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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文選 제35권
표전(表箋)
1.조사할 날을 지휘하는 어필을 사례하는 표[謝御筆指揮朝辭日表]
2.이학에서 청강하고 겸하여 대성악을 봄을 사례하는 표[謝二學聽講兼觀大晟樂表]
3.‘태평예람도’를 선시하심을 사례하는 표[謝宣示太平睿覽圖表]
4.집영전 봄 잔치에 부르심을 사례하는 표[謝赴集英殿春宴表]
5.사 회의 표(謝回儀表)
6.사 장유 표(謝獎諭表)
7.사신을 보내어 조위함을 사례하는 표[謝遣使弔慰表]
8.서대를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犀帶表]
9.사 주식 표(謝酒食表)
10.보주를 수복하지 않음을 사례하는 표[謝不收復保州表]
11.몰입했던 인마를 돌려주심을 사례하는 표[謝回付沒入人馬表]
12.금띠를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金帶表]
13.사형부상서지추밀원사표(謝刑部尙書知樞密院事表)
14.사선사생일기거표(謝宣賜生日起居表)
15.사표(謝表)
16.물장(物狀)
17.광주에서 사례하여 올리는 표[廣州謝上表]
18.이인실의 대필로 대사성 겸 직문하성 충태자 좌서자를 사례하는 표[代李仁實謝大司成兼直門下省充太子左庶子表]
19.회례문을 비밀히 아룀을 사례하는 표[謝密進廻儀表]
20.석전에 배석함을 사례하는 표[謝釋奠陪位表]
21.사보유표(謝報諭表)
22.대성악 익히기를 허락함을 사례하는 표[謝許習大晟樂表]
23.좌정언ㆍ지제고를 제수하심을 사례하는 표[謝左正言知制誥表]
24.물품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物表]
25.사선유표(謝宣諭表)
26.금 나라에 들어가 영접사를 보내 주심을 사례하는 표[入金謝差接伴表]
27.사사조서겸약물표(謝賜詔書兼藥物表)
28.조회에 참예했다가 객성막에 들렸을 때 술과 음식과 옷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朝叅次客省幕賜酒食衣對表]
29.사관연표(謝館宴表)
30.관반을 보내 주심을 사례하는 표[謝差館伴表]
31.빈관의 큰 잔치를 사례하는 표[謝館大宴表]
32.사 화연 표(謝花宴表)
33.원단의 어연에 초청했음을 사례하는 표[謝正旦赴御宴表]
34.춘번주-D001과 채승(綵勝)주-D002을 하사함을 사례하는 표[謝春幡勝表]
35.계해년에 북조에 들어가 조정하는 사절로 수제(修製)로 가면서 본국을 조사하는 날에 올린 사례하는 표[癸亥年入北朝賀一使修製本國朝辭日謝表]
36.조사하는 날 옷과 말과 예물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朝辭日衣對鞍馬禮物表]
37.빈관의 전송연을 사례하는 표[謝館餞宴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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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전(表箋)
1.조사할 날을 지휘하는 어필을 사례하는 표[謝御筆指揮朝辭日表]
김부식(金富軾)
배신(陪臣) 모 등은 아뢰옵나이다.
이달 21일에 중사(中使) 모가 와서 전하옵는 칙지(勅旨)를 받들어 보오니, 성상께옵서 신등(臣等)이 사퇴를 진걸(陳乞)함에 대하여 특히 어필로 지휘를 내리시어 2월 하순에 조정에 하직하고 3월 초에 출발함을 허가하심이었나이다.
봉서(封書)를 올려 우러러 호소하여 바야흐로 황공한 근심을 품었사온대 윤음(綸音)을 굽어 내리시어 분에 넘친 정녕한 가르침을 보이시니, 고마우신 은명(恩命)을 받자옴에 몸둘 바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중사(中謝)
신이 멀리 경화(京華)에 나아와 사관(使館)에 편안히 묵으며 서울 생활이 심히 즐거워 이럭저럭 지내다 돌아가기를 잊었사오나, 사신이 할 일을 다 마쳤사옴에 더 묵고자 하여도 묵을 길이 없사와, 어쩔 수 없이 말씀을 올려 우러러 천일(天日)의 위엄을 바라옵고 얇은 얼음 밟듯 깊은 못가에 다다른 듯하였사온대 뜻밖에도 성자(聖慈)께옵서 저희들의 청을 허락하시고 총감(聰鑑)으로 하정(下情)을 들어주시어, 부월(斧鉞)의 주(誅)를 가하지 않으시고 사륜(絲綸)의 특지(特旨)를 내리시오니, 창황히 어명을 받자옴에 감격이 회포에 사무치옵나이다.
돌아보옵건대 가을 제비가 돌아가기 전에 아직 큰 집을 의지하고 있사오며, 지친 노둔한 말이 장차 물러갈 것을 생각하니 임의 난간이 더욱 그립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신 은혜를 살아서나 죽어서나 어찌 다 갚사오리이까.
2.이학에서 청강하고 겸하여 대성악을 봄을 사례하는 표[謝二學聽講兼觀大晟樂表]
김부식(金富軾)
배신(陪臣) 등은 아뢰옵나이다.
어제 칙지(勅旨)를 받들어 보오니, 성상께옵서 신등에게 태학(太學)에 나아가 대성전(大成殿)에 참배하고, 인하여 경의(經義)를 청강하고 겸하여 대성 아악(雅樂)을 보라 하심이었나이다.
제제(濟濟)한 의관의 모임을 우상(虞庠 태학(太學))에서 볼 수 있고 양양(洋洋)한 아송(雅頌)의 소리를 겸하여 주악(周樂)을 들었사오니, 물러와 비상한 총우(寵遇)를 생각하옴에 엎드려 분수에 넘치는 부끄러움이 더하옵나이다. 중사(中謝)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천하의 재주는 교육을 기다린 뒤에 쓰여지고 성인의 말씀은 강습을 해야 밝아지나니, 그러므로 선왕(先王)이 학(學)을 세워 사람을 만들고 사해(四海)가 그 풍(風)을 이어 선(善)한 데로 옮겼나이다. 그러나 성인과의 연대가 더욱 멀어지고 덕이 차츰 아래로 쇠하여져, 진대(秦代)에 글이 모두 불타고 한조(漢朝)에 도(道)가 뒤섞였으며, 허무(虛無)의 설이 진송(晉宋)에 성해지고 성률(聲律)의 문(文)이 수(隋)와 당(唐)에서 어지러이 일어나, 방술(方術)이 거의 윤몰(淪沒)할 지경에 이르고 습속이 오래 비근(卑近)함에 젖었더니, 우리 송(宋)나라에 이르러 다시 사문(斯文)을 진작(振作)하게 되었나이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황제께옵서 우뚝 신성하신 용자(容姿)로 조종(祖宗)의 뜻을 이으시어 백년의 예악(禮樂)을 일으키시고 삼대(三代)의 대학을 복구하시니, 저 중아(中阿)에서 재주를 기름이 도(道)가 있음을 즐기고, 이 치묘(菑畝)에 쓴 나물[芑]을 캠이 일정한 곳이 없음을 기뻐하여, 많은 선비들이 무리를 지어 나아가고[彙征]작은 학생들도 나아갈 곳이 있어 현가(絃歌)를 읊는 소리가 사방에 들리고, 학교의 규모가 전고(前古)에 없는 듯하오니, 중국에 있어서도 실로 만나보기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먼 곳의 사람이 어찌 요행으로만 볼 수 있사오리이까. 신등이 홀로 지극한 행운을 인연으로 이 비상한 영광을 탐내어 교문(橋門)에 발을 들여 놓으니, 호향(互鄕)이 함께 나아가는 것과 유사하고 강석(講席)에 옷을 걷으니[摳衣] 자공(子貢)이 듣지 못하던 것 같았으며, 다시 순허(簨簴 갖가지 음악)의 마당에 노닒에 아득히 소균(韶鈞 소(韶)는 순(舜)의 악(樂)이고, 균(鈞)은 천제(天帝)의 악이다)의 연주를 듣는 듯하였나이다.
옛날에 회이(淮夷)가 와서 공물을 바칠 때 계례(季禮)가 보기를 청했사오나, 이는 다 천자의 뜰에 오르지 못하고 다만 방군(邦君 제후(諸侯))의 일만 본 것이오니, 신의 받자온 예우(禮遇)에 비하면 저들이 받은 것은 족히 이를 것이 못 되옵나이다. 양묵(楊墨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에서 도망하여 반드시 정도로 돌아옴은 비록 잘 배운 이에는 부끄럽사오나, 이적(夷狄)에 있으면 나아오게 하는 지극한 어지심에 깊이 감사하오며, 감격되어 손뼉 치며 송구하여 명심함이 무엇으로도 비길 데 없사옵나이다.
[주-D001] 방술(方術) :
한대(漢代)에는 순수한 유학(儒學)이 아니고 도가(道家)인 황로학(黃老學)을 섞었고, 진송 시대(晉宋時代)에는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思想)이 성하였고, 수(隋)ㆍ당(唐) 때에는 부화(浮華)한 변려문(騈儷文)과 율시(律詩)가 성하였다.
[주-D002] 백년의 예악(禮樂) :
한(漢)나라 초기에 예악(禮樂)을 제정하려고 선비들을 부르니, 노(魯)나라의 두 선비[兩生]가 오지 않고서, “예악은 덕을 쌓은 지 백년이 되어야 일으킬 수 있다.” 하였다.
[주-D003] 치묘(菑畝) :
《시경》 청아편(菁莪篇)의 중아(中阿)와 채기편(采芑篇)은 모두 인재를 양성하고 등용함을 읊은 시이다.
[주-D004] 많은 …… 나아가고 :
“현인(賢人)을 쓰면, 띠뿌리를 뽑을 때 여러 뿌리가 한꺼번에 따라 일어나 듯 여러 현인이 무리를 지어 나아간다[㧞茅彙征].” 하였다. 《周易》
[주-D005] 교문(橋門)에 …… 놓으니 :
태학(太學) 둘레에 물이 돌도록 못을 파고 교문을 세웠다. 한 명제(漢明帝)가 태학에 가서 친히 경전(經典)을 잡고 질문하니, 교문(橋門)에 둘러서서 구경하는 이가 수만 명이었다.
[주-D006] 강석(講席)에 …… 걷으니 :
제자가 선생의 앞에 들어갈 때에는 긴 옷자락을 걷고 조심히 들어간다는 뜻이다.
[주-D007] 자공(子貢)이 …… 같았으며 :
“자공이 말하기를, 부자(夫子 공자(孔子))께서 성(性)과 천도(天道)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듣지 못하였다.” 하였다. 《論語》
[주-D008] 양묵(楊墨)에서 …… 돌아옴 :
“묵자(墨子)의 도에서 도망하면 반드시 양자(楊子)의 도에 돌아오고, 양자의 도에서 도망하면 반드시 유도(儒道)로 돌아온다.” 하였다. 《孟子》
[주-D009] 이적(夷狄)에 …… 하는 :
양웅(揚雄)의《법언(法言)》에, “문장(門墻)에 있으면 몰아내고, 이적(夷狄)에 있으면 나오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가까이 문장(門墻)에 있는 자는 조금이라도 틀리며 내쫓고, 이적(夷狄)에게는 웬만한 것은 용서한다는 뜻이다.
3.‘태평예람도’를 선시하심을 사례하는 표[謝宣示太平睿覽圖表]
김부식(金富軾)
배신 모 등은 아뢰옵나이다.
이달 11일에 성상께옵서 선화전(宣和殿) 태평예람도 두 책과 성평곡연도(成平曲宴圖)ㆍ선산금궐도(仙山金闕圖)ㆍ봉래서애도(蓬萊瑞靄圖)ㆍ고야도(姑射圖)ㆍ기봉산기도(奇峯散綺圖)ㆍ촌민경세도(村民慶歲圖)ㆍ부자행단도(夫子杏壇圖)ㆍ춘교경목도(春郊耕牧圖)ㆍ옥청화양궁경운도(玉淸和陽宮慶雲圖)ㆍ균장종학도(筠莊縱鶴圖)ㆍ추성흔락도(秋成欣樂圖)ㆍ백옥루도(白玉樓圖)ㆍ당십팔학사도(唐十八學士圖)ㆍ하경풍념도(夏景豐稔圖)ㆍ태상도개도(太上度開圖) 각 1권을 신등에게 선시하셨나이다.
북신(北宸 임금)의 은혜로운 사랑이 내리는 비에 살이 젖듯 동벽(東壁)의 도서(圖書)가 찬란히 눈에 넘치오니, 특별한 조우(遭遇)를 살피옴에 송구하여 몸이 편안하지 못하도소이다. 중사(中謝)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황제께옵서 목청(穆淸)에 소요(逍遙)하시며 신성(神聖)에 출입하시어 날마다 새로우신 성덕(盛德)은 조심조심[持盈] 이룬 것을 지키시고[守成] 하늘에서 타고나신 많은 재능은 인(仁)을 의지하고 예(藝)에 높으시어 혹 자연의 경치를 보시고는 회포를 일으키기도 하시고 혹 아득한 경지에 뜻을 두시면 흰 비단을 찢어 형상을 그리시기도 하여 정화(精華)가 오채(五彩)로 드러나고 화제(畵題)를 붙이시고, 발문(跋文)을 쓰시니 문채가 삼신(三辰 해ㆍ달ㆍ별)보다 더 빛나나이다.
이렇듯 이미 그 작품이 환하게 빛나오니 과연 창작(創作)한 자를 성인(聖人)이라 이르올지라, 제궁(帝宮)에서나 비밀히 완상해야 마땅할 작품이온대 어찌 속안(俗眼)으로 관람할 것이겠습니까. 그렇거늘 오직 저희들 먼 곳 사람들이 잘못 두터운 성총(聖寵)을 받자와, 사신의 밀명(密命)이 번갈아 도로에 오가고 보한(寶翰)과 진편(珍篇)이 여관(旅館)을 빛나게 하오니, 푸른 하늘에 나타나는 조화의 형상(形象)을 비록 조그만 댓통(竹管)으로 엿보라 하시오나 가없는 큰 바다에 다만 대양(大洋)을 바라보는 부끄러움이 있을 뿐, 송구하고 영광스럽고 감격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주-D001] 큰 바다에 …… 바라보는 :
“하수의 신[河伯]이 하수가 큰 줄만 알았다가 바다를 바라보고는 탄식하였다.” 한다. 《莊子》
4.집영전 봄 잔치에 부르심을 사례하는 표[謝赴集英殿春宴表]
김부식(金富軾)
배신(陪臣) 모 등은 아뢰옵나이다.
2월 29일에 성상께옵서 특히 신등과 삼절인(三節人)에게 집영전 봄 잔치에 참석하라는 칙지(勅旨)를 받들었나이다.
「술과 음식에 필수(必須)함」은 《주역(周易)》 수괘(需卦)에, “군자(君子)의 빛이라.” 하였고, “너희들 충성되고 아름다운 자들과 잔치한다.” 하고,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성인(聖人)의 노래가 있사오나, 이 우악(優渥)하신 성자(聖慈)를 받드옴에 총영(寵榮)이 지극하도소이다. 중사(中謝)
신등이 천재(千載)의 아름다운 때를 당하여 일방(一方)의 보잘것없는 공물(貢物)을 바치려고 개린(介鱗)의 천한 몸이 외람되이 원앙과 난새[鸞]를 따르고, 규곽(葵藿 해바라기) 같은 작은 정성으로 다행히 천일(天日)을 의지하여 주실(周室)의 사물(賜物)을 여러 번 받고 한정(漢廷)의 포(酺)를 물리도록 먹었나이다. 하물며 지금 중춘(仲春)의 이 철에 구름[雲]과 용(龍)이 모여 같이 즐기시오니, 은밀한 자리에 오르시어 굽어 물고기가 마름 사이에 있는 즐거움을 같이하시고, 금잔으로 술을 내리옵시니 더욱 담로(湛露)의 은택이 지극하온지라, 분수에 지나침이 너무도 심하여 옛날에도 실로 드문 일이로소이다.
이는 대개 성상께옵서 성덕(盛德)으로 아울러 포용하여 주시고 크나큰 밝은 빛을 옆으로 비쳐 주시어 먼 데를 회유(懷柔)하여 가까이 하심에 이미 삼대(三代)의 풍을 행하시고, 한결같이 같은 인(仁)으로 보아 구이(九夷)를 더럽다 이르지 않고, 하방의 사신에게도 남김이 없이 특수한 은혜를 입힘이오니, 아무리 몽매한 저희들로서도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오며, 보잘것없는 무리들이 논수(論酬)할 길이 없사옴을 부끄러워하옵나이다.
[주-D001] 주실(周室)의 사물(賜物) :
주(周)나라 천자가 제후(諸侯)에게 각기 내려준 물건이 있었다.
[주-D002] 한정(漢庭)의 포(酺) :
포(酺)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조정에서 민간에 술과 고기를 내려주어 실컷 먹게 하는 것인데, 한 문제(漢文帝) 때에 크게 행하였다.
[주-D003] 물고기가 …… 즐거움 :
《시경》의 어조(魚藻)편에, “물고기가 마름[藻]에 있다. 왕은 호경(鎬京)에 있다.” 하였는데 천자가 제후를 잔치하는 시다.
[주-D004] 담로(湛露)의 은택 :
《시경》의 담로편(湛露篇)은 천자가 제후(諸侯)에게 잔치하여 줌을 읊은 시이다.
[주-D005] 구이(九夷)를 …… 않고 :
공자(孔子)가 구이에 가서 살려 하매 누가 묻기를, “누추하여 어찌하렵니까.” 하니 공자는, “군자가 거하는데 어찌 누추함이 있으랴.” 하였다.
5.사 회의 표(謝回儀表)
김부식(金富軾)
배신 모 등은 아뢰옵나이다.
금월 모일에 성상께옵서 신(臣)이 토산물(土産物)을 진공(進貢)하고 돌아감에 즈음하여 신에게 비단 5천 7백 30필을 하사(下賜)하옵시고, 겸하여 상중절원(上中節員)에게 각기 하사품이있었나이다. 총장(寵章)이, 이렇듯 많사오니, 정신이 떨리옵나이다. 중사(中謝)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주역(周易)》에, “묶은 비단[束帛]으로 산림(山林)을 빛나게 한다” 함은 대개 고일(高逸)한 선비를 높임이요, 《시경(詩經)》에 “폐백으로 뜻을 펴노라.” 함은 특히 충성되고 아름다운 신하에게 후히 줌이니, 어찌 보잘것없는 먼 곳의 무리들이 지나치게 후한 선물을 받자오리까.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臣)이 명정 천자의 조정에 조공의 예를 닦고 사관(使館)에 편안히 묵으며 후하신 예우와 남다른 은혜에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어리석은 정성과 너절한 충심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마름나물도 혹 잡수실까, 굵은 비단도 혹 입으실까 받들고 나서 물러와 번거로움만 끼친 것을 생각하옵고 위로 성덕과 위엄을 두려워하였사온데 이제 뜻밖에도 성상께서 인자하신 마음으로 밀어 주시고 각별하신 반사(頒賜)를 내리시오니, 이로써 많이 감추어 두는 경계[多藏之戒]를 살피겠사오며, 굽어 밧줄로 묶어 싣고 돌아간다는 기롱(譏弄)을 부끄럽게 여기나이다.
이는 대개 성상께옵서 도(道)가 어느 황제보다도 앞서시고, 인(仁)이 해외(海外)에까지 젖어들어, 널리 포용해 주시어서 오는 것을 애당초 막지 않으시어 관대하여 차차 이루게 하고 짐짓 후하게 주어 돌아가게 하심이오니, 그러므로 이 우악(優渥)한 성택(聖澤)이 비 내리듯 이 미천(微賤)한 저희들에게 끼치옵는지라, 천지와 부모의 은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사오니 사작(蛇雀)과 견마(犬馬)의 보은은 사나 죽으나 기약하기 어렵도소이다.
[주-D001] 묶은 비단[束帛] …… 한다 :
속백(束帛)은 폐백인데 산림에 숨어 사는 고상한 선비를 초빙한다는 뜻이다.
[주-D002] 많이 감추어 두는 경계[多藏之戒] :
《노자(老子)》에, “많이 저장하면 반드시 많이 잃는다.” 하고 경계한 말이 있다.
[주-D003] 밧줄로 …… 기롱(譏弄) :
옛말에, “빈 자루를 들고 왔다가 밧줄로 묶어서 많이 싣고 간다”는 말이 있다.
[주-D004] 사작(蛇雀)과 …… 보은 :
옛날에 수후(隋侯)가 뱀을 구해 주었더니 뱀이 구슬을 가져다 갚았고, 양진(楊震)은 누른 새를 구하여 주었더니 새가 전어(鱣魚)를 물어다 주었다. 그것은 자손이 귀히 될 징조였다 한다.
6.사 장유 표(謝獎諭表)
김부식(金富軾)
배신 모는 아뢰옵나이다.
이달 10일에 중사(中使) 모가 이르러 전하는 칙지(勅旨)를 받자오니, 성상께서 신(臣)이 말 한 필을 만수관(萬壽觀)에 바쳐 성수(聖壽) 만년을 축원하였다 하여 특히 조서(詔書)를 내려 장유(獎諭)하심이었나이다.
돌보시는 사랑이 특별히 깊으시어 굽어 윤음(綸音)을 내리옵시고, 포장(褒獎)이 우악(優渥)하시니 실로 곤불(袞黻)의 영광보다 더하옴에 어명을 받잡고 너무나 황공하여 제 몸을 어루만지며 두려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나이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이 만리 밖에서 구름을 점치며 와서 구빈(九賓)에 외람되이 참가하옴에 은총은 주아(周雅)의 용(龍)이 된다는 것 보다 더 깊고, 상(賞)은 희경(羲經 주역)의 말을 줌보다도 넘쳐서 비록 하늘과 땅이 덮고 실어 초목이 다 그 영화를 입사오나, 산과 바다처럼 높고 깊사온대 티끌과 물방울 같이 작은 것이 어찌 더함이 있사오리이까. 다만 복지(福地)에 신령(神靈)을 빌고 화봉인(華封人)의 축수를 본받고자 하였는데 뜻밖에도 한낱 정성이 위로 구중(九重)에 들려 이처럼 보훈(寶訓)을 하사하시고 지회(至懷)를 보이시오니, 높고 밝은 운한(雲漢)의 남은 빛에 목욕함을 다행인 줄을 알겠사옵고 머나먼 강호(江湖)에서도 일찰(一札)을 간직하게 됨을 영광을 삼겠사오며 우러러 내려주신 은총을 살피옴에 감격한 눈물을 금할 길이 없나이다.
[주-D001] 곤불(袞黻)의 …… 더하옴에 :
공자가《춘추(春秋)》를 짓는데 인물에 대하여 한 글자로 표창함이 곤룡포[袞]보다 더 빛났다고 한다.
[주-D002] 구름을 점치며 :
당나라 때에 오색 구름이 나타나니 태사(太史) 장선(張璇)이 점쳐서 말하기를, “송(宋)의 분야(分野)에 있으니 이 뒤 1백 60년에 성인이 그 땅에 날 것이다.” 하더니 과연 그 시기에 송 태조(宋太祖)가 났다.
[주-D003] 구빈(九賓) :
천지의 조정에 늘어선 아홉 가지 예복(禮服)을 입은 손님들.
[주-D004] 주아(周雅)의 …… 것 :
《시경》육소(蓼蕭)편은 천자가 제후를 잔치하는 시인데, “이미 군자를 보니 용이 되고 빛이 된다.” 하였다.
[주-D005] 희경(羲經)의 말을 줌 :
《주역》진괘(晉卦)에, “제후가 천자의 주는 말을 받는다.” 하였다.
[주-D006] 높고 밝은 운한(雲漢) :
임금의 글을 하늘에 밝게 나타난 은하수에 비한다.
7.사신을 보내어 조위함을 사례하는 표[謝遣使弔慰表]
김부식(金富軾)
멀리 해우(海隅)에서 친상(親喪)을 당하여 애통이 망극하옵던 중, 신극(宸極 황제)이 진련(軫憐)하시어 특히 위자(慰藉)를 내리셨나이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臣)이 아직 어린 몸으로 갑자기 이 같이 큰 상사(喪事)를 만나, 비록 달로써 해를 바꾸는 상례(喪禮)의 권도(權道)를 좇으오나 이처럼 하늘 끝까지 가는 애통을 가슴에 품고, 슬프게 호곡(號哭)하기에 정신이 없어 아직 고부(告訃)도 하지 못하였사온대 뜻밖에 사신을 보내시어 덕의(德意)로써 하유(下諭)하옵시니, 조사(詔辭)가 온후하옵시고 예물이 풍성하십니다. 명을 받자옴에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옵고 오직 회포를 어루만져 느끼며 목메옵나이다.
[주-D001] 달로써 해를 바꾸는 상례(喪禮) :
3년상을 3월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8.서대를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犀帶表]
김부식(金富軾)
신 모는 아뢰옵나이다.
어제 주대(奏對)차 명인문(明仁門) 막차(幕次)에 나아갔사온대, 내시(內侍) 병부 원외랑(兵部員外郞) 배경성(裵景誠)이 전하는 성지를 받들어 보니, 신을 내전(內殿)에 들이시어《주역(周易)》을 강하게 하옵시고 특히 홍정(紅鞓)과 금반(金鑻)과 반서요대(班犀腰帶) 한 조(條)와 도금(鍍金)한 은갑(銀匣)에 담은 홍인문라협복(紅印紋羅夾) 한 벌을 신에게 하사하심이었나이다.
구신(具臣)이 주대할 기회를 얻어 우러러 지척(咫尺)의 위엄을 뵈옵고 근시(近侍)가 칙지를 전하여 특히 총광(寵光)의 베풂이 계시오니, 엎드려 명을 받자옴에 황공하여 몸둘 곳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이 세계(世系)가 한미(寒微)하고 재질이 옹졸하여 젊어서 일찍이 도(道)를 사모하여 궐리(闕里 공자(孔子)의 마을)에 좇아 놀기를 즐거워하였고, 늙어서도 서책을 버리지 않았으나 걸핏하면 윤인(掄人)의 비양을 들었사오며 업(業)을 부지런히 하였으나 세상에 이름이 들리지 않고 벼슬이 오래었으나 시국에 도움이 없었사온대 갑자기 특이한 은혜를 입삽고 나아가 한가한 거처에 모시게 되었사오나, 스스로 돌아봄에 환영(桓榮)처럼 계고(稽古)하지 못한 몸이온데 어찌 공영달(孔穎達)과 같이 경서를 강하오리이까. 금(黔) 땅의 나귀의 재주가 이미 다하고하백(河伯)의 바다 바람[望]이 부질없삽더니, 뜻밖에도 성상께서 어부(御府)의 진미(珍味)를 주시니 남들은 영화라고 하오나 신은 스스로 부끄럽사옵니다. 이것은 대개 전하께서 총명은 하늘에서 타고나셨고, 덕업은 날로 새로워져서 선왕으로부터 많이 들은 것을 구하시고 어리석은 자가 한 가지 얻은 것을 생각하시어 드디어 마음속에 쌓인 것을 살피시고 또 분수에 넘치는 것을 엎드려 만나게 된 것이니, 우러러 생각하옵건대, 이 은혜를 어찌 갚으오리이까. 기마(騏馬)는 늙으면 비록 노태(駑駘)와도 다투지 못한다고 하나 썩은 흙덩이는 능함이 없다고 해도 혹 지균(芝菌)을 놓을 수가 있는 것이오니, 거의 피곤함을 다해서 조석(朝夕)으로 게으르지 않겠나이다.
[주-D001] 윤인(掄人)의 …… 들었사오며 :
“제 환공(齊桓公)이 당상(堂上)에서 글을 읽는데 당하(堂下)에서 수레바퀴를 만들던 대목(大木)이, ‘임금의 읽는 것이 무슨 글입니까.’ 하니 ‘옛 성인의 글이다.’ 하였더니, ‘그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신(臣)이 대목질을 하는데 기술을 자식에게 전하려 하나, 기구는 줄 수 있지마는 손을 빠르게 더디게 마음대로 놀리는 기술은 줄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이 옛사람도 글만을 전할 뿐이요, 미묘한 도리는 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였다.”《莊子》
[주-D002] 환영(桓榮) :
한 명제(漢明帝) 때에 환영이 경학(經學)에 통한 선비로 황제의 스승이 되고 태학(太學)에서 교수하였다. 임금에게서 상품으로 받은 많은 물품을 자손에게 보이며, “이것은 내가 옛글을 상고[稽古]함이다.” 하였다.
[주-D003] 금(黔) 땅의 …… 다하고 :
공영달(孔穎達)은 당 태종(唐太宗)의 명령을 받아 《오경정의(五經正義)》를 편찬하였다.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글에, “금(黔) 땅에는 당나귀가 없는데, 한 사람이 배에 싣고 가서 산에 놓았더니 범이 처음에는 안 보던 큰 짐승이므로 놀래었다가 점점 가까이 익숙해지자 나귀가 발로 찼다. 범은 나귀의 재주가 이뿐이로구나 하고 잡아먹었다.” 하였다.
9.사 주식 표(謝酒食表)
김부식(金富軾)
신 모는 아뢰옵나이다.
이달 11일에 밤에 숙직으로 들어간 내시(內侍) 모관 모가 전지(傳旨)를 받들어 특히 신에게 주식(酒食)을 내리셨으므로, 삼가 은택을 받듦에 엎드려 황송하옵니다. 중사(中謝) 그릇이 두소(斗筲)같이 얕음으로써 찬란하게 괴정(槐鼎)에 참예했사오니 술과 누룩[麴]은 일찍이 은(殷)나라 정승의 꾀가 없는데 사냥하지 않고 어찌 갖옷을 입겠습니까. 다만 위(魏)나라 사람의 풍자[刺]함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임금의 은혜를 갚기 어려움을 부끄러워하였는데 또 외람되게 대(臺)에서 먹이는 것이 더함을 받고 엎드려 이러저러한 은총을 입었사오니, 이것은 대개 전하께서 훈훈한 어지심으로 바로 정직함을 좋아하셔서입니다. 공로 있는 신하를 사랑하심은 밥을 미루어 한신(韓信)을 대접함과 같음이요, 높은 선비를 존경하심은 단술을 베풀어 목생(穆生)을 대접함과 같은 것입니다. 이 부재(不才)를 사랑하시어 이런 기특한 대우를 입사오니, 이미 취하고 이미 배부름에 어찌 이 영광에 감격되지 않사오리이까. 산과 같이 언덕과 같이 오래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고 아름다움을 돌리옵기를 스스로 기약하옵나이다.
[주-D001] 밥을 …… 같음이요 :
한(漢)나라 한신(韓信)이 대장으로 큰 공을 이루어 제왕(齊王)에 봉하였는데, 항우(項羽)가 사람을 시켜 한왕(漢王)을 배반하고 중립(中立)하기를 권하였다. 한신은, “한왕이 자기의 밥을 미루어 나를 먹이고 옷을 벗어 나를 입혔으니 은혜를 배반할 수 없다.” 하였다.
[주-D002] 단술을 …… 같은 것 :
한(漢)나라 초원왕(楚元王)이 목생(穆生)을 우대하여 목생이 술을 먹지 못하므로 연회 때에는 단술을 따로 마련하였다.
10.보주를 수복하지 않음을 사례하는 표[謝不收復保州表]
김부의(金富儀)
신(臣) 휘(諱)는 아뢰나이다.
9월 24일에 선유사(宣諭使) 정강군 절도사 동첨서추밀사(靜江軍節度使同僉書樞密事) 고백숙(高伯淑) 등이 와서 전하는 밀지(密旨)를 받들어 보오니, 성상께서 다시 보주성(保州城 의주(義州))을 수복(收復)하지 않겠다는 선유(宣諭)를 내리심이었나이다.
하늘과 땅은 덮고 싣되 사사로움이 없으므로 동물과 식물이 각기 제 성명(性命)을 자유롭게 안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고, 제왕(帝王)은 너그럽고 크신 도량으로 만물을 대우하므로 신민이 그 시종(始終)을 보전한다 하옵기에 일찍 이 말씀을 음미(吟味)하였더니 이제야 바야흐로 그것이 사실임을 징험하였나이다. 중사(中謝)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고구려의 본래 땅은 주로 저 요산(遼山)이었사오나 평양의 옛 국토는 압록강을 한계(限界)로 하여 역대에 여러 번 변천이 있었나이다. 우리 조종(祖宗)에 이르러 마침 북국(北國)이 겸병(兼倂)해 와서 삼한(三韓)의 분야까지 침노한 뒤로 비록 인호(鄰好)를 강화(講和)하였으나 옛 강토를 돌려주지 않았었고, 그 뒤 천명(天命)이 새로워지고 성왕(聖王)이 일어나시자 군사들의 기의(起義)를 보게 되어 성보(城堡)에 사람들이 없게 되었나이다.
신의 아비 선왕(先王)이 재위할 때 대조(大朝)의 변신(邊臣) 살하[沙乙何]가 와서 선황제(先皇帝)의 칙지(勅旨)를 전하였사온데, 그 칙지의 말씀이, “보주는 본시 고려의 땅이니 고려가 거둠이 가하다.” 하였나이다. 선왕이 이에 그 성지(城池)를 수리하고 민호(民戶)를 채웠사오나 그때는 소방(小邦)이 아직도 상국(上國)에 신속(臣屬)하기 전이었으므로 선제께옵서 특히 이웃의 번국(藩國)을 총유(寵綏)코자 훈사(訓辭)를 내리시고 옛땅을 주심이었나이다.
그 뒤 못난 신(臣)이 왕위를 잇고 성상께서 제위(帝位)에 오르시자, 해와 달같이 환한 빛을 바라보고 바람과 우레 같은 호령에 놀라, 탐인(撢人)의 선유를 기다리지 않고도 상국의 덕음(德音)을 갖추어 인식하였삽고, 육가(陸賈)가 오지 아니하여도 공손히 신하의 직분을 닦아 왔사온데, 이제 황제께옵서 크신 밝음으로 곁을 비추시고 신령하신 지혜로 깊이 살피시어 굽어 충신(忠信)의 정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세미한 사고를 책망하지 않으신 채 이미 조서를 내리시어 권장(勸獎)을 하셨음에도 뒤이어 사신을 보내어 곡진히 신충(宸衷)을 알리시고 고루 은지(恩旨)를 선유하시니, 생각하옵건대, 이 동해 가의 촌토(寸土)는 본시 하국(下國)의 변방(邊方)이온대 비록 한때 글안(契丹)에게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만 이미 선대(先代)의 은명(恩命)을 받자온 일이 있으므로, 특히 우악(優渥)한 성의(聖意)로써 그대로 저희 봉토(封土)에 속하게 하심인가 하옵나이다.
또 선유에, “종래 양계(兩界)의 인구가 있는지 없는지 조사 조회[刷會]해서 교부(交付)하라.”는 것이었사온데, 변인(邊人)이 유이(流移)함은 대개 신의 아비 선왕 때의 일로써, 그때 신의나이 매우 어려 미처 알지 못하였사오나 듣건대 그 인구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거의 생존한 자가 없다 합니다. 이제 밀지(密旨)를 받자오니, “편의대로 재단(裁斷)하라.” 하셨으니, 이는 곧 대조(大朝)의 은덕이 고금에 없는 일이온지라, 어찌 요행으로 이 같은 은덕을 받은 것이겠습니까. 대개 성군(聖君)을 만난 덕택인가 하옵나이다.
깊은 어지심과 큰 의(義)를 이루 명언(名言)할 수 없사오니, 작은 힘과 엷은 재질로 어찌 이 은혜를 갚사오리이까. 오직 마땅히 춘추(春秋)의 조공하는 일을 닦고 준칙(準則)의 상도를 지켜, 온 나라를 들어 즐거이 상국에 조공하고 자손에게 전하여 길이 변치 않기를 맹세하오리니, 천일(天日)이 위에 있는지라 일편단심 딴마음이 없나이다.
[주-D001] 탐인(撢人) :
주대(周代)의 벼슬 이름. 천자의 명을 받아 천하의 제후국을 순방하여 천자의 뜻을 고유하는 직책이다.
[주-D002] 육가(陸賈) :
한 고조(漢高祖) 때의 유명한 변사(辯士)로 두 번 남월(南越)에 사신으로 가 남월왕(南越王)을 달래어 복종시킨 공이 있다.
11.몰입했던 인마를 돌려주심을 사례하는 표[謝回付沒入人馬表]
김부의(金富儀)
성덕(聖德)이 바야흐로 더하옴에 큰 나라는 두려워하고 작은 나라는 사모하여 모두 나아가오니 용광(龍光)이 널리 조그만 물건이나 작은 것까지 빠뜨림없이 비쳐 주십니다. 성스러운 임금 만났음을 생각하옴에 경사롭고 의지되옴이 참으로 깊소이다. 중사(中謝)
신이 듣잡건대, 《서경(書經)》의 비서(費誓)에, “말과 소가 얼려 달아나거나 노비(奴婢)가 달아나더라도 국경을 넘게 하지 말고 공경히 되돌리라.” 하였사온데, 이는 비록 제후의 일이나 그 말이 분전(墳典 고대의 전적(典籍), 삼분(三墳), 오전(五典))에 맞고 그 가르침이 제왕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그것을 성인의 글에 엮어 넣고 천자의 명령 다음에 두어서 만세(萬世)의 준칙을 삼아 육경(六經)이라 일컫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이제 성명(聖明)이 발흥(勃興)하시어 위덕(威德)이 겸비하시니, 먼 데나 가까운 붙이들이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고, 이하(夷夏)의 백성이 모두 신첩(臣妾)이 되었나이다. 하물며 소국(小國)은 동해의 한 구석에 있어 번국(藩國)의 처지로 진작 하늘을 두려워하는 예(禮)를 다하였고, 상국에서 은혜를 베풀어 작은 것을 기르시어 이미 땅을 베어 주는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더구나 이제 또 황사(皇使)가 전하는 글을 받자오니, 더욱 성자(聖慈)가 만물에 젖음을 깨닫겠나이다. 변경(邊境)의 조그만 일도 이렇듯이 빠뜨리거나 잊지 않사오니, 이는 조정의 지극한 인(仁)으로 힘써 관후(寬厚)를 위주해서인 것입니다. 저 분전(墳典)에 실린 것들이 대개 제왕들의 행한 바이지만, 지금에 비교하면 족히 이를 바가 못 되옵나이다.
다만 생각하옵건대, 신이 고과(孤寡)한 몸으로 어떻게 성은(聖恩)을 갚사오리이까마는 지척(咫尺)에서 위엄을 우러러 뵈옵는듯, 다만 황명(皇命)을 배수(拜受)하오며 오직 춘추(春秋)로 바치는 조공의 일만은 남에게 뒤지지 않사오리니, 이 충근(忠勤)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은덕을 갚고자 하옵나이다.
[주-D001] 비서(費誓) :
비서는 제후(諸侯)인 노후(魯侯)의 글인데도 친자의 조정의 일만 기록하는 《서경(書經)》에 편입하였다.
[주-D002] 하늘을 …… 예(禮) :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것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였다. 《孟子》
12.금띠를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金帶表]
김부의(金富儀)
신 모는 아뢰옵나이다.
금월 일에 입내시(入內侍) 모관(某官) 모가 원(院)에 이르러 전하는 성지를 받들어 보오니, 신이 지난번에 정서군사(征西軍事)에 참예하였음으로 신에게 특히 구로과(毬路銙) 황금 요대(腰帶) 한 조(條)와 홍금의(紅錦衣) 분홍릉(粉紅綾) 탁리(托裏)와 토등갑(土藤匣) 황견복자봉(黃絹蝮子封) 한 벌을 하사하심이었나이다.
신권(宸眷)이 특히 후하시어 이은(異恩)을 문득 반사(頒賜)하시니, 공손히 성은(聖恩)을 받자옴에 황공함이 다만 깊을 뿐입니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이 천성이 우직(愚直)하고 태어남이 한미(寒微)하여 상호(桑弧)ㆍ봉시(蓬矢)를 매달아서 비록 남자의 뜻을 두었으나, 서생이므로 삼군(三軍)ㆍ오병(五兵)을 쓸 줄을 진실로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초 장수를 임명하여 출전할 때에 마땅히 능력 없는 자는 사퇴하여야 하였사오나, 신하된 자의 의(義)가 일을 선택함이 불가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은 목숨을 버리기를 꺼릴 수 없사옵기에, 감히 둔한 노마(駑馬)와 같은 몸을 채찍질하여 억지로 비호(飛虎)의 무리에 참가했었사온데, 마침 서부(西府)에 인물이 결핍하여 갑자기 가까운 반열에 위(位)를 채우게 되었사오니, 비록 상권(上眷)은 특수하였사오나 사심(私心)으로는 실로 난처하였나이다. 대개 갑옷을 입고 칼을 잡으면 비록 열사(烈士)의 재능이 없사오나, 적의 괴수를 사로잡고 흉측한 무리를 벤 것은 옛사람의 일을 본받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나이다. 뒤에 훈사(訓詞)로써 부임(赴任)하라 하옵고 막부(幕府)에서도 어서 출발하라 하옵기에, 드디어 운룡(雲龍)의 뜰에 뵈옵고 외람되이 참모의 요직에 있었삽더니, 의사(義師)가 우레같이 분격(奮擊)하여 요망한 도적을 하늘이 멸망케 해서 이에 죄인을 토벌하여 백성들을 조상하고 한편 장병들을 귀환시켜 위로하면서, 바야흐로 지인(至仁)의 거조를 경하하고 성덕(盛德)을 형용하는 노래를 올리기를 원하였나이다.
이제 뜻밖에도 잘못된 은전(恩典)으로 진기한 하사를 지나치게 내리시고, 윤언(綸言)으로 표창을 내리시니 어찌 다만 노사(魯史 춘추)의 포장(褒獎)뿐이오리이까. 보대(寶帶)로 영광을 더하오니 마치 원풍(元豐)의 총은(寵恩)을 받은 듯하여이다.
공이 없이 상을 받음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오나, 세상에도 없는 이 희한한 조우(遭遇)에 어찌 감격치 않으며 전에 없던 하사품에 깊이 마음에 새겨 두지 않사오리이까. 이 몸은 나라보다 가벼우니, 원하건대 몸을 죽여서라도 나라에 순(徇)하고자 하오며, 의(義)는 생(生)보다 중하오니 길이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하기를 맹세하나이다. 마땅히 시종(始終) 한 절개를 지켜 지우(知遇)의 큰 은혜를 저버리지 않사오리이다.
[주-D001] 상호봉시(桑弧蓬矢)를 매달아서 :
옛 풍속에 남자가 나면 뽕나무 활과 쑥대화살을 문에 달아 남자는 사방에 활동할 뜻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표시하였다.
[주-D002] 원풍(元豐)의……받은 듯 :
송나라 신종(神宗)의 원풍(元豐) 5년에 재상(宰相)의 계급에는 금띠를 주고, 육조(六曹)의 상서(尙書)ㆍ시랑(侍郞) 등의 계급에는 어선화대(御仙花帶)를 주었다.
13.사형부상서지추밀원사표(謝刑部尙書知樞密院事表)
김부의(金富儀)
재망(才望)이 평소에 가벼운 터에 총명(寵命)이 잘못 내리오니, 손사(遜謝)의 청을 올릴 수도 없사옵고 다만 황공한 회포만 깊도소이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이 서생 출신으로 경우(慶遇)를 입어 일찍 궁신(宮臣)의 열에 끼어 있다가 이윽고 시종(侍從)의 자리에 올랐사오나, 헛되이 세월만 보내고 아무런 공적도 없었사온데, 저번에 성상께서 태자(太子)로서 섭정(攝政)하시게 되어 순(舜) 임금 같은 아드님의 효성으로 요(堯) 임금 같은 부왕(父王)의 덕정(德政)을 지키시니 신과 같은 노둔한 재질도 총은(寵恩)을 입게 되었나이다. 문(文)은 상(常)ㆍ양(楊)이 아닌데 오래 윤음(綸音)을 연술하는 붓을 잡았고, 학(學)은 배(裵)ㆍ가(李)와 다른데도 문득 조서(詔書)를 초하는 자리에 있었사오니, 밝음은 자기를 아는 데에 부끄럽고 나아감은 여럿의 천거[師錫]를 받은 것이 아니었나이다. 하물며 이제 서경(西京)의 적(賊)이 거진 망하였으나 아직 다 멸망되지는 않았고, 육군(六軍)이 출정하였으나 아직도 싸움터에 머물러 있어 신 같은 용부(庸夫)도 군막(軍幕)에 참여하고 있사온데, 아직 개환(凱還)도 하기 전에 태지(台旨)를 이에 반포하사, 추밀원의 부(副)가 되어 잘못 국론(國論)에 참여하게 하시고, 또 겸하여 대리(大理 형법(刑法)을 맡은 관리)의 법을 잡게 하시며, 인하여 이궁(貳宮)의 반련(班聯)을 더럽히게 하옵시니, 이러한 중직(重職)들은 옛날에도 그에 적당한 인물이 어렵거늘 이제 이 어명을 받잡게 되었나이다.
비록 사퇴(辭退)를 간청하였사오나 성지를 돌이킬 수 없사오니, 스스로 돌아봄에 결연(缺然 만족하지 못함)하여 실로 두렵고 조심하는 심회를 품나이다. 어찌 감히 옛날에 배운 것을 따뜻이 데워 이 희기(稀奇)한 조우(遭遇)에 감격하지 않사오리이까. 비록 총명은 처음만 못하여 이미 취할 것이 없겠사오나, 논의(論義)는 반드시 옛것을 상고하여 속이지 않기를 스스로 맹세하오며, 혹 맹씨(孟氏)의 책난(責難)의 공손함을 사모하고 혹 급암(汲黯)의 습유(拾遺)의 뜻을 희망하여 나라를 저버리지 않고자 하오며 이로써 마음을 다하겠나이다.
[주-D001] 상(常)ㆍ양(楊) :
당나라 상곤(常袞)ㆍ양염(楊炎)이 동시(同時)에 지제고(知制誥)가 되어 문장을 잘 쓰므로 상양이라 칭하였다.
[주-D002] 배(裵)ㆍ가(李) :
소리(蘇李)의 오자(誤字)인 듯하다. 당 명황 때에 소미도(蘇味道)ㆍ이교(李嶠)가 한림원(翰林院)에 있었는데, 당시에 소리(蘇李)의 문장이라 하였다.
[주-D003] 맹씨(孟氏)의 책난(責難) :
맹자가 말하기를, “임금에게 어려운 일을 하기를 책(責)하는 것을 공손하다 이른다.” 하였다.
[주-D004] 급암(汲黯)의 습유(拾遺) :
한 무제(漢武帝)가 급암(汲黯)을 회양 태수(淮陽太守)로 내보내려 하니 급암은 “신이 대궐에 출입하면서 폐하의 허물된 것을 보충하여 빠뜨린 것을 주워드리겠습니다.” 하였다.
14.사선사생일기거표(謝宣賜生日起居表)
김부의(金富儀)
바닷가에 봉역(封域)을 지켜 다만 조공의 구실을 부지런히 하오며, 하늘 위에 신거(宸居)를 바라보면서 더욱 연궐(戀闕)의 마음을 간절히 가지옵나이다.
15.사표(謝表)
김부의(金富儀)
낳고 기른 부지런을 이날에 생각하며 어루만지시고 염려해 주시는 은총이 해마다 변치 않사오니, 우러러 사랑으로 어여뻐해 주시는 은총을 받자옴에 어찌 감려(感勵)를 이기오리이까.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황제께옵서 선왕(先王)의 업을 이으시고 성대(盛代)의 규모를 풍성케 하시어 위엄과 은혜가 아울러 행하시니, 이는 곧 하늘의 명을 받아 구위(九圍 구주(九州))에 법을 보임이요, 겸양하고 공손하여 자랑하지 않음으로 만국의 인심을 얻으심이로소이다. 그러므로 비록 번복(藩服)의 미신(微臣)에게도 환하게 비추심이 간격이 없으시어 특별히 친사(親使)를 보내셔서 굽어 생신을 기억해 주시고 위자(慰藉)하시는 따뜻한 말씀뿐 아니라 또한 이수(異數)의 반사품(頒賜品)까지 내리시오니, 베푸심이 보수를 구함이 아니온지라, 한갓 상성(上聖)의 은혜를 부끄러워하오며, 오래도록 잊지 않아 맹세코 외신(外臣)의 절개를 다하겠나이다.
16.물장(物狀)
김부의(金富儀)
건곤(乾坤)의 베푸신 은혜를 갚을 길이 없사와 티끌과 이슬 같은 작은 정성으로 이를 표하옵나이다.
앞에 적은 물건들은 본토 소산으로 만듦새가 기특하지 못하오니, 어찌 족히 내부(內府)의 진(珍)을 채우오리이까. 오직 이로써 제후의 공(貢)을 법(法)함이로소이다.
17.광주에서 사례하여 올리는 표[廣州謝上表]
윤언이(尹彦頤)
지난 병진(丙辰)년 5월에 중군(中軍 원수(元帥) 김부식(金富軾))의 탄주(彈奏)를 입어 칙지로 신의 관직(官職)을 면(免)하여 양주(梁州) 방어사(防禦使)의 직을 받아 신이 즉일로 달려갔삽고, 다음 무오(戊午)년에 성은(聖恩)으로 신에게 광주 목사 병마금할 관구학사 예부시랑(廣州牧使兵馬鈐鎋管句學事 禮部侍郞)을 제수(除授)하옵고 부임을 독촉하옵기에 경신(庚申)년 12월에 이르러 조사(朝謝)하게 하여 아울러 시행하여 지금 이미 재임중이옵나이다.
좌폐(坐廢)한 지 6년에 분수로 이미 만사(萬死)를 달게 여겼사온대 은명(恩命)을 받자와 일조에 이 몸이 다시 살아난 듯하오니, 하늘을 우러러 말이 막히고 제 몸을 어루만져 눈물을 뿌리옵나이다. 중사(中謝)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위에서 아래를 제어할 때 충성을 요구하지 않음이 없고, 신하가 임금을 섬길 때 기어이 신임을 받고자 하였으나, 반드시 그렇게는 안 되어 때로 혹 서로 어긋남이 있었었나이다. 주공(周公)은 유언(流言)을 면치 못하였고 강후(絳侯)는 결박을 당하였으며, 망지(望之)는 황제의 사부(師傅)였으나 마침내 독약을 마셨고, 굴원(屈原)은 왕의 친척이었지만 끝내 강물에 빠져 죽었사오니, 성현도 오히려 이와 같았는데 용렬하고 미세한 자야 어찌 족히 이르리이까.
신과 같은 자는 천품(天稟)이 워낙 비박(鄙朴)하고 천성이 치우치게 강하여, 지모(智謀)가 족히 제 몸도 갈망하지 못하였사오니 학술이 어찌 나라를 빛낼 수 있사오리이까. 젊어서 일찍이 요행으로 성고(聖考)께서 현량과(賢良科)의 급제를 주시옵시고 뒤에 다시 반연으로 폐하께서 요로(要路)에 발탁해 주시어 때로 혹 국정(國政)에 참여하고 자주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하게 되었나이다. 그리하여 신의 망령된 생각에는 때를 만났다 하여 지나치게 염려를 하고, 일을 만나면 곧 말하여, 일의 옳고 그른 것을 가리기엔 그 말을 듣거나 안 듣거나 살거나 죽거나를 돌아보지 아니하니, 선배들이 한심히 여기고 후생들이 이로써 지목하여, 온갖 중상ㆍ모략으로써 덧붙여 글을 꾸며 탄핵(彈劾)의 상소가 여러 번 위에 들려 신을 죽임이 가하다 하였나이다. 인왕(仁王)께서 신의 우직함을 아시오나 중론(衆論)을 어쩔 수 없어 중론에 의해 먼 곳에 귀양보내어 그 잔명(殘命)을 보전케 하고자 하였사온데, 신은 폄명(貶命)을 받은 날 저녁 길을 떠나던 때에도 죄를 입은 까닭을 통 알지 못하여 한갓 극도로 근심만 쌓였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중군(中軍)의 상주(上奏)한 바를 보니 이르기를 “언이가 지상(知常)으로 더불어 사당(死黨 사생을 같이하는 도당)을 맺어 대소사를 모두 같이 상의하였고, 지난 임자년 서행(西幸)하셨을 때 글을 올려 연호(年號)를 세우고 황제를 일컫기를 청하였으며, 또 국학생들을 유인하여 전건(前件) 일을 아뢰게 하였으니, 이는 대개 대금(大金) 나라를 격노시켜 일을 내어 틈을 타서 마음대로 제 붕당 외의 사람들을 처치해서 불궤(不軌)를 도모함이니, 인신(人臣)의 도리가 아니다.” 함이었나이다. 신이 재삼 이 상소를 읽고 나서야 마음에 안도되었었나이다. 왜냐하면 첫째 연호 세우기를 청한 것은 임금을 높이자는 정성에서 나온 것이라 본조(本朝)에서도 태조와 광종(光宗)의 고사(故事)가 있고, 비록 신라와 발해(渤海)는 연호를 세웠으나 대국이 일찍이 군사를 움직인 일이 없었으며 소방(小邦)이 감히 그 실책을 의논하지 못하였었는데, 어찌 이 성세(聖世)에 그것을 도리어 참월(僭越)한 행동이라 이르오리이까. 다음, 신이 일찍이 의논한 죄는 있거니와 사당(死黨)을 맺고 대금을 격노하게 하려 했다 함은 말이 비록 심히 크나 본말(本末)이 서로 맞지 않나이다. 왜냐하면, 가사 강적(强敵)이 와서 우리나라를 침노한다면 대개 병란(兵亂)을 막기에도 겨를이 없을 터인데 어찌 틈을 타 농간을 부릴 수 있겠으며, 그 붕당이라 지목하는 자는 누구며, 처치하려는 대상은 어느 사람이리이까. 뭇사람이 화목치 않으면 싸우는 대로 패하여 제 몸도 용납할 여지가 없겠거니 어찌 마음대로 꾀를 부리오리까. 하물며 신이 대화(大華)의 말에 참예하지 않았음과, 지상(知常)과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한 것과, 백수한(白壽翰)의 천거에 참가하지 않았음은 폐하께서 이미 통촉하시는 바이옵니다.
신이 한번 강호(江湖)에 떨어진 뒤로부터 이미 여섯 번이나 한서(寒暑)를 바꾸었나이다. 그 동안 녹름(祿廩)이 오래 궐하고 의식을 마련하기 어려워, 친구가 모두 교제를 끊고 처자가 모두 있을 곳을 잃어, 초췌한 몰골이 앙상한 마른 가지 같고 놀란 혼백이 멍하니 술 취한 사람같고 꿈꾸는 사람 같사오니, 오늘까지 살아온 것도 오직 성지(聖知)만 믿어온 덕택이옵니다.
거듭 생각하옵건대, 신이 지극히 연약한 몸으로 서정(西征)의 역(役)에 종군하여 제 몸을 잊고 나라를 방위했음은 의(義)와 분수에 당연한 일이요, 일을 성공한 것은 다 딴사람에 인한 것이온데 무슨 근로(勤勞)를 말하오리까마는, 이제 말씀을 하려 함은 감히 공이라 함이 아니요 다만 작은 정성을 약간 피력하여 혹 성심(聖心)의 일고(一考)를 빌[乞]고자 함이옵나이다.
지난 을묘(乙卯)년에 중군(中軍)이 적(賊)의 양식이 다될 것을 전략(戰略)으로 삼았사오나, 흉당(兇黨)이 아직 항복하지 않았고, 시일이 차츰 오래되자 강의 얼음이 다 풀려서 어찌할 계책이 없었사옵기, 신이 3월에 비로소 거인(距堙)을 세울 것을 발의(發議)하였사오나 저지(沮止)하는 사람이 있어 시행치 못하였는데, 11월에 이르러 중군이 비로소 양명문(楊命門)에 거인을 만들면서 지병마사(知兵馬事) 지석숭(池錫崇)과 신(臣) 언이(彦頤) 등을 시켜 번갈아 현지에 가서 흙을 얼마나 쌓을까를 검시(檢視)하게 하시어, 계산하니 두어 달에 이르면 성 위에 붙여 올라감직 하였나이다. 신이 또 전군사(前軍使) 진숙(陳淑)과 더불어 화공(火攻)하기로 의정(議定)하여, 판관(判官) 안정수(安正脩)로 하여금 화구(火具) 5백여 석(石)을 만들게 해서 그달 9일 이른 새벽에 조언(趙彦)이 만든 석포(石砲)로 쏘니, 그 화염(火焰)이 번개 같고 그 크기가 수레바퀴 같은데, 적이 처음에는 또한 쫓아다니며 껐으나 날이 저물자 불기운이 크게 성하여 적이 불을 끌 수 없었고, 밤새껏 포를 쏘니 양명문과 그에 딸린 행랑 20칸 가량과 적이 쌓아올린 토산(土山)이 모두 불타 버렸나이다.
12일엔 적이 모두 궤멸(潰滅)되어 인마(人馬)가 드나들 만하기에 신이 곧 중군에 이르러 본말(本末)을 갖추어 진술하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어서 공격하여 적으로 하여금 설비하지 못하게 하자 하였으나, 어떤 사람이 화를 내며 불가하다 하기에 신도 격노하여 다투었나이다. 14일에 또 전군(前軍)에 이르러 급히 공격하면 적을 파할 수 있다고 의논하니,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흙쌓기를 다한 뒤를 기다려서 그때에 공격함이 가하다.” 하였으며, 적이 벌써 전에 만들었던 목책(木柵)에서 방어하므로 신이 급히 공격하기를 간청하였으나 그때도 오히려 결정을 짓지 못하였나이다. 16일에 원수(元帥)가 전군에 와서 오군(五軍)의 막료(幕僚)들을 다 모아 놓고 의논하니, 사람마다 다 앞의 의견을 고집하였나이다. 이날에 적이 또 겹성[重城]을 쌓으니, 그 사세가 도저히 적을 공격함을 지체할 수 없었나이다. 이보다 앞서 지석숭이 군에 있어 역사를 감독하던 중 신과 의견이 맞았고, 이어 부사(副使) 이유(李愈)와 판관(判官) 왕수(王洙)ㆍ이인실(李仁實) 등 8명이 신의 의견에 찬동하니 이에 원수가 비로소 그 의견을 좇아 그리하기로 채택되었으며 19일에는 군사를 세 길로 갈라 쳐들어가니, 그야말로 마른 대[枯竹]를 쪼개듯 하나도 거침과 어려움이 없었나이다. 신은 그날 중군을 전장(專掌)하여 판관(判官) 신지충(申至沖)ㆍ김정황(金鼎黃)ㆍ장군 권정균(權正鈞)ㆍ방자수(房資守), 녹사(錄事) 임문벽(林文壁)ㆍ박의신(朴義臣) 등과 더불어 비밀히 병력을 정비하여 일찍이 칠성문(七星門)에 이르러 나무를 쌓고 불을 지르니, 불이 난 뒤에야 적이 깨달았으나 당황하여 창졸간에 끄지 못하고, 문랑(門廊) 도합 97칸을 태웠습니다. 바라보니 훤하기에 곧장 들어가려 하였사오나 마침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기에 군사를 거두어 영(營)으로 돌아왔나이다. 이튿날 새벽에 적의 괴수 정덕환(鄭德桓)ㆍ유위후(維緯侯)와 소관(小官) 4명이 살그머니 성을 빠져 나오므로 자수(資守)가 부하로 하여금 잡아 영(營)에 이르렀고, 신이 덕환과 위후를 원수부로 보내고, 따로 별장(別將) 김성기(金成器) 등을 시켜 생포한 소관 2명을 거느리고 경창문(景昌門)에 가서 적을 효유(曉諭)하니, 적장 홍걸(洪傑)이 나와 항복하였나이다. 이날에 전군(前軍)이 광덕 함원문(廣德含元門) 밖에 있었는데 적이 아직도 문을 닫고 대항하여 싸우니 걸(傑)이 의민(義民)들과 상의하여 위원수(僞元帥) 최영(崔永)을 잡고 인하여 두 영(領)의 군사를 거느리고 귀순하였사오며, 그런 뒤에 적의 대장 소황린(蘇黃鱗)ㆍ정선곡(鄭先谷)ㆍ박응소(朴應素) 등 문무(文武) 90여 명이 서로 이어와서 항복하였고, 나머지 잡류(雜類)들은 이루 셀 수가 없었나이다. 신이 자수영군사망(資守領軍士望) 이징정(李徵正)과 항적(降賊) 서효관(徐孝寬)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성에 들어가 궁궐과 창름(倉廩)ㆍ부고(府庫)를 봉하게 하고, 징정으로 하여금 그 쇳대[鑰匙] 6ㆍ7궤를 거두어 영에 바치도록 하였사온데, 한편 들으니 좌군(左軍)이 북문으로부터 성중에 들어가 군사들을 놓아 대부(大府)의 재물과 비단을 닥치는 대로 뒤져 가지게 한다기에, 신이 의신(義臣)을 보내어 만류했으나 듣지 않음으로 다시 정균(正鈞)을 보내어 만류하여 대부(大府)가 그제서야 완전하게 되었나이다. 이에 신이 신의 아들 양(讓)을 원수처에 보내어 그 사실이 있던 날자를 보고하니, 원수가 그때야 중군에 이르러 다시 이인실ㆍ이식(李軾) 등에게 명하여 궁궐ㆍ창름ㆍ부고를 봉하고 인하여 표(表)를 갖추어 주달(奏達)하였나이다.
이상이 그 대략이옵고, 모두 갖추어 진술하기는 어렵사옵나이다. 그때를 당해서야 신은 나라 일에 작은 공을 세웠다 생각하였사온데, 어찌하여 그 뒤에 손바닥 뒤집듯이 갑자기 무사(誣辭)를 얽어매어 마침내 이 어리석은 몸으로 하여금 원통하고 억울함에 빠지게 하였사옵나이까.
생각하옵건대, 평소에 저지른 바는 역시 미신(微臣)의 탓인가 하옵나이다. 신이 엎드려 소식(蘇軾)의 폄직(貶職)된 때에 임금에게 올린 표를 읽으니, “신이 먼저 서주(徐州)에 재임할 때 하수(河水)가 성안에 범람하여 성이 거의 함몰할 지경이었는데 밤낮으로 막아 지켜 우연히 안전함을 얻었고, 또 일찍이 기주(沂州) 백성 정비(程棐)를 선용(選用)하여 그로 하여금 흉당(凶黨)을 현상(懸賞)으로 잡게 하여, 그 모반한 요괴한 도적인 이탁(李鐸)ㆍ곽진(郭進) 등 17명을 잡을 수 있었사오나, 바라옵건대 혹시 요행히 공과 허물이 서로 면제(免除)될 수 있었으면” 하였사오나 자첨(子瞻)의 호일(豪逸)한 재주로도 오히려 이렇듯 잔소리로 변명하거든, 하물며 언이(彦頤)의 외로운 몸으로 어찌 입을 다물고 잠잠하오리까. 하도 사정의 궁박(窮迫)함이 이렇사온대 우러러 진술함을 어찌 그만둘 수 있나이까. 또한 김정(金精)은 일찍 형리(刑吏)의 문초를 받았으나 일곱 달 만에 다시 현관(顯官)으로 복직되었고, 추충(推忠)은 같이 강남(江南)으로 귀양갔으나 3년 만에 옛 벼슬로 돌아갔는데 오직 신만이 불초하여 세상과 어긋남이 많아서 이름이 이미 가혹한 법조(法條)에 걸려 있으니 사람들이 다투어 뜬 비방을 일삼아 죄를 논하기에 쉴 날이 없어 지금까지 몇 해를 겪어 오는 중이옵니다. 감히 자살하여 심사를 밝히기를 아끼었으리까마는 진실로 성군(聖君)이 알뜰히도 그립사와 오래도록 제법 욕을 참고 잔 목숨을 보전하면서 억울함이 퍼지기만 고대하였사온대 뜻밖에도 이제 황자(皇慈)께옵서 특히 큰 도량을 베푸시어 신의 몹시 궁한 꼴을 딱하게 여기시고, 신의 둘이 없는 마음을 불쌍히 여기셔서, 여러 번 유사(有司)를 시켜 훈유(訓諭)하옵시고, 먼 귀양살이에서 고충(孤忠)을 다시 일으켜 주옵시니, 우러러 새 교화(敎化)에 훈도되어 버젓이 평민 속에 끼였사오니 끝내 악명(惡名)을 씻도록 다시 후일을 기약하옵나이다.
이는 대개 지극한 인(仁)은 밖이 없고, 두터운 덕은 거친 것도 포용하사, 개와 말에게도 혹 개유(蓋惟)의 은혜를 적시우고, 비녀와 신짝도 차마 버리지 못하시는 생각으로, 뭇사람들의 노여움이 번갈아 일어나는 때에 신의 여생(餘生)을 구해 주시고, 몇 해 동안 유락(流落)하던 중에서 신의 쇠약한 몸을 거두어 주시어, 특별히 새로 벼슬을 제수하시고 옛 녹(祿)으로 다시 돌림이옵나이다.
무망(誣罔)이 다 풀림에 해가 뜨려 하자 음집[蔀屋]도 밝아지는 듯, 시들고 썩었던 몸이 회생되어 봄이 벌써 돌아와 단비가 내리는 듯하니 진실로 이 몸이 목석(木石) 같은 무지한 물건에 비할 것이 아니온대 감히 천지ㆍ조화의 사사로운 은혜를 모르오리까. 장한 기운이 이미 쇠하여 평소의 옛모습에 방불치는 못하오나, 단심(丹心)만은 아직도 있사오니, 맹세코 만절(晩節)의 구치(驅馳)를 다하여 비록 구학(溝壑)을 메울지라도 감히 결초보은(結草報恩)을 잊사오리까.
[주-D001] 주공(周公)은 …… 못하였고 :
주 무왕(周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어리므로 성왕의 숙부(叔父) 주공(周公)이 섭정(攝政)하였는데, 주공의 형제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주공이 장차 어린 임금을 해칠 것이다.”라고 유언(流言)을 퍼뜨렸으므로 주공은 쫓겨났다가 3년 만에 돌아왔다.
[주-D002] 강후(絳侯) …… 하였으며 :
한(漢)나라 강후 주발(周勃)은 여씨(呂氏)의 난을 평정하고 문제(文帝)를 세운 공이 있었는데, 뒤에 모반(謀反)한다는 무고(誣告)를 입었다가 곧 풀렸다.
[주-D003] 망지(望之) …… 마셨고 :
한 원제(漢元帝)의 태부(太傅) 소망지(蕭望之)는 소인의 참소로 옥에 들어가게 되자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다.
[주-D004] 굴원(屈原) …… 죽었사오니 :
전국 시대에 굴원(屈原)은 왕을 간(諫)하다가 쫓겨나서 자살하였다.
18.이인실의 대필로 대사성 겸 직문하성 충태자 좌서자를 사례하는 표[代李仁實謝大司成兼直門下省充太子左庶子表]
이지심(李知深)
구소(九霄)의 명을 받자오니, 갑자기 이수(異數)의 발탁이온지라, 쌍궐(雙闕)에 글을 올려 그릇된 은전을 거두시기 바랐사오나, 유음(兪音)을 얻지 못하여 한갓 감격되어 울 뿐이로소이다. 중사(中謝)
신이 외람되이 속학(俗學)으로써 일찍 현과(賢科)에 급제하여, 소리가 서로 응하고 기운이 서로 구하듯이 다행히 운룡(雲龍)의 성제(盛際)를 만나고, 녹(祿)으로 부(富)하고, 벼슬로 귀해져서 점차로 잠불(簪紱)의 영광을 차지해서 생성(生成)의 은혜가 이미 천지와 같았사오나, 은공을 갚기는 티끌이나 이슬보다도 적어, 오직 직무를 이행치 못한다는 비난만 받고 매양 음식을 엎지르는[覆餗] 걱정을 품었었나이다.
더구나 저번에 남에게 원혐(怨慊)을 받은 것이 화(禍)가 되어 몸이 참방(讒謗)을 만나게 되자, 공교한 참소의 말은 사실이 없으므로 일은 비록 변명할 수 있었으나, 외로운 몸이 위태롭기 쉬워 형세가 거의 파멸에 가까웠었는데, 성군(聖君)께서 웅단(雄斷)을 내리시어 무망(誣罔)이 자연 소멸되었었나이다. 비록 잠깐 애매한 기롱을 입었사오나, 여러 번 빼어 거두어 주신 은택에 목욕하여, 조정에 나아가 서대(西臺)에서 오랫동안 국론(國論)에 참여하고 사신(使臣)으로 나가서 멀리 남지(南地)의 민요를 채집하였사오나,시비(是非)가 아직 철저히 규명되지 않고 포폄(褒貶)을 밝히기 어려워, 다만 견책이 내려질까 두려워하였던 처지로 어찌 승천(陞遷)의 희망을 가졌사오리까.
이제 뜻밖에 문득 이수(異數)의 성권(聖眷)으로 신을 차마 멀리 버리지 않으시어 태학(太學)의 자품을 뛰어넘어 겸하여 논사(論思)의 자리에 참여하게 하시고 동궁(東宮 내자부)의 비원(備員)으로 또 보도(補導)의 직에 참여하게 하옵시니, 물러와 분에 넘치는 영광을 생각하옵고 우러러 유능한 이에게 사양하는 간절한 마음을 호소하였사온대 이에 따뜻한 성유(聖諭)를 받았사오나 신의 정성을 미처 용납하지 않으시고 다만 장려와 발탁이 비상하니 황공하고 떨려 몸둘 바를 모르겠삽나이다.
이는 모두 성신(聖神)께옵서 지극한 인(仁)으로 널리 사랑하시고, 큰 도량으로 아울러 포용하시어 신의 직무를 봄이 무능함을 용서하시고, 신의 마음가짐이 두 가지가 아님을 살피시어 특히 우악한 성은(聖恩)을 나누어 주옵고 높고 빛나는 자리에 참여하게 하시니, 어찌 감히 성지에 순종하여 어명을 각별히 직분을 다해 닦지 않사오리까. 간(肝)을 펼치고 힘을 모아 견마(犬馬)의 미력으로 조그마한 공로를 다하고자 하오며, 뼈를 가루로 만들고 몸을 가루로 만들어서라도 군친(君親)의 큰 은혜를 조금이나마 보답코자 하옵나이다.
[주-D001] 운룡(雲龍)의 성제(盛際) :
하늘이 만물을 낳아 주고 땅이 성취시켜 주는데, 은혜가 그와 같다는 뜻이다.
[주-D002] 음식을 …… 걱정 :
《주역》정괘(鼎卦)에, “솥의 발이 부러져 담긴 음식을 엎지른다.[鼎折足覆餗]” 하였는데, 그것은 사람이 힘에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맡으면 실패한다는 뜻이다.
[주-D003] 남지(南地)의 …… 사오나 :
중국에서 천자가 사신을 각 지방에 보내어 민요를 채집하여 민정을 알았다 한다.
19.회례문을 비밀히 아룀을 사례하는 표[謝密進廻儀表]
강척(康滌)
새서(璽書)가 관곡(款曲)하시고 진기로운 하사품이 여러 가지 되오니, 공경히 총광(寵光)을 받자옴에 황공하옵기 그지없소이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이 번국(藩國)을 이어받자 다행히 성대(聖代)를 만나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사대(事大)의 충성을 다하고 토산물로써 가벼운 예물을 받들어 조공을 바쳐 오고 있사온대 사신(使臣)의 배가 돌아오는 편에 성상께서 우악(優渥)한 어지심을 베푸시어 광주리에 가득한 섬세하고 화려한 폐백이며, 상자에 담긴 아늑하고 길상(吉祥)한 의상(衣裳)이며 백가지[百品]에 이르는 진물로 모두 다 상방(上方 상방(尙方))의 제품이어서 총애가 실로 월등하고 물품이 상례(常例)보다 배나 되었나이다.
이제 성은(聖恩)을 받들어 사례코자 마땅히 물명(物名)과 수효를 복신(覆申)하여야 하겠사오나, 며칠 전에 마침 내변(內變)을 만나 거처하는 곳이 다 타는 서슬에 유사(攸司 담당자)가 간수를 삼가지 못하여 부산한 중에 별록(別錄)을 잃어, 비록 마음으로 생각하여선 겨우 기억할 수 있사오나, 붓으로 조목조목 쓰기는 자못 어려워, 부득이 상례대로 회의(回儀)를 궐하게 되었사오니 조공의 전례(典例)에 어긋나옵나이다.
오직 성명(聖明)으로 통촉하시어 일이 딴것이 아님을 반드시 양해해 주실 줄 믿사오나, 마음에 몹시 송구하오며, 스스로 깊이 불민을 책하옵나이다. 느끼고 부끄러움이 이에 극하여 눈물이 앞서 말문이 막히옵나이다.
20.석전에 배석함을 사례하는 표[謝釋奠陪位表]
김단(金端)
배신(陪臣) 단(端)은 아뢰옵나이다.
이달 초5일에 국자감(國子監) 대성전(大成殿)에서 석전을 거행하올 적에 성상께옵서 신에게 배위(陪位)의 영광을 내리셨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상정(上丁) 바로 그날에 대성전에서 석전을 올리고, 성은(聖恩)으로 미천한 사신을 용납하여 많은 선비들의 반열(班列)에 참가하게 하셨사오니, 제 자격이 무능함을 스스로 돌아봄에 이 영광이 도리어 부끄러움이 되나이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이 호해(湖海) 먼 고장의 두초(斗筲) 작은 서생으로, 옛사람의 글을 대강 읽어 중국의 성인을 높일 줄 알았사옵고 조충(彫虫)ㆍ전각(篆刻)은 이른바 장부로서 하지 않는 일이라 생각해서 출유(出幽)ㆍ천교(遷喬)로 학자의 잘 변함을 희망하여 마침 국가에서 보내는 자제들 축에 끼어 경사(京師)에 와서 학업을 닦게 하였나이다. 신으로선 성대(盛代)를 몸소 만남이 기쁘고, 이때를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유(繻)를 버려 맹세로 삼고, 기둥에 글을 써놓고 고향을 떠나 하늘끝이 맞닿은 허허한 바다에 조각배를 끌고 와서 청운(靑雲)의 간려(干呂)를 점치며 상국을 관광(觀光)하였삽더니, 그때 성상께옵서 소원(疎遠)하여지지 않는 어명을 내리시어 이에 태학(太學)의 문을 열어 거기 거처하도록 하시고, 요직을 풍부하게 하사하시며 교양의 방법을 엄히 하시오니, 비록 한 권 책이라도 반드시 스승을 지정하여 가르치지 않음이 없었건만 3년 동안 배워도 곡(穀 녹(祿))에 이르지 못한다면 또한 무엇하오리까. 걸핏하면 금독(金犢)의 부끄러움이 많았사오며 명령(螟蛉)의 닮음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밝으신 성상께옵서 굽어 객지에 있는 신의 신세를 살피시고, 특히 윤음(綸音)을 내리시어 대궐 뜰 아래에 인견하사 시험하신대 당세의 시무(時務)와 대도(大道)의 근원을 물으시니, 고명하신 성책(聖策)의 지극한 뜻을 도저히 엿볼 수 없고, 지척(咫尺) 천위(天威)에 미천한 생각이 실로 놀라 떨리어 마침내 문사(文辭)를 이루지 못하고 낙제되리라고 분수를 달게 여겨 스스로 포기했었는데, 막상 난간에 임(臨)하시어 방(榜)을 부르심에 이르러 신에게 석갈(釋褐 급제)의 은전을 주시옵고, 내지 어필로 조서를 내리시어 영광스럽게 해역(海域)으로 돌아가게 하셨사오니, 돌아보옵건대, 이 같은 큰 은혜를 어찌 하루인들 잊을 수 있었사오리까. 아득한 바다 건너편에 몸은 먼 벽지(僻地)에 매어 있으면서도 고개를 돌려 서편을 바라보면서 마음은 언제나 대궐의 하늘에 있었나이다.
이제 사신(使臣)의 배가 올 때에 천사(賤司)의 한 구실을 맡아, 들어와 운룡(雲龍)의 섬돌[陛] 아래 알현하고, 다시 천일(天日)의 빛을 우러러 뵈오니 놀라고 기쁨이 섞여 아울러 눈물이 먼저 나오나이다. 중춘(仲春)의 상일(上日)을 당하여 선성(先聖)을 학궁(學宮)에 제사할 적에 문득 따스한 말씀을 내리시어 성대한 예식에 참여하게 하오니, 빛나는 보불(黼黻)ㆍ문장(文章)의 아름다움과 금석(金石)ㆍ사죽(絲竹)의 소리, 순순(純純)한 수사(洙泗)의 풍속을 다시금 오늘날에 보고 제제(濟濟)한 옛날 추로(鄒魯)의 선비들과 바로 한 시대에 있는 듯하오니, 이 은혜와 영광을 무엇에다 비기오리까.
이는 대개 성상께옵서 날마다 새로우신 큰 덕과 하늘이 주신 많은 재능으로, 조심조심 이룬 것을 지켜[守成] 태평을 이룩하시고, 교화를 높이고 현재(賢才)를 양성함을 급무(急務)로 하사, 크게 유술(儒術)을 열고 성대한 의식을 엄숙히 거행하심이오니, 대개 부자(夫子)의 도는 신명(神明)을 짝하여 생민(生民) 이래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서 오직 성인의 정성은 천지에 참(參)하나니 후세에 일어난 자가 어찌 이에 더하오리까. 학교의 흥함이 비로소 만방(萬方)에 가득하고 현가(絃歌 글 읽는 소리를 말함)의 소리가 멀리 사해(四海)에 미치옵나이다.
우리 고려국의 관대(冠帶)를 갖춘 풍속을 굽어보시고 그 예의(禮義)의 나머지가 있다 하시어 미천한 하신(下臣)에게 이날의 조우(遭遇)가 있게 하신 것이니, 본국의 여러 친구들이 서로 경하(慶賀)할 만한 것이오며 천하 후세에 전할 만한 일이옵나이다. 천지의 인(仁)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을지라도 견마(犬馬)의 갚음이 죽고 삶에 달려 있는 것이오라 기약하기 어렵도소이다.
[주-D001] 상정(上丁) :
2월ㆍ8월 상순 정일(丁日)에 석전을 거행한다.
[주-D002] 조충(彫虫) …… 일이라 :
양자법언(揚子法言)에 사부(辭賦)를 논하기를, “그것은 동자(童子)의 아로새기는 희롱이니 장부(丈夫)는 하지 않는다.” 한 말이 있다.
[주-D003] 출유(出幽)……희망하여 :
《시경》에 “꾀꼬리가 깊은 골에서 나와서 교목(喬木)으로 옮긴다.” 하였다. 맹자(孟子)는 이 시를 인용하여 이적(夷狄)의 사람으로 중국의 학문을 배우는데 비유하여, “중국의 학문으로 이적(夷狄)을 변화시킨다.” 하였다.
[주-D004] 유(繻)를 …… 삼고 :
한 무제(漢武帝) 때에 종군(終軍)이 장안(長安)으로 들어가는데 관문(關門)을 지키는 관리가 관문의 출입에 증명으로 쓰는 비단쪽[繻]을 주며, “나올 때에 이것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하니, 종군은 그것을 던지며, “내가 관문으로 다시 나올 때에는 반드시 나라의 사절(使節)로 나올 것인데 증명이 필요 없으리라.” 하더니, 과연 그대로 되었다.
[주-D005] 기둥에 …… 떠나 :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고향인 촉(蜀)을 떠나면서 승선교(昇仙橋)를 지내다가, “내가 높은 수레에 사마(駟馬)를 타지 아니하면 이 다리를 다시 지나오지 않겠다.”라고 다리 기둥에 쓰고 가더니 과연 그대로 되었다.
[주-D006] 청운(靑雲) …… 점치며 :
한 무제(漢武帝) 때에 월지국(月氏國)의 사자(使者)가 와서 말하기를, “우리나라에 동풍(東風)이 율(律)에 들어오고, 청운이 여(呂)에 범[干]하여 한달이 넘도록 흩어지지 아니하니, 아마 중국에 도(道)를 좋아하는 임금이 있는 모양입니다.” 하였다. 《十洲記》
[주-D007] 명령(螟蛉)의 닮음 :
나나니 벌이 뽕나무 벌레[螟蛉]새끼를 기르며 저를 닮으라 한다 하였다.
21.사보유표(謝報諭表)
임존(林存)
분연(奮然)히 왕사(王師)를 일으켜 무적(無敵)의 신공(神功)을 세우시고, 멀리 사절을 보내어 비상한 아름다운 일을 조유(詔諭)하시니, 은영(恩榮)이 특이하온지라 감격하여 춤추옵나이다. 중사(中謝)
황제께옵서 하늘이 내신 영모(英謀)로 날이 갈수록 성덕(聖德)에 오르시어 전쟁하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도록 지혜로운 군략(軍略)을 종횡으로 지휘하시고, 북으로나 남으로나 강토를 활짝 개척하시니 화이(華夷)가 다 복종하고 호령이 새삼 새롭도소이다.
이 번병(藩屛)의 나라를 생각하시어 첫머리로 윤음(綸音)을 내리시되 각별히 하사(下賜)를 더하시고 간곡히 어루만져 주시니, 돌아봄에 스스로 보답할 방법에 어두워 오직 경하(慶賀)하는 마음만 더욱 깊을 뿐이옵니다.
22.대성악 익히기를 허락함을 사례하는 표[謝許習大晟樂表]
임존(林存)
배신(陪臣) 모 등은 아뢰옵나이다.
이달 모일에 문덕전(文德殿)에 나아가 조하(朝賀)하옵고, 물러와 객성(客省) 막문(幕門)에 있노라니 관반(館伴) 모관(某官) 모가 마침 성지(聖旨)를 유시(諭示)하러 오고, 태사(太師) 노국공(魯國公) 채경(蔡京)이 성지(聖旨)를 받들어 전하려고 고려에서 악(樂)을 익히는 사람이 지금 와서 연악(燕樂 연악(宴樂)과 같다.)을 보고 있는데, 이는 대성아악(大晟雅樂)을 익히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이었나이다.
위가 좋아하는 바를 아랫사람도 반드시 심히 원하는 것이라서 정성(正聲)을 듣기를 원하였고 사람의 원하는 것은 하늘이 반드시 따라주는 것이라서 갑자기 온유(溫諭)를 받들게 되었사오니 은영(恩榮)이 함께 모여 송구함이 섞여 깊도소이다. 중사(中謝)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옛날 도(道)를 세울 때에 악(樂)이 정치의 근본이 되었으니, 종고(鐘鼓)와 관약(管籥)으로 그릇을 삼았고, 기쁨과 사랑으로 음악의 정(情)을 삼아, 이로써 신명께 고하고 이로써 풍속을 옮겼나이다. 삼황(三皇)이 이로써 이제(二帝)에게 전하고, 이제가 이로써 삼왕(三王)에게 전하여 비록 주공(周公)ㆍ공자(孔子)의 글에는 아직도 그 법을 유존(遺存)하고 있으나, 진(秦)ㆍ한(漢) 이후부터 그 전하던 바를 다 잃어 음왜(淫哇)가 아울러 일어나고 아송(雅頌)이 오래 그쳐 없어졌으니 이 없어진 전장(典章)을 다시 일으킴은 오직 성명(聖明)께 달려 있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황제께옵서 중흥(中興)의 굉도(宏圖)를 여시고 태평의 좋은 운에 즈음하사, 백성에게 어지시고 만물을 사랑하심은 덕화가 그지없는 데까지 미치고, 어진 이에게 맡기고 유능한 자를 부리시면 일이 끝이 있는 것을 보시고 공을 방해하고 능(能)을 해치는 신하를 배척하시어 사설(邪說)과 피행(詖行 사행(邪行)과 같다)이 일어남을 금하시니, 경서(經書)를 숭상하여 선비를 만드심에 벽옹(辟雍)의 교화를 일으키시고 뜻을 잇고 일을 계승하심에 중고(仲考)의 규모를 계승하나이다. 남(南)으로 야랑(夜郞)ㆍ양가(䍧柯)에 이르기까지, 서(西)로 적석(積石)ㆍ청해(靑海)에 이르기까지, 순복하지 않는 나라가 없고, 모두 더불어 함께 새로우니, 상서로운 감응(感應)이 도처에 일어나고 상서로운 빛이 기운차게 움직이니 이를 상징하는 주악(奏樂)을 갖추어서 세상에 드문 아름다움을 나타냄이 마땅하였나이다.
하늘이 예모(睿謀)를 찬동하여 악사(樂師)에 기사(奇士)를 내려주시니 그 묘한 지법(指法)을 얻으시고, 그 마땅한 천율(天律)을 정하시어 오음(五音)으로 바로잡고 팔기(八器)로 연주하니, 빛나는 일대(一代)의 전장(典章)이 백년을 기다려 흥한지라 뜰에서 연주함에 상서로운 물건이 오고, 상제(上帝)께 올림에 단이슬[甘露]이 내려 화일(化日)이 늘어나 길어지는 감응이 있고, 인군(人君)이 수고(壽考)하는 상서를 얻었나이다.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저희 나라의 과군(寡君)이 오래 지극한 교화에 훈도되어 예악(禮樂)ㆍ시서(詩書)의 학문을 사랑하고, 문물(文物)ㆍ성명(聲明)의 조정을 받들어 왔사오나, 아직 꿈은 균천(鈞天)에 막혀 있고 몸은 그대로 동해에 매어 있어, 한갓 성사(盛事)를 말로만 듣고도 여러 번 충성된 마음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신등이 떠나올 때에 다음과 같이 자세한 훈시(訓示)를 내리시기를, “특별한 총우(寵遇)를 인연하여 사사로운 간절한 청을 올릴지어다. 치(徴)ㆍ각(角) 두 초(招)는 비록 군신(君臣) 조우(遭遇)의 기쁨으로 고맙게 받자왔으나, 영(英)ㆍ경(莖) 여러 악기는 아직 성명(聖明)께서 술작(述作)하신 신품(神品)을 보지 못하였으며 시행하는 도수(度數)는 높은 이와 낮은 자가 비록 등차(等差)가 있을 것이나, 그 뜻을 배움은 귀천이 본래 차별이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옛날 제후들이 번병(藩屛)으로 있으면서도 시왕(時王)의 절문(節文)을 보았던 것이다. 공자가 제(齊)에 있어 소(韶)를 익힘을 들었고, 계찰(季札)이 노(魯)에 빙(聘)하여 거기서 하(夏)를 춤추는 것을 보았었는데, 하물며 대성악의 아름다운 제작은 이 염송(炎宋)이 이룬 공을 예술화한 것이랴. 그 내용은 조종(祖宗)에서부터 시작하였고, 그 흐름은 천지와 함께한 것이다. 하늘은 사사로이 덮음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용납함이 없나니, 어찌 이 아득한 먼 나라로 하여금 전아(典雅)한 바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할 것이냐. 내 마음은 비록 이렇듯이 상청(上請)할 생각이 간절하나, 이치는 함부로 진술하기 어려우니, 만일 어떤 기회에 하정(下情)을 물으시거든 마땅히 천자께 승문(升聞)할지어다.” 하였습니다.
이제 황제께옵서 저희 나라의 충순(忠順)함을 환히 보시고, 진주(眞主)로서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성은을 남김없이 내리시어 데리고 온 사람들로 하여금 칙지[勅]로 열습(閱習)할 길을 열어 주옵시니, 일행의 영행(榮幸)이요, 만번 죽어도 성은을 보답키 어렵사옵나이다.
[주-D001] 치각(緻角) 두 초(招) :
“치초각초(緻招角招)의 시를 지어 왕의 놀이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한다. 《左傳》
[주-D002] 영(英)ㆍ경(莖) :
제곡(帝嚳)의 음악은 육영(六英)이요, 전욱(顓頊)의 음악은 팔경(八莖)이다.
[주-D003] 공자가……들었고 :
“공자가 제(齊)나라에서 소악(韶樂)을 듣는 석달 동안에 고기맛을 잊었다.” 한다. 소(韶)는 순(舜)의 음악이다. 《論語》
[주-D004] 계찰(季札) …… 보았었는데 :
오(吳)나라 공자(公子) 계찰이 노(魯)나라에 가서 중국 역대의 음악을 보다가 우(禹)의 음악인 대하(大夏)의 춤추는 것을 보고, “아름답다.” 하였다.
[주-D005] 염송(炎宋) :
고려와 동시(同時)의 조씨(趙氏) 송나라가 화덕(火德)으로 일어났다 하여 화송(火宋)이니 염송(炎宋)이니, 하고 부른다.
23.좌정언ㆍ지제고를 제수하심을 사례하는 표[謝左正言知制誥表]
정습명(鄭襲明)
오래 궁궐에 입시(入侍)하였사오나 티끌과 이슬만한 보탬도 없사왔더니. 발탁하여 간원(諫垣)에 두심에 거듭 천지의 은혜를 감사하오며, 은영(恩榮)이 하도 희한하여 황공함에 몸둘 바를 모르옵나이다. 중사(中謝)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임금의 총명은 충언(忠言)을 받아들임에 있고, 나라의 안위(安危)는 정승을 논함에 관계가 있으므로, 음양을 조섭(調燮)하고 현부(賢否)를 진퇴시켜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각기 제 직책을 다하게 하고, 사해(四海)로 하여금 걱정이 없게 하는 것을 일러 상업(相業)이라 하옵니다. 면절(面折)과 정쟁(廷爭)으로 곧은 자를 쓰게 하고 굽은 자를 버리게 하여, 여러 사특한 자들이 저절로 기가 죽고, 여러 바른 것들이 모두 펴지게 함은 그것을 일러 간관(諫官)이라 하는데 이 두 가지에서 진실로 그 적당한 인물을 얻으면 천하를 손바닥 위에 놓고 굴리듯이 다스릴 수 있으리이다.
신이 전야(田野)의 출신으로 성명(聖明)한 때를 만나 삼부(三釜)로 어버이를 봉양하는 옛사람의 뜻을 사모하여 한 깃발로 군수(郡守)가 되어 외방에 부(符)를 나누었삽더니, 과기(瓜期)로 교대하자 임시로 학록(學錄)에 피임되었다가, 한 돌이 못 되어 벼슬길에 참예할 수 있었나이다. 시인 맹자(寺人孟子)의 시(詩)를 풍영(諷詠)하며, 동호(董狐)와 같은 양사(良史)의 붓을 잡아, 간사하고 야유하는 자를 이미 죽은 뒤에도 필주(筆誅)하는 터에 감히 직서(直書)를 꺼렸사오리까. 해와 달의 끝 빛을 의지하여 기특한 절개가 없음을 부끄럽게 여겨 매양 자문(諮問)이 계실 때마다 지척에서도 용안(龍顔)을 범했사오며, 험한 일과 평탄한 일을 가리지 않고 동으로나 서로나 어명(御命)대로 하였사온대, 이는 대개 어리석은 자는 옮기지 못한 천성이 있으므로 허물이 내칠 만한 터에 있었사오니, 감히 빛나는 윤음(綸音)이 문득 초모(草茅)의 천신(賤臣)에게 내려, 후배가 윗자리에 거하고 낮은 자가 높은 이를 넘어서기를 도모하였사오리까. 밝은 조정에서 급암(汲黯)과 주창(周昌)을 본받아 입에 쓴 약석(藥石)을 피우고, 지밀한 자리에서 아형(阿衡)과 부열(傅說)을 대하여 큰 국에 소금과 매실[鹽梅]을 조화하도록 하십니다. 스스로 생각하건대 제가 무엇이길래 이런 중책을 욕되게 하십니까.
이는 대개 성상께서 조화(造化)를 타고나서 나면서부터 신명하사 어진 일을 하실 적에는 넓게 베푸심에 부족함이 없으셨고, 지혜를 쓰실 적에는 반드시 그 먼저 힘쓸 것을 구하셨습니다. 부엉이[鴟鴞]가 집을 헐지 않을까 염려하시어 정치와 형벌을 닦아 분명히 하시고, 유묘(有苗)가 복종치 않는 것을 관용(寬容)하시어 크게 문덕(文德)을 펴시오며,사설(邪說)로 백성을 속이는 자는 주륙하여 사(赦)함이 없고, 지성으로 나라에 몸 바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도 반드시 등용(登庸)하시고 계시니, 그러므로 신과 같은 고한(孤寒)한 자를 녹용(錄用)하여 청요(淸要)한 높은 자리에 참예하게 하신 것입니다.
거듭 생각하옵건대, 신이 워낙 세속과는 맞지 않아 우울하고, 짝짓기를 좋아하지 않아 나이 40에도 이름이 들리지 않았사오나, 시서(詩書)만은 대충 열람하고 익혀 고금의 치란(治亂)을 어느 정도는 아옵나이다. 은(殷)ㆍ주(周)가 흥한 것은 선(善)에 있었으나 그들이 망한 때에는 자기 허물 듣기를 싫어하였고, 진(秦)ㆍ한(漢)이 성한 것은 어진 이를 얻음에 있었사오나 그것들이 쇠할 때에는 참언(讒言)하는 자들을 높이 등용했으니, 과거로써 미래를 안다 하옵거니와 사책(史冊)을 읽을 때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흘렀나이다.
지금은 명주(明主)께서 정신을 가다듬어 올바른 정치를 구하고, 백관들이 마음을 합하여 충성을 같이 하오나, 태평이 아직 이르기 전에 여러 폐단이 함께 모여, 재상(災祥)이 천문(天文)에서 발견되고 도적이 평양에 할거(割據)하여 있사오니, 혹 화변(禍變)의 발생함을 염려하는 데서 장차 연창(延昌)할 복조[祚]를 열게 되오리이다.
신과 같은 완둔(頑鈍)으로써 위계(位階)를 뛰어넘어 영우(榮遇)가 비상하오니, 무엇으로 이에 보답하오리까. 오직 충심으로 계옥(啓沃)하여 임금을 위하여는 죽음도 피하지 않겠나이다. 폐하께서 만일 화리(貨利)를 일삼고 완은(頑嚚)한 자를 가까이하신다면 신이 나아가 영현(榮顯)한 자리에 처한들 어찌 부끄럽지 않사오리까. 만일 상벌(賞罰)을 살피고 출척(黜陟)을 밝히신다면 신이 물러가 산림(山林)에 던져져 있어도 족히 영화로움이 되오리다. 감히 말씀을 꾸미지 않고 맹세코 충고(忠告)를 다하려 하옵나이다.
[주-D001] 삼부(三釜)로……뜻 :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내가 처음 벼슬하여 3부(釜 6두 4승)의 녹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노라.’ 하였다.” 하였다. 《莊子》
[주-D002] 한 깃발[一麾] …… 나누었삽더니 :
옛적에 임금이 지방관을 보낼 때에 부(符)를 두 쪽으로 나누어 오른쪽 것은 임금이 가지고, 왼쪽 것은 지방관이 가지게 하였다.
[주-D003] 과기(瓜期) :
《좌전(左傳)》에, “제 양공(齊襄公)이 관지보를 지방관으로 임명하여 오이[瓜]철에 보내면서, ‘내년 오이철에 교대시키겠다.’ 하였다.”는 사실이 있으므로 후세에서 지방관의 임기(任期)가 찬 것을 과기(瓜期)라 한다.
[주-D004] 시인맹자(寺人孟子) :
《시경》항백(巷伯)편은 임금에게 참소하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시인데 끝에, “시인맹자(寺人孟子)가 이 시를 짓노라.” 하였다.
[주-D005] 동호(董狐) …… 잡아 :
춘추 시대에 진(晉)나라 사관(史官) 동호(董狐)가 직필(直筆)로 바로 쓰니, 공자가 양사(良史)라 칭찬하였다.
[주-D006] 어리석은 …… 천성 :
《논어》에, “상지(上知)와 하우(下愚)는 천성이 옮길 수 없다.” 하였다.
[주-D007] 입에 쓴 …… 피우고 :
급암(汲黯)과 주창(周昌)은 한대(漢代)의 직신(直臣)이며, 입에 쓴 약은 바른 말에 비유하여 맛은 쓰나 몸에 이롭다는 뜻이다.
[주-D008] 큰 국에 …… 조화 :
아형(阿衡 伊尹)과 부열(傅說)은 은(殷)나라의 어진 재상인데, 임금이 부열에게, “비유하자면 국을 끓이는데 맛을 조화(調和)하는 염매(鹽梅)처럼 되어다오.” 하였다.
[주-D009] 부엉이가 …… 하시어 :
《시경》에 치효(鴟鴞)편이 있으며 나라를 해치는 자를 두고 읊은 것인데, “치효야 치효야 내 집을 헐지 마라.” 하였다.
[주-D010] 유묘(有苗)가 …… 펴시오며 :
《서경》에 “순(舜)이 유묘(有苗)를 토벌하다가 복종하지 않으니, 돌아와서 문덕(文德)을 펴니 유묘가 복종하여 왔다.” 하였다.
24.물품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賜物表]
정습명(鄭襲明)
성상께옵서 신을 서북면(西北面) 병마부사(兵馬副使)로 임명 차출(差出)하시고, 인하여 신에게 대견면주(大絹綿紬)와 백광저포(白廣紵布)를 각 10필 세사주(細絲紬) 5필, 백면(白綿) 10근, 내장택미(內莊宅米) 50곡(斛)을 하사하시어 특별히 주급(周急)하시는 뜻을 보이셨나이다.
탄핵(彈劾)이 한창 심하여 면직될까 깊이 걱정하는 중이었사온데도 신충(宸衷)으로 영단을 내리시어 뜻밖의 성은을 지나치게 입사오니, 분수를 생각하옴에 두려움이 더하옵나이다. 중사(中謝)
신이 초야(草野)의 출신으로 행실에 법도가 없고 임금의 좌우에서 소개하는 이도 없었으나, 다행히 주상(主上)의 지우(知遇)를 받아 중외의 영직(榮職)을 역임하고 고관(高官)의 반련(班聯)에 올라 이수(異數)의 총애를 받자왔나이다. 그러나 신은 원래 졸직(拙直)하기 짝이 없는 성품에다 고한(孤寒)한 신세에 고난(苦難)이 많아, 소년으로서 인격을 연마(鍊磨)할 때 유속(流俗)의 풍파에 빠져, 근거없는 말들로 초(楚)나라 사람들이 다투어 송옥(宋玉)의 단점을 지적하고, 변(變)이 불측한 데서 일어나 노(魯)나라 술 때문에 도리어 한단(邯鄲)이 포위를 당함에 당장 넘어지게 되어 곁에서 구원해 줄 이가 없었사온대 주상의 통촉이 아니셨던들 뉘라서 뭇 의심을 분변하였사오리까. 성상께서 돌보신 덕분으로 오늘까지 생명을 보전하였사옵니다. 재생의 은혜를 입었사오나 일할(一割)의 능력으로도 보답치 못하였나이다.
하물며 이번의 임명은 실로 희한한 일이어서, 온 친족들이 몸에 옷을 걸치고 배에 곡식을 넣게 됨을 기뻐하오며, 궁한 마을에서 추위를 부르짖고 배고픔에 울기를 그쳤사오니, 조그만 근로(勤勞)를 도모하기 전에 먼저 푸짐한 은택에 젖었나이다. 왕자(王者)의 빈소(嚬笑)가 이미 정해지자 시인(詩人)이 읊었던 처비(萋裴)가 모두 없어져, 싸늘한 재가 다시 불붙음을 느끼오며 물마른 수레바퀴 자국에 물이 흘러 넘침에 놀라옵나이다.
이는 대개 성상께옵서 정신이 상제(上帝)와 통하시고 총명을 하늘로부터 받으시어 정선(正先)이 진왕(秦王)을 재촉한 일을 추념(追念)하시고, 인상여(藺相如)가 조(趙)나라를 보존한 일을 갸륵히 여기사, 둘도 없는 국사(國士)를 보시자 옷을 벗어주기를 꺼리지 않으시고, 비록 세 번 이르는 뜬말을 듣고도 일찍 베 짜던 북[抒]은 던짐이 없이 신의 광태(狂態)를 용서해 주시었으며 신의 충간(忠肝)을 살피시어 시원하게 마음을 트시고는 또 많은 하사품까지 내리심은 저를 심상한 백성으로 대우하심이 아니시니 아홉 번 죽더라도 그 은덕을 보답키 어렵소이다.
신이 어찌 우러러 성상의 포용하시는 뜻을 몸받아 다시금 평소의 절개를 두터이하지 않사오리이까. 안일(安逸)을 훔쳐 국록만 먹으면서 조사모삼(朝四暮三)의 속임수를 본받지 않고 진실로 나라에 이로운 일이라면 남이 하나를 하면 저는 백을 하겠으며 혹 북방 변경에서 병기(兵器)를 들게 되면 원컨대 신금(宸襟)에 걱정을 끼침이 없게 하오리니, 중천에 해가 떠 있는 한 이 마음은 거짓이 없사옵나이다.
[주-D001] 주급(周急) :
“군자는 급한 사람에게 보조하고, 부자에게는 더 보태 주지 않는다.” 하였다. 《論語》
[주-D002] 송옥(宋玉)의 …… 지적하고 :
송옥의 대초왕문(對楚王問)에, “초 나라 사람이 왕에게 송옥을 헐뜯는 사람이 많다.” 하였다.
[주-D003] 한단(邯鄲)이 …… 함에 :
노 공공(魯恭公)이 조왕(趙王)과 더불어 초 선왕(楚宣王)에게 술을 드리는데 초왕의 술 맡은 관리가 노(魯)의 박주(薄酒)로 조(趙)의 좋은 술과 바꾸어 드리니, 초왕(楚王)이 조의 술이 박하다 하여 드디어 조나라의 서울 한단(邯鄲)을 포위하였다.
[주-D004] 일할(一割) :
납으로 만든 칼[鉛刀]도 한 번 벨 수야[一割]있지 않으랴 한 옛말이 있다.
[주-D005] 시인(詩人)이 …… 없어져 :
《시경》항백(巷伯)편에 처비(萋斐)란 문구가 있는데, 이것은 얽어서 죄를 만들어 참소하는 말을 가리킨 것이다.
[주-D006] 마른 수레바퀴 …… 넘침 :
《장자(莊子)》에, “물고기가 물 없는 수레바퀴 자국에 있으면서 장자에게 물을 부어 살려 달라 애원하였다.” 한다. 여기서는 왕의 자비(慈悲)를 말한다.
[주-D007] 인상여(藺相如) …… 일 :
조왕(趙王)과 진왕(秦王)이 회합하여 노는데 진왕이 조왕에게 비파[琵]타기를 청하므로 조왕이 겁을 내어 비파를 탔다. 조왕의 신하 인상여(藺相如)가 분하여 진왕에게 장구치기를 청하니 진왕이 듣지 않았다. 인상여는, “왕이 장구를 치지 않으면 나는 칼로 목을 찔러 왕의 옷에 뿌리겠소.” 하니, 진왕이 부득이 장구를 쳤다. 조왕이 돌아와서, “인상여가 조(趙)나라를 보존하였다.” 하였다.
[주-D008] 국사(國士) …… 않으시고 :
소하(蕭何)가 한왕(漢王)에게, “한신(韓信)은 쌍이 없는 국사(國士)입니다.” 하니, 한왕이 곧 한신으로 대장을 삼았다. 뒤에 한신이 말하기를, “한왕이 나에게 자기 밥을 밀어 주어 먹게 하고 옷을 벗어 나를 입혔다.” 하였다.
[주-D009] 세 번 이르는 …… 던짐 :
증자(曾子)의 어머니가 베를 짜는데 이웃 사람이 와서, “당신의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 하나, 아들의 어진 행실을 믿는 어머니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세 번째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이 있자 어머니는 베 짜던 북을 던지고 달아났다 한다. 거짓말도 자주 하면 믿는다는 말이다.
25.사선유표(謝宣諭表)
최함(崔諴)
신(臣) 휘(諱)는 아뢰옵나이다.
지난 9월 13일에 선유사(宣諭使) 정강군절도사(靜江軍節度使) 동첨서추밀원사(同僉書樞密院事) 고백숙(高伯淑)과 부사(副使) 홍로경(鴻臚卿), 지태상예의원(知太常禮儀院) 기도위(騎都尉) 오지충(烏至忠) 등이 이르러 조서와 별록(別錄) 각 1통을 전하옵는데, 성상께옵서 신에게 의대(衣帶)ㆍ필단(匹段)ㆍ은기(銀器) 등 물품을 하사하심이었삽고, 또 24일이 고백숙 등이 비밀히 전하는 성지(聖旨)를 보오니, 보주(保州) 성지(城地)를 고려에 속하게 하여 다시 수복(收復)하지 않는다 함이었나이다.
은사(恩賜)가 우악(優渥)하시고 조유(詔諭)가 정중하시오니, 엎드려 받자오매 감격과 송구가 섞여 간절하옵니다. 중사(中謝)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황제께옵서 이름지을 수 없는 덕을 지니시고, 크게 하염이 있는 마음을 발하시어 우레가 움직이는 듯 바람이 행하는 듯 위엄을 떨치심에 겨룰 자가 없고,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어울려 비상한 공업(功業)을 세우셨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본국이 머나먼 구석진 곳에 있으나 일찍부터 상국을 향모(嚮慕)하였사온대 대조(大朝)에서 거의(擧義)하여 여러 번 군사를 일으킨 것은, 역시 폐국(弊國)에 어려운 일이 많아 조공이 부득이 중단된 것 때문이었습니다. 예(禮)는 비록 궐하였어도 정(情)만은 실로 딴뜻이 없었삽기에 저번에 주장(奏章)을 받들어 외람되이 충정(衷情)을 피력하였사온대 뜻밖에도 사절이 이어 이르고 총명(寵命)을 굽어 내리시어 사대(事大)의 충성을 격려하시고 하늘로부터 은택이 비 내리듯 하였나이다.
더구나 따로이 밀지(密旨)를 전하시어 간곡히 위의 마음을 선유(宣諭)하시어 다시 보주(保州)를 수복치 않으시고 평양을 궁경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셨나이다. 원래 본국의 봉강(封疆)이 압록(鴨綠)까지임은 고래로 분명한 일이었사온데, 글안(契丹)에게 침탈(侵奪)된 것은 대개 근자의 일이오며 비록 본국이 저들과 우호(友好)를 통하였사오나 저들이 오히려 돌려주기를 아끼더니, 저 나라가 망한 뒤로부터 그 성을 지키는 자가 모두 흩어지기에 신의 아비 선신(先臣)이 이르되, “이는 원래 내 땅이라 반환을 청한 지 오랬더니, 다행히 이제 하늘이 주시니 취함에 당연하다.” 하였사옵나이다. 하물며 대조(大朝)의 변신(邊臣) 사하(沙何)가 와서 전하는 선황제(先皇帝)의 칙지에, “본 주는 본시 고려의 땅이니 고려가 거둠이 가하다.” 하셨으므로, 관원(官員)을 파견하여 민호(民戶)를 보충하였삽고, 다시 몇 해 뒤에 신이 왕위(王位)를 이었사온데 이제 마침 상국의 지휘로 소방(小邦)의 영토에 속하기를 허가하셨나이다. 또 선유에, “양계(兩界)에 투입된 인구들의 있고 없는 것을 쇄회(刷會) 교부(交付)하라 하였던 일은 이미 세월이 오래었고, 또한 풍토가 다르므로 편안히 생존한 자가 있을 리 없고 모두 사망하였으니, 지금 어찌 자세히 조사하여 살피랴. 편의대로 하라.” 하셨사오니, 지극한 은혜를 거듭 입사옴이 실로 상례(常例)를 넘사옵니다. 돌보시는 사랑이 이렇듯 하오니 그 은덕을 어떻게 갚사오리까.
삼가 마땅히 훈사(訓辭)를 준봉(遵奉)하고, 각별히 조공을 부지런히 하여 엄한 예(禮)로 위를 받들어 해마다 끊이지 않게 하려 하오며, 돈독한 의(義)로 왕을 높여 길이 세세에 전하고자 하옵나이다.
26.금 나라에 들어가 영접사를 보내 주심을 사례하는 표[入金謝差接伴表]
김극기(金克己)
상국에 과거를 보려고 멀리 궁궐에 조회하옵던 차에, 신하를 예(禮)로 보내 도중에 영접하오니, 영광이 분에 넘쳐 느낌이 가슴에 벅차도소이다. 중사(中謝)
배신(陪臣)이 멀리 청구(靑邱)를 떠나 장차 자신(紫宸)께 뵈오려 함은 해와 달이 조림(照臨)함에 비록 평소로부터 해바라기가 해를 보고 기울어지듯 하오나, 산천(山川)이 멀고 멀어 부평초(浮萍草)가 떠돌 듯, 의지할 바 없음을 두려워해서였는데 어쩌면 다행히 성상께서 나그네의 신세를 어여삐 여기사 사자를 내려보내시어 이 외로운 일행을 맞아 주시오니, 호절(虎節)이 찬란히 늘어섬에 도로에 생색(生色)이 오며, 거룩한 용안(龍顔)을 상상하면서 운소(雲霄)를 그지없이 바라옵나이다.
27.사사조서겸약물표(謝賜詔書兼藥物表)
김극기(金克己)
밝은 윤음(綸音)을 말씀하시어 먼저 먼 길의 수고를 위로하시고, 은덕을 이슬같이 내리시어 친절히 진기한 약물(藥物)을 나누어 주셨나이다. 중사(中謝)
배신이 해방(海邦)의 명을 받들고 천읍(天邑)에 조회함에 있어 도산(塗山)의 옥백(玉帛)을 회동(會同)에 뒤지지 않고자 우역(禹域 중국)의 제항(梯航)에 여간한 고생을 겪었사온대 뜻밖에도 성상께서 오히려 멀리 오는 사람을 생각하시어 혹 노독(路毒)에 걸릴까 염려하사 적당히 치료할 방법을 베풀어 주시오니, 난(鸞)새가 하늘 위에서 내려와 이함(泥凾 임금의 조서(詔書))에 따뜻한 조서(詔書)를 내리시자, 토끼가 달 가운데 방아를 찧어 옥합(玉盒)에 묘한 선단(仙丹)을 내려보내 주시니 온 몸에 병이 가시고 가슴속에 기쁜 기운이 가득차옵나이다.
[주-D001] 도산(塗山) …… 않고자 :
우(禹)가 도산에서 제후(諸侯)를 모으는데, 옥(玉)과 비단[帛]을 예물로 가지고 모인 자가 만국(萬國)이었다 한다.
28.조회에 참예했다가 객성막에 들렸을 때 술과 음식과 옷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朝叅次客省幕賜酒食衣對表]
김극기(金克己)
대궐 뜰에 옥(玉)을 잡아 친히 거룩한 용안을 뵈옵고 빈관(賓館)에 연석을 차리어 외람되이 이수(異數)의 접대를 받자오니, 분수에 넘치는 영광에 가슴을 만지며 두려워하옵나이다. 중사(中謝)
배신이 멀리 해뜨는 고장에서부터 천자의 서울에 와서 뵈옵고, 바야흐로 바다에 조종(朝宗)하는 반열(班列)에 추창하옴에 문득 샘물같이 솟는 은택에 목욕하였나이다. 화려한 큰 띠에 찬란한 예복 차림으로 줄을 지어 늘어선 곳에, 진기한 실과와 향기로운 술이 푸짐하고 아름답사오니, 이 은혜를 보답하옵기 어렵사옴에 오직 정성을 다할 생각만 간절할 뿐이옵니다.
29.사관연표(謝館宴表)
김극기(金克己)
대궐에 폐백을 받들어 비로소 면수(沔水)의 조회에 참가하고 빈관(賓館)에 수레를 돌리자 흐뭇이 수운(需雲 푸짐한 접대)의 잔치를 받자오니, 고요히 영행(榮幸)을 생각하옴에 감격이 깊고 간절하도소이다. 중사(中謝)
배신이 멀리 메추리만한 번국(藩國)에서부터 코끼리 같은 대궐에 손님으로 와, 크나큰 화옥(華屋)에서 묵는 편안함은 마름[藻]을 의지하는 고기와 같고, 질펀한 연석에서의 즐거움은 쑥[苹]을 먹는 사슴과 같사오니, 어쩌면 이다지도 이수의 접대가 이 미천한 몸에 모이나이까. 군자(君子)의 태평을 노래함이 주실(周室)과 같사오며 성인(聖人)의 장수하심을 축복함이 화봉인(華封人)과 다름이 없도소이다.
[주-D001] 마름[藻]을 …… 같고 :
《시경》에, “물고기가 마름에 있다[魚在左藻].”는 시가 있는데, 천자의 제후를 잔치하는 시다.
[주-D002] 쑥[苹]을 …… 같사오니 :
《시경》에, “사슴이 울며 평(苹)을 먹는다.[鹿鳴食苹]”는 시가 있는데, 천자가 손을 잔치하는 시다.
30.관반을 보내 주심을 사례하는 표[謝差館伴表]
김극기(金克己)
이제는 조금 쉴세라 큰 집에 와 편안한 자리에 거처하오나, 누구와 더불어 대화할 사람이 없던 터에 조정의 알뜰한 신하를 보내시어 짝을 삼게 하시니, 서로 의지하는 다행을 얻음에 기쁘고 감격하여 울렁이는 회포가 깊도소이다. 중사(中謝)
배신이 이역(異域)에서 바람을 점치고 배 타고 출발하여 하늘에 햇빛을 바라보고 와서, 무엇 하나 탓할 것 없이 화려한 빈관(賓館)에 기거(起居)할 뿐 아니라 예절도 있고 은혜도 있어 문신[搢紳]들의 융숭한 접대를 받사오니, 영광이 막대하여 분골쇄신(粉骨碎身)으로도 고마움을 갚기 어렵도소이다.
31.빈관의 큰 잔치를 사례하는 표[謝館大宴表]
김극기(金克己)
높으나 높은 문, 으리으리한 빈관(賓館)에 나그네의 자취를 붙이고 진열된 변두(籩豆), 화려한 연석에 이수의 접대를 받사오니, 그지없는 은영(恩榮)에 황공함을 어찌 이기오리이까. 중사(中謝)
배신이 멀리 동비(東鄙)로부터 북신(北宸)에 사절(使節)로 왔사온대 어찌 운한(雲漢)의 특수한 은혜를 기약하였사오리까. 다만 초래(草萊)의 비천한 사절임을 기억하고 있을 뿐인데 따뜻한 말씀으로 성지(聖旨)를 내리시고 큰 잔치로 자애(慈愛)를 보이시오니, 난수(蘭壽)ㆍ옥찬(玉饌)의 꽃다운 향기와 계서(桂醑)ㆍ금배(金醅)의 짜릿한 맛은 마음을 다하여도 녹명(鹿鳴)의 아름다운 충의(忠義)에는 부끄럽사오나, 위의 은혜를 보답코자 우러러 천보(天保)의 복을 비옵나이다.
[주-D001] 천보(天保) :
《시경》천보편(天保篇)은 군자의 오래살기를 비는 시다.
32.사 화연 표(謝花宴表)
김극기(金克己)
천정(天庭)에 조회하여 조공을 받들며 해와 달의 빛을 기쁘게 우러러 뵈옴에 활짝 열린 빈관에 진수(珍羞)를 나열하여 운소(雲霄)의 은택을 푸짐히 내리시오니, 총영(寵榮)이 겹겹이 쌓여 정신이 아찔하였나이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황제께옵서 덕은 오히려 거칠은 것을 포용하시고, 인(仁)은 먼저 작은 나라를 어루만지시어 변방 나라의 천한 사신이 성조(聖朝)의 아름다운 때를 하례함을 굽어 어여삐 여기셔서 빈관(賓館)을 찬란히 열고 연석을 거듭 차리오니, 잔에 넘치는 옥온(玉醞)은 중산(中山) 천일주(千日酒)의 향기를 머금었고, 탁상에 가득한 경파(瓊葩)는 상원(上苑) 구춘(九春)의 빛을 풍기어 뼛속에까지 스며드는 감격을 몸이 죽어도 보답하기 어렵도소이다.
33.원단의 어연에 초청했음을 사례하는 표[謝正旦赴御宴表]
김극기(金克己)
옥촉(玉燭)이 사기(四氣)를 조화하여 비둘기를 놓는 아름다운 아침을 즈음하여, 운소(雲霄)에서 성권(聖眷)을 내리시어 녹명(鹿鳴)의 아름다운 잔치를 차리오니, 총영을 받자옴이 분에 넘쳐 옷깃을 만지며 눈물을 흘리옵나이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황제께옵서 하늘의 명(命)을 거룩히 받으사 역서(曆書)를 공경히 반포하시고, 한전(漢殿) 삼조(三朝)의 때에 임하여 도산(塗山) 만국의 조회를 받삽나이다. 돌아보옵건대, 저희들 미천한 사신이 외람되이 명정(明庭)에 나와서 이미 옥백(玉帛)을 드리는 의식을 닦고, 인하여 변두(籩豆)를 차려 놓은 잔치에 참가하오니, 아름답고 맛좋은 백엽(柏葉)의 잔을 자주 기울이고, 수(壽)와 강녕(康寧)으로 우러러 초화(椒花)의 송(頌)을 드리옵나이다.
[주-D001] 비둘기를 …… 아름다운 :
한대(漢代)에 원조(元朝)가 비둘기를 놓아 날렸다.
[주-D002] 백엽(柏葉)의 잔 :
새해에 백엽주(柏葉酒)와 초주(椒酒)를 만들어 마신다.
34.춘번주-D001과 채승(綵勝)주-D002을 하사함을 사례하는 표[謝春幡勝表]
김극기(金克己)
목덕(木德)에 용(龍)이 올라 새봄의 이 아름다운 기운이 처음 지상에 돌아오고, 금화(金花)로 제비를 오린 진기한 반사품(頒賜品)이 문득 하늘 위에서 떨어지오니, 그지없는 은혜를 입사와 어찌할 바를 모르겠삽나이다. 중사(中謝)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황제께옵서 총명ㆍ예지(睿智)하옵시고, 천지의 도(道)를 돕고 마르[裁]시어 순(舜) 임금의 선기옥형(璿璣玉衡 천문기구(天文器具))을 조절하여 삼광(三光 해ㆍ달ㆍ별)을 바로잡으시고, 요(堯) 임금의 일월(日月)을 본떠 사시(四時)를 조화하시되 마침 얼음이 풀리는 첫철에 임하여 화려한 의춘(宜春)의 옛 식(式)을 거행하오니, 덕택이 제후들에게 고루 퍼지고 은파(恩波)가 여러 신하들에게 미치옵나이다. 우로(雨露)의 은혜가 짙사와 기쁘게 봉대(奉戴)하는 마음이 깊사오나, 연애(涓埃) 같은 미력(微力)으로 갚을 길이 없사옴을 부끄러워하옵나이다.
[주-D001] 춘번 :
한대(漢代) 입춘(立春)에 번(幡 깃발)을 세우는데 임금이 신하에게 번(幡)을 내려준다.
[주-D002] 채승(綵勝) :
비단에 금은으로 제비[燕] 등속의 형상을 만든 것이다.
35.계해년에 북조에 들어가 조정하는 사절로 수제(修製)로 가면서 본국을 조사하는 날에 올린 사례하는 표[癸亥年入北朝賀一使修製本國朝辭日謝表]
김극기(金克己)
신 모 등은 아뢰옵나이다.
이달 모일 조사(朝辭) 차에 성상께옵서 신에게 공복(公服) 한 벌과, 은요대(銀腰帶) 한 조(條)와, 말 한 필을 하사하셨나이다.
왕정(王程)을 비로소 떠나올 때는 섭공(葉公)이 얼음을 마시듯 와들와들 떨었사온대 성택(聖澤)이 곁으로까지 흘러 주왕(周王)의 떨어지는 이슬이 철철 흐르오니, 우악(優渥)한 성은을 받잡고 감격과 떨림이 없드려 쌓이어, 신 모가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리옵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이 관괵(管蒯)의 보잘것 없는 재질과 두초(斗筲)의 작은 그릇으로 다행히 비룡(飛龍)의 때를 만나 외람되이 진로(振鷺)의 반열에 참가하여 대[竹]를 쪼개어 받은 원(員)의 직책으로 나아가 여러 지방을 다스렸삽고, 난초[蘭]를 손에 쥐고 정사를 상주(上奏)하면서 들어와 청요(淸要)한 관직에 처하여 이미 과거의 시관(試官)에까지 전임(轉任)되고, 인하여 형조(刑曹)의 직책을 맡았사오니, 이제 취임한 지 겨우 3년이라 발탁될 자격이 없사온데, 하물며 사방에 명예를 퍼뜨리는 사절로서 어찌 임명될 만하오리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혁(赫赫)한 어명(御命)을 내리시어 황화(皇華)의 임무를 받들게 됨에 스스로 무능함을 돌아보고, 먼저 못 미칠까 하는 생각을 품었삽더니, 뜻밖에도 구소(九霄)의 권념(眷念)이 굽어 천리의 길을 어여삐 여기시어 마침 길 떠나기에 임하여 우악(優渥)히 특이한 하사를 내리시오니, 찬란한 공복은 실로 어탕(御帑)의 진제(珍製)요, 날랜 일족(逸足)은 또한 내구(內廐)의 준마(駿馬)이온지라, 외람되이 특수한 은혜를 입사오니 송구한 마음이 실로 깊도소이다.
신이 어찌 성은(聖恩)을 패복(佩服)하고 절역(絶域)에 구치(驅馳)하지 않사오리이까. 시(詩)를 외우며 전대(專對)함에 비록 사신의 재목을 감당치 못하오나, 정사를 쫓아 수행함에는 임금의 명령을 욕되게 하지 않사오리이다. 신이 천은(天恩)에 감격하고 성은을 입어 격절(激切)하고 송구한 마음이 지극하도소이다.
[주-D001] 섭공(葉公)이 …… 마시듯 :
《장자(莊子)》에 섭공(葉公)이, “내가 아침에 왕명을 받고는 저녁에 얼음을 마시니, 내가 속이 더운[內熱] 것인가.” 하였다.
[주-D002] 주왕(周王)의 …… 이슬 :
《시경》에 영로편(零露篇)이 있는데 여기서는 황실(皇室)의 은혜를 비유한 것이다.
[주-D003] 난초[蘭]를 …… 쥐고 :
한대(漢代)에 근신(近臣)들이 임금 앞에 들어갈 때에 향기가 나게 하기 위하여 난초를 가졌다.
[주-D004] 시(詩)를……전대(專對) :
“시경 3백편을 외우고도 외국에 사신가서 전대(專對 獨對)하지 못하면 시를 많이 외워도 무엇하랴.” 하였다《論語》
36.조사하는 날 옷과 말과 예물을 하사하심을 사례하는 표[謝朝辭日衣對鞍馬禮物表]
김극기(金克己)
조근(朝覲)의 예(禮)를 이제 마치고 돌아감을 사뢰옵자, 특이한 하사를 내리시어 성은이 우악(優渥)하시오니, 분에 넘치는 영광에 황공하여 몸둘 바를 알지 못하옵나이다. 중사(中謝)
배신이 외람되이 한 사자의 미천한 몸으로 와서 삼원(三元)의 경전(慶典)을 하례하여, 오래 화려한 빈관에 묵으며 분에 넘치는 특수한 은혜를 입삽고, 사명을 다하고 돌아가려 하옴에 길 떠나는 자에게 선물을 갖추어 주시어 가벼운 갖옷과 가죽띠로 특히 패복(佩服)할 화려한 옷차림을 마련해 주시고, 날랜 준마와 보배로운 안장으로 머나먼 길을 편안히 가게 하시고도 겸하여 수레를 멜 역부(役夫)와 내탕(內帑)의 진장(珍藏)까지를 하사하시오니, 천지의 어지심을 진실로 보답하기 어렵사옵기 견마(犬馬)의 주인 그리는 마음이 한갓 간절하겠삽나이다.
37.빈관의 전송연을 사례하는 표[謝館餞宴表]
김극기(金克己)
황은(皇恩)이 특별하사 굽어 환국의 청을 윤허하여 주시고, 공관에 잔치를 벌여 성대한 전송의 자리를 베풀어 주시오니, 은혜를 입사옴이 너무나 지나치옴에 가슴을 어루만지며 감개가 깊도소이다. 중사(中謝)
배신이 이미 정례(定例)의 빙례(聘禮)를 마치옵고 바야흐로 하직을 비옴에 다행히 원하는 대로 허락하시는 어지심을 받자와 이제 귀국의 길에 오르려 하옵는데 인하여 전송의 총례(寵禮)를 베풀어 잔치를 마음껏 즐기게 되오니 처음부터 끝까지 고마우신 은혜를 깊이 마음속에 새겨 간직하오니, 살거나 죽거나 간에 진실로 은덕을 보답하기 어렵겠삽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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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권 끝.
첫댓글
한 무제(漢武帝)가 급암(汲黯)을 회양 태수(淮陽太守)로 내보내려 하니 급암은 “신이 대궐에 출입하면서 폐하의 허물된 것을 보충하여 빠뜨린 것을 주워드리겠습니다.” 하였다.
지기님 고맙고 감사 합니다.
건강 하세요
좋은 자료와 함께 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겸허 선생님 항상 감사 합니다.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사암 선생님 늘 건강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