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국이 경북 동해안을 장악한이 6년만인 파사 29년 신라는 정복왕 (..) 파사 이사금의 기치를 따라 제2차 확장에 나섭니다.
29년(108) 여름 5월에 홍수가 나서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10도(十道)에 사자를 보내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 군사를 파견하여 비지국(比只國), 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을 쳐서 병합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상이사금
다벌국은 달구벌, 달구화 등으로 불렸던 대구의 옛 지명에 착안해, 지금의 대구광역시로 비정됩니다. 비지국은 창녕의 옛 지명은 비자벌, 비자화 이었던 것에 착안해 역시 창녕, 초팔국은 현재의 합천군 초계면에 비정됩니다.
교통과 거리등을 감안할때 다벌, 비지, 압독국 순으로 정벌되었다는게 사리에 맞겠지요.
이 중 비지국과 초팔국은 가야지역의 주요 대국인 반로국과 안야국 사이에 끼어있어 신라와 가야의 충돌을 예고합니다.
18년(서기 97) 봄 정월에 군사를 일으켜 가야를 정벌하려고 하였으나, 그 나라 임금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위의 기사를 볼때 파사왕은 사실 북변보다는 가야의 남변에 관심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즉위하면서부터 군사력을 착실히 축적시켰고, 이를 분출시킨게 23년과 29년의 확장이 아닌가 하는거지요.
3년(서기 82) 봄 정월에 영(令)을 내려 말하였다.
“지금 창고는 텅 비었고 병기는 무디어져 있다. 만약 수재(水災)나 한재(旱災)가 있거나 변방에 변고가 있으면 무엇으로써 그것을 막겠는가? 마땅히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게 하고 병기를 벼리어서 뜻밖의 일에 대비하라!”
8년(서기 87) 가을 7월에 영(令)을 내려 말하였다.
"나는 덕이 없으면서도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백제와 이웃하여 있고 남쪽은 가야와 연접해 있다. [나의] 덕은 능히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이웃 나라를] 두렵게 하기에 부족하니 마땅히 성루(城壘)를 수리하여 침입에 대비하라!"
이 달에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의 두 성을 쌓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요로코롬 말이죠
..
4년(115) 봄 2월에 가야가 남쪽 변경을 노략질하였다. 가을 7월에 몸소 가야를 정벌하였는데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黃山河)를 건넜다. 가야인이 군사를 수풀 속에 숨겨두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왕이 깨닫지 못하고 똑바로 나아가니 복병이 일어나 몇 겹으로 에워쌌다. 왕이 군사를 지휘하여 분발하여 싸워 포위를 뚫고 퇴각하였다.
5년(116) 가을 8월에 장수를 보내 가야를 침입케 하고 왕은 정예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뒤따랐다. 가야는 성에 들어앉아 굳게 지키고만 있었는데, 마침 오랫동안 비가 내렸으므로 되돌아 왔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마이사금
지마 4년의 기사에 등장하는 '남쪽 변경'이 바로 파사 말년에 새로 정벌한 초팔, 비지 지방이 아닌가 하는거지요. 7월에 왕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황산하를 건넜다고 하는데 황산하는 낙동강의 옛 이름으로 추정됩니다. 신라가 낙동강을 건넜다면 거칠산->금관국 방면과 비지국, 초팔국 두 루트가 나올 수 있겠습니다. 저기서 말하는 가야가 금관국이라면 파사23년에 사로국이 음즙벌국을 합병한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고 비지->초팔 루트라면 파사29년에 사로국이 낙동강을 건너갔던 사건과 연관이 있겠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초팔국, 비지국이 가야의 주요 대국들인 반로국과 안야국 사이에 끼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 후자의 편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_-;
아참, 신라의 영역이 계속 확장된데에 반해 가야지역 소국들은 그냥 따로놀기 시전해서 혼자만 놀았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금관국, 안야국, 반로국같이 강력한 국가들은 주변 소국들을 복속시키거나 외교적으로 회유시켜 보다 규모는 작지만 일정 수준의 연맹체를 형성했던것으로 보이니까요.
- 참고문헌
신재호, 사로국 수취체계의 성립과 전개
이춘식,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형성과 조공외교:춘추시대를 중심으로
이인철, 사로국의 진한소국 정복과 국가적 성장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네이트 한국학, 삼국사기,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원본 : http://cafe.naver.com/historygall/7971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중앙집권체제가 아닌 지방분권적체제로 나아갔다면 아직까지 저 가문들의 후신들이 일본처럼 고유특색을 유지하고 있었겠죠. 근대까지
이지도를보고 오해할만한게 음즙벌국은 현재의 안강지역으로 비정되는데 안강은 현재 경주시에 속하죠. 다만 현재의 포항시와 겨주시내의 중심쪽에위치하기때문에 약간 서쪽으로 이동시켜야할듯하네요.
그리고 지마4년 기사와는 별개로 비지국의 지를 화/벌/불/부리와 상통한다고 보고 음즙벌국에 인접한국가로 판단, 초팔과 비지 다벌국을 사로국의 동쪽에 위치한다는'학설'도 존재한다고합니다.
(어차피 정확한위치는 아무도 모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