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메시지이다
여기서 우리는 매클루언의 책 《미디어의 이해》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명제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는 간결하고도 분명한 명제로 요약된다. 이 명제는 자칫 미디어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매우 평범한 뜻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클루언이 공격하고자 하는 미디어에 대한 전통적이고도 가장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말은 미디어 자체가 곧 메시지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텔레비전이라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 그 자체가 메시지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메신저인 메시아로서의 예수가 이 땅에 왔을 때 그가 어떤 말을 하는가 하는 내용(메시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라는 존재 자체가 복음의 메시지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텔레비전이라는 뉴미디어가 과거의 인쇄매체와 달리 사람들의 새로운 소통 체계를 가져왔다면 그것이 바로 텔레비전이 주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매클루언이 미디어를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닌 소통 체계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디어를 소통 체계와 관련 짓는 매클루언의 접근 방식은 근본적인 철학적 사유의 전환을 내재하고 있다. 이는 미디어가 실재 세계를 재현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가 접하고 있는 세계가 미디어의 산물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매클루언이 말하는 미디어라는 개념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미디어라는 단어를 접할 때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과 같은 대중매체를 항상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매클루언에게 미디어란 말 그대로 두 항을 연결하는 중간자이자 동시에 매개물로서의 매체이다. 가령 우리가 대화를 할 때 발성기관을 통해서 공기의 진동을 만들고 두뇌의 사고 작용을 상대방의 귀에 전달하면, 상대방의 귀는 진동을 흡수하여 고막의 떨림을 통해서 전기신호를 만들어 대뇌에 전달한다. 이때 말이 대화의 매체(미디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란 공기의 진동이므로 그러한 진동을 만들어내는 공기라는 매질 또한 매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입도 매체일 것이다. 따라서 매체로서 미디어는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매클루언은 매개물인 미디어에 따라서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 혹은 세계의 모습 자체가 달라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가령 우리가 공간을 이동할 때 바닥과 우리 몸을 연결하는 매개물은 우리의 다리일 수도 있고, 자전거나 자동차를 탔을 경우와 같이 바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운송 미디어가 다리인지 바퀴인지에 따라서 우리의 공간 구성은 엄청나게 바뀐다. 근대의 전지구적 공간을 상징하던 메르카도르 도법은 전적으로 배라는 미디어의 발전에 의한 산물이다. 메르카도르 도법은 실제 항해라는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서 제작되었으나 실제 공간과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원래 곡면인 지구의 표면을 이차원적인 평면으로 환원시켰기 때문이다. 다만 이 도법에 따른 공간 구성은 대륙 간의 소통이나 운송을 위해서 최적화된 것이었으며 실용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은 지도에 매겨진 좌표를 현실의 공간으로 믿는다. 근대인에게 세계라는 공간은 곧 기하학적인 좌표로 분할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근대적 공간의 탄생은 근대적 미디어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자면 소통의 체계로서 미디어가 세계를 창출한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따라서 매클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는 명제가 주는 궁극적 의미는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소통 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어떠한 세계를 구성하며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미디어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