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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 경유
굴업도 백패킹
섬 여행.,백패킹.
여자들 만의 백패킹.,통영.
소야도.,가족 백패킹.
섬 백패킹은 야영장비를 갖추고 여행하는.,레포츠.
'등산, 낚시, 요리, 여행. 비박,' 묘미가 복합된.,레저.
백패킹은 굳이 산의 정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정해진 목표까지., 발길이 닿는 대로 걷는 점에서는
섬, 계곡, 강가를 끼고 이뤄지는 트래킹과 유사하다.
.
'백패킹(backpacking)'은.,
영국에서는 ‘하이킹(hiking)’,
독일에서는 ‘반데룽(wanderung)’
문명의 도움이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목적 여행.
서양에서는 대중적이고, 우리나라는 초기 단계.
덕적군도.,울도.
섬 전체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운.,울도.
덕적군도에서 남쪽 끝으로 가장 동떨어져 있는 섬.
우럭, 꽃게가 많이 나서 황해 어로 전초기지였던.,울도.
인천시청에서 남서쪽 71.7㎞ 지점.
덕적도(德積島)에서 남서쪽으로 23km.
겨울에도 따듯한 편.,1월 평균기온-2.1℃.
울도 당산
울도 당산
울도 당산
요즘, 백패킹 천국으로 인기가 높은., 섬 여행.
덕적군도 울도는.,꽃게어장의 기능을 이미 상실.
요즘은 우럭어장의 기능도 점차 쇠퇴해 가고 있다.
현재, 덕적군도 꽃게어장 피항지.
어부들에게는., 파도막이 섬.,울도.
덕적군도 어장의
바람막이 섬.,3 곳.
굴업도 백아도 울도.
인근 어장에서 갑자기 기후가 악화되거나
짙은 해무가 시야를 가리거나, 풍랑이 일면,
안전을 위해 어장 어선들이 대피하는.,피항지.
울도 주위에는 백아도· 선갑도 등의 큰 섬을 비롯하여
부도·광대도·벌섬·오섬·바지섬·토끼섬·지도 등 작은 섬들.
주위에 무인도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싸여 있어.,울도(蔚島).
조선시대 문헌에는.,
'숲이 우거져 있는 섬'
이라고 하여.,울도(鬱島).
인천 옹진군 덕적면 울도리.,울도.
인천연안부두에서 새마을호가 문갑도(文甲島)·
굴업도(掘業島)·백아도(白牙島)·지도(池島)를 거쳐
울도까지 격일로 운항되어 가는 곳마다 바다낚시 가능.
덕적도에서는 다소 멀리 떨어진 단점만 제외하고는,
가장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만끽하기 좋은 곳.
여객선 운항이 일정하지 않는 등 뭍으로부터 버림 받은 섬.
2010년 기준으로 인구
총 75명(남자 41명, 여자 34명)
서울 아파트 한동 세대수.,31 가구.
그러나, '울도' 면적은
여의도(2.97 ㎢).,2/3 up.
그러한 주민들의 서러움이 척박한 땅을 일궜던 힘.
이젠 먹고 살기 어렵지 않게되어 때묻지 않은 자연과
그 자연을 닮은 인정들이 도시인의 부러움을 사는.,울도.
면적 2.11㎢,
해안선 길이 12.7㎞.
백패커들이 즐겨찾는
우럭, 놀래미, 농어, 장어.
'8~10월' 갯바위낚시.,명소.
....................울도(鬱島)..................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울도리.,울도.
동경 126°, 북위 37°03′ 인천 남서쪽 71㎞ 지점
덕적도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덕적군도 남쪽 끝.
면적 2.11㎢, 해안선 길이 12.7㎞.
조선시대 문헌에는 숲이 우거져 있는 섬.,울도(鬱島).
주민은 섬이 울타리처럼 생긴데서 유래한 지명이란다.
또한, 무인도서들이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다 하여.,울도.
섬은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모양으로,
산지(최고 높이 291m)는 서북쪽에 편중되어 있다.
대부분 구릉성 산지이며, 해안은 대체로 암석해안.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1월 평균기온 -2.1℃,
8월 평균기온 25.2℃,
연강수량은 1,234㎜
2010년 인구 75명(남 41명, 여 34명), 세대수 31.
취락은 북쪽 해안 만입부의 선착장 주변에 집중.
토지이용 현황은 밭 0.04㎢, 임야 2.05㎢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무· 마늘· 고추 등이 소량 생산된다.
근해에서는 꽃게·낙지·문어 등이 어획
김과 톳 양식이 활발하다.
덕적도에서 정기여객선 운항
......................................
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울도방파제를 만나게 된다.
.
웅진군에서 가장 규모가 커서
태풍이 오면, 주변의 선박들이
울도항으로 피항할 만큼 큰 규모.
.
방파제 끝나는 지점에
덕적초등학교 울도분교.
1989년 울도분교는 폐교.
.
“울도방파제를 건설하기 전에는
학교운동장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공부를 하다 말고 바로 10m 정도 뛰어가
수영을 했지요.” 라는.,울도 주민 문송배 씨.
.
그야말로. 울도바다가
학교운동장이었다는 섬.
일제때 울도는 동해 청진어장과 함께
2대 지정어장으로 새우가 유명하였으며
1940~1950년대 젓새우 파시가 열렸던 곳.
울도 토박이.,김상식 옹.
“여기는 새우가 유명했어요.
일제때 큰아버님이 36년간 이장.
여기서 안강망어선 2척을 가지고
새우를 잡아 말려 중국에 수출하셨죠."
"나는 어릴 때 새우 잡아다 가마솥에 쪄서
바로 말리고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각나요.”
.
“현재 마을 입구 노인정 있죠.
노인정 옆으로 보면 새우를 잡아서
가마솥 걸어놓고 찌던 곳이죠. 또한 거기에서
안강망 그물은 면사라서 튼튼하게 하려고 어망을
가마솥에 삶아서 물들이잖아요. 지금은 가마솥이 없어요”
[매일신보] 1931.9.16자는 울도 새우를
‘경기도의 주요 수산물’로 소개하고 있다.
[매일신보] 1933.11.08.일자에 “울도 어장은
지금이 한철로 3백여 척이 조업하여 어획량이
12월 중순경까지 평년의 3배인 15만 환을 기록,
만주국(일본이 만주 지역에 세운 괴뢰 국가)에
신 판로를 얻어 시세도 평년보다 3-4배 폭등하고
풍년을 맞이하여 중국 청도, 대련, 만주까지 수출”
[동아일보] 1939.6.9일자는 “인천수산시험장에서는
새우의 산지로 유명한 인천 근해 덕적도 울도 부근에서
새우 성어기를 맞이하여 각지의 새우잡이배로 일대호화판.
이에 수산시험장으로서는
새우의 신보고(寶庫)를 탐험코자
수일 전부터 울도 근해를 항해하다 귀환
울도 서측 굴업도 근해가 풍어의 보고로 보고
어획은 울도보다 3-4배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보도.
“1930년 중반, 울도주민 문성재씨가 새우어장을 발견했지.
주민들은 어장에서 새우를 잡아 중국 청도, 대련 등지에 수출.
중국 사람들이 풍토병 때문에 새우를 먹어야 한다 해서 많이 수출.
마른 새우로 만들기 위해
울도, 백아도, 장부도, 지도 등에
건하장(乾蝦場;새우를 말리는 곳)이
있었는데 해방 이후 폐장됐지. 이 새우 덕분에
덕적도 외국유학생이 육지보다 많았지." -송은호 옹.-
한때 새우 파시가 설 만큼 어업이 활발했다는.,울도.
꽃게, 새우가 잡히지만, 새우는 지금도 많이 잡힌단다.
현재 꽃게잡이 어선 기항지, 피항지로 이용될 만큼 쇠락.
1975년 유권자만 102명, 학생도 30여명이었다는데
2015년 말, 주민등록 등재 70여명, 거주자는 40여명.
겨울에 인천 등지로 나가지 않는.,울도 주민은 20여명.
그야말로, 울도는 오지 섬 중에서 오지 섬.
2016년 현재, 섬 주민 대부분.,70~80대 고령.
만약, 이 분들마저 안계시면, 섬은 누가 지킬까?
2월 23일 8시 울도에서 출항한 어선.
2016년 2월 24일 9시 30분 울도 인근에서
1t급 소형 어선이 침몰한채 발견되어 수색 중.
어선에 탑승한 고모(72)씨 부부 수색에 나섰다.
평택해양경비안전서는 경비정 5척, 헬기 1대,
구조대 1팀, 해군 2함대 구조작전대, 울도 주민 등
고씨 부부를 찾는 등 사고 주변 해역을 수색하고 있다.
평택해경 관계자는 “어선이 울도 부근에서 발견됐으나
침몰지점이 확인되지 않아 울도 해역을 수색하고 있다.”
'풍도~울도'항로는 서해 상에서
가장 수심이 깊고 빠른.,큰물길 해역.
오전 오후의 '물때와 기후' 변화가 극심.
울도 백패킹은
정기여객선 이용이
안전을 위해서 바람직.
울도 해역은 중국어선들이 조업 중 사고가 빈번한 곳.
어선끼리 충돌사고로 선원들의 부상도 빈번한 곳이다.
아울러, 피서철 '전곡항~ 울도' 요트 사고도 잦은.,해역.
'경기만'에 위치한.,'도서지역' 옹진군.
옹진군 '뱃노래'는 가락이 단조롭고 구성지며,
후렴은 노젓는데 힘돋우는 '노동요'라서 힘차다.
.
'뱃노래' 노동요는 거친 파도와 싸우며
고기를 잡는 모습과 고기를 많이 잡아
즐겁게 살아보자는 소망을 담고 있다.
“암해 수로를 맛마쳐 노니
밋띄 미암이 신작로로다.
지화자 좋다.
에헤 이에와요
이어차디요.
달둘러
이마도 바다로
조기 잡으러 가자.
연평 칠산 다 뒤져 먹고
어영도 바다로 돈 실러가세.”
........................
.........................
어부에게는 어장이.,삶의 터전.
어장이 있는 곳이.,'어부의 고향'.
바다 어장을 맴돌며 사는.,어부의 삶.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요.
어민들의 심금을 울리는.,노래말.
어영도는 황해남도 철산군에 속한 섬.
칠산(어장)은 전라남도 영광군에 속한 어장.
연명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속한 섬.
이마도(임하도)는 전남 해남군 문내면에 속한 섬.
인천광역시 옹진군 어민들은
옛날부터 서남해 어장까지 출어.
그 사실을 대변하는 웅진군 뱃노래.
옹진군에 전래되어 오는.,배영신굿.
대개, 음력 정월· 3월· 9월· 10월로 나누어
행하며, 목욕재계 등 엄격한 금기사항 후 거행.
굿은 신청올림· 당산맞이 부정풀이 초부정.
초잠홍· 영정물림· 소당제석· 먼산장군거리·
대감놀이굿· 영산할아범 & 할멈굿· 쑹기준다·
다리발용신굿· 강변놀이굿.,'12거리굿'배영신굿.
굿을 할 때는 배에 성황기를 비롯하여
장군기· 소당기· 오색기· 봉죽· 설이화 등의
깃대를 앞세우고 모두 25∼30명 가량이 어우러져
풍물을 치며 놀이를 벌이는 것이 옹진군 배영신굿 특징.
남편을 바다에 내보낸 아낙네들은 남편의 건강과
아무 사고 없이 배가 만선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니나나타령'을 부르면서 춤추며, 뱃노래를 부를 때에는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 띄워놓고 장단치며 부르는.,뱃치기.
덕적도 인근 섬 사정을 소재로 한
웅진군의 전통 민요.,'덕적도아리랑'
"덕적산 넓이는 사방오리.
그너머 동리는 여덟일세.
문갑 소야리 승황빼알."
.
"굴업 울도 못섬일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굴업 울도' 못섬은 암초 해역이며
문갑도 소야도 승황빼알은 위험해역이며
독우물 위험해역 임을 대변하는.,'뱃치기'노래.
..........승황빼알..............
문갑 소야리 '승황빼알'에서
"승황(乘黃)"은 중국 전설 속 나라인
백민국(白民國)에서 나오는 일종의 신마(神馬).
.
승황(乘黃)은 여우같이 생겼고, 등 위에 뿔이 두개 나있으며,
이동하는 것이 바람과 같은데, "비황(飛黃)"이라고도 부른다.
"비황"을 타면, 2천년을 살 수 있다고 전한다. -산해경.해외서경-
"비황(飛黃)" or "비황등달(飛黃騰達)"은
사람의 지위나 직위가 빠르게 상승하거나,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권력을 얻음을 비유.
'비알' or '빼알'은
벼랑 or 벼랑 끝.,의미.
'경기도 경상도' 지역방언.
......................................
'배영신굿'은 웅진군 어민들이
'물고기밥' 영령들을 달래는 굿.
경기만 남북한 도서지역 총칭.,옹진군(170.14㎢).
'독 甕, 나루 津. 고을 郡'.,'독 나루 고을' 옹진군.
서해 큰물길 & 경기만 강물이 합류해.,독우물 현상.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서해 '독우물 현상' 큰물길이
' 울도~ 풍도' 해역을 통과한다.
밀물 때 울도는.,덕적도의 파도막이섬
썰물 때 울도는.,급물살 소용돌이 풍랑 해역.
울도해역은 수심이 깊어 큰배들이 다니는 항로.
오전에 서해는 잔잔한 수면이지만
오후에는 북서풍 강한 바람이 불어와
수심 깊은 큰물길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대륙성 고기압 북서풍이
태평양 해역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의 길목'에 위치한.,서해.
가끔, 오후 3시 반 경이면
서해에 몸을 날릴듯한 Z기류 출현.
큰물길이 쏜살같은 급물살로 변한다.
어부들은 죽음의 바다를 건너야만 한다.
정기여객선은 정해진 안전항로로 다니지만
어선은 어장의 큰물길 작은물길 건너며 조업.
만약, 서해 큰물살 해역들을 건너지 못하면
어선이 태평양까지 떠밀려가는 위험까지 감수.
때론, 급물살들을 건너 사투를 벌려야 하는.,어장.
그래서, 중소형 어선(漁船)들의 조난,
침몰 사고 등이 잦은.,'울도~풍도' 해역.
바다물이 밀때, 밀물듯이 들어왔다가
물이 썰때, 썰물처럼 빠져나가는.,어선들.
풍랑을 만나거나, 물때 놓칠 때.,피항지 울도.
어부들이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할 때가 가장 위험한.,바다길.
풍랑 속 어선들의 피항지.,울도 선착장.
.
인천광역시 웅진군 덕적면.,울도.
본섬 덕적도와 가장 많이 떨어져 있어
올 때 멀어서 울고, 갈 때 주민 인심이 좋아
떠나기 섭섭하여 울고 간다 하여.,울도라는 곳.
섬주민들 치고 살기가 어려워
울지 않은 사람이 없어.,'울도'.
오랜세월 큰물살에 깍이고 패인 파도막이섬.,울도
울타리 같은 암초군을 거느린 울도는.,한폭의 동양화.
인천 정기여객선 운항시간이 일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인천앞바다 덕적도 서쪽 끝머리에 있는
굴업도 백아도 울도는 덕적도 "파도막이섬"
3섬 모두 몇 가구 작은마을이 하나씩 만 있다.
울도는
순결할 만큼
자연을 닮은 주민들
그 인정이 입소문난 섬들.
백패킹 명소로 알려지면서부터
이제는 오히려 뭍사람 부러움을
살 만한 덕적군도 파도막이 섬들.
굴업도는.,바람의 나라.
백아도는.,파도의 나라.
울도는.,암초 갯바위 나라.
그 중에서도
백패킹 애호가들이
가장 즐겨찾는 섬.,울도.
요즘, 수도권 도서지역에서의
백패킹 여성들이 많이 늘었다.
서양 백패킹 여성들보다 큰 배낭.
1894년 청일 풍도(울도)해전 이후 현재까지
보물선 침몰해역으로 입소문 난.,보물섬 울도.
'보물을 찾으러 온 것일까? 백패킹이 좋은걸까?'
.................백패킹(backpacking)................
옷· 식량·야영 장비 등을 메고 걷는.,배낭도보여행.
20세기 초, 황무지 오지에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
하루종일 걸어도 당일로 도착할 수 없는 지역 여행의 수단.
원래는, 야영, 생존기술, 식량· 물· 지형· 기후·
날씨 등을 고려, 신체검사와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의류는 모두 방수·방한·절연 처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모자 달린 파카, 절연 처리된 내의,
오리털 의류, 방한용 바지, 판초 등.
텐트는 보통 방수 천으로 만든 2인용.
백패킹을 하려면 지형도 읽는 법.
나침반 사용법 등을 알아야만 한다.
또한 비상식량과 응급치료 기구 휴대.
위기극복 능력과 기술을 잘 알아야 한다.
.....................................................
지리산국립공원 원시림 칠선계곡이나
'대원사계곡~중봉 길목' 치밭목산장 만큼이나
태고의 숨결이 살아있고 곳곳에 비박이 가능한.,울도.
수도권 비박 백패커들의 발길이
취사규제 심한 전국의 국립공원보다
수도권 도서지역으로 향하는 것 같다.
백패킹 애호가들의 천국.
'갯바위, 바다낚시'의 천국.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천국.
덕적군도 '파도막이섬' 울도.
원래, 비박은 독일어(Biwak)와 프랑스어(bivouac).
즉, 텐트 없이 밤을 지새우는 오지에서의.,노숙 요령.
비박은 간단한 장비로 산과 섬에서 밤을 지새우는.,야영.
도시문명과 동떨어진 섬 비박(야영)은 새로운 세계.
밤 파도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밤하늘 수많은 별빛들.
그토록 깊은 고독과 적막을 느낄 수 있는.,환상적인 체험.
태고(太古)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울도.
아득한 태고 속에서 시간이 그대로 멈추어 있는.,곳.
억만년 세월의 고독과 적막을 그대로 품고있는.,바다.
덕적군도 파도막이섬.,울도.
인적이 전혀 없는 곳도 많다.
거칠고 험한 암릉이 많은.,섬.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울도.
.............비박(야영)할때.,주의할 점................
1. 지형지물 및 지니고 있는 비박장비를 최대한 활용.
2. 배낭에 기댄 자세로 누워 휴식하는 것도 비박 요령.
3. 평소 체력단련 해야겠지만 굳이 예행 연습은 불필요.
4. 바람에 날릴만한 장비는 자일에 매달아 두어야 한다.
5. 특히, 섬 절벽 끝 절경지에서는 자기확보 및 장비 정리.
6. 낙뢰 때 철재 장비는 비박장소에서 좀 떨어진 곳에 보관.
.
7. 헤드랜턴은 가까이 두고 비바람에 노출 되지 않게 잘 보관.
8. 비박은 정해진 원칙이 없고, 숙달된 경험 요령이 쓸모 있다.
9. 산과 바다 그리고 섬은 한계절 더 추워.,바람막이옷이 꼭 필요.
10. 무게 가볍고 부피 작고 성능 우수한.,비박색, 매트리스 바람직.
11. 둘이 침낭 코펠 등을 함께 사용하는 것도.,배낭무게 줄이는 요령.
12. 연인 간 체온이 따듯하게 느껴지는 겨울이 여름보다 즐거운.,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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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낭은 4계절 용도가 가볍고 편하다.
부피 큰 겨울 침낭은 무겁기 때문이다.
침낭 사용법을 알면, 여름용 침낭도 무난.
끓인 물을 담아
보온이 될 수 있는
보온 외피 1리터 수통.
'끓인 물 수통을 침낭 안에 넣으면.,따듯.
이때 여벌의 옷도 다 껴입으면 더 효과적.
입구가 넓은
프라스틱 1리터
수통이 사용 편리.
보온재 외피 1리터 수통에 끓는 물을 넣으면,
일교차 극심한 새벽까지 온기가.,4시간은 유효.
겨울에 여름용 침낭 하나로 둘이 사용해도 따듯.
단, 땅의 한기를 차단할
메트는 반드시 필요하다.
심마니 약초꾼들은 비닐 텐트를 사용.
김장용 통비닐.,'지름 1.5m, 길이 5m.'
통비닐 '지름 1.5m'를 펴면., '3m x 5m'
겨울철에도 침낭을 겸한
비박용 텐트로 늘 사용한다.
비닐텐트 밑에 깐 낙엽이.,메트.
마른 낙엽이
침낭 용도을 겸한
'메트' 역활을 다한다.
'텐트 & 침낭'을 함께 사용할 경우에
'3m x 4m'비닐로도 텐트 제작이.,충분.
부피, 무게, 비용 부담 없고, 쓸모가 다양.
침낭 하나에 연인이 하룻밤 지새우기도 요령.
타이거 우즈가 연인과 한 침낭에서 비박 후 결혼.
침낭은 작은듯 해도 한쌍의 연인은 감쌀 정도 크기.
봄,여름, 가을철에는 침낭 없이도
'비박 색' 안에 메트 하나 깔면 충분.
메트를 '비박색' 밖에 깔면, 도망간다.
.
비박색은 출입구에 모기장이 붙어있어
개폐구를 통해, 주변 경관을 즐길 수도 있다.
고어텍스 재질이라.,눈, 비 속에서도 따듯하다.
'1~2 인용 텐트'의 1/3 무게 & 부피.
봄, 여름 가을에는 침낭 겸용도 무방하다.
메트도 1/2로 짤라 쓰면, 잠자리에 불편 없다.
배낭을
빈자리에
채우면 된다.
등산화는 잡주머니에 넣어
비박색 밖, 머리 밑에 넣어
벼개로 사용하면, 편리하고
비 오면, 비박색 안에 넣는다.
.
백패킹은
배낭 무게를
줄일수록 즐겁다.
백패킹 취사 도구 류는
물을 끓이는 수준이 적당.
식량도 행동식 정도가 편하다.
설겆이,
쓰레기,
걱정 없다.
저녁 식사는
치즈 & 비스킷 몇 조각.
커피 한잔 곁들이면 충분하다.
악마처럼 검고
태양처럼 뜨겁고
사랑처럼 달콤한 맛.
1/2 메트리스 위에 둘이 앉아 판초 하나 뒤집어 쓰기.
보온피 수통에 물을 끓여 넣어 하나씩 안으면 따듯하다.
하룻밤 지새우면 '알퐁스 도데' <'별> 소설 속 주인공인듯.
섬에서 밤바다를 바라보며
인어공주의 전설을 떠올리면
낭만적인 하룻밤을 즐길 수 있다.
파도여 슬퍼 말아라.
파도여 춤를 추어라.
끝없은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를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울도 비박(여행) 참고사항................
1. 짝수일 입도, 홀수일 출도로.,승선시간 절약.
2. ‘사리’때에 맞춰야 해안트레킹 및 바다체험 편리.
3. 숙영지는 '큰마을 어귀' 폐교 앞 솔밭이 최적지이다.
주민들의 도움을 받거나 소통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섬트레킹, 해안트레킹, 바다체험, 폐교 간이화장실 이용 可.
4. 기타 숙영지로는 당산 팔각정.
좀 협소하고 주변 정비가 필요.
울도 동쪽끝 해변(북망산 아래) 백사장 인근.
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접근이 어려운.,숙영지.
5. 식수는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6. 수퍼가 있었으나 운영되지 않고 있어
필요 물품은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좋다.
울도는 서해 어로작업 어선들의 피항지.
예전에 술집도 있었을 만큼 활기 띄던 곳.
음주로 인한 소란 때문에 술집도 사라지고
수퍼에서 주류도 팔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조만간 제대로 갖춰진 수퍼가 운영(민박집)될 듯.,
만약 필요한 물품을 섬내에서 구입할 수 없는 경우,
주민분이나 거주민들께 부탁드리면 덕적도에서 구입,
울도 행 배편으로 보내주는 방법으로 도움받을 수 있다.
7. 등대와 팔각정이 있는 곳까지는
산행로가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지만
반대편은 주민 아니면 길 찾기가 쉽지 않다.
8. 야생화와 머위, 달래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더덕향 진한 울도, 경작지에는 울타리가 있는데
이는 외지인들의 '산나물과 약초 채취 금지 구역.'
9. 민박인 경우, 울도의 비경을 많이 볼 수 있고
자연산 회나 게장 맛까지 즐길 수 있도록 배려.
선박 이용(이용료 15만원, 낚시배 45만원 정도).
10. 음식물은 남기지 않도록 적정량만 준비하고
취사도구는 물티슈로 닦고 생수로 헹구는 정도.
11. 숙영지 철수때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 후,
재활용품은 분리수거자루에 넣도록 한다.
12. 울도 방문 시, 민박이 시간 활용이 좋을 듯.
비박을 하는 경우 '팔각정~등대' 섬트레킹과
목넘어해변 해안트레킹 / 바다낚시 해산물채취.
먹거리 준비시간이 대부분이라 무료해질 수 있다.
민박인 경우, 섬일주, 해변나들이 등
볼거리 여정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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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1일 오전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덕적도 진리선착장 ~울도' 나래호(159t)' 취항.
여객 120명, 차량 9대, 운항속력 15노트.,고속 선박.
기존 해양호(79t)가 차량을 운반할 수 없어
이용객이 불편을 겪자 나래호를 건조해 투입.
울도의 비경을 찾는 탐방객들의 점차 늘고있다.
울도해역은
1894년 풍도해전
청 함대들이 침몰한 곳.
'1894년 청.일 간 '풍도해전'
그 역사의 현장인.,울도해역.'
1894년부터 보물섬으로 소문난.,울도.
많은 이들이 보물을 찾으려고 갔었지만
아직까지도 바다물 속 보물은 찾지 못했다.
옛날부터 동아시아 해상무역 상선들이
울도해역 풍랑 속 거친 파도 속으로 침몰.
아직까지도 보물섬 소문은 그대로인.,울도.
울도 주변에 무인도서들이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기 때문.
울도는 등뒤로는.,큰물길 파도막이 섬.
주변 무인도와 함께 파도막이 울타리 섬.
그러나, 배로는.,작은물길을 품어안는 울도.
등쪽은 수심이 깊고 배쪽은 얕은 편.
'밀물과 썰물' 간만의 차이가 큰.,울도.
'사리와 조금' 조석차 역시 극심한.,울도.
조석은 다른 천체의 중력에 의한 현상작용으로,
달과 태양의 위치 변화로 일어나는 해수면의 변화.
사리 때에는 조석차가 최대, 조금 때에는 조석차 최소.
평균 조석 범위보다
10~30% 좁을 때는 사리.
그 반대 변형 현상일때.,조금.
즉, 삭에는 달과 지구와 태양이 일직선상.
망에는 그 반대로 태양과 지구와 달이 일직선상.
삭은 음력 초하루 초생달이고 망은 음력 15일 보름달.
만유인력(萬有引力) 보름달이 뜰 무렵에
서해에서 바다갈라짐 현상이 두드러지며
조석차 극대화로 꽃게가 통통 살이 오른다.
조석차가 심하면
꽃게가 먹을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일상생활의 식탁에서
수산물 영양 상태가 가장 좋을 때
아이를 갖기 적당한.,여성의 배란기.
앉으나 서나, 님 생각 할때.,보름달.
멀리 떠난 님을 그리워 할때.,그뭄달.
님 돌아올 날 손꼽아 기다릴때.,초생달.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의 영향력권.,서해.
달의 인력이 해보다 큰 것이 아니라
천체의 주기변화는 달로 알 수 있는 탓.
하여, 우리나라 농어촌에서는 음력을 사용.
면적 2.06㎢, 해안선 길이 12.7㎞, 최고점 220m.
인천에서 남서쪽 72km, 덕적도 남서쪽으로 23km.
'울도해역 ~ 풍도해역 ~ 인천국제항'.,'큰물길' 항로.
서해 상에서 대형선박들 운항이 가능한.,유일한 큰물길.
'고려 말 ~ 조선' 시대에는 조운선(漕運船)이 다니던 항로.
덕적군도 선미도해역 큰물길 항로보다
풍랑이 심하지 않아.,비교적 안전한 항로.
조선시대 임진왜란 후 해적섬.,소이작도.
두 큰물길 항로를 오가던.,무역선들을 공격.
수시로 조운선을 공격해 세곡미를 강탈한 해역.
고려의 패망 원인 중 하나.,해적들의 세곡미 강탈.
조선시대에도 해적의 세곡미 강탈로 국가재정이 휘청.
구한 말, 개화기 외세를 끌어들여야 할 만큼.,약화된 국력.
조선왕조는 해금정책으로 일관하다가
해양정책의 실패로.,조선왕조 명맥은 끊겼다.
청일전쟁 승전국 일제에 의해 519년 역사를 마감.
1894년 풍도(울도)해전이 청일전쟁 시발점.
사실 상, 일제강점기 시발점은 그때부터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해 큰물길은 울도를 지난다.
요즈음, 수도권에서 '백패킹 명소' 덕적군도.
올망졸망 모여있는 섬들이 제각각.,다른 모습.
파도와 바람, 물길에 패인 형태가.,각기 다르다.
울도와 백아도는 마주보는 가까운 섬.
울도는 북동쪽을 향해 선착장을 품었고
백아도는 남동쪽을 향해 선착장을 품었다.
백아도는 남성다움이 느껴지는 산세라면
울도는 여성스러움이 물씬거리는 산세이다.
마치, 잘 어울리는 한쌍의 남남북녀(南男北女).
백아도 '선단녀' 전설의 배경은
'백아도'와 더불어 '울도' 아닐까?
옛날에 백아도 어부 청년이 풍랑을 만나
이름 모를 섬으로., 흘러들어 가게 되었고
그 섬에서 만난 처녀와 깊은 사랑에 빠졌지만,
알고보니 그 처녀는 십수년전에 헤어진.,여동생.
여동생을 납치해 키운.,마귀할멈.
하늘에서 내려다보던.,옥황상제가
선녀를 내려보내 그 사실을 알려준 것.
그러한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던 오누이.
남매와 마귀할멈에게 분노한 옥황상제는
섬에 벼락을 내려 이들을 모두 죽게 했단다.
그후 이곳에 3개의 절벽이 솟아올랐다 전한다.
그때 그 선녀가 너무 애통해하며
피눈물을 흘리며 승천한 곳.,선단여.
백아도에서 굴업도 가는 항로 상.,암초.
이곳 '선단여' 세개 돌기둥 별칭은
어느 것이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어
"오빠 동생 마귀할멈바위"라고 부른다.
마귀할멈은 울도 당집 무녀 아닐까?
그 처녀는 당집 무당의 수양딸이 된듯..
결국, 이루어질 수 없었던.,사랑의 전설.
'당집'은 당신(堂神)을 모시는 집.
이를, '원당'이라고도 부르는데.,당산은
할아버지, 할머니 등으로 인격화 한.,풍습.
당산나무나 당산석이 신체(神體)로
직접적인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려서 모셔 두기도 한다.
당제는 대부분 섣달 그믐부터 정월 대보름에
이루어지며, 2월 초하루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즉, '사리'와 '조금' 물때에 맞춰 당제를 지낸다.
'해수면 조석차가 최대 물때인.,'사리'.
'해수면 조석차가 최소 물때인.,'조금.'
'사리'에는 풍어를 기원하였으리라.
'조금'에는 그해 무사항해를 기원한듯..
'당제'는 물때에 맞춰 지냈음을 알 수 있다.
'당집'은 전국의 어느 곳이나
바다 항로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
물고기밥이 된 뱃사람 원혼을 달래는 곳.
한칸 남짓쯤, 한평 규모도 안되는.,당집.
섬 주변 해역의 물길과 항로 상 암초까지
손바닥을 보듯 꿰뚫고 있었을.,당집의 무녀.
마치, 대물림 어부가 어장을 잘 알듯.
조상 대대로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짓듯.
대를 이은 상공업 장인들이 달인이 되듯.
'대물림' 당집의 무녀는
뱃사람들에게 항로 상.,길잡이.
오늘날, 등대지기 역활을 했으리라.
해상무역 상인들끼리는
당집에서 만나 정보교환 및
밀무역 흥정, 거래도 했으리라.
당집 무녀는.,상인들 간 중개인 역활.
구전 두둑하면, 신명 나는.,해신제, 당굿.
전통적인 무속 풍습일까? 민간신앙 일까?
울도 당산(堂山 : 231m) 정상에 위치한.,등대.
당집이 있던 산이라 하여 '당산'이라 불렀으리라.
옛부터 울도해역을 오가던 뱃사람들이 들렀으리라.
서해는 세계 군사 전략 상.,최고 요충지.
그중에서도 덕적군도가 요충지의 중심이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풍도 & 울도 해역이.,핵심.
울도 해역은 조선 말, 청일전쟁 유적지.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1894년 7월 25일~1895년 4월' 벌린 청일전쟁.
이 전쟁은 산둥반도까지
격전이 국제전쟁으로 전개.
청일전쟁 시발점.,울도 해전
1894년 조선에서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일. 청'은 조선 내 다른 세력과 연계하여 개입.
청은 조선과 기존 종주권 관계를 유지하려 했고,
일본 역시 조선을 자국의 영향권 내에 넣길 원했다.
이때 양국은 이미 조선 국경 내에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군대를 주둔.
1894년 6월초 아산만에 3천명 청군(북양군)이 주둔.
본국으로부터 조선주둔군 보급물자을 받았던.,아산만.
일본의 계획은 청군보급로 아산만 입구를 봉쇄하고,
청 본토 지원군이 내륙을 통해 조선에 증원되기 전에
조선 아산만에 주둔한 청 주둔군(북양군)을 포위하는 것.
북양함대 사령관 중 일부는 이 상황을 사전에 인지.
부대를 철군하거나, 아니면 더 북쪽의 평양으로 이전,
또는 일본의 의도를 분쇄하기 위해 청나라 북양함대를
모두 이끌고 인천으로 가서 전면전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
청일.,'풍도~율도'해전.
한편, 일본은 아산만 청 군대를 봉쇄했던 것
일본의 기록에 따르면 순찰하던 제1유격대가
아산만에 병력을 추가 수송하려는 청나라 함대와
조우하여 '풍도(율도)해전'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청일전쟁 시발점.,'풍도~울도'해역의 해전.
이를 "풍도해전" 또는 "울도해전"이라 한다.
19세기 말, 울도해전
그 역사를 품고 있는 해역.
청.일 간 최초 격전지였던 곳.
울도해전으로 인하여
조선의 국내 정세가 바뀌고
아시아 강대국의 판도가 바뀐다.
청일전쟁 후,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제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전 세계의 역사를 바꿔 놓은.,역사의 현장.
.
1894년 7월 25일
벌어졌던.,청일 해전.
64명 영국 승무원들이 운항하고 있었고
1,200명 청군, 보급품, 대포14문, 무기 적재.
청 국적 조강호와 함께 조선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승호는 그 제원을 추격하던
일본해군 순양함들에 의해 침몰.
조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청나라는 후퇴.
그후 조선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일본.
조선 장악을 노리던 강대국들의 전진기지.,울도.
우리나라 서해 상에는
수도권에서 가까우면서
'1박2일' 일정 여행지로
숨겨진 보물섬들이 많다.
'시간은 곧 돈이다.'
관광객의 시간낭비 절약.
그것은 관광산업 기본 원칙.
미국은 개척기에 동부에서 출발하였고.
서부 금광 개척을 위해.,라스베이거스 건설.
사막 한가운데 세계적인 관광지를 개발한 것.
그 바람에 미국 서부에 금광 개척 붐이 일고
미국의 젊은이들이 목숨 걸고 서부로 진출하여
오늘날, 미국의 대표적 국제도시들은 서부에 위치.
탐험정신.
모험정신.
개척정신.
그 덕분에 사막이었던 캘리포니아는
'지름 10m 송수관' 3개 라인을 통해서
콜로라도 강물을 끌어와 농토로 뒤바꿔
세계 인구 2/3를 먹여 살릴 옥토로 만들었고
라스베이거스는 전세계 관광산업 수익율 NO 1.
약 200년전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에
'아리조나'주에 위치한 그랜드 케년은
인디안이 득실거리는 '죽음의 계곡' 대협곡
그곳 지나 '라스베이거스' 환락의 도시를 건설.
라스베이거스에서 네바다 사막을 건너
말을 달려 서부 끝에 이르면, 로스엔젤레스.
'개척정신 탐험정신 모험정신'으로 개척된 서부.
오늘날, 미국의 그랜드 케년, 네바다 사막,
라스베이거스 관광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죽음의 사막' 네바다주에 일궈낸.,서부의 기적.
덕적군도 수도권 도서지역은
장차, 국제 해상도시가 들어설만한
잠재적인 입지적 여건을 갖춘 곳이다.
덕적군도는 연육교로 모두 이을 수도 있고
제방을 쌓아 하나의 섬으로 만들 수도 있는 곳.
덕적도는 '영흥도 & 인천' 고속도로 건설도 가능.
'산동반도 장안 ~ 인천국제무역항'.
'요동반도 여순 ~ 인천국제무역항'.
현재, '한. 중' 직통항로와 병행하여
해상도로 건설도 가능한.,지리적 여건.
건설 투자비용보다 수익이 높을만한 곳.
덕적군도에 한중 고속도로까지 개통이 된다면
'홍콩' 같은 국제무역항 해상도시 건설도 가능하고
수도권 도서지역은 '서해의 지중해'로 발전될.,요충지.
덕적군도는 해상도시를 건설할 경우
무공해 '조력, 풍력, 태양광' 발전 시설로
필요한 전력 생산이 가능해, 친환경적인 적지.
불과, 반세기 만에 수도권에서
짓고 헐기를 반복하는.,아파트군.
재개발이라 하더라도.,국가적 손실.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만 초래할뿐.
자원 낭비, 인력 손실 결과만 빚을뿐.
국가 장래에 큰 도움될 것 같지는 않다.
자손대대로 대물림이 가능한.,해상도시 건설.
장차, 우리나라 미래의 국운이 걸린.,프로잭트.
전세계 해양정책에 롤 모델이 될.,덕적군도 개발.
'국내, 건설 기술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덕적군도 해역은
태안반도 앞바다까지
하나의 섬으로 간척 가능.
홍콩(1,104km²)의 면적보다
훨씬 넓은 해상도시 건설도 가능.
서울(605.18 km²)의 면적보다
2배 up 넓은.,덕적군도 황해평야.
뉴욕(1214.4 km²) 규모.,수상도시.
'서해의 기적., Ney - Seoul.'
네델란드 수도 '암스텔담' 같이
운하 안으로 큰선박들이 왕래하고
도심 수로가 뱃길인 도시 건설도 가능.
덕적군도 황해평야.,해상도시.
원래, 신석기시대 조상들의 삶터.
바다 밑에서 수면으로 떠오르게 될 곳.
'마스터 플랜'을 잘 세우면
세계 각국에서의 투자 자금이
경쟁적으로 유입될 만한 곳이다.
.
울도는 서해 큰물길 곁에 위치해
'국제자유무역항' 항만시설.,적지.
울도는 태평양 어업 전진기지로서
동아시아 수산업, 냉동업, 국제무역
해양관광산업 등 중심지로 부각될 곳.
......................
......................
입지적 여건은 갖추고 있지만
지리적으로는 파도막이 섬이라
항만공사는 첨단 토목기술이 필요.
덕적군도.,해상도시 건설 플랜.
그 성패를 좌우할.,울도 항만 플랜.
대한민국 미래 운명을 좌우 할.,울도.
관광특구 & 경제특구
국제자유무역항.,울도.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장차, 미래에도
덕적군도 보물섬.,울도.
.
한중 무역은 더욱 활발하게 되고
그 무역원가는 훨씬 절감될.,요충지.
장차, 황금알을 낳는 거위.,덕적군도.
동아시아 해상무역, 관광산업, 해운업 등.
중심이 되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도움될 곳.
국내, 건설업, 조선업 등도 활성화되어
일자리 창출에 큰 역활을 하지 않을까?
태평양 어종(魚種)
70~80% 산란장.,서해.
싱싱한 먹거리도 부각될 곳.
덕적군도 섬들의 절경지대는
국제적인 해상관광지로서 부각.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들 곳이다.
수도권 도서지역 섬 주민들은
고향을 대대로 지키게 될 것이고
수도권 인구집중 해소에 기여할 곳.
덕적군도에 속한.,울도.
'큰물길' 항로 상으로는
'덕적군도 수문장'.,위치.
큰 배들이 운항할 항로가 있어
항만시설 만 제대로 건설된다면
국제무역항으로 손색 없는.,'울도.'
장차, 울도는 머지 않은 미래에
무한 잠재력을 품고있는.,요충지.
현재, 자연을 닮은 섬 주민들의 인정이
오히려 도시인의 부러움을 살 만한.,울도.
바다낚시 어종.,우럭, 놀래미, 농어, 장어 등.
바다낚시 적기 : 8~10월.
장소 : 울도 주변의.,전역.
인천 ~ 덕적도 행 쾌속선으로 1시간 &
덕적도~ 울도 행 여객선으로 1시간 반.
'인천여객터미날~덕적도~울도' 2시간 반.
백아도 가는 배는
짝수날과, 홀수날에
항로의 방향이 다르다.
짝수날 : 덕적도 - 문갑도- 지도- 울도- 백아도- 굴업도 - 문갑도 - 덕적도.
홀수날 : 덕적도 - 문갑도 - 굴업도 - 백아도- 울도 - 지도 - 문갑도 - 덕적도.
동경 126°, 북위 37°03′에 위치,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71㎞ 지점.
북쪽에 위치한 덕적도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덕적군도
남쪽 끝 섬으로 면적은 2.11㎢이다.
해안선 길이는 12.7㎞.,울도(鬱島).
조선시대 문헌.,숲이 우거져 있는 섬.
울도(鬱島)는 해안선 따라 울창한 송림.
근해에서는 꽃게·낙지·문어 등이 어획되고,
김과 톳 양식이 활발, 덕적도에서 도선 운항.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남양부에 속하다가
1486년(성종 17)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에 이속.
1910년 덕적면에 울도리와 굴업리(掘業里)가 신설되고,
1914년 인천부에서 부천군으로 소속이 바뀌면서 덕적면.
1973년 7월 1일 옹진군, 1995년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통합.
우럭· 꽃게가 많이 나서 황해 어로의 전초기지 역할.
인천 연안부두에서 새마을호가 문갑도· 굴업도(掘業島).
·백아도(白牙島)·지도(池島)를 거쳐 울도까지 격일로 운항.
해안선 따라 기암괴석과 해송숲,
가는 곳마다 바다낚시가 가능하다.
덕적도에서 다소 동떨어진 것이 단점.
장차, '해상고속도로 & 연육교'가 열리면
덕적군도는 수도권 도시민에게.,파라다이스.
.............................
울도., 여행기 /달뫼.
.............................
덕적팔경(德積八景) 중 하나.,‘울도어화’(蔚島漁火).
밤배질을 하는 수많은 새우잡이 배들이 켜놓은 불빛.
대동지지(1861), 대동여지도(1891)에서는.,울도(鬱島)
1910년 일제강점기 초에는 ‘蔚島’로 바뀌었다.
울도의 옛 영화는 이제 전설이 되다시피 했다.
쓸모 잃은 통발과 그물이 어지럽게 널려있을 뿐.
처치 곤란인 그물과 통발을 여기저기에서 태우다보니
선착장에서 마을로 이르는 부둣길 바위들은 그을린 상태.
선착장 인근 바닷물은 버린 기름통에서 기름띠가 둥둥 뜬다.
덕적군도 해역 항로 상에서
울도는 '파도막이 수문장'의 위치.
파도에 밀려온 기름통에서 오염된듯.,
'서해에서 불법 어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의 소행이 아닐까?'
40년전 만해도 1년 내내 새우를 걷어 올리던 큰 어장.
음력 1∼5월 가늘고 작은 새우의 봄젓, 6월에 잡는 육젓,
말복 지나 8∼9월에 잡는 추젓, 이후 10∼12월까지 동백하.
7∼8일간 한번 조업에 50∼70드럼 새우를 건져 올렸단다.
울도에 ‘새우파시’가 있을 정도였으니 짐작하고도 남을 일.
새우는 염도높은 바닷물보다 염도가 낮은 바다를 좋아한다.
그래서, 비가 자주 오는 해는 새우 풍년.
울도 주변의 바다 염도를 잰 결과 31.5 도.
해수의 염분 함량은 33∼36도가 보통이다.
이렇게 잡아 담근 새우젓은
가까이는 충남 홍성 서산 당진 예산
멀리는 평택과 아산까지 팔려 나갔다.
현재는 갯벌에서 간간이 채취하는 고둥 홍합 굴.
바다낚시배 외엔 어족자원 고갈로 소득원이 없다.
한때 2척 꽃게잡이배로 5가구나 고용했던 옛 시절.
어선들 대형화로 주민의 꽃게잡이배는 단 1척에 불과.
옛날에는 꽃게잡이 황금어장, 지금은 우럭이 많이 잡힌다.
우럭과 놀래미 등 바다낚시 감이 많아서
낚시 애호가들이 주민 생계에 보탬이 된다.
약 50년전 울도 주변에서는 새우가 많이 나서
“덕적 돈은 다 울섬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었다.
지금은 덕적군도 다른 섬처럼 꽃게를 주로 잡는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민어․조기․새우잡이가 한창.
호황일 때는 '파시'가 열렸다.
외지인들이 수백 명씩 들어와서
객주점이 즐비할 만큼 흥청거렸다.
이후 꽃게잡이가 번성할 때는
주민들도 20여 척의 꽃게잡이배를
부리며 남부럽지 않게 돈도 만졌다.
근해 조업 꽃게잡이배들도 울도로 몰려들어
아낙들도 어구 손질만으로 한해 천만원씩 소득.
10년전 폐교된 ‘덕적초등학교 울도분교’에는
약 40여명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메웠고,
마을 선주들이 고용한 외지 어민가족들로 북적.
'마을 뒷산' 당산(231m) 정상에 등대가 있다.
당산은 울도에서 최고봉이자 섬 중앙부에 위치.
'울도 동쪽 끝 북망산(180m)은 작은마을 뒤에 위치.
당산(堂山)은 마을이나 토지의 수호신이
있다고 여겨지는 마을 근처의 산이나 언덕.
당산은 울도가 풍랑이 심한 섬임을 대변한다.
아울러, 당산은 옛날부터 울도가
서해 어업 전진기지였음을 의미한다.
'북망산은 남북 분단 이후,
이 섬에 정착했던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던 산이었을까?'
'아니면,
북망산천
뜻말 지명일까?'
'등대는 울도 해역에 많은 섬들과
항로 상 암초가 많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난파선 조난사고 다발 해역.
울도 주변 해역에는 "무인도 암초들이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다."고 하여.,울도.
'울도 해역에는 얼마나 많은 난파선들이
바다물 밑 갯벌 깊숙히 파묻혀 있는걸까?'
북망산 앞바다 일자형 방파제가.,동방파제.
본도와 바지섬 사이에 ‘목바점’이란 작은 섬.
'목바점' 작은 섬에 꽃게잡이 어선 2척이 있다.
꽃게잡이 일을 하던 어부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지만 배를 띄울 정도는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탄 후, 내가 대형 어선에 올라선다.
그리고는, 등대호로 건너간다.
시간은 이미 오전 7시가 조금 넘었다.
등대호가 울도항을 출발한 시간은 7시 5분.
배는 일자형 방파제 앞으로 가더니 방향을 돌린다.
방파제 주변의 어폐류 양식장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
배 위에서 뒤로 돌아보니 산 정상에는 하얀 등대가 우뚝.
울도 섬의 일자형 방파제와
당산의 하얀 등대와 묘한 대비.
울도 당산(231m) 정상에 위치한 등대.
'서해 항로 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건설된
일제강점기 무인등대 아닐까?'
'1894년 7월 25일~1895년 4월' 청일전쟁은
울도 서남단에 침몰한 고승호로부터 시작된.,국제전.
당시, 고승호는 은덩이, 은화가 가득 실려 있었다는 풍설.
일제 강점기부터 보물선 인양 프로젝트가 시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채 역사 속에 묻힌.,풍설.
인천앞바다 덕적군도에 속한 울도 서남단 해역.
1894년 여름 이곳 바다에 침몰한 보물선 고승호.
은덩이와 은화가 가득 실려있다는 소문의 진원지.
그당시부터 오늘날까지
고승호 보물선 인양을 시도.
결국, 그 실체가 드러난.,영국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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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은 청일 간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1894년 7월 25일~1895년 4월' 벌어진 국제전쟁.
이 전쟁은 산둥반도 전략적 요충지까지 격전이 전개.
일본에서는 일청전쟁(日清戦争),
중국에서는 중일갑오전쟁(中日甲午战争),
서양에서는 제1차 중일전쟁(First Sino-Japanese War)
1894년 3월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
상해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되었고 일본은
김옥균의 유해를 일본으로 가져가려 했다.
그러나, 청나라는 그 시신을 조선으로 보냈고,
조선에서 그 시신을 받아 양화진에서 능지처참.
일본 정부는 이를 직접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1894년 6월 동학농민이 전주성을 함락하자
조선정부는 청나라 정부에 지원병을 요청했다.
청나라는 천진조약에 따라 파병사실을 일본에 알렸고,
원세개 특명전권대사 휘하 2,800 병력을 조선에 보냈다.
일본은 오시마 요시마사 휘하 8,000원정군을 조선에 파병.
이들은 조선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1894년 6월 9일 이후 인천에 상륙해,
7월 23일 고종이 있는 경복궁을 공격·점령.
흥선대원군을 내세워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조선 내각을 김홍집, 박정양, 민영달 친일파로 교체.
갑오경장을 실시하며 더 많은 병력을 조선에 파견했다.
일본과 국교가 단절된 청나라는
조선의 새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양국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
청일전쟁은 아산만 부근의 풍도에서
일본 해군이 청 함대에 기습공격하며 시작
그러나, 실제 전쟁이 일어난 곳은 덕적군도 인근.
1894년 7월 25일, 아산 근해를 순찰하던
일본의 순양함 요시노(吉野), 나니와(浪速),
아키츠시마(秋津洲)로 구성된 일본 제1유격대가
청 순양함 제원(済遠)호, 군함 광을(広乙)호와 접전.
이들은 아산으로 물자를 나르는
또 다른 청 군함 조강(操江)호와
만나기 위해 아산을 떠나 있었다.
일본 유격함대의 기급공격이 시작되어
1시간 전투 끝에, 광을호는 화약고가 폭발.
광을호는 암초에 좌초되고 제원호는 탈출했다.
당시 덕적군도 해역 해전 현장에는
런던의 인도차이나증기선박회사 소유
2,134톤급 영국 상선 고승호가 있었는데,
청이 군대를 조선으로 수송하기 위해 대여.
고승호에는 골즈워디 선장과
64명 승무원이 운항하고 있었다.
1,200명 청군과 보급품과 장비가 적재.
청 조강호와 함께 조선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고 헤이하치로'가 지휘한 순양함 나니와호.
이 두 배를 가로막고 군함 조강호를 포획한 후
고승호도 나니와호를 따를 것과 승선한 유럽인들은
일본 순양함인 나니와호로 옮겨탈 것을 요구했던 것.
고승호에 승선한 1,200명 청군은
청나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원하며,
영국 선장과 선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4시간 협상 끝 도고 사령관은
고승호에 사격할 것을 명했다.
이에 덕적군도 해역 울도 앞 바다에서
고승호의 유럽인들은 바다에 뛰어들었고,
청군은 이들을 사격, 일본군은 승무원들을 구조.
그러나, 고승호는 끝내 울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고승호 침몰은 일본 영국 간 외교분쟁을 야기.
결국, 폭동에 대한 국제법으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대원군이 이끄는 조선에 세운 친일 내각으로부터
청군을 몰아낼 권한을 부여받은 오시마 요시마사는
약 4천 일본 여단을 이끌고 한양에서 아산만까지 이동.
일군은 아산, 천안시 성환에 주둔한 3천5백 청군과 대치.
1894년 7월 28일, 아산 외곽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전투.
일군과 접전한 청군은 점차 병력을 잃어 평양으로 후퇴했다.
청군 사상자는 500명,
일군 측은 82명에 불과.
1894년 8월 1일 일본은 공식적으로 청나라에 전쟁을 선포
고승호 침몰에 이어 청일전쟁이 한반도에서 발발한 것이다.
'고승호, 끝나는 않은 항해.,기획특별전은
울도 바다 밑에서 건져올린 고승호 유물들과
덕적도 해역 접전 당시 잔해들을 먼저 보여준다.
보물선으로 알았던 고승호에는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유물과
동전, 녹슨 총, 탄약 등을 전시한 기획특별전.
이 배가 보물선 또는 여객선이 아니라
사실은 무기를 실은 군함이었음을 대변.
청나라 수송선으로 계약
조선으로 향하던 고승호에는
청군과 서양인들이 타고 있었다.
고승호 침몰을 승전역사로 알리려는 일본의 선전물들.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청나라 <점석재화보>의 삽화 등
청일전쟁 당시 출판물, 선전물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청일전쟁 와중에 침몰한 ‘수송선’ 고승호를 통해
청일전쟁 역사는 곧 조선에서 청나라의 패권상실과
일본이 조선에서 패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19세기 제국주의 패권국가였던 영국에서
고승호가 만들어진 과정과 배의 제원 등을 통해
영국이 아시아에 진출하는 역사적 맥락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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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7월 25일 울도 앞바다에 침몰한.,고승호.
그 사건 당시 한반도는 조선시대 청일전쟁이 한창.
일본군은 펑양대전투에서 승리후 1894년 9월 16일 아침
평양에 입성한 후 조선에 대한 내정을 노골적으로 간섭했고,
한반도 물자와 노동력이 조선왕조에 의해 일본군에 제공되었다.
1894년 9월 17일 청나라 북양 함대가
일본의 함대와 압록강 하구에서 맞싸웠으나
청나라측은 일본보다 화력이 우위에 있었음에도
경험 기동력 열세로 10대 군함 중 5척 침몰, 3척 파손.
청군은 850명 사망하고 500명이 부상
황해해전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것이다.
평양의 일본군은 병력을 보충한 후
10월 10일 빠른 속도로 만주로 진격.
가쓰라 다로 3사단은 서쪽으로 도주하는
청군을 쫓아 요동반도 도시들을 점령했다.
일본 육군 2사단은 요동반도 남쪽 해안에 상륙
도시들을 점령했고, 여순항은 일본군에 포위된다.
1894년 11월 21일, 일본군은 마침내 여순항을 점령.
일본군은 여순에서 수천~2만' 시민 대학살.,'여순대학살.'
1894년 12월 10일까지 요동 건양이 일본군 1사단에 점령.
1895년 3월 점차 패색이 짙어진 청나라는 일본에 강화 요청.
1895년 4월 17일 청일 시모노세키조약 체결.
청나라는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
역설적으로는 조선에 일본의 국제적 위치를 확립.
청은 배상금 2억 냥(兩)을 일본에 지불.
요동반도, 대만, 팽호열도(彭湖列島).,할양.
통상 특권을 부여함으로서 무력함이 드러나.
세계열강에 의한 청나라 분할경쟁이 더욱 노골화.
일본은 조선침략에 더욱 박차를 가했으나
곧, 새로운 강적 러시아와 마주하게 되었다.
러시아 주도로 일어난 삼국간섭으로 인하여
일본은 청나라에 요동반도를 반환되게 되었고
이어, '러·일 각축전'이 한반도에서 본격화되었다.
일본은 제물포에 수주일 간 85,000 군대를 주둔.
그 지역 남쪽의 절반에 해당하는 군사주둔지를 점유.
9월 15일 중국으로 하여금 한반도를 침략하도록 유도.
일본은 한양 북쪽 150마일 평양에 함대를 파견.
1894년 9월 29일자 영국 신문에 소개된 제물포.
풍도해전에서 일본의 기습 승리와
인천항을 통한 일본 육전대의 상륙은
조선에서 청의 군대를 제압하는데 관건.
“한국의 대동강을 쭉 들이마시게 되었다.”
고승호 침몰에 연이어
일본 육전대가 야음을 틈타
무단으로 제물포에 상륙했던
외국군대의 제1차 인천상륙작전.
오늘날, 우리나라는 울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고승호 침몰, 일본군 인천상륙작전도 망각한듯.
'청일전쟁 시발점'인 고승호의 침몰은
인천앞바다 울도 해역에서 발생한 사건.
인천시립박물관 전시장.,'보물선' 고승호.
첫댓글 예전에 덕적도는 몇번 가보았는데...
울도는 처음 들어보네요...
이렇게 자세하게 문헌까지 살펴서 글을 올리시니..
앉아서 많은 유익한 정보를 얻네요...
한편으로는 그곳 까지 찾아가는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어떻게 보면 극성스럽기까지도하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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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도서지역은 역사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 국운을 좌우.
앞으로도 깊은 관심을 갖이려고 합니다.
비박 야영 방법에
역점을 두고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