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디스코 황제 존 트라볼타는 이미 하공을 찌르던 손가락을 거둔지 오래다.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펄프픽션]에서는 뒤로 빗어 넘긴 기름 바른 올백머리를 하고 등장해서 우마 서먼과 함께 레스토랑 쇼 무대에서 양말 바람으로 트위스트를 출 때,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왕년의 디스코 황제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존 트라볼타가 여장을 했다고 깜짝 놀랄 필요는 없다.
[빅 마마 하우스]의 마틴 로렌스나 [너티 프로세서2]의 에디 머피,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로빈 윌리엄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투씨]의 더스틴 호프만이 깜찍한 모습으로 여장을 한 적이 있어서 더 이상 여장남자는 이야기 거리에 오르지도 못한다. 그러나 [더티 댄싱]에서 날렵한 몸과 섹시한 춤으로 여성들을 사로잡던 패트릭 스웨이지와 근육질의 우람한 몸매를 가진 웨슬리 스나입스가 [투 윙 푸]에서 여장을 했을 때의 충격만큼의 놀라움과 재미가 [헤어 스프레이]에는 있다.
[헤어 스프레이]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정치적 건강함을 가진 60년대 복고풍 이야기이다. 미국 볼티모어 시에 사는 10대 여학생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지역TV 방송국의 댄스 쇼인 [코니 콜린스 쇼]. 여고생 트레이시(니키 블론스키 분)는 매주 새로운 경쟁을 펼치며 최종 댄스 대회의 우승자 미스 헤어 스프레이를 뽑는 이 쇼의 애청자다. 그녀는 언젠가 쇼에 출연해서 자신의 기량을 뽐낼 계획을 갖고 있다. 트레이시는 키는 작고 몸매는 헤비급인 여학생. 그러나 춤과 노래를 사랑한다. 코니 콜린스 쇼의 공개 오디션에 응모한 트레이시는 드디어 댄스 팀의 새로운 멤버로 뽑힌다.
[헤어 스프레이]는 60년대적 복고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올드 팬은 물론, 월남전 반전 열풍이 거세게 휩쓸고 지나갔고 락 음악과 히피 문화가 번졌던 60년대에 대해 최근 다시 조명이 쏟아지는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헤어 스프레이]는 인종차별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나 너무나 선 굵은 주제를 갖고 있어서 흑백 인종차별에 대해 반대하는 트레이시 등 주인공들의 확고한 의지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셋팅된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댄스 팀 내에서 미스 헤어 스프레이 자리를 두고 방송국 국장의 딸인 엠버와 경쟁을 펼치는 트레이시의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흑백 문제는 영화를 끌고 가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트레이시의 단짝 여자 친구는 댄스팀 흑인 멤버와 연애를 하고, 아직까지 방송에서 흑인과 백인 함께 춤추는 모습이 방영되지 않았던 당시, 생방송 도중 흑인과 어울려 춤을 추는 백인들의 모습이 방송되면서 시민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소수의 기득권 계층만 이런 현실을 막으려고 할 뿐이다.
물론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주제의 전개가 너무나 간결 명료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한 서사장치는 흑백인종 문제를 단지 뮤지컬 형식의 새로운 이야기에 접목시켜 정치적 안전판을 획득하려고 했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단신의 뚱뚱한 니키 볼론스키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매력적이고, 그녀의 어머니 미세스 턴블레드 역의 존 트라볼타가 여장 남자로 등장해서 의외의 재미를 준다.
쉬지 않고 빠른 리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헤어 스프레이]는 주제는 단순하지만 그만큼 선명하고, 춤과 노래는 복고풍으로 짜여져 있지만 지금의 감각에 맞춰져 있다. 여장남자 존 트라볼타 이외에도 극을 끌고 가는 트레이시 역의 니키 볼론스키 아버지 역의 크리스토퍼 월켄이나 트레이시를 방해하는 악역의 방송국 국장 미셀 파이퍼 등 왕년의 대배우들이 자신들의 기존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제는 긴장감이 사라진 흑백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하나의 패션처럼 보이고, 정치적 건강함을 획득하려는 주제의식이 제스처로 느껴지는 흠은 있지만,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