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날벼락 같은 불의의 춘사(椿事)를 당할 때가 있다.
불현듯 찾아온 자식의 병고 앞에서 남인 양 태연할 부모는 없다. 띠앗머리가 남다른 오누이 간에도 어느 한 사람에게 들이닥친 병고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하지만 한 가족에게는 참혹한 절규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시계 침 돌아가듯 의식 없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사 그래서 때로는 외롭다.
누군가의 자식이 아프다 하면, 나는 어머니가 먼저 떠오르곤 하다. 병원 침상에서 폐색(閉塞)이 짙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낯꼴은, 세상을 침묵케 한다는 걸 어머니를 보며 알았다. 그런 어머니 앞에서 눈썹이라도 떨릴까 숨죽이며 지켜보는 것도 갱신 못 할 일이었다. 이후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향한 모든 정조(情操)가 안타까운 존재 하나로 치환되었다. 시골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에게 누가 맹물 한 대접만 드렸다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까닭이다.
토요일 저녁, 고향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 주소를 링크한 카톡이었는데, 동생 아들 사연이라는 것이다. 친구 동생은 고향 중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깜짝 놀라 청원 내용을 읽어 보니, 후배 아들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청원을 올린 이는 아들의 여동생이었다. 정황을 잘 정리해 올린 것으로 보아 제법 똑똑한 아이였다. 또한 오빠를 향한 애틋한 표현에서 띠앗머리 있이 잘 자란 남매라는 걸 알 수도 있었다.
연로한 어머니가 시골에서 혼자 버스를 타는 일은 항상 불안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시장을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트럭 한 대가 지나다가 급정거를 하더니 ‘어머니 어디 가세요.’ 하더란다. 어머니는 운전자를 알아보지 못해 누구냐고 묻자 ㅇㅇ형 동생 누구라고 해서야 알아보았다. 몇 년 안 보는 사이 훌쩍 변해 버린 젊은 사람들을 시골 어른들은 잘 못 알아 본다.
일을 하러 가던 후배는 시장 구석진 어머니의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리고서야 가던 길로 떠났다는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기억으로 남았던지, 어머니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그때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후배에게 뭔가 빚을 진 듯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 어머니는 시골에서는 드물게 아주 일찍 기독교 신자가 된 분으로 성품이 인자하기 그지없었다.
친구의 카톡을 받자마자 사무실 컴퓨터에 매달렸다. 책 홍보를 위해 매일 인터넷을 끼고 사는 내가 후배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한 명의 동의라도 더 받게 하기 위해 내가 관리하는 블로그와 SNS 등을 총동원하여 청원 내용을 퍼트려주는 일이었다.
24세의 초등학교 교사인 후배 아들은,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후 급성 간염 및 간 부전, 간 문맥혈전증이 왔으며, 간 수치가 5~6000에 달하였다. 더구나 소장 절반(약 1m) 가량이 썩어, 절반을 절제하는 수술도 받았다. 거기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다발성 장기 손상이 이어져 신장투석과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고, 폐에 물조차 찬 상황이라는 것이다. 백신 접종 후 13일쯤 지나 벌어진 일이었다. 백신을 맞기 전까지 후배 아들은 운동도 자주하며 술담배도 안 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였단다.
청원 내용을 보면, 후배 아들이 입원한 대학병원 측의 신속하지 못한 처치와 판단도 분통을 터트리게 할 만하였다. 후배 가족을 더욱 어이없게 한 일은, 이 상황을 대학병원 측이 기저질환 탓으로만 돌린다는 것이다. 가벼운 기저질환이 있었다고는 하나 건강한 20대 젊은이가 백신 접종 13일 후 갑작스레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면, 의학 지식이 없어도 누구에게나 합리적 의심이 들만한 일이다.
청원 내용은 다른 게 아니었다. 대학병원 측에서는 무조건 기저질환 탓으로 몰아붙이니 백신 접종과 위중한 상태의 인과관계를 정부가 나서서 밝혀주십사 하는 것이다. 대학병원, 우리 서민에게는 얼마나 기죽이는 존재인가.
청원 내용을 마구 퍼트린 탓인지, 아니면 어떤 연유에서든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후배 아들 소식이 기사화되어 마구 쏟아졌다. 기사뿐만 아니라 블로그와 카페 등으로도 청와대 게시판의 청원 내용이 도배되다시피 하였다. 하지만 청원을 통해 청와대 답변을 들으려면 동의자가 20만 명이 넘어야 한다. 아무리 기사가 쏟아져도 불특정 다수의 도움 없이는 찻잔 속 태풍이 될 뿐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20만 명 동의를 얻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틀도 채 못 되어 1만 5천 명을 훌쩍 넘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마 후배 가족은, 백신을 거부하였더라면 하는 회한이 깊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금 절망 속에서 헤매는 20대 젊은 남매와 부모에게 청와대의 한 마디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희망이 되지 않을까. 절박해서 청원을 올렸는데 반응이 못미처 결국 가십거리로 전락하였을 때 청원을 올린 아이가 느끼게 될 세상의 외로움도 염려스럽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노래가 있다. 이 청원의 ‘동의’는 단순히 청와대의 답변을 받는데 도움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그 ‘누군가의 기도’가 아닐까. 이 기도가 모아져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그 기운이 전이 되어 사경을 헤매는 20대 젊은이가 우꾼하게 일어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청와대 게시판에서 ‘동의합니다’ 한 번 클릭하는 데 몇 초 안 걸린다. 그 몇 초가 자신에게는 덕을 쌓는 일이 되고, 후배 가족에게는 큰 힘이 될 줄 안다.
동의의 보상은 하느님께서 해주실 것이다.
오빠를 위한 누이의 마지막 한마디가 애를 녹인다.
“저희 오빠 좀 도와주세요, 제발.”
<만24세 초등교사, 화이자 1차 접종 후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저희 오빠 좀 도와주세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bS5C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