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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번 버스타고 경주여행 코스
#1봉황대
경주 시가지 중심에 있는 대릉원일원 노동리고분군의 봉황대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상가가 늘어선 중심상가를 거닐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동산만한 고분 1기를 만날 수 있다. 고분 비탈면에 나이테마다 경주의 역사를 새긴 아름드리 고목이 여러 그루 자라고 있는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제125호 고분, 봉황대이다. 옛 사람들이 봉황대를 동산이라 생각해 오르내리기를 예삿일로 여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아래 둘레만 250미터에 달하는 대형고분으로, 표형분인 황남대총을 제외하고 단일 고분으로는 가장 큰 고분이다. 봉황대 앞에는 드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금요일마다 야간상설공연 ‘봉황대뮤직스퀘어’가 열린다. 고분 둘레로는 산책로가 잘 갖추어져 있고, 곳곳에 벤치 등 휴식공간이 있어 소풍장소로도 많이 찾는다.
봉황대에 갈 때에는 굳이 203번 버스를 기다리지 말고, 경주 시내(신한은행 사거리)를 경유하는 어떤 버스 노선이건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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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경주중심상가 & 계림로 벽화골목
경주사람들이 ‘시내 나가자’고 할 때, 지칭하는 그 시내가 경주중심상가이다. 봉황대 주변 노동동을 비롯해, 황오동 일부, 노서동 일대에 500여개의 상점이 집중되어 있다. 약국, 서점, 편의점, 잡화점 등의 편의시설을 비롯해 각종 패션상점이 들어서 있다. 메인거리라고 할 수 있는 일명 ‘패션의 거리’는 오전 9시부터 오전 11시까지만 차량통행이 허용되고 그 외에는 차 없는 거리로 조성되었다. 또한, 아웃도어 거리, 유·아동복 거리, 신사·숙녀복 거리, 영캐주얼 거리 등 품목이 유사한 상점이 한 데 모여 있는 편이라 비교하며 쇼핑하기 좋다.
상점가 골목골목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맛집이 많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들도 곳곳에 숨어 있다. 중심상가 내에 게스트하우스가 모여 있는 계림로 106번길에는 최근 벽화골목도 조성되어 볼거리를 더한다. 경주 시내 중심상가에서 맛과 멋을 동시에 즐겨보자. 봉황대와 마찬가지로 경주중심상가 역시 경주 시내(신한은행 사거리)를 경유하는 모든 버스를 이용하여 갈 수 있다.
203번 버스로 경주중심상가 가기
#3양동마을
북부권의 첫 여행지 양동마을로 향한다. 마을의 주산인 설창산에서 뻗어나오는 네 줄기의 능선과 골짜기 사이사이에 품위 있는 기와집과 정감 있는 초가집 160여채가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600년 역사를 품고 있는 대표적인 양반 집성촌으로,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자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조선 성리학의 설계자 회재 이언적 선생과 청백리의 상징 우재 손중돈 선생 등 내로라하는 문인과 학자들을 배출한 유서 깊은 반촌이다. 지난 2010년에는 마을의 규모, 보존 상태, 전통 유교문화의 가치, 건축사적 의미를 인정받아 ‘한국의 역사마을’로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집 ‘향단’, 월성 손씨의 종택인 ‘서백당’(송첨종택),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이 기거하던 집 ‘무첨당’, 우재 손중돈 선생이 분가하여 살았던 ‘관가정’등 조선시대 반가의 품위가 느껴지는 고택들이 마을 곳곳에서 양동마을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매년 여름이면 마을 앞 연못에 수련이 그득하고, 가을이면 마을 돌담길이 국화, 은행나무, 단풍나무로 물들어 걸을 맛이 난다. 선비의 걸음을 좇아, 마음가짐을 따라 양동마을을 깊게 여행해 보자.
203번 버스를 이용해 양동마을에 내릴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양동마을 입구’ 정류장과 바로 다음의 ‘양동민속마을’ 정류장이 있는데, 양동민속마을 정류장이 마을 바로 앞에 하차하는 정류장이니 혼동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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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옥산서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선조 때 세운 곳이다. 향교가 조선시대의 공립교육기관이라면 서원은 사립교육기관에 해당한다. 이언적 선생을 좇아 많은 선비들이 이곳 옥산서원에서 수학했다. 옥산서원으로 들어서는 길, 왼쪽의 너럭바위와 계곡이 시선을 훔친다.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라는 뜻이 담긴 ‘세심대’라는 곳이다. 학문에 파고들던 선비들도 잠시 시선을 돌려 이곳 세심대에서 휴식과 수양을 했으리라. 세심대라는 이름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독락당에 머무를 때, 그 주변에 맑은 냇물을 끼고 있는 바위 다섯 곳에 각각 관어대, 탁영대, 세심대, 징심대, 영귀대라 이름 붙였는데 그 중 한 바위를 지칭한다.
세심대가 앞으로 펼쳐지고, 뒤로는 수려한 산이 감싸는 옥산서원. 정문인 역락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니, 누각이 가장 먼저 보인다. ‘무변루’라는 이름의 누각인데, 누마루를 서원 건축에 도입한 최초의 사례이다. 무변루 맞은편에는 강당인 구인당이 있고, 그 좌우로 기숙사 격인 민구재와 암수재가 배치되어 있다. 화려하고 큰 규모라기보다는 단정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강학 공간 뒤에는 이언적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을 비롯해, 신도비, 전사청 등이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서원의 전학후묘 배치를 따랐다. 옥산서원은 성리학이 한국에 정착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 산실이라는 점, 건축물과 자연경관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전국 8곳의 서원과 함께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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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독락당
조선 성리학의 기틀을 다진 회재 이언적 선생은 만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했다. 고향인 양동마을과 멀지 않은 옥산리에 집을 짓고 7년 간 성리학 연구에만 전념했다. 회재 선생이 기거했던 집이 바로 독락당이다. 사랑채 독락당과 그 뒤쪽에 정자 계정이 맑은 시냇물을 끼고 들어서 있다. 독락당은 옥산정사라고도 불리며 두 개의 현판을 걸고 있다. 옥산정사라는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 독락당 현판은 아계 이산해의 글씨이다. 독락당에서 성리학을 탐구하던 회재 선생의 뜻을 받들어 멀지 않은 곳에 옥산서원을 세우게 되었다.
독락당, 특히 정자인 계정에서 내려다보이는 계곡의 풍광이 수려하다. 독락당과 계곡 사이의 담장에 살창을 설치해 계곡의 풍경을 독락당 안으로 끌어들인 모습도 인상적이다. 또 독락당에는 회재 선생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친구로부터 종자를 얻어 심었다고 전해지는 조각자나무가 있다. 수령이 470년, 둘레가 4.9m에 높이는 14.5m에 이른다. 오랜 세월을 견뎠기에 상태는 썩 좋지 못하나 희귀한 나무이고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관계, 독락당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옥산서원에서 독락당은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도보 10분이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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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정혜사지십삼층석탑
독락당 근처에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탑이 하나 있다.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정혜사지십삼층석탑으로, 흙으로 쌓은 기단 위에 탑신이 13층으로 올려져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탑인데 유사한 형태를 찾아볼 없는 사례라 남북국시대 석탑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962년 국보 제40호로 지정되었다.
1층의 탑신은 크기가 아주 큰 반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급격하게 작아지는데 2층부터 13층까지 일정한 비율로 탑신이 줄어들어 전체적으로는 균형미가 있어 보인다. 1층 탑몸돌에는 네 면에 문이 내어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처마는 네 귀퉁이가 버선코처럼 들려 있는 경쾌한 모습이다. 상륜부에는 받침돌인 ‘노반’만이 남아있다. 들녘에 5.9m 높이의 탑 하나만 덩그마니 서 있을 뿐이지만, 사방을 둘러싼 산의 풍광과, 탑을 두르고 있는 은행나무가 공백에 아름다움을 채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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