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5월31일) 오후 1시 였죠, 제천에서 원주행 시외 뻐스를 타고서, 한겨레 손석춘 논설 위원님, 지금어디 있느냐고 휴대폰으로 물었더니, 광주? 그곳에 있다는 겁니다. 그럼 저녁에 만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원주에 도착하자 나는 곧 문막읍 어느 산골짝에 살고 있는 화가(51세) 김봉준 집으로 택시(2만원)를 타고 찾아갔죠. 김화백은 80년대 홍익대를 졸업하고, 문화운동을 하며 농민운동에도 관여 '농민문화'라는 강연도하며 열심히 산 분이죠. 그가 신혼부부 일적에도 혹 서울(기독교 농민회 관계로) 가면 찾아가자고 올 정도로 서로 믿음이 가는 사이 였죠. 서로 살기가 바쁘고 또 15년 전 한겨레 창간과 더불어 내 삶은 '한겨레의 노예'처럼 갗혀 살면서 서로 연락관계가 소원해졌지. 그러나 마음은 변치 않고, 1년에 한 두번 전화로만 안부를 묻고하다가...오래 전에 편도 암이 걸여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연세대 병원에서 수술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듣고 큰 실망을 하기도 한 김화백을 만나니, 우리가 20여도 더 지났지만 처음 만났을 때 그 마음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은 실로 자랑스러워 이렇게 적어 전합니다 .김화백의 저서 <숲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2001 동아일보사)를 서점에서 읽어보았지. 직접 만나서 저자가 사인 해주는 것 또한 깊은 뜻이 담겼습니다..이제는 건강한 김화백, 이 분의 외동딸 '영초'가 두살적에 김화백이 데리고 충청도의 우리 집을 다녀 간 후 자란 이 소녀는 중 3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진학을 하지 않고 검정고시를 통과하여, 이제 대학 갈 꿈만 있다는 것. 역시 예술 방면으로 선택한다기에 아버지가 다닌 홍익대를 가는 가고 물었더니,'녹색대학'을 간다고 했다. 나로서는 난생 처음 듣는 대학이라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지리산에 있고 아직 인가가 안 난 대학을 알고 있는 이 소녀가 내년이면 대학생이라니 인생 길을 얼만큼 앞질러 가는 것인가? 여기에서 희망을 보았죠. 밝고 명랑한 성격을 지닌 이 소녀가 21세기의 주역이 될게 분명해 보였다. 김화백의 흙집에 하룻밤 묵어 갈수 없어 아쉬움이 더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또 다른 나의 목적지 노사모 4차 총회 장소로 찾아 간 것은 저녁시간, 마침내 한겨레 손석춘 논설위원님이 소개를 받고 단상으로 올라섰습니다. 강의 제목은 ㅡ 밖에서 바라본 노사모의 모습과 앞으로 노사모가 나가야 할 방향. 이 행사 준비과정에 노사모 자유게시판에서는 "노대통령에 보내는 긴급 편지"를 읽은 회원들이 비난하며 강사로 오지 말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죠. 그들의 식견이 좁아 제대로 판단을 못한 일방적인 주장인 거지, 손 논설위원님이 쓰신 따끔한 충고는 노대통령에게는 '보약'이며 힘이 되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처음 강의가 시작되면서 장내 분위기가 다소 긴장된 느낌으로 산만했다(뒷자리에서는 시끄럽기도 )수업태도가 좋지 않은 고등학생들처럼,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싶어 어느 대목에서 의도적으로 뒷편 가까운 중앙의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박수를 최대한 힘을 내어 쳤더니 이어서 한 두 사람이 따라서 쳤고 계속 박수가 합창으로 터저나왔다 . 이 박수가 분위기를 살려내는 느낌도 들었죠. 강의 내용 중에 노대통령이 부시와 만나 '오버'한 것도 지적했다. 손 논설위웡님은 누구보다도 "나도 노무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민중을 사랑합니다. 노사모도 사랑합니다. 민족을 사랑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내가 보기에 강의 마무리는 이어지는 박수 속에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분 강의 끝나고 질문을 받았지만 문제가 특별히 잇는 것도 아니었고, 누구도 트집잡는 이는 없었습니다. 있을 수도 없었죠. 끝나고 강단에서 내려와 나오려는 데 펜들이 사인을 해 달라고 가로막았죠. 내가 다가가 불쑥 손을 내밀며 "여기 손바닥에도 사인 좀 해달라"고 하면서 눈이 마주쳤죠. 이렇게 반가이 악수를 하고...분명히 저녁 식사를 못했을 것 같아 물어 보니, 점심도 못했다는 겁니다. 오전 일찍 연세대의 한총련 집회 갔다가 다시 광주 조선대로, 그리고 강원도 원주까지 맹훈련이나 다름없다. 이러다가 쓰러지는 것 아닌가. 여기서 나는 소설 아름다운 집의 주인공 리진선이 떠올랐습니다. 광주에서 함께 모시고 온 노사모 한 가족님이 돋보였습니다.
늦은 시간 식탁에서 소주 한 병을 셋이 나눠 건배를 드니 안도가 되었다. 밤새워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지친 몸도 다스려야 합니다. 내 몸을 내가 아껴주지 않고 그 누가 살펴 주겠습니까. 다음날 아침은 맛있게 먹었고, 가까이 있는 연못가를 단 둘이 거닐며 '깊은 내 뜻(?)'을 전하기도 했죠. 이 아까운 시간에 내가 애송하는 "상한 영혼을 위하여"을 좋지 않은 목소리로 낭송해 드리며 나도 위안을 가졌던 것입니다. 월요일은 또 출근하여 어떤 '보약을 끓이는' 작업을 해야겠죠. 아쉬움 속에 원주에서 손인사로 ㅡ 끝ㅡ 이상 간략하게 원주 다녀온 후 간략하게 소식을 전하면서, 마침 오늘 오마이뉴스와 명계남 전 노사모회장과의 인터뷰를 잘 읽었습니다.그런데 내용중에 <한겨레>의 손석춘 논설 위원을 비판한 것들을 보노라니 피상적이고 너절한 비난으로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심지어 명 전회장이 "흥분하면 무슨 말을 못합니까? 저도 자동차 타고가다 차량사고 나면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오는 데..,"라고 한 비유는 적절한 표현이 아닙니다. 한 언론사의 평기자도 아닌 논설위원이 흥분해서 "긴급편지"를 쓴 것은 아니라는걸 아셨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기급 편지"를 곰곰히 읽어 보노라면 '보약'이 될지언정 노대통령에게 해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잡스럽게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노사모 4차 총회를 마친 다음날 아침 식사 후,나와 단 둘이서 한적한 주변 연못가를 산책하면서...손석춘논설 위원님이 독백하듯 "어제 같은 자리에 노대통령이 참석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씀하시며, 왜 오지 안았을까라고 자문자답을 나는 들었습니다. 조.중.동 눈들 때문은 아니었을까.이것은 내 생각이었다.만사를 제쳐 놓고라도 와야할 자리가 아닌가.이제 대통령 되었으니까,이 핑게 저핑게(?)로 피하며 임기만 채우면되다는 사고방식으로 대통령 주변에서 감싸고 도는 것은 아닌가.수많은 노사모들 앞에서 분명히 "노무현을 사랑합니다.노사모도 사랑합니다....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강조한 손석춘 논설위원의 속마음을 읽지 못하고 일방적인 비난 같은 말은 삼가해야 합니다.이만 두서없이 피력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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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역시 손석춘위원님의......
작성자 채송화 작성일 2003-06-02 오후 11: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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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드렸던 산골입니다.
저역시 명짱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걱정스럽게 생각했던 차였습니다.
무엇보다 노무현정부와 노사모들에게
건강한 조언을 해주셨다고 생각했거든요.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사랑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손석춘 논설위원님의 진실을
왜곡하거니 오해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들거든요,
다행스럽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정리를 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