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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리고 도마복음 제11장》
오늘 내용은 본성(불성/성령)은 태초 이전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쭉~ 죽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불교나 기독교인들이 아셔야 할 것은 특히 기독교인들이 아셔야 할 것은?
우리 주(主/자신) 안에는 성령이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한답니다.
이것을 안 믿으면 성경은 그 어떤 구절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성경 구절 전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관한 내용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불교도 불성과 참나 와 본성에 관한 내용들인 것이고요.
불교든 기독교든 깨닫기 전에는 믿고 할 수 박에 없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그렇지 않습니까?
모르면 믿던지 안 믿던지 둘 중에 하나잖아요?
그러나 직접 보고 알면 믿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요?
이것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깨닫고 보면 우리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이 본성(불성/성령)은 도저히 죽을 수도 없어질 수도 없는 그런 것이랍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나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랍니다.
허접하고 유치하게 하나님 이것 해주세요 부처님 저것 해주세요 하는 그런 것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 마을 앞 성황당에 빌고 또 비는 그런 유치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교나 기독교는 불성을 증득하고 성령을 영접해서 불생불멸을 이루고 영생을 이루는 것이 불교나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라는 것이지 종이나 노예처럼 주인에게 빌고 먹을 것을 구하는 그런 허접하고 유치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남들이 무슨 말을 할 때에 모르면 믿고 따르던지 아니면 안 믿고 배척하던지 둘 중에 하나잖아요?
그러나 실제로 보고 느끼고 있다면 믿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요?
이것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몸은 그야말로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고 본성(불성/성령)이 진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본성(불성/성령)을 중요시 여기게 되는 거랍니다.
솔직히 제 경우만 해도 그날 이후 이것을 못 보고 못 느꼈다면 저도 또한 도저히 믿지를 않았을 것인데요.
솔직히 말해서 제 경우도 평생을 교회를 다녔다고는 하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다녔을 뿐이지 믿음이 강해서 다녔던 것은 아니랍니다.
특히 성경 공부는 어렸을 때 성경 구절을 외우면 공책이나 연필 등을 주니까 그 재미로 다른 친구들이 하는 정도로 외워서 학용품을 받은 정도였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경우는 국민학교 때 친구들도 이 글을 보고 있지만 공부 자체를 매우 매우 싫어했던 경우라 학교 다닐 때에도 차라리 몇 대 맞고 말지 숙제라고는 해가 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히 이런 곳에는 관심 자체가 없었답니다.
제가 미쳤습니까 놀기도 바쁜 사람이 이런 경전 공부를 하고 앉아 있게요?
그런데 그날(2016년 8월) 이후 이것을 알고부터는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어서 지금은 불경뿐만이 아니라 성경 책도 옆에 끼고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배우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과 같이 공유해 보고 있는 것인데요.
이것이 그런 거랍니다.
모르면 아무리 경전 박사라 하더라도 모르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대문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시골에 사는 사람이 단 하번도 남대문을 보지 못한 사람이 제아무리 책을 통해 남대문을 공부한들 직접 남대문을 보고 있는 사람하고 비교가 되겠느냐 이겁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책을 통해 공부를 해 봐야 모두 다 알음알이에 불과한 것이지 직접 보고 느끼고 누리는 사람하고는 비교가 되겠느냐 이겁니다?
불교나 기독교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공부를 안 했더라도 깨닫고서 알고 보면 모든 것들이 드러나기 때문에 더 재미가 있고 더 깊이 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중에 하나라는 것이고요.
정말이랍니다.
특히 제 경우는 불교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이랍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하나 만이라도 신기하고 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안 그럴 것 같지요?
아마 모르긴 해도 여러분도 본성(불성/성령)을 깨닫게 되면 저보다는 훨씬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런 것이랍니다.
그러나 아직 깨닫지 못한 분들은 믿고 따라서 하거나 아니면 안 믿고 등을 돌리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가르침을 믿고 끝까지 따라 해서 여러분들도 깨닫고 증득(영접)을 하던지?
아니면 뻥이라고 생각이 드시면 차라리 이런 곳에는 관심도 두지 마시고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사시다가 가시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 내용의 기준점은 우리들 주(主/자신) 안에는 본성(불성/성령)이 거하고 있다는 것이고 본성(불성/성령)은 도저히 죽을 수도 없어질 수도 없는 그런 것이라는 것인데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것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하는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영생(永生)이라 표현하는 거랍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면 이러한 사실들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것이고요.(진실)
그리고 이것을 증득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도피안(到彼岸)이라 하는 것이고 성불(成佛)이라고도 표현한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거듭난다"라고도 표현하고 있고 "성령을 영접했다"라고도 표현하고 있고 "하늘나라로 들어간다"라고도 표현하고 있고 "젖과 꿀이 흐르는 요단강 건너 저편 가나안 땅으로.."라고도 표현하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영원한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성을 증득하든 성령을 영접하게 되면 생기는 수많은 현상들을 불교 경전이나 성경 속에는 그 느낌이나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수록해 놓았는데요.
그리고 그러한 경전 속 이야기들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대표적인 표현이 [극락]과 [천국]인 것이고요.
여러분들도 깨닫고 증득을 해보십시오?
그 자체가 [극락]이고 [천국]이랍니다.(진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일단은 먼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경전 속 내용들이 진짜로 그런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다는 것이고요.
제 경우는 실제로 비교를 하면서 경전을 보니까 너무 재미가 있는 것이고 여러분들은 모르고 보니까 재미가 없는 것뿐이랍니다.
뭐든지 그렇잖아요?
바둑도 그렇고 당구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고 여자들 같은 경우는 꽃꽂이나 자수도 모르고 보면 재미가 없잖아요?
이것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아시고 이번 내용을 보시면 좋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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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94편) 20260504
지석(持錫)
마곡보철 선사가 석장을 들고 장경에게 가서 승상을 세 번 돈 뒤에 석장을 한번 흔들고 우뚝 섰으니, 장경이 말호대 "옳다 옳다" 하였다. [설두가 착어호대 "틀렸다" 하였다] 선사가 다시 남전에게 가서 승상을 세번 돌고 석장을 한 번 흔들고 우뚝 섰으니, 남전이 말호대 "옳지 않다. 옳지 않다" 하였다. [설두가 착어호대 "틀렸다" 하였다] 이에 선사가 말호대 "장경은 옳다 했거늘 화상은 어째서 옳지 않다 하십니까?" 남전이 대답호대 "장경은 옳거니와 그대는 옳지 않으니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끝내는 무너지느니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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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持錫
麻谷寶微禪師 持錫到章敬 遶繩床三匝 振錫一下 卓然而立 章敬云 是是(雪竇着語云錯) 師又到南泉 遶繩床三匝 振錫一下 卓然而立 泉云 不是不是(雪竇着語云錯) 師云 章敬 道是 和尙 爲什麼道不是 泉云 章敬 卽是是 汝 不是 此是風力所轉 終成敗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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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제 11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하늘도 사라지리라. 그리고 이 하늘 위에 있는 저 하늘도 사라지리라.
2. 죽은 자들은 살아있지 아니 하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아니 하리라.
3. 너희가 죽은 것을 먹던 그 날에는 너희는 죽은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었도다.
너희가 빛 속에 거하게 되었을 때는 과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4. 너희가 하나였던 바로 그 날에 너희는 둘이 되었도다. 그러나 너희가 둘이 되었을 때 과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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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2018년 초기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글에 누가 관심을 가져 줄까 싶어서 집안 형님과 지인 형님 한 분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다가 주의 사람들과도 같이 보게 되었고 그중에 불자 지인들이 카페에 저의 글을 올려주면서 직접 올려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요.
생각보다 지금은 엄청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해주시고 계시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인분들은 거의가 불교와는 상관이 없으신 분들이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주시고 따라 해 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보람을 느끼고 있답니다.🙏🏻
수행이라는 것이 뭐 별거겠습니까?
모두가 참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마음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지요.
아무쪼록 늘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꼭 성불(증득)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이 글은 주로 수행(수도)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어서 설명하느라 글이 좀 길답니다.😅
ㅡ♡
(본문 해설)
오늘 내용은 그동안 여러 번 했었던 내용인데요.
선문염송도 이제는 뒤로 갈수록 앞에 선사들이 했던 것들을 자꾸 흉내를 내면서 재탕을 하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는데요?
오늘 내용만 해도 그렇답니다.
오늘 내용은 영가 스님이 육조 혜능을 처음 찾아갔을 때 지팡이와 월병을 들고 혜능이 앉아 있는 주의를 세 번 돌았다는 내용과 같은 내용이랍니다.
아무튼 오늘 본문 제목에서 지석(持錫)이란 단어가 나오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持錫)이란 중국 자료를 찾아보면 지팡이를 뜻한답니다.
스님들이 들고 있는 지팡이로 하면 주장자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오늘 내용에서 지팡이의 상징은 그런 지팡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오늘 내용에서의 지팡이는 상갓집에서 쓰는 지팡이를 이야기하는 거랍니다.
상갓집에서도 보면 상주가 상복을 입고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하객들을 맞이하잖아요?
그때는 쓰는 지팡이를 비유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본문 내용을 보면?
[승상을 세 번 돈 뒤에 석장을 한번 흔들고 우뚝 섰으니]
라는 내용이 나오잖아요?
이 내용은 죽은 사람 취급을 하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상갓집에 가면 술이나 향을 올리고 절을 두 번 하잖아요?
그렇듯 중국 사람들도 죽은 사람의 얼굴에 화장을 해서 관에 넣어두면 하객들이 그 관을 돌면서 애도를 하는 풍습이 있답니다.
그런데 왜 살아 있는 사람 앞에서 죽은 사람 취급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죽은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은 최고의 예를 표현하는 내용이라 그렇답니다.
육식은 소멸하고 해탈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죽은 사람 취급을 하는 거랍니다.
일반 사람들은 죽은 사람 취급을 하면 화를 내겠지만 수행자들에게 있어서는 죽은 사람 취급을 하면 최고의 찬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깨닫고 증득(영접)을 하게 되면 몸(오온)은 엄청나게 안정이 된답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몸(오온)이 엄청나게 고요해진답니다.
그래서 마음도 고요한 것이고요.
그래서 조견오온(照見五蘊)
을 해보라고 하는 거랍니다.
그러면 개공(皆空)이 된다는 것이고요.
쉽게 말해 내 몸(오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알아차려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도 덩달아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고요.
예를 들면 화가 나거나 쫓기고 있거나 두렵거나 할 때에 내 몸(오온)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관찰하고 사유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방법을 안 하고 있으니 답답한 것이고요.
아무튼 깨닫고 증득(영접)을 하게 되면 마음이 엄청나게 고요하고 평온하고 풍요롭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내 몸(오온)이 죽은 것처럼 평온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선사들끼리는 상대를 높이기 위해서 죽은 사람 비유를 하는 것이고요.
이런 점을 아시고 이번 선문을 보시면 이해하시기 좋을 줄 압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하루는 [마곡보철 선사가 석장을 들고 장경에게 가서 승상을 세 번 돈 뒤에 석장을 한번 흔들고 우뚝 섰으니,]
이 뜻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마곡 선사가 장경에게 당신은 몸(오온)이 소멸(죽은) 한 상태라고 표현하는 대목이랍니다.
그랬더니 장경의 말이..
"옳다 옳다" 하였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그렇다"라는 뜻이랍니다.
나의 몸(오온)은 소멸된 상태라는 뜻이지요.
불성을 증득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설두는 이를 보고 "틀렸다" 하였다는 것인데요?
그랬더니 선사가 다시 남전에게 가서 승상을 세 번 돌고 석장을 한 번 흔들고 우뚝 섰으니, 남전이 말호대 "옳지 않다. 옳지 않다"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선사가 "장경은 옳다 했거늘 화상은 어째서 옳지 않다 하십니까?" 했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옳다고 하는데 왜 당신은 옳지 않다고 하느냐 이겁니다?
그랬더니 남전이 하는 말이?
"장경은 옳거니와 그대는 옳지 않으니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끝내는 무너지느니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장경은 몸(오온)이 소멸한 것은 맞으나 선사 당신은 아직은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랍니다.
쉽게 말해 장경은 불성을 증득한 것이 맞지만 당신은 아직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랍니다.
바람의 힘으로 즉 분별심으로 하는 말이라 끝내는 무너진다는 뜻이고요.
쉽게 말해 마곡보철 당신은 옛 어른들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 어른들도 이와 같다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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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마복음 제11장 내용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예수님 말씀을 보면서 감탄에 또 감탄을 하고 있는 중인데요.
왜냐하면 성령(불성/본성)에 대해서 너무나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님은 부처님처럼 성령(불성/본성)에 대해서 까놓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보니까 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면서 비유로 표현해서 그것이 좀 안타까운 것인데요.
그럴 수박에 없는 것이 중동 지역은 지금도 자신들이 믿는 신과 조금만 달라도 암살이나 사형을 시켜버리니 예수님 쪽에서도 어쩌겠습니까?
저는 예수님이 그 험한 중동 지역에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죽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것도 많이 버틴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마치 수수께끼처럼 전하고자 하는 말씀을 만들 수 박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곧바로 중동 지역에서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자식"이라든지 "내 안에 성령이 있다"라고 말하면 그날로 살해를 당했을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중동 지역은 지금도 그런데 그 당시에는 오죽했겠어요?
이런 점을 감안하고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대해야 한답니다.
그런 면에서는 싯다르타는 비교적 편하게 이 법을 전했다 할 수가 있고요.
아무튼 그래서 신약성서는 헷갈리게 적어놓은 성경 구절들이 많은 거랍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처럼 까놓고 솔직하게 쉽게 설명을 했다간 바로 모가지가 댕강하니까요.
그래도 도마에게 도마복음서라도 남겨 놓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어리석게도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을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답니다.
그 이유는 깨어있는 선지자(선지식인)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아무튼 오늘 내용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육체는 죽더라도 육체 안에 있는 성령(불성/본성)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내용이랍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영생(永生)이라 하는 것이고 불교에서는 이것을 불생불면(不生不滅)이라 하는 것이랍니다.
태초 이전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쭉~ 본성(불성/성령)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증득이든 영접이든 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이고요.
이 외의 행위들은 다 허망한 것이고 무상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답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하늘도 사라지리라. 그리고 이 하늘 위에 있는 저 하늘도 사라지리라.]
(해설 : 이 내용은 불교 쪽에서 수행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만한 내용인데요.
왜냐하면 지금 이 내용은 선종으로 말하면 선정(禪定) 상태를 이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2. 죽은 자들은 살아있지 아니 하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아니 하리라.]
(해설 : 지금 이 내용은 앞에 내용은 육체를 나타내는 말이고 뒤에 것은 성령(불성/본성)을 나타내는 말이랍니다.
쉽게 말해 육체는 한번 죽으면 살아있지를 못하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성령(불성/본성)을 아는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깨닫게 되면 이러한 사실을 100% 알 수박에 없는 것이고요.)
★ 그리고
[3. 너희가 죽은 것을 먹던 그 날에는 너희는 죽은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었도다.
너희가 빛 속에 거하게 되었을 때는 과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해설 : 그리고 이 말은 여기서 말하는" 너희가 죽은 것을 먹던 그날에는.." 란 이 육체가 죽는 그날에는 "너희는 죽은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었도다."라는 뜻으로
쉽게 말해 우리의 육체가 죽는 순간 우리의 성령(불성/본성)은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의 육체가 성령(불성/본성)을 가리고 있다 보니까 그 육체는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러나 누구나 성령(불성/본성)을 증득하거나 영접하게 되면 영생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으셔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육체가 성령(불성/본성)을 가리고 있는 것을 거둬내는 것이 곧 수도(修道)이고 수행(修行)이라는 것입니다.)
★ 그리고 또
[4. 너희가 하나였던 바로 그 날에 너희는 둘이 되었도다. 그러나 너희가 둘이 되었을 때 과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해설 : 이 내용은 불교로 말하면 불이(不二)에 관한 내용이랍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육체 입장에서 보니까 이것과 저것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 등이 있겠지만 성령(불성/본성) 입장에서 보면 오직 하나라는 뜻입니다.)
(보충 설명)
제가 자주 예를 드는 풍선 비유인데요.
이 비유는 2019년 경 여름에 평택에 있는 배다리공원이라는 곳에서 걷기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한 어린아이가 막 울고 있는 거예요?
왜 울고 있나 하고 보니까 가지고 있던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으앙~😫" 하면서 울고 있기에 문득 사람도 하늘로 떠나보내면 저렇게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답니다.
사람도 죽으면 "으앙~😫" 하면서 슬피 울잖아요?
그러나 깨달은 사람 입장에서는 슬퍼할 일이 아니랍니다.
오히려 축복해 줘야 할 일이지요.
왜냐하면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곳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살아생전 못다 한 일들로 인해 서운해서 눈물을 흘릴 수는 있어도 본성 입장에서 보면 슬퍼할 일은 아니랍니다.
풍선도 그렇잖아요?
풍선을 우리 몸이라 비유했을 때 풍선 안에 공기를 성령(불성/본성)이라 가정해 보는 겁니다?
풍선이 싱싱하게 살아 있을 때에는 내 풍선 네 풍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각자의 풍선이 터지고 나면 그 안에 있던 공기는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본래 있던 밖으로 가겠지요?
그래서 옛 분들은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습니다" 그랬던 거랍니다.
그런데 풍선들이 많이 터졌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풍선 안의 공기도 밖으로 나가서 하나가 되겠지요?
그래서 불이(不二)라 했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풍선 안에 있던 공기와 풍선 밖의 공기는 본래부터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풍선이라는 옷이 공기(성령/불성/본성)를 가리고 있어서 그렇지 풍선이라는 옷이 터지고 나면 그 안에 있던 공기(성령/불성/본성)는 밖과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해야 비로소 성령(불성/본성)이 자유롭게 활기를 칠 수가 있겠지만 그러나 깨달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살아 있을 때에도 성령(불성/본성)을 자유롭게 쓸 수가 있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몸(오온)을 죽이라 했던 것이고요.
예수님은 육체라 했을 뿐이고요.
풍선이 터지게 되면 그 안에 있던 공기는 전 우주와 하나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불교나 기독교는 우주관이 다른 종교들에 비해서 풍성한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성령(불성/본성)은 전 우주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 하늘도 사라지리라. 그리고 이 하늘 위에 있는 저 하늘도 사라지리라."
했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성령(불성)은 이 하늘이나 저 하늘이나 그 어디에도 존재하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죽은 자들은 살아있지 아니 하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아니 하리라."
"너희가 죽은 것을 먹던 그 날에는 너희는 죽은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었도다."
"너희가 빛 속에 거하게 되었을 때는 과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너희가 하나였던 바로 그 날에 너희는 둘이 되었도다. 그러나 너희가 둘이 되었을 때 과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라고 하셨던 거랍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인데 몸(육체)이 있다 보니까 둘이라 여기고 있다는 뜻이고 그 둘이라 여기고 있을 때 너희는 무엇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이겁니다?
이 몸(육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불성)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성령(불성/본성)을 깨닫고 증득을 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그 몸(육체)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든 불교든 빨리 깨닫고 증득을 하든 영접을 하라는 것이고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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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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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ㅡ♡
지면이 작아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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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누었던 질문답 내용들이 많이 밀려있는데요.^^
너무 많아서 다 올리지 못해 좀 송구하지만 가급적이면 여러분들에게 유익한 내용부터 골라서 올려드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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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처음으로 기독교 쪽 선배님의 질문 내용이랍니다.
저와 같이 하고 있는 70대 이상 선배님들이 대략 삼십여 분이 계시는데요.
이 중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셨던 86세 되셨던 수행자 선배님은 그동안 열심히 하셨었는데 안타깝게도 재작년에 돌아가셨답니다.
상갓집에도 찾아가 뵈었었고요.
그리고 이번에 질문을 주신 선배님은 기독교 쪽에서는 처음으로 질문을 주신 분이신데요.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드립니다.
이 분은 여호와 증인 쪽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시는 선배님이신데요.
의외로 여호와 증인 쪽 분들이 이쪽으로 관심이 많으셨답니다.
지금은 부처님 가르침과 함께 예수님 가르침도 같이 하고 있는데요.
기간은 아주 짧지만 기독교 쪽 분들도 벌써 50여 분 가까이가 되어가고 있답니다.
이 중에는 이번에 조카사위 목사를 비롯해서 다른 목사님들도 아홉 분이나 계시고요.
신부님들도 일곱 분이 계시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는 이분들을 한 가족으로 여기고 있고 한 형제로 여기고 있는데요.
제 마음은 불교든 기독교든 그리 중요하지 않답니다.
아무쪼록 종교를 떠나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영접하는데 저도 최선을 다할 것이니 꼭 잘 따라 하셔서 꼭 성령의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시길 기원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내용은 너무 길어서 몇 번에 나누어서 올려볼 예정인데요.
오늘 내용은 그 첫 번째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이분은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기 때문에 제가 선배라는 호칭으로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는데요.
그리고 불교 쪽 분들은 이번 내용을 단어만 불교식 용어로 바꾸어서 보시면 딱 맞아떨어질 겁니다.
그럼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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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김태현 선생님 보내주신글 잘보았읍니다.
김선생님께서 보내주신자료에는 창조주에관한 내용이없습니다 아울러
창조주에 관한 명확한 이해가 되지 않으면 평행선이 될수 빡에 없는것으로 끝없는 주장일뿐 설득력을 갖게 하지는 못할것 같습니다.
성경은 모든 것과. 보이는것 과 보이지 않는것들 모두 창조주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살아 계시며 숭배를 받으실분이라는것을 알려주며 그분에게도 고유한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이 여호와라는것을 알려주는데. 그점을 인정하시는지요? 종교의 분열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에 발생하는것입니다. 예로 진화를. 혹은 창조냐 한점 부터 시작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숭배의 대상으로 인정하며 그분에의한 숭배방식을 따르며 올바른 동기로 가장좋은 질로 전세계 어디에서든 이 모든것을 공유하기에 전세계가 하나의 숭배방식으로 평화를 이루며 사랑으로 연합되어 있읍니다.
또한 주위에서 마음이 정직한 온유한. 사람들과 진리를사랑하는사람들에게 숭배를 받으실분 여호와라는것을 알게 하려 합니다. 선택은 본들들의 선택이겠죠. 김태현 선생님께서도 여호와에 관하여 알아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답변)
네 잘 알겠습니다.^^
질문 주신 내용은 다음 선문염송 편에서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무엇이든 질문 주시면 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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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답변)
선배님께서는 선배님의 주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이 곧 창조주라는 것을 아셔야 한답니다.
선배님은 아직 성령을 모르고 계시기 때문에 창조주가 따로 있고 숭배 대상이 따로 있다고 보시는 거랍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요한 1 서 4장 13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이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우리 안에 성령(불성)이 거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성령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랍니다.
다만 육체에 성령이 덮여 있다 보니까 육체의 욕심이나 욕망 등으로 인해서 내 주(主/자신) 안에 있는 성령이 드러나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주된 가르침인 것이고요.
지금 선배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물론 우주 전체에 성령 하나님은 존재하고 있고 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도마복음 제3장을 통해 이렇게 말씀을 하신 거랍니다.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천국)가 하늘에 있도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2. 그들이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라는 바다 속에 있도다'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3. 진실로,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4.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 때, 비로소 너희는 알려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너희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5. 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그리하면 너희 존재는 빈곤 그 자체이니라.”]
라고 하셨던 거랍니다.
지금 선배님이 보내주신 창조주라는 의미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배님이 곧 창조주이고 우리 안에 거하는 성령 하나님이 곧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창조주를 어디서 찾고 계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주(主/자신) 안에 성령이 거하고 있고 창조주가 거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그 창조주를 어디서 찾고 계시느냐 이겁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인이라 할 수도 없을뿐더러 앞으로 예수님 말씀이나 부처님 말씀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나 불경 속 내용들은 거의가 이런 내용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만 해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 안에 거하고 있는 성령 하나님이 곡식과 불을 다루는 방법들을 창조해 내셨고 마차가 필요하다 하니까 마차가 창조되었고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마음을 먹으니까 자동차나 기차나 비행기나 우주선 등이 창조되었던 거랍니다.
우리들 본성(성령/불성/마음)이 곧 성령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느냐에 따라서 본성(성령/불성/마음)의 힘으로 이 세상은 창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시나요?
선배님도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누구에 의해서 살아오셨습니까?
선배님도 본성(성령/불성/마음) 이 선택하는 대로 살아오셨을 것 아닙니까?
지금 하고 계시는 그 일도 본성(성령/불성/마음)이 가서 하고 계시는 것이고요.
이렇게 우리는 본성(성령/불성/마음) 이 가는 대로 생활을 하고 있고 창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배님은 그 마음(성령/불성/본성)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러다 보니까 자꾸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면서 본성(성령/불성/마음)의 뜻대로 못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배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이 곧 창조주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일단 믿으셔야만 한답니다.
그래야 그것을 찾든 말든 할 수가 있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착각해서는 안 된답니다.
모든 창조물들은 어떤 신이 있어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主/자신)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불성)이 창조하고 있고 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배님은 앞으로 창조주를 밖에서 찾으시면 안 된답니다.
선배님 안에서 찾으셔야 한답니다.
그리고 선배님이 좋은 질문 내용을 이미 주셨기 때문에 그에 따라 앞으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던 그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을 드릴 예정인데요.
이것은 자신이 스스로 구해야 하는 거랍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이 바로 늘 주 안으로 의식을 돌려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省察) 하는 것이랍니다.
예수님 방법은 성찰(省察) 이 안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자신의 생각과 주관이 제일이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성령이 임하겠습니까?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돌이켜 보셔야 한답니다.
이것이 곧 내 주안에 성령 하나님을 찾기 위한 첫 거름이랍니다.
그리고 나머지 방법은 뒤에 또 해보겠습니다.
지금은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성찰(省察) 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때는 모르고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까 중국에 있을 때 제 자신을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있는 힘껏 때리면서 엄청나게 많이 성찰(省察) 을 했었답니다.
그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요.
성찰(省察) 이 안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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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省察) 뜻?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
이것이 이루어져야 그다음에 비로소 아래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통하게 된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2. 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3. 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4.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
기독교나 불교는 이렇게 내 안에 거하는 성령 하나님이나 불성을 찾는 것이랍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기독교(基督敎) 인이라 할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基督敎]라는 뜻 자체가 육체의 터(基)가 되는 마음을 감독(督) 하고 살피는 종교(敎)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가 누구를 숭배합니까?
선배님 자체가 우리 주 하나님이요. 창조주이신데 누가 누구를 숭배하고 따른다 하십니까?
내가 나의 주인인데 누가 누구를 숭배하고 섬긴다 하느냐 이겁니다?
선배님이 노예이십니까?
아니면 누구의 종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까지 우리들을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는데..
지금 선배님은 누가 누구를 숭배하고 섬긴다 하십니까?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 스스로가 다시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노예나 종 살이를 다시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을 모든 속박에서 건지신 분이고 해방시키신 분이시랍니다.
그런데 다시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예수라는 이름으로 나 자신을 속박하고 노예나 종으로 전락 시키고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냐 이겁니다?
이것부터 믿지를 않으면 절대로 성령을 영접할 수가 없답니다.(진실)
(다음 내용은 내용이 길어서 다음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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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본성(성령)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불성(성령)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성령)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성령)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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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충국사에게 어떤 중이 묻되 "어떤 것이 한 생각 서로 응하는 것입니까?" 하니, 국사가 "기억과 지혜를 모두 잊으면 그것이 서로 응하는 것이니라" 중이 다시 묻되 "기억과 지혜를 모두 잊으면 무엇으로 부처를 봅니까?" 국사가 대답호대 "잊으면 없고 없으면 부처니라" 중이 다시 묻되 "없으면 없다고 말할 것이어늘 어찌 부처라 하겠습니까?" 국사가 대답호대 "없음도 공하고 부처도 공하므로 없으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없음이라" 하였다.
忠國師因僧問 如何是一念相應 師曰 憶智俱忘 即是相應 儈日 憶智俱忘 誰見諸佛 師日 忘即無無即佛 僧日 無即言無 何得喚作佛 帥曰 無亦空佛亦空故 日 無即佛佛即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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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오늘 내용도 본성(불성/성령/마음) 자리를 표현한 내용인데요.^^
만약에 어떤 중이 제에게도
"어떤 것이 한 생각 서로 응하는 것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저는 바로
공무연기(空無緣起)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생각이 서로 응하는 것은 무상한 것으로 인연 따라 조건 따라 서로 연기(緣起)를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공(空)과 무(無)의 자리는 연기(緣起)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본성(불성/성령) 외에는 모두가 서로의 조건에 따라 응하고 연기(緣起)로 굴러가고 있는 무상이겠지만 본성(불성/성령) 자체는 이러한 것들이 공(空)이고 무(無)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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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충국사에게 서당지장이 마조의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국사가 묻되 "너의 스승 이 무엇이라 하더냐?" 하니, 지장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옮겨 섰다. 국사가 다시 묻되 "그것 뿐이냐, 더 있느냐?" 하니, 지장이 다시 서쪽으로 옮겨 섰다. 국사가 다시 말호대 "그것은 마조의 것이지만 그대의 것은 어떠한가?" 하니, 지장이 말 호대 "벌써 화상께 사뢰어 마쳤습니다" 하였다.
忠國師因西堂地藏 與馬祖馳書至 師問 汝師說什麼法 藏 從西過東立 師云 祗這箇 別更有 藏 却過西立 師云 這箇 是馬師底 仁者底 作麼生 藏云 早箇呈似和尚了也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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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이 내용에 맞는 합당한 답변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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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95편) 20260525
청천(青天)
마곡이 앉았는데 어떤 중이 와서 뵈려고 방석을 펴려는데 마곡이 한 쪽 발을 드리우니, 중이 나가 버렸다. 이에 선사가 선상에서 내려서면서 말호대 “청천백일 밑에 어디 저런 인사가 있겠는가?" 하니, 중이 말호대 "저는 허물이 없습니다" 하니, 손바닥으로 한 번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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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青天
麻谷 坐大 有僧叅 纔展坐具 師乃垂下一足 僧 便出 師下禪床云 青天白日 豈有者人事 僧云 某甲 未有過在 師與一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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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신의 마음자리를 비추어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e-mail : 119e@daum.net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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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수행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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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문 동영상
오늘 내용은 참고용으로 올려봅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제목 : 최초의 기록된 불경이 탄생하기까지
https://youtu.be/VWpJFzrroiM?si=WJI8baCq3Vmn3pF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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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음악과 함께 수행을.. 》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안으로 의식을 돌려보는 것입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제목 : James Brown "Medley: Papa's Got A Brand New Bag & I Got You (I Feel Good)" on The Ed Sullivan Show
https://youtu.be/UwUG6YDoTZ8?si=wIII410z9vNh1o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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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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