹어치운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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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실제 서로마가 멸망한 시기(476)보다 300년 앞선 시기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라스'에 최민수가 출연해서 원래 자기가 글레디에이터 주연으로 러브 콜을 받았는데 가정을 지키려고 거절했다고합니다. 세상에 멋지게 사는 놈이 최 민수입니다. 최무룡이 아들로 태어나 미스코리아 각시 데리고 아들 둘이랑 유투버로 홈 쇼핑으로 잘 살고 있더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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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 이후 두 번째 벤치마킹하고싶은 친구입니다. 솔직히 비주얼이나 마초성은 제가 한 수 위입니다. 놈이 나보다 잘하는 건 오토바이 하나이고 아들과 함께 온 가족이 알콩달콩 살고 있는 것 뿐입니다. 결국 각시 하나가 남편의 사이즈를 판가름 한나고 보는데 동의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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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통치 기가 저물어가던 서기 180년. 2차 포에니 전쟁을 끝내고 한니발 장군이 죽은 시점(184)쯤 으로 보면 당시 세계 인구 4분의 1이 로마 제국의 영토였습니다. 물론 제국의 영화는 다름 아닌 식민지 정벌을 위한 끝없는 전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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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에 걸친 게르마니아 정벌 전쟁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고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에 익숙한 로마 병사들은 혹독한 북유럽의 추위와 부족한 식량, 연일 계속되는 치열한 전투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이었습니다. 이렇게 바바리안과의 마지막 일전을 앞둔 로마 군의 진영의 사기는 한눈에 봐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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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때, 늑대 가죽을 갑옷 위에 두른 체 병사들에게 다가 오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를 보자 병사들의 얼굴이 밝아지고 그가 건네는 한마디 격려에 사기는 충천해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로마 북부군 사령관 막시무스 장군(러셀 크로우)입니다. 대장군이면서도 언제나 선봉에 서서 몸을 돌보지 않고 적진을 휘젓는 맹장이자, 함께 싸우는 병사들을 자식처럼 아끼는 덕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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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를 향한 부하들의 존경과 충성심은 지옥에라도 서슴없이 뛰어들 태세입니다. 막시무스 장군은 잠시 후면 벌어질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말고삐를 잡은 체 병사들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마지막 훈시를 합니다. (막시무스 : 절대 밀리지 마라. 나를 따르라. 느닷없이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고 혼자서 푸른 초원 위를 말을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너무 당황해 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 곳은 바로 천국이며, 제군은 이미 죽은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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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있던 병사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속에, 생사고락을 같이 해 온 총사령관 막시무스를 향한 병사들의 절대적 신뢰와 충성심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이 정도의 포스는 한국의 유동근이 있습니다. "대중의 정서가 관건이다. 대중의 마음이 나한테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지만, 대중들의 마음에서 떠나버린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이 말은 21세기 오늘날 에도 그 울림이 명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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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시카 섬 출신에다 작은 키. 프랑스 명문 귀족의 자제들에 비해 하나도 내세울 게 없었던 나폴레옹이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휘하 병사들보다 먼저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가는 솔선수범. 고급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일반 병사들과 똑 같이 거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를 함께 했던 겸허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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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태도가 상당히 전략적이었음을 반증하는 일기 내용이 나타났습니다. "사람을 조종하는 데 있어 가장 영리한 방법은 다름 아닌 상대의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다. “ 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조직 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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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멋진 연설로 또는 한 턱 크게 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을까? 의외로 그 답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스스로의 특권의식과 권위주의를 벗어 던져버려라. 스스로를 낮추고 아랫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라. 자신 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라. 궂은일일수록 남보다 먼저 기쁘게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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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진심으로 행하라. 이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당신에게 신뢰와 헌신 그리고 충성을 선사할 것이다. 당신을 신뢰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님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 마침내 막시무스 총사령관과 심기일전한 로마군은 사력을 다한 전투 끝에 12년의 게르마니아 원정을 대승으로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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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수많은 전장에서 막시무스를 지켜보며, 그의 순순한 군인정신, 로마의 타락한 정치에 물들지 않은 진정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간파하고 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예견하고는 타락한 황태자 코모두스가 아닌 막시무스에게 로마를 통치해 줄 것을 제의합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의 저자이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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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막시무스는 아들과 다름없고, 막시무스에게는 황제가 아닌 아버지입니다. 그 날 밤, 자신이 아닌 막시무스에게 권력 넘기겠다는 사실을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직접 듣고 격분한 코모두스 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스로 황제에 등극합니다. 호로자식이지요. 코모두스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 이놈 악동 표정연기 명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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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역의 러셀 크로우는 저랑 갑장이라서 친구 먹으려고 했고 만, 이후로 보지 못했고 저는 부르스 윌리스(63)로 갈아타고 말았습니다.악은 원래 발이 빠른 것으로 성경에 나옵니다. 막시무스가 코모두스의 오른 팔이 되기를 거절하고 컴백 홈을 했지만 이미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은 사살되었고 라일락과 쟈스민 향 대신 연기와 피 냄새를 맡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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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막시무스이었다면 복수를 할 겨를이 없이 자결을 했을 것입니다. 한편, 황제가 되어 로마로 돌아온 코모두스는 그라쿠스를 비롯한 원로원내 반대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이반한 민심을 돌리기 위해 150일간이라는 사상 최대 검투시합을 콜로세움에서 개최하게 됩니다. 와우, 화면을 꽉 채운 거대한 미장센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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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어 80년 동안 만들었다는 콜로세움은 높이 48m, 둘레 500m 등 경기장 내부의 길이가 87m와 폭 55m입니다. 이곳에서 열리는 검투사 경기를 보러 찾아드는 관객만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예주님! 로마에 가거든 콜로세움을 스캔해서 아비에게 미주알고주알 알려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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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원형경기장은 해상 전투를 재현하거나 고전극을 상연하는 무대로도 사용되었고, 성경에는 굶주린 사자에게 죄수를 뜯어먹게 했다고 나옵니다. 티투스는 등극하기 전인 70년에 유대독립전쟁을 진압하고 10만 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환하였는데 그 중 4만 명을 동원하여 콜로세움을 건축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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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막시무스를 노예상인이 발견하여 검투사를 만들었고 드디어 코모두스가 주관하는 콜로세움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라쿠스 : 코모두스가 생각보다 영리하군. 내 생각에 그는 로마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아. 포악하고 무지한 군중, 바로 그 것이 로마란 것을 말이야. 이런 유의 군중은 재미난 마술을 보여주면 정신을 못 차리고 걸려들지. 숭고한 자유가 찬탈 당하는 것도 모르고 군중은 여전히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하지. 로마를 움직이는 것은 원로원이 아니라 바로 저 콜로세움 이야. 코모두스는 로마에 검투사들의 죽음을 갖다 바칠 것이고, 로마는 이런 코모두스를 사랑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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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에서 선심성 접대가 당연시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이권이 크면 클수록, 상대의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접대의 수준도, 사례비용도 점차 막대해 지는데 협상에서는 이를 흔히 알파(α)라고 부르지요. 일정 비용을 상대에게 추가 투입하여, 투입한 알파 이상의 보답을 상대로부터 이끌어 내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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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개인 혹은 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에서 나타나는 선심성 접대나 향응의 문제점도 심각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러한 선심 혹은 환심 성 전략이 정치세계에서 야기하는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합니다. 자신의 무능을 감추고, 자신을 향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함량 미달의 정치가나 정권이 가장 애호하는 대국민 통치 전술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규모 스포츠행사, 도박 산업, 그리고 사회도덕 기강을 해이하게 하는 각종 규제 완화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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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확고한 비전이나 철저한 계획 없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 편승하는 포퓰리즘입니다. 피지배층의 지적 개화를 방해 함으로써 지배자에 대한 비판력을 빼앗고 수동적 존재로 만들어, 지배체제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문맹정책 혹은 우민정책의 한국식 명칭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본 영화의 배경이 된 로마시대의 '빵과 서커스'정책, 독일 철권통치기인 비스마르크시대의 '엿과 채찍'정책, 그리고 현대에서는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던 미국의 3S(screen•sport•sex)정책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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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포퓰리즘은 해당 국가나 사회의 기득권층의 암묵적 권력 확대 및 부의 합법적 축적을 함께 도모하는 경향이 있어, 통치 권력을 구심점으로 측근 세력 간의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지는 배타적 야합은 정책의 기획 및 실행단계에서 불가피합니다. 결국 이러한 우민정책의 종착점이 인권의 훼손 및 민주주의사회의 붕괴란 정치사회적 폐해뿐 아니라, 각종 부정 부패의 만연으로 사법정의, 조세정의, 공권력중립의 심각한 붕괴로 이어져 국가의 근간까지 뒤흔들 소지가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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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로마제국 역시, 여러 가지 몰락 원인 가운데 콜로세움으로 대변되는 포퓰리즘 즉, 우민정책이 끼친 악영향이 지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옛날 로마 시대에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이 어떠한 민심 수습전략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또한 각 전략이 가져오는 결과는 어떻게 다를 수 있는 지를 주의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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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는 또 다른 이름 '스패냐드'로 불리며 검투사로서 명성을 이어갑니다. 콜로세움에서의 첫 시합에서, 막시무스 는 검투사들을 이끌어 전차대와 궁수들을 꺾고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시합이 끝난 뒤, 그는 코모두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마르쿠스 황제의 복수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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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두스는 막시무스를 그 자리에서 죽이려 했지만, 관객들의 외침에 그를 살려줍니다. 엄지 꺾기가 설마 여기서 유래되었을라고. 이후 막시무스는 그를 죽이려는 코모두스의 계획에 의해 불패의 검투사였던 갈리아의 타이그리스와 싸웠지만 또 이깁니다. 하지만 막시무스 는 그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라는 코모두스의 명령을 거부하고, 이로 인해 오히려 관객들에게 '자비로운 막시무스'라 불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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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 이후, 막시무스 는 자신의 하인이었던 키케로를 만나 그가 지휘했던 군대가 여전히 그를 지지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에 막시무스 는 코무두스의 누이 루실라(코니 닐센), 원로원의 그라쿠스(데릭 재커비 )의원과 공모하여 코모두스를 제위에서 끌어내리려는 계획을 꾸미지만 이 계획을 짐작하고 있던 코모두스에 의해 관련자는 체포되고, 탈출을 시도하던 막시무스도 붙잡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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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를 확실히 죽이기 위해, 코모두스는 근위대에 둘러싸인 원형 투기장에서 막시무스와 결투를 벌입니다. 물론 비겁한 승리를 위한 결투 이전에 막시무스가 치명상을 입고 있었지만 마침내 코모두스의 목을 찔러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선황 아우렐리우스의, 유지를 전한 후 콜로세움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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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실제는 192년 코무드스가 암살당하자 원로원은 선왕의 친구 페르티 낙스(126-193) 장군을 황제로 선포했으니 조카는 가공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페르티 낙스는 3개월도 못돼 근위 대장 레토에게 암살을 당했고 율리아누스-판노니아 총독-시리아 총독-브리타니아 총독까지 왕을 자처함으로 제국의 황제가 4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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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판노니아 총독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권력투쟁의 승자가 되었고 이후 세베루스왕조의 마지막 황제 알렉 산드르 세베루스(222-235)가 죽자, 군인 황제 시대의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50년 간 무려 50명의 황제가 자신을 왕위에 앉힌 병사들에 의해 죽었다고 합니다. 이후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는 동서 분할 체제를 갖추고 동과 서에 각각 황제와 부 황제를 두는 4두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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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콘스탄틴 대제(312-337)가 제국을 통일하고 기독교를 국교화합니다. 에예공! 콘스탄틴 대제는 부활절을 제정한 중요한 인물이니 종교 회의와 함께 기억해두시라. 콘스탄틴대제는 동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천도하지요. 이후,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죽기 전(395)에 동서를 각각 아들에게 분할하게 되면서 제국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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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의 아틸라 침입 등 잦은 정변으로 5세기 경 서로마는 쇠락하기 시작하다가 국방 경비를 맡긴 용병 고트족 오도아케르에 의해 반란을 맞게 되었고 어린 로물루스를 황제로 등극시킵니다. 학자들마다 로마의 멸망원인을 보는 각도가 다른데 제 생각은 기독교의 잠식, 잦은 침략 전으로 인한 인구 감소, 5현제 시대의 끝과 함께 내부의 권력 균열로 봅니다만 목욕탕 설을 성경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폼페이의 최후‘말입니다. 아, 영원한 제국 로마여!
2024.3.30.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