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궁금입니다..
우들스에 올라온 "당부" 영상음악 대상 수상에 대한 글이네요..
매우 깁니다.. 그렇지만.. 내용이 매우 좋습니다...
차근 차근 읽어 보시기 바래요...^^
♨♨ 열혈 궁금 ♨♨
제목 : 올해 최고의 뮤직비디오는 ?
지난 27일 열렸던 mnet의 '99 영상음악 대상'의 최대 이변은 역시 이승
환의 '당부'가 대상을 수상한 것일 것이다. HOT나 젝스키스가 아닌 30이
넘은 가수의 작품이 시상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근래들어 결코 볼
수 없었던 일이고, 이것은 드디어 국내에서도 대중성보다는 시상자 측의
작품을 보는 관점에 따라 시상하는 음악 시상식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
을 보여줬다.
그럼 도대체 이 '당부'라는 뮤직비디오는 어떤 작품이길래 이런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당부'는 이미 상을 타기전부터 어떤 홍보
없이도 '스스로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사실 mnet측에서도 HOT의 '아이
야'같은 작품에 대상을 주는 것이 무난했을 것이다. 음반 판매량에서나 제
작전부터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의 인지도 면에서나 이들을 준다고 해도
뭐라고 할만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특히 HOT는 mnet에서 선발하는
'Korean Viewers Choice'를 받기까지 했다. 물론 이승환 팬들은 아쉬워
하긴 하겠지만 아마도 "다 그렇지 뭐. 언제 상 기대했나."같은 말로 얼마
후면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왜 굳이 '당부'에 대상을 줄 수 밖에 없
었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당부'가 우리 뮤직비디오 역사에 어떤 의
의가 있는지, 그리고 작품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당부'는 곡 자체로도 이승환이 시종일관 폭발하지 않고 여운을 남긴다는
점이나 보컬의 음색, 그리고 사운드등에서 그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뮤직비디오는 그정도가 아니라 국내 뮤직비디오에 일
대 전환점이 될만한 것들이 담겨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과연
뮤직비디오란 무엇인가, 혹은 국내의 뮤직비디오가 그 자체로 장르의 독
립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뮤직비디오는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분류됐다. 즉, 스토
리중심이냐, 아니면 이미지 중심의 뮤직비디오냐 하는 것이었고, 이들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타 장르에의 종속성이다. 스토리형 뮤직비디오는 결국 영화적인 스
토리 텔링에 음악을 덧씌워 놓은 것이었고, 이미지형식의 뮤직비디오는
결국 CF와 영화의 촬영기법과 기술에 의존한 것이었다.
물론 타 장르의 영향을 받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못된다. 문제는 이런
와중에 뮤직비디오를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주는, '음악'이 결여되있다는 것
이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스토리를 가지고 심지어 대사까지 삽입되는
영상들은 결국 뮤직비디오를 '드라마 예고편'으로 만들었고, 이미지 중심
의 음악들은 긴 CF에 다름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이런 뮤직비디오들은 결
코 이들의 모태가 된 장르를 넘어서지 못했다.
뮤직비디오의 양식에 담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스토리 형식의
뮤직비디오는 오랜시간에 걸쳐 제작되는 영화의 특성에서 나오는 깊은 영
상미와 세심한 설정과 연기, 혹은 두고두고 그 내용을 곱씹어볼만한 여운
을 남기지 못했고, 이미지 중심의 뮤직비디오는 단지 몇초의 영상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모든 이미지와 정서를 전달하는 CF와 달리 강한 응집력
을 보여주지 못해 결국 음악과의 상관성을 잃어버리며 이미지의 나열로
끝났던 것이다. 이러니 한국 뮤직비디오계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김
세훈 감독이 홍종호 감독과 함께 출연한 mnet의 '스타앨범'에서 표절에
관련된 질문을 받자 "뮤직비디오는 그런걸 따질만한 장르가 못된다고 생
각한다"는 말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당부'는 스토리 텔링과 '의미있는' 이미지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뮤직'비디오가 어떻게 하면 새로운 장르로 탄생 할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 뮤직비디오는 기본적으로 음악이 없으면 성립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
을 정도로 음악을 전제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당부'의 동양적인 사운드
에 맞춰 배경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중국이고, 그 내용은 '당부'의 가사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떠나는 연인을 스스로 떠나보내려 하는 심정'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다. 출발점부터 영상과 음악이 하나로, 스토리는 가사에
서, 펼쳐지는 영상의 이미지는 음악 스타일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본틀 속에서 '당부'는 지금까지 국내 작품에서 볼 수 없었
던 뮤직비디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이를 풀어간다. 우선 이 뮤
직비디오의 스토리를 생각해보자. 영상을 생각하면 꽤나 긴 이야기 같지
만 사실은 간단하다. 결혼식을 앞둔 한 소녀와 그 소녀를 사랑했던 소년
이 하룻동안 단 한번의 만남도 없이 서로의 마음을 정리하는 내용이다.
어떤 특별한 사건 없이 오직 소년과 소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몇가지 행
동들만이 이 뮤직비디오를 채우는 전부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소화하기
에는 너무나 짧고, CF로 하기에는 길다. 스토리부터 뮤직비디오에 맞게
다듬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스토리 자체의 완성도보다 그것을 표현하는 영상과 이
를 받쳐주는 음악을 통해 시청자에게 두 소년 소녀의 말로도, 그리고 보
여주지도 못하는 그 감정을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고, 이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뮤직비디오에서만이 할 수 있는 영상미와 음악의 조화이다.
우선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색지정과 소품이 정말 잘 지정되어 있다. 소
녀를 붉은 색으로, 소년을 푸른색으로 표현한 것은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표
현하느냐이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아주 뚜렷한 원색을 기본으로 해서
한 컷 한 컷이 그대로 이미지 컷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다.
신발위로 꽃잎이 떨어지는 장면은 아무나 찍을 수 있다. 하지만 '당부'에
서처럼 그렇게 선명한 분홍빛의 꽃잎과 섬세하게 만들어진 신발 하나로
그 감성을 전달 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소녀가 입은 옷부터 소녀
가 타는 꽃가마, 결혼식 행렬에서의 사람들이 착용한 복장은 모두 그 하
나하나가 선명한 색체에 섬세한 장식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
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작품의 애절한 분위기를 보는이에게 그대로 전달
한다.
만약 소녀가 탄 꽃가마의 장식이 원색이 돋보이는 형형색색의 노리개가
아니라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면, 그리고 그녀의 꽃신이 단
지 붉기만 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면 과연 이 작품을 본 사람
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이런 세세한 것을 따질 필요도 없
다. 소녀가 결혼식 전에 들어가 있는 방의 전경을 보여주는 그 몇초를 위
해 사방을 검은 바탕에 흰색의 한자로 빽빽이 채워 놓으면서 신비감과 더
불어 소녀가 입고 있는 흰옷과의 색감적인 일치성, 그리고 소녀의 고립감
을 표현한 것에서 이 작품이 어느정도의 공을 들인 작품인지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어떤 국내 뮤직비디오에서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뮤직비디오는 짧은 순간에 응축된 영상을 보여줘야 함에도 불
구하고 거대한 규모의 스토리텔링 뮤직비디오와 이미지 형식의 뮤직비디
오 모두 소품과 색지정같은 세세한 부분을 놓쳤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
자체의 그 거대한 규모에 묻혀 그런 것들에까지 신경쓸 틈이 없었고, 반
대로 이미지 위주의 작품들은 보여지는 영상의 아이디어에만 신경쓴 나머
지 정작 보여줘야할 깊은 영상미는 나타내지 못한 것이다. 또한 영화 역
시 몇몇 장면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언정 작품 전체를 이렇게 표현하
지는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뮤직비디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정성들인 영상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을 새롭게
재탄생 시키며 마치 이 뮤직비디오가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듯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음악과 함께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보는이로
하여금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구구한 설명이나 자극적인 영상없이도 오
직 영상과 음악 자체의 힘만으로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그 정서를 전달하
는 것이다.
이 작품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고, 어떤 특별한 사
건없이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소년의 '푸
른' 꽃잎이 '붉은' 신발을 덮는 그 장면에서 소년과 소녀의 감정, 더 나아
가 '떠나는 여인을 스스로 떠나보내는' 음악의 정서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는 과감한 생략과 절제된 행동, 그리고 디테일한 묘사와 은유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스토리가 전하고자 하는 감성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누차 강조하는 것이지만 푸른색계통은 소년으로, 붉은색 계통은 소녀로
표현되는 것을 바탕으로 이 작품은 끊임없이 '떠나보내는 소년'과 '떠나가
는' 소녀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푸른빛의 배경에 붉은 글자로 곡의 제
목이 표시되는 장면부터 시작해 푸른 옷의 소년은 '붉은' 꽃을 '뽑아'내고,
피를 흘리며, 소녀는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흰옷'을 벗고 '붉은' 꽃잎이 들
어있는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꽃잎을 짜서 만든 '붉은색'의 물감으로 몸
에 글씨를 적고, 더 나아가 '붉은' 의상과 '붉은' 반지를 끼게 된다. 시청자
들은 이에 따라 결혼식이 서서히 다가오고, 소년이 소녀를 떠나 보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수는 없어도 '감성'적으
로 느낄수는 있게 된다.
이런 색조 대비를 통한 정서의 전달은 스토리속에 들어있는 한가지 설정
과 한가지 상징에 의해 보다 명료해진다. 이 작품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소년은 시종일관 소녀의 집 밖에 있고, 소녀는 계속 실내에 고립되어 있
다. 물론 가마를 타기는 하지만, 그녀는 전혀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소녀
는 역시 갇혀있는 셈이다. 이것은 소년과 소녀의 단절이고, 이들을 연결해
주는 매개물은 바로 '신발'이다. 소녀가 고립된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결국 신발을 신고 땅에 발을 디딜 때 가능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소년은 애처로운 마음으로 그 빈 신발을 보게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
품의 첫장면은 소년의 신발로 시작되고, 끝장면 역시 신발로 끝나는 것이
다. 그렇기에 비오는 밤 '푸른' 꽃잎이 '붉은' 신발을 덮는 마지막 장면은
단지 소녀를 배려하는 소년의 마음이 아니라 소녀를 떠나보내면서도 진정
으로 잊지는 못하는 소년의 마음을 응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영원히 신
지 않는 신발이 비에 젖은들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이것은 가사로는 "못
된 나를 잊어주기를"이라며 자신을 자책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은 잊지못
하는 처량함을 보여주는 노래의 상반된 감정과 통한다.
또한 이 작품은 음악의 리듬을 정확하게 타고 있다. 한순간도 영상과 음
악이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다. 음악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슬
로우 모션으로 영상이 진행되면서도 음악이 사라진 그 잠깐동안 소년을
스쳐지나가는 소녀의 다양한 모습을 빠르게 보여주면서 그 여백을 채운
다. 그리고 이 장면을 통해 소년과 소녀의 기억속 이미지를 통해 그 짧은
만남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을 보여주면서 다시한번 영상과 음악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의 슬로우 모션은 음악과의 조화 뿐
만 아니라 소년과 소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다 극적으로 1만들어주는 역
할을 한다. 작품 초반부에서 소년과 소녀의 감정적 교류와 그 둘의 깊은
애정을 보여주는 동작의 일치, 즉 꽃을 움켜쥐는 소년과 똑같이 옷을 움
켜쥐는 소녀의 모습은 그것이 느리게 처리되었기에 보는이에게 그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은 시종일관 영상과 스토리, 그리고 '음악'이 하나로 맞물려
가면서 '내용'이 아닌 '정서'를 전달하는 독특한 작품으로, 뮤직비디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런 작품이 탄생한데는 연출을
담당한 차은택 감독의 뛰어난 능력은 물론이고, 거기에 타이틀곡이나 후
속곡도 아닌,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을 '세번째' 싱글에 이만한 돈을 쏟아
붓고, 직접 현장을 살펴보고, 소품 하나하나를 신경쓸만큼 뮤직비디오에
참여한 이 뮤직비디오의 의뢰인 이승환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이다. 뮤직비디오는 제작비 많고 감독이 좋은 것 뿐만아니라 '뮤직비디오
를 뮤직 비디오이게 하는' 그 음악을 담당한 뮤지션의 생각과 정서가 반
영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차은택 감독의 다른 작품과 이승환의 작품을 비
교해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을 단번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당부'
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뮤직비디오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에게 상이 가는 것이 좀 더 어울리는 일 아닐까? 또, 바로
이런점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의식적이었건 무의식적이었건 간에 이런 뮤
직비디오를 제작할 수 있었던 능력을 가진 이승환에게 발라드부분이 아니
라 '남자 솔로' 가수부문의 상도 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다
른 작품을 선택했더라도 별다른 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mnet은 그중
'최선'을 선택한 것 뿐이었다. 적어도 '뮤직비디오'라는 관점에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