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언급된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은 읽어 보지 못했지만
한때는 조선왕조실록에 관심을 두었던 때가 있었지요
실록은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국역 된 자료를 볼 수 있어요
태조 때부터 시대순으로 실록 전부를 살핀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기에
왕조 500년 영욕의 역사 중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부분을 일부 살펴 본적이 있습니다
이런 쪽에 문외한인 이공계 출신이지만
그 방대함과 세세한 기록의 치밀함에
분명 자랑스러운 민족의 값진 유산이라는 생각을 했었지요
위대한 선조들입니다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고 다음은 병자호란이라는 생각입니다
명성황후 시해를 기록한 고종의 실록은 일제하에서 편찬되어 사료가 왜곡되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황후가 시해되고 능욕 되었다는 사실에 차마 살펴볼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에
인조실록의 병자호란 편을 읽은적이 있어요
'삼배구고두 (三拜九叩頭)’로 기록되는
인조의 삼전도 굴욕은 통탄할 치욕스러운 역사의 기록입ㅁ니다
차가운 강변 바람이 매서운 정월의 한강 나루터에서
상투를 풀어헤치고 상민들이 입는 남염의를 걸친 맨발의 인조는
한강 백사장에 꿇어앉아 선혈이 낭자하도록 맨땅에 이마를 찧어 박아야 했고
이마 찧는 소리가 축대 위에 걸터앉은 淸 태종의 귀에 들리도록 해야 했다고 실록은 전하니
참혹한 기록입니다
‘군신의 예와 부자의 예로 300년을 이어온 천자의 나라 明을 거스르고
어찌 오랑캐의 나라 淸과 화친을 할 수 있겠느냐’ 가 빚어낸
17세기 조선의 모습이 실록 읽는 자의 가슴을 칩니다
이 굴욕이 어찌 임금과 조정의 무능함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조선왕조 개국 이래 뿌리내린 사대의 사조 탓일겁니다
삼전도의 글욕은
무능하게 묘사되고있는 인조의 문제가 아닌
500년 동안 이어진 조선왕조의 사대주의 -
조선왕조가 중국적 세계질서 내에서만 존재해야 하며
명을 세상의 중심이라는 여기는 중화사상에 경도되어
새롭게 부상하는 청,
변화하는 세계질서의 흐름을 읽어 내지 못한 우둔함
즉 명청교체기에 청나라를 정통으로 인정하지 못한
자신을 작은 중국이라 여기며 만족했던 어리석은 조선의 사대주의에 기인한 소중화사상이 가장 큰 문제일 겁니다
실록 곳곳에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생생한 사대의 망령을 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조선의 백성을 힘들게 하였던 사대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짚어 내는 것이
실록을 읽는 우리 후대들의 숙제라는 생각입니다
첫댓글 단풍들것네님, 오랫만입니다.
오늘 따라 삼전도 굴욕에 대해
많은 글이 올랐습니다.
임금의 자질도 돼 있지 않고
대신들도 그렇고
국제정세에도 못 미치고
무엇 하나 갖추지 못 함이지요.
지나간 역사를 바탕으로
다시는 이런 굴욕적인 역사가 이루어지질
않았음 하는 마음이지요.
지금은 민주주의이니
인조 시대와는 많이 다릅니다만,
그래도 정치는
인간성, 거짓을 내 짓는 사람은
여의도 근처에도 오지 말게 해야 합니다.
네,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삼전도 글이 많으니 저처럼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여의도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세심히 살펴서 잘들 보아야 할텐데요 ~
대통령이 룸살롱에서 새벽까지 술마신다는 소리들이나 하고 있으니~~
아참,
밑에 글 보고 알았어요
붓글씨 보았습니다 ~~ 엄청 놀래뿟습니다 ~~
엄청 오랫만입니다.
저 쪽 방에도 안 계시던데요.
사대주의도 문제지만 당파도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파당이란 지금도 성행해 또 문제이지요.
의원들께서
끼리끼리 해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실력도 없으면서 허영과 욕심만 잔뜩인 게
우리나라 국회의원입니다.
ㅎㅎ 반가워요.^^
후후~
일이 있어서 미국에 두어주 다녀 왔습니다
삼전도 하면 열 잔뜩 받아요~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여의도 정치 이야기 아닌데요 ㅎ
이자뿌지않고 반겨주시니 땡큐~
영감~ 살아 계셨구려 ㅎ
오잉~
요게까지 왔소
그저께 돌아 왔어요, 기다리소 그짝에 내일모레 갈테니 ~~
단풍들것네님 너무 오랜만입니당
미국에는 무슨일로 갔었는지요?
거기에서는 에피소드가 없었는지요?
나는 아직 미국을 못 가봐서 미국 갔다온 사람들이 부러워요
충성 우하하하하하
네 태평성대님 오랜만입니다
특별한 일은 아니구요
동부쪽 미국이나 번잡하지 남부는 촌동네라 캐나다랑 비슷하더군요
복잡하고 번화하기는 서울만한 곳이 없지요 고맙습니다
한국사 시험을 보려고
역사를 쪼금 공부했거든요.
제일 잼난 건 조선
제일 화딱지 난건 일제 강점기.
조선왕조실록 만큼 잼난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요. 그것도 사관이 쓴거잖아요.
ㅎ
일제 강점기는 정말 그렇지요
맞습니다 관심있는 분들께는
조선왕조 실록만큼 흥미로운 기록이 없을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조선의 똘끼 넘치는 왕이 둘 있는데 선조와 인조라 .....
나도 국사라면 한가닥 했지만 이부분에 있어서는 대책이 없는 시대였지 ~
( 그 바탕에 주자학이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선비라는 거짓가면을 쓴 자들의 기득권 수호가 늘 한몫했고 )
근대사에 가까운 말기조선의 치욕이야 근 100 년에 이르렀으니, 다만 가상한 것은 민초들의 꺽이지 않는 기상이 오늘에 이르르지 않았나 싶어 .
가까운 예로 촛불의 민심까지 ~
후후 기록에 남겨질 정도이니
실상은 얼마나 꺼벙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지요
이나라를 지탱한 힘은 민초들이라는 의견에 백번도 넘게 공감~~
어마나!
오랜만에 뵙는 단풍님 반갑습니다.
삼전도 굴욕은 수필방에 단풍님을 다시 오게 만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바쁘셨나봅니다.
자주 글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오머나~
잊지않고 반겨주시는 넉넉함에 감읍~
그래요 자주 뵙도록 해요~
오랜만이시네요
무슨일로 안오는지
가끔 생각났드랬지요
그저 건강하시기
바라며 오래 글 올려주시며 웃고 살아가요
ㅎ 가끔말고 자주 생각해주세요~
네 건강합니다, 오브엠님도 겨울준비 단단히 하시기 바랍니다
으째 남 말 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쁘셨나 봅니다 ~^^
오늘은 2022. 12. 6. 화요일.
오후에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의 동호 서호를 가르는 송파대로 북편에 있는 '대청황제공덕비'의 비각을 찾아갔다.
초라한 비각(빗돌을 가리는 건물) 안에 든 커다란 빗돌을 보았다.
용이 꿈틀거리는 용갓석 아래는 넓적하고 큰 빗돌 상단에는 한문으로 '大淸皇帝功德碑'라고 새겨져 있고,
빗돌의 전면 후면에는 3개의 나라 글자로 써졌으나 전혀 판독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게 창피해서 '삼전도비'라고 부른다.
이런 명칭은 위 빗돌에는 전혀 없다. 중국 한자로 '대청황제공덕비'라고 썼다.
지하전철 잠실역에서 내리면 롯데월드/롯데마트의 대형건물이 보이고 조금만 걸으면 위 석촌호수가 나오며, 대로변 바로 인근에 이 비석이 서 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나라 사람한테는 치욕의 비석일지라도 청나라/지금은 중국사람한테는 자랑스러운 빗돌일 게다.
'역사는 강자가 새롭게 고쳐 쓴다.'라고 말하는 나.
어쩌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역사는 반복할 수도 있다 ' 라고도 말한다.
자세한 비석 설명 고맙습니다
호란이 오래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가까운 일이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