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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속으로] 08
S#1. 비상계단 (밤)
7부의 연결.
인하, 연희의 입술에서 천천히
입술을 떼고 연희의 눈을 들여다본다.
연희, 인하의 입술을 받아들인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놀라
인하의 눈을 피하며 일어선다.
S#2. 엘리베이터 안 (밤)
인하와 연희, 엘리베이터
양 쪽 끝에 떨어져 서있다.
연희, 서류봉투만 만지작거리며
엘리베이터 앞 쪽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고
인하, 그런 연희를 본다.
연희, 문득 생각난 듯 1층 단추를 누르면
인하, 지하주차장 층의 단추를 누른다.
두 사람, 말없이 바닥과 앞만 보고 서 있다.
연희, 내리려고 문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데
인하, 갑자기 연희의 손을 잡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서고 문이 열린다.
인하, 연희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연희, 인하의 손을 차마 뿌리치지도 못하고
인하를 돌아보지도 못하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힌다.
두 사람, 그 자세 그대로 굳은 듯 서 있는데
인하 오늘 나랑 같이 있자.
연희 ...
잠시 후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인하, 연희의 손을 잡고 내리는데
연희, 손을 빼고 따라 내리지 않는다.
인하, 엘리베이터 밖에서 연희를 돌아본다.
연희, 인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S#3. 연희네 집 (밤)
연희,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안 온다.
연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못 이룬다.
S#4. 인하 방 (밤)
인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S#5. 골프 연습장
이른 아침. 경환,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고
인하, 경환의 뒤에서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역시 골프채를 휘두른다.
S#6. 경환의 차 안
인하, 운전하고 있고 경환, 뒤에 앉아 있다.
경환은 기분 좋은 얼굴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인하는
얘기를 할까말까 망설이고 있다.
경환 아침에 땀흘리면 하루가 상쾌해. 안 그러냐?
인하 ... 예. ...
경환 네가 운전하는 차는 처음 타 보는 것 같다.
인하 ...
경환 우리 앞으로 계속 이렇게 출근할까?
인하 ...
경환 니가 요새 맘 잡고 일하고 있어서 내가 아주 든든해.
인하 ...
경환 결혼도 시간 끌지 말고 얼른 해치워 버려. 남자가 가정이
안정돼야 나가서 큰 일도 하는 거야.
인하 ... 어제 어머니 만났어요.
경환 ... 뭐?
인하 동생이 있다던데 무슨 얘기예요?
경환 무슨 헛소리야?
인하 제 친동생이라 그러시던데요?
경환 하!
인하 ... 이름이 명하래요.
경환 ... (기가 막혀 한다) 그 동안 왜 잠잠한가 했더니 그런
꿍꿍이가 있었구만.동생? ... 널 만나서 그런 얘길 해? 하!
인하 ...
경환 너 팽개치고 집 나간 뒤에 애 낳았다는 얘기는 들었다.
너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봤지? 누구 씬지 알게 뭐냐?
카폰이 울린다.
경환 여보세요 ... 어이구, 박회장. 아침부터 웬일이야. ... 그래?
하하하. ... 나, 지금 아들놈하고 운동 갔다가 출근하는
길이야. ... 그럼, 물론이지. 하하하...
인하, 아버지에게 얘기를 꺼낸 것을 후회하며 착잡한 심정으로 운전을 한다.
S#7. 회사 앞
경환의 차가 도착하고 인하와
경환이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는데
마침 출근하던 연희가 현관으로 들어서다가
경환의 뒤를 따라 가는 인하와 눈이 마주친다.
인하, 연희를 표정없이
잠깐 보다가 안으로 들어간다.
S#8. 탕비실
연희, 커피포트에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서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톡톡 친다.
재숙 안녕?
연희 어, 안녕.
재숙 너도 놀랐겠다? 나만큼이나.
연희 뭐가?
재숙 내가 여기서 일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상상 못했지?
연희 ...
재숙 그래도 부서가 달라서 다행이야. 안 그래?
연희 ...
재숙 난 확실히 순진한 거 같애.
난 니가 수빈이네 회사에 들어갈 줄 알았다?
연희 ...
재숙 근데 우리 오빨 이용해서 들어오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어.
연희 ...
재숙 우리 오빠 순진하지? 쉽게 넘어오지? 넌 정말 대단한 애야.
어쨌든 매일 얼굴 맞대고 살아야되는데 잘 지내보자.
연희, 괴롭다.
S#9. 유니온 사무실
오과장과 소대리, 잡담을 늘어놓고 있다.
오과장 아, 이제 나도 다 됐나 봐. 어제 별로 마신 거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 죽겠지?
소대리 어제 많이 드셨어요. 막판에.
오과장 그래? 어제 절제한다고 했는데?
소대리 기억 안나세요? 어제 구호 외치던 거?
오과장 내가? 구호를 외쳤어?
소대리 낙하산이 웬말이냐, 가족경영 철폐하자!
오과장 (깜짝 놀란다) 쉿!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정말 그랬단 말이야?
소대리 강이사가 안왔으니까 망정이지.
오과장 그럼, 회장 딸은?
소대리 걔가 딱 택시 타고 사라지는 순간 그러시더라구요.
오과장 그래? 내가 뭐 못할 말 했어? 취중에라도 하고 싶은 소린,
하고 살아야지. 그게 정신건강에도 좋은 거야. 근데 걔 정말
음대 맞아?
재숙 안녕하세요?
오과장과 소대리, 벌떡 일어난다.
오과장 앗! 나오셨습니까?
소대리 괜찮으세요?
재숙 뭐가요?
오과장 술이 쎄신가 봐요.
소대리 노래도 잘 하시고.
오과장 정말 대단하십니다.
재숙 고맙습니다.
재숙, 나간다.
오, 소, 재숙이 나가자 괴로워한다.
오과장 나이 어린 애한테 뭐하는 짓이야? 아, 정말 이러고 살아야 되나?
이때 연희, 커피를
한 잔만 들고 와 자리에 앉는다.
오과장 이연희씨. 지금 뭐하는 거야?
연희 예?
소대리 우린 입도 아니야?
연희 타 드릴까요?
오과장 됐어! 됐어! 됐어! 야, 소대리. 니가 타 와.
소대리, 연희를 슥 째려보고 나가는데
연희 자리의 전화벨이 울린다.
연희 네. 이연흽니다.
인하 (소리) 나야. 인하.
연희 (당황한다) ...
인하 잘 잤냐?
연희 ... 네.
인하 난 한 잠도 못 잤는데.
연희 ...
인하 이따 점심 같이 먹을까?
연희, 얼굴 굳는다.
S#10. 명하네 집
명하, 생활정보지를 잔뜩
쌓아 놓고 들여다보고 있는데
은옥이 쇼핑백을 잔뜩 들고 들어온다.
은옥 어, 집에 있었구나. 아이구, 다리야.
명하 아침부터 어디 갔다 와?
은옥, 앉으며 쇼핑백 안에서
명하의 옷과 신발 등등을 꺼낸다.
은옥 명하야, 이리 와봐. 이리 와서 이거 좀 입어봐.
명하 뭐야?
은옥 너, 맨날 잠바떼기나 걸치고 다니는 거 꼴 보기 싫어서
내가 오늘 백화점 가서 니 옷 좀 샀다.
명하 왜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은옥 사람이 입성이 좋아야 되는 거야. 빨리 입어봐.
은옥, 명하의 몸에 이 옷 저 옷을 대본다.
은옥 아유, 우리 아들 인물이 좋으니까 뭘 갖다 대도 훤하네.
신발도 맞나 신어보고. 너, 이백칠십미리면 맞지?
명하, 웃지만 평소답지
않은 은옥의 모습이 이상하다.
은옥 빨리 입어보라니까. 이거 비싼 거다, 너?
명하, 은옥의 채근에 겉옷도 걸쳐 보고 신발도 신어본다.
은옥 이야, 너 그러니까 이 동네 사는 애 같지 않다.
명하 (픽 웃는다)
은옥, 쑥스럽게 웃으며
거울 앞에 선 명하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이 핑 돈다.
은옥 너, 아무 때나 시간 있으면 가게에 좀 들러라.
명하 거긴 왜?
은옥 그냥 엄마하고 술 한 잔 하게.
명하 거기서 무슨 술을 마셔?
은옥 가끔 엄마하고 데이트 좀 하자고. 그거 입고 이따 나올래?
명하 하, 차, 내가 무슨 제빈가?
은옥 으유, 으유, 멋대가리 없기는.
은옥, 쇼핑백들을 치우며
방으로 들어가고
명하, 평상시와 다르게 행동하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S#11. 커피숍
수빈, 창 밖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정회장이 들어와 수빈의 앞에 앉는다.
정회장 오래 기다렸냐?
수빈 오셨어요?
정회장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수빈 바쁘신데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정회장 아니야.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너한테 너무 신경을 못써서
미안하다. 그래, 밥은 먹었냐?
수빈 네.
정회장 무슨 일인데?
수빈 제 결혼 때문에요...
정회장 왜?
수빈 저 지금 결혼하고 싶은 맘 조금도 없어요.
정회장 강회장네 아들이 싫으냐?
수빈 누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구요, 지금은 하기 싫다는 거예요.
정회장 그럼 조금 늦출까?
수빈 아뇨. 그냥 없었던 일로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아직 아무런 약속도 된 건 아니지만...
정회장 ... 한 번 상의해 보마.
수빈 아버지가 그냥 결정을 내려주시면 안돼요?
정회장 ... 이 일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냐.
네 어머니의 입장도 생각을 해야지. 집안 체면도 있고.
수빈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고 그러셨잖아요.
정회장 어쨌든 네 뜻은 알았으니까 내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마.
본인이 정 싫다는데야 어쩌겠냐?
수빈 ... 고맙습니다.
정회장 졸업이 언제지?
수빈 ...
정회장 니 졸업식에는 꼭 가마. 약속할게. 오늘은 내가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야겠다.
수빈 ... 그러세요. 안녕히 가세요.
정회장 그래.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수빈 ... 네...
정회장, 일어나 가버린다.
수빈,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를
물끄러미 보며 기가 찬 웃음을 웃다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S#12. 수빈이네 집
수빈, 집으로 들어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비디오를 틀고 소파에 앉아
명하가 사 준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며 씩 웃는데
송여사가 불쑥 들어온다.
수빈, 깜짝 놀란다.
송여사 왜 그렇게 놀래니?
수빈 ...안녕하세요.
송여사 준비해라. 예물 보러 나가자.
수빈 ...저, 지금 아버지 만나고 오는 길인데요?
송여사 얘기 들었다.
수빈 얘기 들었는데도 이러시는 거예요?
송여사 좀 늦추자 그러시는데 뭐하러 그래?
수빈 저, 결혼 안해요.
송여사 누구 맘대로?
수빈 그 사람이나 저나 이 결혼 원하지 않아요.
송여사 (비웃는다) 너희들이 원해서 시작한 일 아니야. 어서 나갈 준비나 해.
수빈 (잠시 송여사를 본다) ... 싫어요.
송여사 싫어?
수빈 네. 싫어요.
송여사 ... 좋아. 그럼, 내가 알아서 고르마. (나가려는데)
수빈 정말 왜 이러세요? 결혼하기 싫다구요! 이런 식으로는 싫단 말이에요!
송여사 (싸늘하게 보다가) ... 이런 식이 싫으면?
너도 니 에미처럼 임자있는 남자 하나 꼬셔서 아무렇게나 살래?
수빈 ... 뭐라구요?
송여사 너 같은 거 거둬서, 키워서, 제대로 된 집안에 시집까지 보내주겠다는데, 싫어?
수빈 (부들부들 떨린다) 내가 예뻐서 데려다 키웠어요?
(발악하듯) 소문날까봐, 당신들 체면 때문에, 억지로 데려다
놓고, 사육하듯이 가둬서 기른 거 아닌가요?
송여사 뭐야?
수빈 나한테 손톱만큼의 동정심이라도 있어요?
남들 앞에서는 언제나 우아한 척하고 교양 있는 척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잔인한 사람들이야.
수빈, 부들부들 떨며
송여사를 노려보다가 밖으로 나가버린다.
송여사, 나가는 수빈을 싸늘하게 본다.
S#13. 지하철 매표소 앞
수빈, 추위에 떨며 주머니를 뒤지는데
천원짜리 몇 장과 동전 몇 개가 나온다.
수빈, 막상 표를 끊으려니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노선안내도를 하염없이
올려다보다가 돌아서서 공중전화 부스로 간다.
S#14. 공중전화 부스
수빈, 전화를 한다.
수빈 이연희씨 부탁합니다.
소리 지금 자리에 안 계신데요.
수빈 예, 알겠습니다.
다시 전화를 한다.
S#15. 명하네 집
빈 집에 전화벨만 울린다.
S#16. 식당
인하와 연희, 마주 앉아 있다.
인하는 연희를 보며 웃고 있고
연희는 얼굴이 굳어 있다.
인하 우리 매일 이렇게 같이 점심 먹을까?
연희 ...
인하 니가 내 옆에 있어서 정말 좋다.
연희 (짧은 한숨) 어제는 무슨 일 있었어요?
인하 재숙이 때문에 신경 쓰이지? 나도 몰랐어.
연희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내가 너무 경솔했어요.
인하 ... 더 이상 자기 감정을 속이고 살지 말자.
피곤하지 않냐? 별 일도 아닌 거 갖고.
연희 (픽 웃는다) 별 일이 아니라구요?
인하 (정색을 하고) 나, 너 좋아해. 너도 나 좋아하지? 그럼 된 거 아냐?
연희 어떻게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어요?
인하 수빈이 때문에 그래? 둘이 친구라서? 수빈이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연희 ...
이때 밥이 나온다.
인하 먹자.
인하, 마구 먹기 시작하지만
연희, 수저를 들 생각도 않고
인하를 뚫어지게 본다.
인하 (연희의 시선을 의식하고 고개를 든다) 왜? 배 안고파?
연희, 잠시 보다가 벌떡 일어나 나간다.
인하, 나가는 연희를 보며
인상을 팍 쓰다가 다시 밥을 막 먹는다.
S#17. 연희네 집 앞 (저녁)
명하, 계단을 내려오는데
계단에 웬 여자가 외투도 없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다.
명하, 슥 보고 지나치다가 머리에
꽂힌 핀을 보고 수빈이 같아
가까이 가서 들여다본다.
명하 수빈이냐?
수빈, 기운 없이 고개를 들고
명하를 보자 씩 웃는다.
명하 여기서 뭐해?
수빈 그냥 앉아 있어요.
명하 언제 왔어?
수빈 좀 됐어요.
명하, 맨발에 운동화를 신고 외투도 없이 추위에 떠는 수빈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
명하 밥은 먹었냐? ... 들어가자.
명하, 수빈의 팔을 잡아 일으키는데
수빈, 몸이 굳은 데다가 다리도 펴지지 않고
현기증까지 나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명하, 놀라 얼른 부축한다.
S#18. 명하네 집
명하, 냄비에 라면을 끓여 들고 와
코딱지만한 상 위에 올려 놓는다.
상 위에는 플라스틱 통에 든 김치.
수빈의 앞에 대접 한 개,
젓가락 두 짝이 놓여 있다.
수빈 미안해요.
명하 계란 넣을까?
수빈 됐어요.
명하 (냄비뚜껑을 열며) 먹자.
수빈, 자기 앞에 있는
대접을 명하에게 내민다.
명하 난 뚜껑에 먹어야 라면 먹는 거 같애.
수빈 저두요.
명하 그래? 그럼 니가 뚜껑에 먹을래?
수빈 네.
명하 (잠깐 갈등하다가 뚜껑과 대접을 교환한다) 손님이니까 봐준다.
두 사람, 라면을 먹기 시작하는데
워낙 작은 상이라 자꾸 머리가 부딪힌다.
명하와 수빈, 갑자기 쑥스러워져서
고개를 돌리고 먹는다.
명하 (허겁지겁 먹는 수빈을 보다가) 너, 집 나왔지?
수빈 ... (입에 너무 많이 물고 있어서 대답을 못한다)
명하 나이가 몇인데 가출이냐? 이거 먹고 집에 들어가.
수빈 ...
명하 무슨 일인지 몰라도 부딪혀서 해결해. 도망 다니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아.
수빈 ... 부딪혀도 해결이 안되면요?
명하 (본다) 알아서 해. (다시 라면을 막 먹는다)
수빈 ...
명하 ...밥 말아 먹을래?
시간경과
명하네 현관.
수빈, 현관에 서 있고
명하, 배웅한다.
수빈 자꾸 폐만 끼치네요. 잘 먹었어요. 안녕히 계세요.
명하 어, 그래. 잘 가라.
수빈, 나가고
명하, 잠시 문을 보다가
안으로 들어가 잠바를 하나 들고
후다닥 밖으로 나간다.
S#19. 연희네 집 앞 (밤)
수빈, 계단을 내려와 어디로 가야할지
잠깐 망설이는데 명하가 급히 내려오다가
수빈을 보고 천천히 다가와 잠바를 내민다.
명하 이거 입고 가라. 추운데.
수빈 고마워요. (받아 입는다)
명하 (불꺼진 연희네 집을 한 번 보고) 집으로 갈 거지?
수빈 ...
명하 ... 가자. 데려다 줄게.
수빈 됐어요. 들어가요.
명하 불안해서 그래. (수빈의 팔을 잡는다) 가자.
수빈 (명하의 손을 뿌리치며) 괜찮아요. 안녕히 계세요.
명하 너 집에 가기 싫지?
수빈 ...
명하 나랑 어디 갈래?
S#20. 캬바레 앞 (밤)
인하, 캬바레 입구를 들여다보며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발길을 돌린다.
인하가 사라진 반대편에서 명하가
수빈과 함께 캬바레쪽으로 온다.
수빈, 입구를 보다가 멈칫 서는데
명하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
명하,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리고
수빈, 얼른 뒤쫓아 들어간다.
S#21. 캬바레 (밤)
춘배, 홀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부하가 급하게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춘배, 부하의 보고를 듣고
두리번거리며 명하를 찾는데
입구 쪽에서 명하가 나타나고
명하의 뒤를 따라 수빈이 두리번거리며 들어온다.
명하,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앉는다.
수빈, 자리에 앉아서도 웬지
어색한 분위기에 계속 주변을 둘러본다.
명하 이런 데 처음 오지?
수빈 (기가막혀 웃는다)
명하 다른 데 갈까?
수빈 아니에요.
웨이터, 술과 안주를 들고 와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명하에게 인사한다.
웨이터 안녕하세요, 형님. 안녕하세요, 형수님.
수빈 (깜짝 놀란다)
명하 뭐야, 이거?
웨이터 부장님이 보내셨습니다.맛있게 드십시오. 형님
웨이터 가버리면
수빈, 황당하지만 재밌다.
명하, 쪽팔리다.
수빈 여기 있는 분들하고 친한가 봐요.
명하 술이나 마셔라.
명하, 수빈에게 술을 따라준다.
수빈 (좋아서) 나보고 형수님이래요.
수빈, 웃는데 은옥이
다가와 명하 옆에 앉는다.
은옥 여긴 안온다며? 얜 누구니?
수빈 (당황한다)
명하 우리 엄마야, 인사드려.
수빈 (모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난다) 안녕하세요. 정수빈이라고 합니다.
은옥 오, 연희 친구? 그때 술 취해서 우리집에서 잔 애구나?
맞지? 앉아, 앉아.
수빈 (얼굴 빨개져서 앉는다)
은옥 이 술 니가 시켰어?
명하 아니, 춘배가.
은옥 (어디랄 것도 없이 돌아보며) 미친놈, 잘난 척 하고 지랄이야.
명하 (얼굴 빨개진다)
은옥 (수빈과 명하를 번갈아 보며 흐뭇하게) 엄마하고 데이트 좀
하자 그랬더니 애인을 데리고 와?
명하 애인 아니야.
은옥 나한테 선 보여 줄라고 데리고 온 거 아니야?
명하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은옥 (지나가던 웨이터를 부른다) 박군아...
웨이터 (온다)
은옥 여기 술 떨어지면 얼마든지 갖다 줘. 내 앞으로 달아 놓고. 알았지?
웨이터 예. (간다)
은옥 (일어서며) 맥주 배부르면 양주 시켜먹어. 엄마 기다리지 말고 맘껏 놀아.
명하 예.
은옥 (수빈에게) 많이 먹어.
수빈 (또 일어나며) 예.
은옥, 우아하게 사라지면
명하, 괜히 민망해서 술만 따라 마신다.
수빈 어머니가 굉장히 미인이세요.
명하 그래?
수빈 성격도 굉장히 좋으신가 봐요. 시원시원하시고.
명하 (민망하다) 마시자.
명하, 벌컥 벌컥 술을 마신다.
S#22. 캬바레 화장실
명하, 소변을 보고 있는데
춘배가 들어와 옆에 선다.
춘배 애인이냐?
명하 ...
춘배 내가 니 체면 세워주느라고 술 보냈으면 고맙단 인사 정돈 해야지.
명하 생색 내고 싶으면 도로 갖고 가.
춘배 (아니꼽다) 얼마 전에 니 형 왔다 갔다?
명하 뭐?
춘배 너, 형이 있는 건 아냐?
명하, 대꾸 없이 세면대로 간다.
춘배 집안이 짱짱하더라고. (명하 옆으로 온다)
너도 아버지 밑에서 컸으면 잘 나갔을 텐데.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으며) 엄마는 달라도 예쁜 여동생도 있고.
명하 자꾸 헛소리할래?
춘배 자식, 못 믿겠으면 엄마한테 물어봐, 임마.
춘배, 밖으로 나간다.
명하, 손을 씻다 말고 여러 생각이 스친다.
S#23. 홀 안
명하,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로 간다.
은옥,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고
수빈이 그런 은옥을 보고 있다.
명하, 말없이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며
엄마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S#24. 수빈이네 집 현관 앞 (밤)
명하와 수빈, 나란히 걸어온다.
수빈 잠깐 들어갔다 갈래요?
명하 싫어.
수빈 ... 나 혼자 들어가기 무서워서 그래요.
명하 뭐가 무섭다 그래?
수빈 (바보 같은 말을 했다 싶어 픽 웃는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수빈, 외투를 벗어 명하에게 돌려준다.
명하, 외투를 받아든다.
명하 잘 자라. (돌아서는데)
수빈 잠깐만요.
명하 (돌아본다)
수빈 연희한테 주려고 챙겨 놓은 게 있는데 좀 전해줄래요?
명하 그래.
수빈, 현관문을 열어 놓고 안으로 들어간다.
명하, 안을 슥 들여다보다가
수빈이 중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송여사가 매섭게
뺨을 후려갈기는 광경을 본다.
송여사 내가 너무 기가 막혀서 하루 종일 기다렸어.
수빈, 고개가 돌아간 채 뒤에
서 있을 명하를 의식하는데
송여사, 그제서야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명하와 눈이 마주친다.
송여사, 수빈을 벌레 보듯이 보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수빈, 잠시 그 자세 그대로 서 있다가
명하 쪽으로 다가온다.
수빈 (애써 웃으며) 다음에 내가 직접 전해줄께요. 안녕히 가세요.
수빈, 문을 닫는다
명하, 닫힌 문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다.
S#25. 명하네 2층 난간
명하, 난간에 기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머리 속이 복잡하다.
연희네 집에서 물건 부서지는 소리와
이모와 이모부가 싸우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이모부 (울먹이며) 내가 아무리 할 일없이 빈둥거리고 놀고 먹는다
그래도 나도 인간이야. 나도 인격이 있고, 자존심도 있어.
백수라고 자존심도 없는 줄 알아?
이모 그렇게 자존심 세우고 싶으면 쓸 데없는 생각이나 하지 말고
나가서 돈 벌어와. 요즘 세상은 돈이 자존심이야, 알아?
이모부 누군 돈 벌기 싫어서 안벌어?
연희 그만하세요.
이모 나도 지긋지긋해. 내가 새끼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당신 같은 애비 밑에서 뭘 보고 컸겠어?
이모부 뭐? 말이면 다하는 줄 알아? 에잇!
이모 그래, 죽여라. 죽여!
연희, 집에서 툭 튀어나와
괴로운 얼굴로 산 아래 동네를
내려다 본다.
S#26. 포장마차
명하와 연희,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말없이 술을 마시고 있다.
명하 수빈이한테 무슨 일 있냐?
연희 왜?
명하 아까 수빈이 왔다 갔다.
연희 ...그래?
명하 맨발에 얇은 옷 하나 입고 왔더라?
연희 ...
명하 사는 게 왜 다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 (술을 주욱 들이킨다)
수빈이가 너 많이 기다렸어. 아까 삐삐도 쳤는데 삐삐도
안되더라? 퇴근하면 일찍일찍 집으로 올 일이지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다 오는 거야?
연희 (술을 마신다) 그냥 좀 심란해서 여기 저기 다녔어.
명하 좋은 직장 다니면서 뭐가 그렇게 심란해?
연희 직장 문제가 아니라 인생 문제야.
명하 하쭈. 그럼 남자 문제야?
연희 (앗) ...
명하 (실실 웃으며) 너 남자 생겼냐?
연희 ...
명하 (연희의 머리를 강아지 머리 쓰다듬듯이 흩뜨리며)
어유, 어린앤 줄 알았더니 벌써 남자 문제로 고민을 하네?
그럼 난 어떡하냐?
연희 걱정하지마. 내가 책임질게.
명하 어으, 이걸.
두 사람, 씁쓸하게 웃으며
말없이 각자 술을 들이킨다.
S#27. 인하네 집 거실
왕여사, 전화하고 있고
재숙, 옆에서 엄마의 전화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왕여사 아주 가까운 친지 몇 분씩만 모시죠, 뭐.
... 그럼요, 괜히 요란하게 했다가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필요 있어요? ... 아니 꼭 눈치를 보자는 게 아니라 요즘
사회 분위기도 그러니까 조심하자 이거죠. ... 네. 그러게요,
자주 만나고 그래야 정도 붙고 그럴텐데... 우리 애가 워낙
바빠서...예,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네. 네.
왕여사, 전화 끊고
머리를 지긋이 누른다.
재숙 엄마, 엄마.
왕여사 왜?
재숙 알아냈어.
왕여사 뭘?
재숙 오빠 애인.
왕여사 그래? 누군데?
재숙 하, 차, 기가 막혀서.
왕여사 누군데 그래?
재숙 연희.
왕여사 그 술집 나간다는 애? 어머, 어머, 어떡하니?
재숙 회사에 박은 애가 걔야.
왕여사 어머, 어머,
재숙 게다가 더 웃기는 건 걔랑 수빈이가 둘도 없는 친구라는 거야.
왕여사 어머, 어머.
재숙 내 생각엔 오빠가 정상이 아닌 거 같애.
아버지 말 잘 듣는 것도 그렇고, 수빈이 데리고 내 졸업
연주회에 나타난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뭔가 있어.
재숙, 갑자기 벌떡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간다.
S#28. 인하방
인하, 창 가에 서서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재숙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재숙 웬일이야? 일요일날 집에 붙어 있고?
인하 ...
재숙 약혼식 날 잡았나 보던데?
인하 (그제서야 돌아본다) 누가 그래?
재숙 지금 수빈이네 엄마하고 통화하던데?
인하 (갑자기 열 받는다) 에이, 씨, 정말.
인하, 재숙을 확 밀치고
밖으로 나간다.
S#29. 다시 거실
인하, 급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인하 왜 이러세요, 정말.
왕여사 뭐가?
인하 결혼은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왕여사 질질 끌거 뭐 있어? 말 나온 김에 해버려야지.
인하 지금 누가 결혼하는 거에요?
왕여사 너. 그동안 교제해 오지 않았니?
인하 (어처구니가 없다) 억지로 만나라 그래서 억지로 만난 것 뿐이예요.
왕여사 그랬으면 됐지, 뭐가 문제야?
인하 ... 아버지, 어디 가셨어요?
왕여사 약속 있으셔서 나가셨다.
인하 ... 저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요.
왕여사 알아. 누군지.
인하 (기가 막히다)
왕여사 그래서 걔랑 결혼 할 수 있을 거 같애? 할 수 있으면 해 봐.
인하 어쨌든 전 이 결혼 못합니다. 그렇게 아세요.
왕여사 지금 나 협박하는 거니?
인하 맘대로 생각하세요.
인하, 다시 올라가 버린다.
왕여사, 비웃는다.
S#30. 인하네 집 앞
인하, 차를 몰고 나간다.
S#31. 연희네 집
이모부, 얼굴에 난 손톱자국에
연고를 바르고 있고
이모, 눈두덩이 퍼렇게 부어 오른
얼굴로 난장판이 된 집안을 청소하고 있고
연희, 설거지를 하고 있다.
이모 (술병을 치우며 궁시렁 궁시렁) 도대체 몇 병을 쳐 먹은
거야? 이건 벌어들이는 돈보다 깨진 물건 고치는 돈이 더
많이 들어가니, 어디 살겠어?
이모부 그러게 왜 사람 속을 긁어?
이모 (째려보며) 그래서 지금 잘했다는 거야?
연희 이모, 눈 뜨자마자 또 왜 그래?
이모 으휴... 내가 연희 보기 창피해서 참는다.
이모부 누가 할 소릴 하는 거야?
이때 전화벨 울린다.
이모부 여보세요. ... 잠깐만 기다리세요. 연희야. 전화.
연희 (손의 물기를 닦고 수화기를 건네 받는다) 여보세요. ...어, 수빈이니?
S#32. 수빈이네 집
수빈, 앞치마를 하고
요리 노트를 펼쳐 놓고
바쁘게 여러 가지 요리를 하고 있다.
딩동.수빈, 반갑게 뛰어가 문을 열면
인하가 서 있다. 수빈, 당황한다.
수빈 웬일이세요?
인하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 나올래요?
수빈 지금 못 나가는데요. 잠깐 들어오세요.
인하, 앞치마를 한 수빈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들어와 거실로 간다.
수빈 앉으세요.
인하 (앉는다)
수빈 마실 거 드릴까요?
인하 물 한 잔만 주세요.
수빈 잠깐만 기다리세요.
수빈, 부엌으로 뛰어가
렌지의 불을 끄고 물을 한 잔 따라온다.
인하, 그런 수빈의 모습을 신기하게 본다.
인하 (수빈이 내미는 물잔을 받으며) 손님이 오시나 봐요?
수빈 예.
인하 미안해요. 연락도 없이 무작정 찾아와서.
수빈 할 얘기가 뭐예요?
인하 약혼식 날 잡았다는 얘기가 있던데 알고 있어요?
수빈 몰라요.
인하 (한숨) 나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아니죠?
수빈 당연하죠.
인하 근데 왜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있는 거예요?
수빈 누가 할 소린지 모르겠네요?
인하 우리 확실하게 합시다. 서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수빈 (기가 막혀 웃는다)
인하 미안해요.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서로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수빈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이때, 현관으로 연희가 들어온다.
연희 수빈아. 문이 열렸네?
연희, 들어오다가
인하를 보고 얼굴 굳는다.
인하도 연희를 보고 놀란다.
수빈 명하씨는?
명하. 연희의 뒤에서 들어오다가
인하를 보고 기가 막혀 하고
인하는 명하를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수빈 인하씨도 식사하고 가세요.
인하 ... 그럴까요?
시간경과
네 사람, 수빈이 만든 요리상에 둘러앉아 있다.
연희 이걸 너 혼자 다 만든 거야?
수빈 그럼. 요리학원에서 배운 대로 한 거야.
연희 오늘 무슨 날이야?
수빈 아니, 명하씨한테 미안해서. 손수 라면도 끓여주고 그랬는데.
너한테 전해줄 것도 있고, 겸사겸사 오라 그랬어.
인하 (수빈과 명하를 본다)
수빈 (명하에게) 와줘서 고마워요. 맛있어요?
명하 응.
침묵.
인하 (명하를 보다가) 우리 자주 보는데 아직 이름도 모르네요.
통성명이나 합시다. 강인합니다.
명하 (보다가) 한명합니다.
인하 ... 어머니 성 따랐어요?
명하, 이상하다는 듯
인하를 보다가 연희를 본다.
연희와 수빈, 영문을 모르겠다.
인하 몇 년생이예요?
명하 그쪽은요?
인하 ... 관둡시다.
다시 침묵.
인하 (명하에게) 지금 뭐해요?
명하 ... 놉니다.
연희 제대한지 얼마 안 됐어요.
인하 아, 그래요? 몇 사단에서 근무했어요?
명하 군대 갔다 왔어요?
인하 ... 아뇨.
명하 근데 왜 물어 봐요?
인하 (아니꼽다) 하, 물어볼 수도 있지...
명하 그쪽은 뭐하시는데?
수빈 연희 회사 이사님이예요.
명하, 연희를 보고 연희, 당혹스럽다.
인하,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인하 식사하시는데 죄송합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빈씨, 잘 먹었어요. (연희에게) 내일 보자.
인하, 현관으로 나가고
수빈만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한다.
명하와 연희,
그자리에 굳은 듯 앉아있다.
S#33. 수빈의 집 앞 (밤)
인하, 차 안에 앉아
심호흡을 크게 하고 출발한다.
S#34. 유니온 외경
S#35. 엘리베이터 앞 복도
엘리베이터에서 임사장과 춘배가 내린다.
춘배, '형님' 이라는 책을 잔뜩 들고 있다.
두사람, 회장실쪽으로 가는데 재숙이 맞은편에서 오자
춘배, 책으로 얼른 얼굴을 가리며 임사장 뒤에 숨는다.
재숙, 얼굴을 가린 춘배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S#36. 경환의 사무실
경환과 임사장, 마주 앉아 있다.
경환 (임사장의 회고록을 들여다보며) 이런 거 내기엔 너무
이르지 않아?
임사장 과거를 참회하는 심정으로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경환 내 얘기도 들어 있나?
임사장 제 얘기를 하는데 회장님 얘기가 빠질 수 있습니까?
경환 (노려본다)
임사장 아, 물론 등장인물은 모두 익명으로 처리했으니까 회장님께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경환 그래?
임사장 아, 그리고 이 책으로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쳐서 여러권 들고 와봤습니다.
한 번 검토해 주십사하구요,
경환 그러지. (책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고) 그나저나 인하엄마 말이야.
임사장 (본다)
경환 당분간 어디로 좀 보낼 수 없을까?
임사장 ... 제 말을 들으실 분이 아니잖습니까?
경환 말로 안되면 자네가 힘을 좀 써 보든가.
임사장 (잠시 보다가 씩 웃는다) 회장님. 제 나이가 몇입니까?
아시잖습니까? 저, 이제 힘 없는 거.
경환 ...
임사장 직접 만나보시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요?
경환, 얼굴을 찌뿌리며 생각에 잠기면
임사장, 그런 경환을 본다.
S#37. 연희네 집 앞
경환의 차가 서고,
경환, 차에서 내려 얼굴을 찌푸리며
동네를 한바퀴 둘러본다.
S#38. 명하네 집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은옥의 옆에 명하가 다가와 앉는다.
명하, 거울로 은옥의 눈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은옥 왜 이래?
명하 아들이 둘이면 큰 아들한테 정이 더 간다면서?
은옥 아무래도 그렇겠지. 첫정이 무서운 건데.
명하 엄마도 그래?
은옥 (화장을 하다가 굳은 얼굴로 명하를 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명하 만약에 엄마도 아들이 둘이라면 그렇겠냐고.
은옥, 대답을 못하고
잠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는데 현관벨이 울린다.
은옥 (얼른 일어난다) 누구지? 누구세요?
은옥, 무심코 현관문을 여는데
경환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서 있자
얼굴이 차갑게 굳는다.
명하, 현관문 쪽을 슬쩍 내다보다가
경환과 눈이 마주친다.
경환, 집안을 둘러보다가
명하를 살피듯 보고 다시
은옥에게 시선을 돌린다.
경환 잠깐 얘기 좀 하지.
은옥 할 얘기 없어요.
경환 인하 만났다면서?
은옥 ... (쏘아보며) 그래서요?
경환 당신이 걜 만날 자격이 있는 여자야?
은옥 (명하가 마음에 걸린다) 나가요. 나가서 얘기해요.
경환 (명하를 보며) 쟤가 걔야? 인하 동생이라고?
(픽 비웃고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바닥에 탁 던진다) 길게
얘기할 건 없고, 두 번 다시 애 앞에 나타나서 헛소리하지 마.
은옥, 분하고 억울하여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 죽여 울기 시작하고
경환, 다시 명하를 날카롭게 보고 돌아선다.
명하, 경환이 나가자 바닥에
던져진 봉투를 집어 들여다본다.
은옥, 억지로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린다.
명하, 은옥을 잠시 보다가
돈봉투를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간다.
S#39. 명하네 집 앞
명하, 계단을 후다닥 뛰어 내려오지만
경환의 차는 눈앞에서 붕 떠나버린다.
명하, 봉투를 움켜쥔 채 가는 차를 노려본다.
S#40. 옥상 (밤)
명하, 구석에서
웅크린 채 가만히 앉아있다.
은옥 (소리) 내가 입이 열 개라도 너희 형제들한테 할 말이
없구나. 언젠간 이런 날이 오리라고 그때 생각했어야
했는데... 엄만 그냥 너마저 빼앗길까봐, 그래서 그랬던 거야.
... 미안하다, 명하야. 아버지 미워하지 마라.=
명하, 분노에 찬 얼굴로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꽉 쥔다.
S#41. 유니온 비서실
명하, 앞을 가로막는
고부장과 직원들을 거침없이 뚫고
회장실 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간다.
S#42. 회장실
경환, 전화를 받고 있다가
깜짝 놀라 얼른 끊는다.
경환 제가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고부장에게) 뭐야!
경환, 명하를 노려본다.
명하, 매달리는 고부장을 뿌리치고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경환의 책상에 던진다.
명하 당신이 누군지, 내 어머니하고 무슨 사이였는지 난 상관하고
싶지 않아. 당신이 설령 내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야.
경환 ...
명하 나한테 아버지란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경환 누가 니 아버지란 거냐?
명하 나도 당신이 내 아버지가 아니길 바래. 우리 엄마 앞에
두번 다시 나타나지 마.
명하, 경환을 노려보다가 나간다.
경환, 기가 막혀 혈압이 솟구친다.
고부장, 부리나케 경환에게 달려간다.
S#43. 복도
명하, 회장실을 나와 긴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다가
마주 오던 인하와 마주친다.
인하, 명하를 보고 놀라 선다.
명하, 걸음을 멈추지 않고 빨갛게
충혈이 된 눈으로 인하를 노려보며 걷다가
인하와 스치는 순간 싸늘하게 외면한다.
인하, 명하가 지나간 다음에도
그 자리에 굳은 채 명하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ENDING