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경겨운 벗이여.
🙏🎋幸福한 삶🎋🎎🎋梁南石印🎋🙏
사회성 동물인 인간이 모여 사는 문명 사회에서
한때는 부모님을 비롯하여
최소한 대여섯 이상의 형제자매에다
큰아버지, 삼촌, 고모를 비롯해
조모님, 고조모님, 그 이상 여러 세대가
한 지붕 아래 함께 부대끼며 살아왔던 우리 시대였잖은가,
그런데 어느 시기에 다다라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핵분열하듯 쪼개져
2인 가구를 지나 이제는 1인 세대로 번져버린,
참으로 기이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문득 이런 생각으로 운을 떼어보게 되네.
26년 8월 8일 토요일 겨우 두어시간 잠들었을까 05시 기상
조반을 챙겨 먹고 약속 장소에 도착 07시 버스 승차
나는 지금 천이백 고지를 향해 가는 차 안에 있다네.
휴가철 차량 행렬은 더디게 움직여,
가다 서다 걷는듯한 속도로 가고 있네.
스마트폰을 오래 들여다보면 눈이 아파
잠깐씩만 화면을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네.
사람은 혼자 살아도 되는 존재일까?
요즘 우리는 혼자라는 말을 참 좋아할까.
혼밥, 혼술, 혼차, 혼행, 혼잠, 1인 가구….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는 게 반드시 정답일까.
물론 모든 생각과 의견이 획일화될 수 없는
개성도 지능도 다 제각각이라 똑 부러지게
맞는다고 동의할 수 없지만서도 동의하네.
나 역시 타인의 삶에 함부로 끼어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참으로 기이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네.
간섭하지 않는 것과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분명 다른 말인데,
우리는 어느 순간 그 둘을 동일시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네.
옆집에 누가 이사 가고 이사와 사고 있는지 모르고,
같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한 사람의 속사정도 모르고,
해맑은 친구가 요즘 왜 말없이 어두워졌는지
물어보는 것조차 괜한 참견이 될까 싶어 매우 조심스럽지.
어이 무슨 일 있어?
그 짧은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관심일 수도 있겠으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간섭이나 참견으로 비출 수 있는 세상이지.
그러니 사람들은 점점 묻지 않겠지.
저번 일은 괜찮은 건지 묻지 않고,
왜 힘들어 보이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어디가 아픈지 물을 수 없어 점점 더 각박해질 뿐이지.
다수가 모여 살기에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어
상대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명분 아래
서로의 삶에서 한 발씩 물러나 있네만.
그렇게 한 발, 또 한 발 물러나 보다 보면
어느 날 우리는 서로가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아무도 서로에게 닿지 않는
이상한 사회에 사는 게 가속화되지 않을까.
아파트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군가 살아가고 있어도
그 사람이 며칠째 문을 열지 않는지조차 모른다고 회자하지.
그러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지.
그때 우리는 말하지.
어쩌다 그런 일이
하지만 어쩌면 그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지.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아무도 그의 삶을 묻지 않았던
수많은 날의 끝에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지.
물론 모든 사람의 삶에 참견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지.
오히려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지.
간섭은 줄이되 관심까지 버리지는 말자는 것일 뿐.
상대의 선택은 존중하되,
외롭거나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에게
한마디 건넬 용기까지 잃지는 말자는 얘기라네.
친구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아 보일 때
한 번뿐인 네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돌아서는 것이 과연 진정한 우정일까?
후배가 무언가 힘들어 보일 때
괜한 참견일까 봐 모르는 척하는 것이 정말 배려일까?
선배의 삶에 이상한 변화가 느껴질 때
남의 일이라며 외면하는 것이 정말 성숙한 태도일까?
꼭 그래야만 삶의 정답일 성 싶은가 묻고 싶으이,
하여 이 질문 앞에서 자꾸 멈칫거리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움찔하면서 묻게 되지.
혹시 내가 시대에 뒤처져 사느라
엉뚱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하고?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싶어 하는 내가
요즘 세상에서는
오히려 피곤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괜히 남의 일을 걱정하고,
필요 없이 나서 한마디 더 건네고,
원하지도 않는 사람 표정을 살피는 것이
정말 쓸데없는 오지랖에 불과한 것일까?
어쩌면 나도 그냥
시류를 따라가야 하는지도 헷갈려서
수심에 잠긴 날이 많아져 잠 못 이루고 뒤척이네.
듣고도 묻지 말고,
보고도 모르는 척하고,
알고도 참견하지 말고,
각자의 삶은 각자가 알아서 살아가도록 눈감는 것.
그것이 진정 시대가 요구하는 현명한 거리 두기일까.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꾸 다른 목소리가 들리네.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까지 잊어버린다면,
선함이 지켜야 할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으로 남을지?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과
서로에게 무관심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분명 같은 말이 아닐 텐데도 말이네.
버스는 여전히 서행하고 있구먼.
눈이 아파져 잠시 스마트폰에서
눈을 거두고 창밖을 바라보네.
저 건너 산은 말없이 제자리에 있고,
차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뒤를 밟아 움직이며,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지.
어쩌면 우리 인생도 저 차량 행렬과 비슷한 것인지도.
각자의 차 안에 갇혀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바로 옆 차에 누가 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며.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 죄가 되어가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답답할 뿐이네,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가 한 번쯤은 말을 걸어주었으면
이심전심의 마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궁금증 비단 나만의 의문인지 모르겠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수심에 잠겨
비릿한 세상을 향해 움츠린 나를 향해
그래 나만이라도 옛것을 찾아 품는
조금 낡은 사람으로 살아도 괜찮겠지,
이런 생각에 몸살을 앓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수군대며 과연 시대에 뒤처져 사는
어느 늙은이의 푸념 섞인 넋두리라며
눈살 찌푸리게 하는 늙다리가 아닐까,
아니면 아직 사람 사이의 온기를 믿고 있어
정을 탐내며 나눠야 한다는
신념의 사람이라 해야 할까?
곱씹어도 도통 모르겠네.
그치만 우린 서로 사람냄세 풍기는
온기를 품은 사람으로 남았으면 한다네.
26년 8월 8일 토요일.
추신 : 정겨운 나의 벗 친구야
놀라지 마시게 난 자그마치 이틀 동안
아주 쬐끔 아마도 모기 눈곱만큼
과장일까? 그렇다면 참깨 하나만큼
숙면했을까? 겁나 피곤하구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