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자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하여 만든 영화 '여고괴담'이 흥행에 성공한 이후 비슷한 류의 귀신이야기나 미스테리물이 방송이나 영화등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대생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비슷한 류의 경험 한 두가지씩을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다.
즉 사체를 이용한 해부학 실습이나 아니면 죽은지 얼마 안되는 사람의 사인규명을 위한 부검에 참석하여 섬뜩함을 느끼기도한다. 때로는 죽은 사람의 뼈를 가지고 배우는 골학실습에서도 원초적인 공포를 경험하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대학에 들어간지 2년도 안돼 처음으로 죽은 사람과 접촉을 하는 것은 본인한테 강력한 이미지로 각인되고 오래 기억에 남게되는 것이다. 지금도 의대생들은 첫 해부학 실습시간을 기억할것이다. 지하실에 위치하는 넓은 해부학 실습실의 테이블 위에는 열을 지어서 비닐을 덮고 누워있는 사체들이 보이고 해부학 교수님과 조교들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웅성웅성 문 앞에만 모여 도무지 들어가려 하지를 않는다.
그중의 하나가 용기를 내어 아니면 떠밀려서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뒤를 놓칠세라 우르르 몰려 들어간다. 마치 무리에서 떨어지면 귀신이라도 덮칠까봐 그러는것처럼. 그러나 사체주위에 죽 둘러서 있어도 아무도 선뜻 비닐덮게를 먼저 열려고 하지 않던 기억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의대는 교양과목을 배우는 예과 2년과 본격적인 의학공부를 배우는 본과 4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과 2년 과정중에서 2학기에 들어가게되면 본과 1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의학공부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즉 입문과정에 앞서 닭, 토끼등 다른 동물들의 장기 구조와 기능을 배우면서 인체에 대한 호기심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즉 비교해부학 과목이다.
이과정을 통해서 앞으로 늘상 듣게 될 의학용어에도 익숙해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시작되는 골학실습은 본격적인 의학공부의 첫단계이기 때문에 마치 첫키스의 경험처럼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학교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골학실습에 대한 예행연습은 본과에 들어가기 전에 방학등을 이용하여 사 오일 정도의 일정으로 시작한다. 즉 소그룹을 지어 본과에 들어가서 외워야하는 인체의 수많은 뼈와 근육의 이름을 방학을 통해서 미리 본과 선배들로부터 일종의 과외공부식으로 예습을 하는 것이다.
인체의 뼈는 그 가지수도 많지만 각각에 붙어있는 작은 홈이라든가 돌출부위, 혹은 작은 구멍하나라도 우연히 만들어진 곳은 없다. 작은 홈은 그곳을 통과하는 신경이나 혈관을 보호하기 위해 파여져 있는것이고 돌출부위에는 가지수도 엄청 많은 근육들이 붙어 있는 것이다. 그날 하루종일 배운것에 대한 복습이 끝나고 밤 9시가 넘으면 막걸리 파티가 이어진다. 또 가끔은 군기를 잡는다는 선배들의 위엄과 억지에 숨소리까지 죽이며 선배의 주입식 사고를 강요받는다.
즉 '기차바퀴는 박달나무로 만들어진 사각형이다' 라고 선배가 말을하면 믿으라는 얘기였다. 아마도 이런 사고가 의사집단사이의 엄격한 선후배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기도하다. 또 이때 막연한 동경의 대상인 본과 선배들로부터 해부학은 어떻고 병리학은 어떻고 하는 식의 정보를 구체적으로 듣고 간접경험을 하게된다. 나도 이때 처음으로 생리학이라는 것이 여자의 생리불순 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또 의과대학에 왜 직물과 관련된 조직학이라는 것이 있는가 했더니 이것도 현미경을 이용하여 인체의 각조직을 좀더 자세히 관찰하는 학문이라는것도 알게되었다.
아뭏튼 선배들로부터 배우는 골학실습이 끝나면서 짧은 여름방학도 거의 끝을 맺게된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는 뼈에는 실제 근육이나 혈관같은 연부조직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뼈를 보면서 '이곳에 무슨 혈관과 신경이 지나가고 무슨 근육이 붙어 있는 자리이며 이 근육은 어데서 시작해서 어느 부위에서 끝난다' 식으로 막무가내로 외워야하는것은 큰고역 이었다. 또 아직 발음도 제대로 안되는 낯선 해부학 용어는 하나를 배우면 두세개를 까먹는식으로 지루하게 인내와 끈기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수천개의 이름을 구구단 외듯이 머리속으로 가늠하면서 외울수 있는것은 더욱 아니다. 따라서 뼈를 직접 자기손에 들고서 이 구멍으로 지나가는 것은 이런것이 있다고 외우는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골학 예행연습때에도 느꼈듯이 동기 6명이 모여서 하나의 뼈를 돌려가면서 보는것은 늘 감질이 나게 마련이고 자기차례가 오게되면 쉽게 내놓으려 하지를 않는다. 게다가 선배들 말로는 우리가 실습할때 처럼 6명이 돌려가면서 볼수있는 것은 행운이란다.
학교 골학실습때는 뼈가 많이 부족하기때문에 20여명이 한조가 되어 교대로 빌려가게 되니까 자기차례는 그야말로 가물에 콩나듯이 온다는 것이다. 결국 선배로부터의 골학실습이 끝나면서 심사숙고 끝에 우리 스스로 뼈를 얻기로 하였다. 어떤 연유로하여 개인적으로 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성적이 가장 좋다는 선배들의 말은 더욱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어차피 의과대학 공부는 외워야하는 것이 많고 또 개개인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앞으로 반복되는 시험과 성적에서 않좋은 사람은 유급을 하게되고 유급을 몇번 이상하게되면 제적을 당하게 된다.
같이 입학한 동기중에서 6년만에 제대로 졸업하는 경우가 70 프로를 조금 넘는다식의 엄포까지 들으니 뼈를 얻는 것은 그야말로 지상과제가 되어버렸다. 마침 외가집이 시골인 친구와 함께 주위에 소문내지 않고 잘되면 각자 하나씩 갖는것이고 적어도 하나는 건져서 둘이 공부하면 될 것아니냐는 말로 의기투합되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 외할머니한테 점심을 맛있게 얻어먹고 칡부리나 캐고 싶다며 뒤산으로 향하였다. 아무래도 대상은 남의 눈에 안띄기 위해 길에서는 먼쪽이어야 하고 이왕이면 봉분도 거의 허물어져서 형태를 잘 못알아 볼정도의 것을 파야만 뒷탈이 없을 듯 싶었다.
만일 잘못선정하여 후손이 성묘하러 왔다가 묘가 없어진 것을 알고 기겁을 하여 신고라도 하는 날에는 뼈를 얻는것은 고사하고 쇠고랑이나 차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마침 비슷한 묘를 발견하여 교대로 삽질과 곡괭이질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이러다가 부장풍이라도 가득한 왕릉이라도 발견하는 것 아니냐며 시작했으나 아무리 파고 내려가도 뼈는 보이질 않는다. 너무 오래 되어서 인골이 다 삭아 없어졌거나 아니면 이장을 한 묘를 판것 같았다. 이러길 서너번 되풀이 하니 처음에는 약간의 두려움과 누구한테 들키지 않을까하는 조마조마함이 사라지고 막무가내로 아무것이나 파보자는 친구를 달래서 점점 깊숙이 들어가게된다. 외가집이라지만 장소도 낯설고 그간의 중노동으로 배도 고파진다. 한 여름이라 아직 해는 남아 있다지만 노을이 짓게 깔려있는 폼이 조금있으면 질 것 같았다. 그때 마침 허름한 봉분하나를 더 찾아 냈다.
저것까지만 파보고 없으면 그냥 내려가자고 합의를 하고 한참을 파내려 가는데 갑자기 밑에 빈공간이 있는것 같은 '텅' 하는 소리가 삽끝을 통해 들려온다. 깜짝놀라 삽을 집어 던지고 밖으로 뛰쳐나오자 친구도 그 소리를 들었단다. 둘다 이번에는 진짜를 고른 것 같다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마지막 뚜껑을 누가 열것이냐로 실랑이를 벌인다. "내가 여기까지 했으니까 요번에는 네차례"라며 설득하는 나와 "네가 시작했으니까 네가 마무리지라"는 친구 모두 선뜻 다시 들어갈 엄두를 못낸다. 겨우' 가위, 바위, 보'를하여 진쪽인 내가 다시 시작하기로 하였다. 삽을 바닥에 대고 남은 흙을 파내려고하는데 갑자기 땅이 푹 꺼지며 아래로 가라 앉는다.
다시 깜짝 놀라 밖으로 기어 나와서 정신을 추스리고 보니 흙더미 속에 묻힌 인골과 함께 다 삭아빠진 목관이 아래로 꺼져있는 것이 보인다. 인골은 묻힌지 오래된 듯 보기에도 쉽게 부설질 듯한것을 조심해서 꺼집어내기 시작한다. 팔, 다리뼈등 장골은 다 나왔는데 제일 중요한 머리 즉 해골부위가 흙에 박혀 안빠져 나온다. 흙속으로 보이는 몇 개남은 윗 잇빨부위를 손으로 잡고 당기니까 일부가 부서지면서 톡 입속으로 들어온다. 얼른 뱉고서 보니 아직도 흙이 입안에 남아 있다.
부족한대로 이정도의 수확에 만족하며 길도 없는 어둑한 산속길을 헤치고 마대자루에 담은 인골을 들고 내려온다. 외가집 헛간에 숨겨 놓고 웬 칡부리를 밤늦도록 캐느냐는 듯이 의아해하는 할머니께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정성스럽게 묻은 흙을 털어내기 그런대로 쓸만하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보니 단연 선배로부터 받은 골학실습이 화제였다. 거기에다 누구는 개인적으로 어느 선배로부터 뼈를 받았다던가 아니면 구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러나 단연 화제는 누가 골학실습을 하기에 가장 좋은 뼈를 구했냐는 것이다. 내것은 삭아서 쉽게 내놓고 자랑할만한 정도는 못되고 집에서 고이 모셔놓고 나혼자 공부하기에 딱 좋을 정도였다. 그중에서 가장 부러움을 얻은 사람은 성환에 사는 친구의 것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내것과는 달리 색깔도 희고 또 해골도 아주 크고, 뼈에 나있는 작은 홈이나 구멍도 뚜렷하여 골학실습을 하기에는 최고라는데 이의가 없었다. 너무도 부러워 어떻게 얻었느냐고 물어보자 자초지종을 얘기해준다. 이 친구는 집이 성환 근처의 시골인데 가끔씩 밥을 얻어 먹으러 오는 거지가 있었단다.
하루는 밥뿐만아니라 막걸리에 안주도 푸짐하게 대접해주고 혹시 이런것쫌 구할데가 없느냐고 물어 보았단다. 그러자 이 거지는 환대가 너무 고마와 내친김에 2년전에 죽은 동료의 가매장자리까지 알려주더라나. 모른척하고 돌아와 다음날 혼자가서 속는 셈치고 파봤더니 아직 약간의 살이 붙어있는 뼈가 있었단다. 담력이 좋은 이 친구는 반가운 마음에 대충 마대자루에 담아가지고 학교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뼈에 살이 붙어 있는 경우에는 양잿물에 담가 두었다가 살이 완전히 흐물어진 다음에 뼈만 추려내게 되면 색깔도 예쁘고 냄새도 안난다. 그런 시설이 없으니까 직행버스에 마대자루를 싣고 학교로 오는데 차장아가씨가 자꾸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마대자루에 눈길을 주더란다.
손님들도 이상한 냄새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이윽고 차장이 마대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어보자 이 친구는 "집에서 과수원을 하는데 복숭아가 상한 것이 많아 좀 팔려고 가져가는 중이다"하고 둘러댔더니 손님들도 젊은 학생이 기특한다는 듯이 쳐다보고 아무 말이 없더라고 너스레를 떤다. 아뭏튼 내가 얻은 인골은 내방의 벽장속에서 2년간을 함께 지내며 골학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고 그리고 고맙다는 절을 받고 다시 땅속으로 영원히 묻혀졌다.
첫댓글 ㅎㅎ 재미있네요.
ㅎㅎ 재미있네요
이야 이거 재밌긴 한데... 제대로 불법인데요.. ㅋ 실제 제가 듣기론 그리 많은 의대생이 저렇게 하진 않는듯..ㅋ(태클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