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국가교육의 근간을 담당한다. 아무리 좋은 중등교육이 있더라도 그를 완성시켜주는 고등교육이 없을 때 교육의 이상은 온전해질 수 없다. 대학과 대학원은 그만큼 국가의 일정부분을 책임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대학교육은 어떠한가? 엄격하게 서열화된 제도로 말미암아, 1등 대학도 공부하지 않고 10등 대학도 공부하지 않는다. 대학서열의 1등은 영원한 1등이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고, 10등은 영원한 10등이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는다. 대학에서야말로 진정한 연구가 시작되는 곳임에도, 우월감과 좌절감은 젊은 학인들을 자만이나 퇴폐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는 ‘대학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의대와 고시에 몰리는 우리의 병적인 상황은 정말 위험하다. 공대나 농대에는 사람이 없어 제3세계의 인력들이 석박사 과정에 몰리고, 국가의 과학을 책임져야 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는 의대 편입을 위해서 학업을 포기하고, 인문사회학도는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변호사 자격증을 위해 사법시험에 매달린다. 그 결과 기초학문은 인문학이나 자연학을 막론하고 붕괴되고 있고 교수나 학생은 서로 소 닭 보듯 자기의 이익에만 매달린다. 대학의 철학, 수학, 물리학과에 학생이 오지 않는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그 문제의 해결은 무엇보다도 서열화된 대학구조를 타파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대학 철저하게 서열화 되어있는 한, ‘연구하는 대학’으로서의 이상은 자리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서열타파의 견인차 역할을 우선 국립대학이 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인 국립대학이 공교육의 이념과 벌어져서는 안 되며 교육개혁의 중심으로 장차 자리 잡아야 한다.
다행히도, 현재 각 도의 국립대는 서울대학을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평준화되어 있다. 10개 국립대학끼리는 이미 학점교환도 자유롭게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제안은 현실과도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지방분권의 문제에서도 국립대학의 역할은 너무도 크다. 중앙집권화 현상의 타파가 지역거점 국립대학의 육성과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방자치의 이상을 위해서라도 국립대가 무상교육체제로 바뀌기를 희망한다. 처음부터 실시되는 것이 어렵더라도 수업료는 면제되고 일정부분의 기성회계만으로 운영되는 체제로 변화되어야 한다. 지방대육성사업의 핵은 이상적으로는 무상교육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 된다. 많은 돈이 시설확충이나 교수연구비 등 비본질적인 발전에만 사용된다면 인재유치에 실패하게 되어 지방대육성은 그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현실적으로도 망해가는 지방사학의 재산을 기존의 법률에 의거하여 국고에 환수시키는 방법으로도 일정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학재단의 재산이 정치적 권력의 농간에 의해 그들에게 돌아가게 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학경영자의 대부분은 이미 본전치기는 끝난 상황일 터인데도 남은 동산과 부동산조차 갖겠다는 것은 그들이 교육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증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국립대 육성책이 국립대학의 선점권을 고착화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개혁을 통해 국립대학이 제대로 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립대와 교수, 직원은 개혁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되어야 한다.
주장 1. 국립대의 졸업장을 단일화하라.
국립대가 평준화되어야 한다. 또한 국립대는 지방자치의 인재를 기르는 터전이 되어야 한다. 지방의 인재들이 국립대학으로 모이고 그 체제 내에서 그들이 훌륭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립대의 졸업장은 단일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졸업장 단일화는 국가의 관리에 의거하여 국립대 졸업생에 대한 인증의 일원화를 가리킨다. 어느 국립대를 졸업하더라도 같은 내용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고, 졸업 이후 취업시에 동등한 자격으로 취급될 수 있음을 뜻한다. 서울대 학부가 개방되면 이같은 효과는 훨씬 더 가속화되리라고 생각된다. 설령 서울대 학부의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모든 국립대의 졸업장이 일원화된다면 서울대의 폭력적인 독점권은 약해지리라 판단된다.
이런 대학의 구조는 이미 프랑스에서 그 실례를 볼 수 있다. 파리 1대학, 2대학, 3대학 식으로 평준화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처럼 모든 대학의 졸업장을 국가가 관리하여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가 이상적이겠다. 그러나 당장은 서울의 유수의 사립대학을 평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지방이 황폐화되고 있는 마당에 지역의 거점대학으로서 국립대를 육성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기 때문에, 우선 국립대 평준화와 무상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각도의 제1국립대학은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대로 형평성을 이루고 있다. 교수정원에서도 서울대(2002년 기준 1474인)와 제주대(2002기준 444인)를 제외한다면 대략 600명에서 800명 정도의 교수로 이루어져 있고 등록금도 비슷하기 때문이다(서울대 제외).
프랑스의 대학이 평준화되었다고 해서 질적으로 낙후되었다는 보고는 듣기 어렵다. 평준화를 통해 대학이 얻고자 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독점이 아니라 진정한 학문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경쟁의 다원화이지 결코 경쟁력의 약화가 아니다.
주장 2. 국립대를 중심으로 사학을 통폐합하라.
현재 지방사립대학은 점차 붕괴되고 있다. 2003년을 기준으로 고등학교졸업학생수와 대학정원의 수가 균형을 맞추어가면서 지방대학은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다. 전문대학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시원적으로는 제5공화국시절 1981년부터 대학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졸업정원제라는 명목으로 정원을 대폭적으로 늘인 데 있다. 지방대학이 정원을 늘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 대학은 수도권 정원억제라는 규제를 피하기 위하여 서울 근교나 통근이 가능한 곳에 분교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졸업정원제는 실시되지 못했고, 단순한 양적인 팽창만이 초래되어 오늘의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지방사학의 붕괴를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경쟁력이 없는 사립대학은 점진적으로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지나친 학력의 상승은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상황은 탁상공론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학생의 수업료로 운영되는 대학이 학생이 들어오지 않아 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학의 기능은 교육과 연구 그리고 봉사라는 3대 책무로 이루어져있다. 연구원대학은 연구만으로도 대학의 역할이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같은 곳이 바로 대학원대학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립대를 중심으로 사학이 통폐합될 것을 제안한다. 이는 법정정원수에도 못 미치는 교수확보율을 높이고, 기존 우수교수들을 확보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소정의 절차를 거쳐 사학의 우수교수를 충원하고 기존의 전체 국립대 교수 가운데 정교수 이상의 일정비율을 강의중심교수로 전환시키는 등의 방법을 취하면, 우수인력의 확보와 학문의 경쟁력 강화라는 두 목표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국립대 체제개선은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이를테면 의대, 법대, 사범대, 경영대의 대학원제도화라든가, 중복학과의 통폐합이라든가, 지나치게 작은 단과대의 합병 등은 우선시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첫댓글 국립대뿐만 아니라 전대학을 국립화, 무상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